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시편 7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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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6월호>
가을에작년 김포 들길을 걸으면서 보니 어떤 논에는 피가 많아 벼 반 피 반으로 주인이 농사를 포기해 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밭으로 치자면 곡식 밭에 독보리가 반 이상 차지해 버린 것입니다. 독보리는 원수가 뿌려 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농부가 잠자고 있는 사이에 마귀가 와서 뿌려 놓은 것이기에 식별이 어려워 뽑아내지 못했고, 또 뽑으려고 시도했다가는 오히려 곡식을 잘못 뽑을 것 같아서 다 자란 뒤에 뽑아 불태우려고 그대로 두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독보리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곳에 들어와서 그리스도인으로 가장하고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배교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버린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배교란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믿었으나 잘못되어 버린 사람들, 혹은 처음부터 잘못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잘못 믿었거나 믿었으나 잘못 성장한 사람들이 잘못된 밭, 즉 그들의 종교생활을 인정해 주고 용납해 주는 토양에서는 얼마간 견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잘된 토양에서는 즉시 독보리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변화되고 나서 성장하지 아니하면 그런 사람들은 무척 힘들게 교회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배교하는 일이란 떨어져 나간다는 말입니다(살후 2:3). 즉 믿음의 뿌리가 잘못되어 썩어 버렸거나 과일의 꼭지가 썩어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렵게 붙어 있으려 해도 썩은 뿌리 때문에 쓰러지고 썩은 꼭지로 인해 과일을 매달고 있을 수 없기에 떨어져 버린 것이고, 또 하나님 편에서는 썩었기 때문에 뽑아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반대 현상도 있습니다. 교회인 줄 알고 신실하게 섬겼으나 알고 보니 썩은 토양인지라 곧 질식할 것 같고, 주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진리의 냄새가 없을 때 숨쉴 곳을 찾아 나서게 된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썩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본인 자신에게 있습니다.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을 무시하고 산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으니 너도 아끼지 아니하실까 주의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시니 만일 네가 그분의 선하심에 머물면 그 선하심이 너에게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아니하면 너도 꺾이리라(롬 11:21,22).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넘어지지 않고, 썩지 않고, 꺾이지 않을 그런 기회들을 주셨지만 그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거부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는 비극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성경공부, 주일 설교, 수요기도회, 성도의 교제, 섬김의 기회 등을 주었지만 그들은 그런 기회들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모두 거부하더니 급기야 약을 쓸 수 없을 만큼 썩어 버린 것입니다. 대충대충 믿는 데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피가 흘려진 장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배교에는 처방약이 없습니다. 많은 실족자들이 자기의 부패가 심한 것은 인정하지 않고 소금이 잘못된 것처럼 교회와 목자를 음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자도 썩었으면 뽑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자라고 봐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목자가 썩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목자를 봐주는 것입니다.
본문은 주님의 천 년 통치를 쉽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새 세대의 상황을 어떤 주석의 도움도 필요없이 말씀을 묵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I
여러분의 믿음이 천 년 통치를 바라는지 보십시오.
해와 달이 있는 한 그들이 모든 세대에 걸쳐 주를 두려워하리라고 했습니다(1-5절).
주님은 태양이십니다. 그분의 교회, 즉 성도들은 달입니다. 우리는 태양 같은 빛이 아니라 그 빛을 받아 반사시키는 빛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태양 빛을 세상에다 반사시킬 수 있어야지 그 빛을 가려서 그림자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많은 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세상에 비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신인 마귀가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입니다(고후 4:4). 어둠 속에서 마귀의 자식으로 살았던 자들이 복음을 믿어 빛으로 나왔다고 고백했으면서도 다시 어둠 속으로 찾아 들어간 후에 그들은 거짓되이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로부터 구하여 내셔서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으니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1:13,14). 흑암의 권세는 마귀의 권세를 말합니다. <개역성경>에는 “그의 보혈을 통하여”라는 말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없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불신의 네 단계를 보면 첫째,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교회만 다니려고 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복음 없이 다른 복음, 즉 순복음, 천국복음, 치유, 방언, 귀신 쫓아내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요인이 됩니다. 둘째,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믿지 않고 성경을 배우지 않으면서 순복음 교리나 베뢰아 신학, 다락방 교리 같은 것들을 배우는데 그런 것들은 말씀을 아는 데 방해요인이 됩니다. 제도화된 교회나 은사주의 교회에 오래 있다가 우리 교회에 오면 새로운 진리의 지식이나 향상된 계시를 받아들이는 데 무척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썩어 버린 옛 것들을 다 토해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가지고 있던 지식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계는 <개역성경>을 쓰고 있는데 바른 성경이 나왔음에도 그 성경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소망 없이 즐거워하는 자들입니다. 지상에서 사는 동안에 번영하고 복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아니며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이 아닙니다. 넷째, 그들은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제 곧 이 땅을 천 년간 통치하시게 되는데 얼마나 많은 자들이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 종말론을 붙들고 있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자기가 전천년주의를 믿는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를 안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를 믿지 않으면 그의 믿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더러운 양심을 말씀의 물로 씻지 않은 채 다니기 때문에 불신의 병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이 만성이 되면 치료약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존귀한 이름이지만 그분의 인간 이름입니다. 갈릴리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마 21:11)는 예수님께서 초림 때 선지자로 오신 이름입니다. 신명기 18:18에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제사장으로 불리셨습니다(히 3:1; 4:15). 그분의 왕 되심을 나타내는 이름은 “그리스도”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분이란 뜻의 이 이름은 그분의 사역을 나타내고, 그분의 메시야임을 나타내며, 그분이 왕 되심을 나타내는데 사탄이 이 이름을 도용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쓸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님의 완전한 이름 대신에 그리스도라고만 부르는 집단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이 문자적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삼하7:12,13,16,18-21,24-26, 시 89:34-37).
II
여러분들의 믿음이 천 년 통치를 바라는지 보십시오.
그의 이름이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9-17절).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심문하던 빌라도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8:36).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 17:14).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의 차이점은 그들에게는 말씀이 없고 우리에게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말의 아비입니다.
그들은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태양신 바알로 대체해서 섬깁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라(Allah)라는 이름으로 대체한 것이 모슬렘이듯이 그리스도와 무관한 자들이 태양만을 섬기려고 할 때 바알을 섬기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성경을 모르면 우상을 섬기게 되고 무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카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카나안 사람들은 바알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토속신앙이나 무속신앙은 홍수나 가뭄으로 농사가 안 되었을 때, 맹수들이 사람이나 가축을 해쳤을 때, 전염병이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믿는 미신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바람과 모래밖에 없는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다가 풍요로운 카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순간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풍요를 줄 수 있다고 믿은 카나안의 신 바알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겼던 것입니다. 인간을 망치고 성도의 믿음을 파괴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재물이든 사람이든 거짓 교리든 그것을 멀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우상을 신으로 섬기게 한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름이 여룹바알이었는데 ‘바알과 싸우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상과 싸우는 사람, 그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III
여러분의 믿음이 천 년 통치를 바라는지 보십시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18-20절).
모슬렘의 테러를 방관만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세계는 오토만 투르크나 십자군 때처럼 많은 나라들을 모슬렘에게 내어 주었을 것입니다. 세계의 반전운동은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테러를 방관하게 되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나중에는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것입니다. 테러와 인질에 겁먹은 자들이 의리를 저버리고 연합군에서 이탈해 버렸습니다. 테러를 무서워하면 그것을 이용해서 더 큰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 왜 희생이 없겠습니까? 전쟁에는 용감히 싸운 사람에게 주는 많은 훈장도 있습니다. 전쟁이 없는데 왜 군인이 필요하겠습니까? 군인은 자기 나라와 자기 가족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노력이나 유엔의 중재나 강대국의 무력으로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는데 그것이 곧 영광의 왕이 오셔서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모슬렘 테러분자들이 극성을 부리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귀한 젊은이들의 피는 계속 흘려지게 될 것입니다. 사탄이 모슬렘을 부추기기 전에는 공산주의를 부추겼습니다. 1917년 러시아의 10월혁명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때문에 피를 흘렸습니까?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다시 모슬렘이 발악을 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만약에 모슬렘이 수그러들게 되면 인종 간의 전쟁과 동시에 종교 간의 전쟁으로 서로 죽이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는 유엔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화평의 통치자가 없이는 화평이 없으며 왕이 없으면 왕국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성경이 없으면 인류는 소망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실 때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해서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속히 오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속히 오셔야 합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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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이 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