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너희는 성별하라 [고린도후서 6: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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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3월호>
소외란 어떤 사람이 자신을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단순히 격리시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카톨릭의 수녀원이나 수도원, 불교의 절간에 사는 사람들처럼 자의에 의해서거나 타의에 의해서 자신을 격리시켜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격리라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범죄자들을 격리시켜 감옥, 수용소, 재활보호소에 일정 기간 동안 가두어서 생활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술이나 노름, 마약 등에 중독된 사람들도 치유를 위해 격리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선의의 사람들에게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범죄를 자주 반복함으로써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이 되면 국가가 그런 자들을 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사형제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별은 소외나 격리와는 다릅니다. 성별이란 단순히 어떤 것에서 떠나 분리를 이루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성별하기 위해서는 더러운 것으로부터 떠나고, 죄로부터 돌이키고, 더 나아가서 세상과 믿음 없는 사람들로부터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죄나 나쁜 습관으로부터 돌이켰으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헌신하라고 하는 권면이 있습니다(롬 12:1,2). 그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서 그분의 목적에 합당하게 빚으셔서 쓰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몸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6:19,20).오늘날 우리 나라 기독교계는 5만 개 이상의 교회들과 천만 명 이상의 교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오자 더 이상 교인들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고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모여드는 그 교인들이 다 거듭나서 세상으로부터, 잘못된 교리들로부터 성별해서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럴싸하게 이름난 교회에 남에게 자랑도 할겸 다니기로 했더라도 자기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면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그 사람이 성경을 읽는 데 소홀히하고, 진지하게 기도하지도 않고, 성경을 믿지도 않고, 일주일 내내 한 사람에게도 진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적이 없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나 자기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의 수가 바다의 모래같이 많을지라도 그들 가운데서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많고 교인들도 많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은 단 한 가지도 일어나지 않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 교회들을 보면 이름도 지구촌, 온누리라고 하는데 그것은 곧 카톨릭이라는 말입니다. 그 목사들이 주일을 기다릴 때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주일날이 그들에게는 돈이 들어오는 날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교회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은사주의 목사들 가운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돈이 많이 들어오니까 그 교회 목사들은 기도할 일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을 것입니다. 뭔가 부족하고 궁핍함이 있어야 무릎을 꿇을 텐데 기도할 일이 있겠습니까? 이런 것이 한국식 기독교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교회상입니다. 왜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까? 성별을 배우지 않았고 실행하지 못한 결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 교회들에서는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성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필요성도 모르는 것입니다.
성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I.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14절).
신명기 22:10에서는 수소와 나귀를 함께하여 밭을 갈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는 유대인들에게 깨끗한 동물이지만 나귀는 불결한 동물입니다. 깨끗한 짐승과 더러운 짐승을 같은 멍에를 메게 하는 것도 잔인한 일인데 하물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같은 멍에를 메게 하는 것이 얼마나 더 잔인한 일입니까! 멍에는 둘에게 지우는 빗장과 같은 것입니다. 아모스 3:3은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고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멘 믿는 사람이 있다면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가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성경을 무시하며 나아갈 때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이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 인생에 무슨 낙이 있고 의미가 있겠습니까? 잘못된 결혼 때문에 지상에 사는 날 동안 지옥을 맛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는 명령이 주님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를 위한 것입니까?
이 명령은 우리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왜 믿지 않는 자와 함께 살면 지옥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따르려고 할 때마다 상대가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가 잦아지고,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상대와 싸움을 피하고 잘 지내기 위해서는 상대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갈라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쉽겠습니까? 자식들도 있고 얽히고설킨 일들과 주위의 눈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 생활이 곧 지옥인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처녀가 한 신랑감을 소개받았는데 가문도 좋고 학력도 좋고 직업도 좋고 외모도 좋고 매너도 좋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신랑감에게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히자 상대는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결혼하면 자기도 교회에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그 처녀는 남자의 그 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는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또 상대편이 자기에게 호감을 주고,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니까 결혼 후에 구령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 구령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마귀의 속삭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데는 30초도 안 걸립니다. 결혼 후까지 미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빛 가운데 살지만 죄인인 배우자는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지만 상대는 마귀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전이지만 상대는 우상의 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를 향해 가고 있지만 상대는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말만큼 자주 쓰고, 거짓된 말도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운명을 바꿨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교계를 황폐화시킨 조건은 교인이 없어서가 아니고 교회수가 적어서도 아닙니다. 진리를 따라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거짓 신앙고백을 진짜로 받아 주었기 때문에, 거짓 성별을 성별로 간주해 주었기 때문에, 악과 죄와 비리와 타협과 거짓말을 사실인 양 받아 주었기 때문에 썩어 버린 것입니다. 지역 교회가 죄와 악을 묵과하면 하나님께서 분리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고전 5:1-5).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자신의 잘못된 것들을 교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역 교회에게 성별하라고 했는데 성별하지 못하면 그것은 죄악인 것입니다.
성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II.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15절)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같이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사탄이 같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마귀의 자식들은 마귀의 자식들끼리 살면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그들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앞에서 살고, 술 마시며 추잡한 이야기나 하고, 돈자랑이나 하고 살면 됩니다. 이것은 비단 결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믿지 않는 자와 결혼을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사업을 하려고 합니까? 믿음이 진리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도 같이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사람들입니다. 결혼도 많은 고통을 가져오지만 사업도 많은 고통을 초래합니다. 사업이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될 때는 안되는 대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왜 하필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려 하고 또 사업을 하려 합니까?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사람들입니다. 고생을 사서하며, 일부러 문제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이 한 말이나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는 그리스도인이 돈을 많이 벌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사업이 잘되는데 너무 바쁘다 보니 성경을 읽을 시간도 없고 기도할 시간도 없고 가족들과 보낼 시간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경배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업이 주님 앞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 돈 많이 벌어라. 그 일로 너무 바빠져서 나하고 교제할 시간도 없게 하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딤전 6:10). 우리의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인데 나이 50이 되면 인생을 정리하려고 해야 합니다(시 90:10). 구원받고 나서 진리를 따라 살지 않고 세상과 재물을 따라 나선 사람들은 거의 다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져서 세상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거짓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그들을 상기시키기 위해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는 것입니다.
스위스에는 제니 린드라는 오페라 가수로 대단히 성공을 한 유명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기가 절정에 오르자마자 그녀는 무대를 떠나 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이미 결혼을 해서 골드 스미스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바닷가에서 석양을 보며 성경을 무릎 위에 놓고 있었는데 영국에서 온 한 친구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스미스 부인, 어떻게 해서 성공의 절정에서 무대를 포기하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그 여인은 손가락으로 성경을 가리키면서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매일 성경 말씀을 덜 생각나게 하는 것은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믿지 않는 자나 거짓말로 믿는다고 고백한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아량이 많아서 믿지 않는 자를 믿는 자로 간주해 주었다면 그는 불행과 고통과 손해를 자초한 것입니다. 인간의 아량이 큰들 하나님만큼 크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량을 보이신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드러나느니라.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본문 고린도후서 6:16에도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이라.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 것이며 그들 가운데서 다닐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 된 것만을 자랑하면서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유능한 의사처럼 환자를 돌보되 그들로부터 감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고 양육시켜야지 그들에게서 세상 것들과 비성경적인 것들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성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III. 성결한 삶은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룩되는 것입니다(6:17-7:1).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며 또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들과 딸들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가 말하노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러한 약속들을 가졌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구원은 단번에 받지만 성결한 삶은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성결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침을 주셨습니다.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가 그 행위와 함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 안에서 새롭게 된 새 사람을 입었으니』(골 3:9,10).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말라』(롬 1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런 것을 미리 알았으니 악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자신의 견고한 입장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오직 은혜와,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후 3:17,18).
겉사람의 종교적인 행위는 어떤 성결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겉사람의 종교적인 행위가 중지될 때 비로소 속사람이 표출되어 성결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겉사람이 구원받지 않은 채 세상과 분리를 획책하면 절간의 중같이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원을 찾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별하는 것은 믿지 않는 무리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이지 단순히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소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분리를 시키는 것은 육신적인 일입니다. 성별은 자신을 더러움에서 지키는 것이지 분파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장로교합동교단은 약 200개로 분열되어 있는데 그들은 분파를 만드는 교단입니다. 그것은 모두 육신적인 일들입니다. 한국 교계를 파괴시키고, 그들에게서 수많은 목사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목사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교리들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성별된 삶 역시 교회 성장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어렵고 불가능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그 일이 어렵다 해서 포기하고 종교생활하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큽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셔서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부인하셨을 때 얼마나 어려우셨겠습니까? 왕으로 오신 분이 이방인 재판관 앞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셨겠습니까? 죄도 없으신 분이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셨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실제로 그 십자가를 지라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죽으라는 것도 아니요, 오직 자아와 세상과 죄에 대해서 죽은 자로 여기면서 살라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별된 삶을 포기하게 되면 그 사람의 삶 속에는 주님이 거하시지도 행하시지도 않습니다. 실제적으로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형성이 되지 않은 채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하옵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는 것이 아니옵고 그들을 악에서 보호해 주시라는 것이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사옵니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5-17).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사람들입니다. 세상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돼지에게는 돼지의 성품이 있고 양은 양의 성품이 있습니다. 양을 진창에 놓아 두면 곧 병에 걸려 죽고 맙니다. 그런데 초장에 살아야 할 양이 진창을 즐기려 한다면 그 양에게는 하나님의 성품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사람은 자신을 더럽힐 수 있는 환경과 요소로부터 분리시켜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이것이 성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성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성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 주시고 여러분들을 돌보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별하십시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