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산 채로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 (욥기 2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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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11월호>
칠레 산호세 구리 광산에 69일간 갇혀 있었던 광부 33명 중 마지막으로 구조된 작업조장이 10월 13일 밤 9시 56분에 올라오자, 긴 사이렌이 울리며, 마중 나와 있던 대통령과 가족들, 시민들, 기술자들, 의료진들, 세계 전역에서 취재하러 온 2천여 명의 기자들과 방송인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칠레는 자국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최상의 기회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국가(國歌)가 세계인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리니, 고난당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리니, 순수하구나 칠레, 그대의 푸른 하늘이여, 순결한 바람이 그대의 곁을 지나가네, 꽃으로 수놓인 그대 벌판은 에덴 동산의 환희를 꼭 닮았고, 그대 희고 웅장한 산맥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요새, 우리의 맹세를 받으라 칠레, 그대의 제단에 바치는 우리의 맹세, 고난당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리니, 고난당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리니." 이것이 칠레의 국가입니다. 가사에 에덴 동산, 피난처,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요새, 고난당한 자들의 피난처, 환희 등 성경적 용어가 여럿 들어 있는 애국가이기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소개하는 것입니다.지난 8월 5일 광산 붕괴 사고로 지하 700m에 갇혀 있던 33명의 광부들의 생사는 17일 동안이나 알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단절된 상태에서 지하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겪었던 불안과 초조와 배고픔과 갑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상의 가족들, 광산 관계자들, 정부, 국민들, 세계인들은 어떠했습니까? 17일간 그들은 산 채로 죽음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5일간 굶기도 했습니다. 17일 만에 그들이 갇혀 있던 위치를 찾아낸 사람은 지형학자인 30세 된 여인 마카레나 발데스였습니다. 그녀는 "미 항공 우주국 첨단 장비가 동원됐지만, 광부들을 찾아낸 일은 약간의 행운으로 축복받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해 주신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700m 지하에 있는 그들을 찾아내는 일이란 700m 떨어진 곳에서 총을 쏴 모기를 맞추는 일같이 매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발데스는 30차례의 실패가 이어진 후 마침내 광부들이 있는 지점을 찾아냈습니다. 구조대는 우주선이나 잠수함에서 쓸 법한 특수장비를 만들어 지하 피신처에 직경 13cm의 통로를 만들어 지하로 몇 가지를 먼저 공급했습니다. 칠레 대통령은 이것을 영감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였던 것입니다. ① 박테리아를 막아 주는 구리 섬유로 만든 옷 ② 영양제가 든 먹고 마실 음식들 ③ 가장 필요한 물건들 ④ 휴대전화에 연결해 영화를 보여 줄 수 있는 빔 프로젝터, ⑤ 통신을 위한 광섬유 케이블 등입니다. 놀랍게도 지하에서는 물이 솟아나와 씻고, 마실 수 있어서 갇혀 있던 광부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세계인들은 9.11 테러, 아이티 대지진, 칠레 지진, 파키스탄 대홍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자살 폭탄테러, 북한 핵실험, 미국의 경기침체, 미국 동부 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 멕시코만 기름유출사고, 더운 여름, 실업, 물가 상승 등으로 지쳐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칠레 광부 구조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비극이 될 뻔한 사건이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으로 끝났습니다." 이것이 피네라 칠레 대통령의 소감이었습니다.
사고와 재앙은 사람을 피해 가지 않는다
I. 그가 나를 연단하시면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8-10절).
욥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찾습니까? ① 이 세상의 파고를 자력으로 헤치고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②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단 몇 분 후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한 자들은 두 가지 나쁜 버릇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아예 부인해 버리고 혼자 살려는 시도이고, 또 하나는 자신, 즉 인간이 하나님같이 된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들이 뉴에이져(New Ager)들입니다. 미친 사람들입니다. 사람 안에 악령이 들어가면 미치게 되는데, 정작 본인은 그 점을 모릅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악령에게 지배당한 사람들입니다. 매일같이 드러나는 범죄자들, 술취한 자들을 보십시오. 이런 세상 가운데서 여러분이 안전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라고 단정하셨습니다(시 14:1; 53: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인데(시 111:10, 잠 1:7; 9:10),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이 초․중․고등학교는 물론이요, 대학교, 대학원 강단에서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하기에 그들은 쓸데없는 것들을 가르치며 밥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본주의 세계, 곧 "세상"입니다.
사람이 왜 오래 살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그들은 내놓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헛짓을 하며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 죄를 더 많이 짓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무관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목사들은 일찍 죽습니다. 죄를 많이 짓고도 회개할 줄 모르면 지상 생명이 짧아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불효한 자들은 지상 생명이 짧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초기의 사람들의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아담(930세), 셋(912세), 에노스(905세), 에녹(365세에 휴거), 므두셀라(969세), 라멕(777세), 노아(950세), 셈(600세), 아르박삿(438세), 살라(433세).
노아가 살았던 시대(B.C. 2347년)와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B.C. 1920년)는 427년밖에 차이가 안나지만 인간의 수명이 갑자기 줄어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이집트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수명은 400년에서 100년대로 낮아졌는데, 바벨탑을 쌓던 그때에 900년에서 400년대로 낮아졌던 것입니다. 범죄하면 생명이 짧아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175세), 이삭(180세), 야곱(147세), 요셉(110세)처럼 연수가 점점 줄었습니다. 모세(120세)는 죽는 날까지 눈도 흐려지지 않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습니다. 더 살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의 대가로 빨리 죽게 하시고 나중에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시편 90:10에서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생명이 70-80년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젊은 나이에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욥은 한 자연인으로서 하나님을 찾아보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한 구원 계획을 완성하기 이전에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어쩌면 간단했습니다. 『마음이 순결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천년왕국의 법입니다. 욥의 때에는 가능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인이었습니다.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의인이었습니다. 다윗과 사무엘도 하나님이 인정하신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 이후인 지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요 14:6). 의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롬 3:10,23)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아 만날 수 있습니다(요일 1:7). 그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면 우리가 정금같이 되는 것입니다. 허술한 믿음으로는 나아올 수 없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써 단련될지라도 없어져 버리는 금보다 훨씬 더 귀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1:7). 연단되지 못했으면 금같이 되어 나오지 못합니다(벧전 4:12-16). 칠레 광부들은 산 채로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겪었어도 지옥이 어떠한지 모른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명확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사고와 재앙은 사람을 피해가지 않는다
II. 그의 입의 말씀을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더 귀히 여겼도다(12절).
칠레 광부 중의 한 사람은 영상통화에서 우리는 34명이 함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17일 동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32-40℃에 육박하는 더운 공간에서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땅 밑에 지옥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옥은 아닐지라도 지옥의 모형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지옥은 불길이 뜨겁고, 벌레 같은 것들이 기어오르고, 지독하게 목마르고, 고통스럽고, 외쳐도 들어 줄 사람도 없고, 회개하고, 잘못했노라고 수백 번 수천 번 외쳐대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자기들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지닐 수 없는 17일 동안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 주신다면 나는 영원한 것을 위해 내 일생을 쓰겠노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썩는 음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않을 음식을 위해서 일하라"는 말씀을 자기들이 태어난 이후로 그들의 카톨릭 사제에게서 들었겠습니까?
그들 중에 한 지도자 "우르시아"가 있었는데, 극단적 공포에 직면한 33명의 건강한 사내들을 69일 동안 반목과 분쟁이 아닌 인내와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세 파로 나뉘어 다툼이 있기도 했으나, 그 사실은 외부에 알리지 말자고 서로 입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음식과 물을 나눠 먹고 마시며 눈물겨운 양보와 희생정신을 세계인들에게 보여 줬습니다. 그들은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잠들기 전에 모여 기도했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단 한마디의 성경 구절도 나오지 않았고, 그들은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카톨릭으로 나서 카톨릭으로 자라면서 성호나 긋고, 마리아에게 절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런 곤경 속에서도 "그의 입의 말씀을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더 귀히 여겼도다."라는 간증이 없을 뿐 아니라 무슨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적이나 외쳐대는 것입니다. 욥은 지하 700m의 어두움에서 69일간 지내지 않았어도 자식들이 다 죽고, 아내조차 저주했으며, 재산도 다 잃었고, 피부병으로 고통받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욥 1:21,22).
로마카톨릭은 종교 창녀입니다. 창녀가 바른 성경을 찾을 리 없습니다. 로마카톨릭은 정치적인 나라들을 지배하기 위해 세상과 친해져야 했기에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카톨릭 고위 성직자단과 그들의 교리로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로마는 세상적인 교회로 꾸며서 세상의 호의를 얻었습니다. 개신교회들도 카톨릭처럼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킹제임스성경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른 성경이 필요없는 교회를 만들어 성경이 필요없는 사람들이 다니기에 편리한 교회를 만들어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마귀에게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길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넓은 길입니다. 주님이 제시한 문과는 다릅니다(마 7:13,14).
주님은 고난을 통해서 진리에 눈뜨게 하시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주십니다. 이 일은 주님이 하시는 특권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 이는 내가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이고 또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또 원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면 네가 내게 "어찌하여 그분께서 여전히 잘못을 찾고 계시며 누가 그분의 뜻을 거역하였느냐?"라고 말하리라. 이 사람아, 네가 누구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음을 받은 것이 지은 이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고 말할 수 있겠느냐?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나타내시고 또 그의 능력을 알게 하시려고 멸하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을 심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시며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자비의 그릇들에게 그의 영광의 풍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다면 어찌하겠느냐? 곧 우리에게니 그가 우리를 부르셨으되 유대인들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셨느니라』(롬 9:17-24). 그 33명 중에 누군가가 제대로 주님을 만났다면 간증이 있게 될 것입니다.
사고와 재앙은 사람을 피해 가지 않는다
III. 내가 그의 면전에서 괴로워하며 그를 두려워하는 도다(15-17절).
사람은 누구나 죽고 사는 일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돈이 많고 권세가 있고, 원하는 대로 하고 살면서 5년 계획, 10년 계획 세우며, 동산이 얼마, 부동산이 얼마라고 계산하며 만족해 하는 사람은 바보스런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계획대로 자기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잠 14:12; 16:9,25; 19:21). 주님 없이 세운 계획에는 잘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제 오라,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느 성읍으로 가서 거기서 일 년쯤 지내며, 사고 팔아 수익을 올리리라." 하는 자들이여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오히려 너희가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겠고, 또 이것이나 저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말해야 할 터인데 이제 너희가 너희의 자만 가운데 기뻐하고 있으니 그러한 기쁨은 다 악하니라.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죄가 되느니라』(약 4:13-17).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과 어정쩡한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섬김의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서 의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으로 구원받았기에 자기의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아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복종했던 것처럼 내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내가 없는 지금도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빌 2:12).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경을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닙니다. 욥이 의인인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을 일찍 알았기 때문입니다.
1700년 구이욘(Madam Guyan, 1648- 1717)은 진리 때문에 지하 굴속(감옥)에서 15년간 비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15년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최악의 일은 하나님께서 그녀가 체포된 후 5년간이나 그녀에게 자신을 계시하지도 않으시고 그녀와 밀접한 교제를 갖지 않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루마니아의 리차드 움브란트(Richard Wumbrant), 불가리아의 하랄란 포포프(Haralran Popov) 목사는 공산정권의 혹독한 박해와 고문에도 비참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주님이 그들과 함께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두 목사는 기적적으로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가혹한 벌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럽습니까? 이북에는 그런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도둑의 장막이 왜 번성합니까? 이것이 유사이래 세기의 질문입니다. 그리스도인조차도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가 구이욘 부인에게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는 책임이 없습니다. 그분께 대한 나의 자세에만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구이욘 부인이나 리차드 움브란트, 하랄란 포포프나 욥이나 사도 바울이나 다 같은 심향입니다. 여러분 안에 간사하고 구질구질하고, 믿는 것인지 안 믿는 것인지, 간증인지 아닌지도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이 세상의 현재의 나의 삶에 뒤엉켜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참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십니까? 그것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면 언제쯤 배울 것입니까? 자기 생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이 점을 배울 것입니까? 지하 700m나, 지하 감방이나, 공산주의자의 감옥에 들어가야만 알 것 같습니까? 단두대로 향한 사도 바울은 아무런 가책도 없는 삶을 살았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성경에 자기 간증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 변호할 때에는 나와 함께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느니라.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탓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노라. 그러나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내게 힘을 주신 것은 나를 통하여 복음 전파가 온전히 수행되어 모든 이방인들로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려 하심이며, 또 내가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느니라. 주께서는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구해 내시고, 그의 하늘 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를 보호하시리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후 4:16-18). 이 나라 목사들이 크게 회개해야 할 대목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믿음의 증거입니다. 칠레의 33명의 광부들도 지상 삶의 회생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살아야 합니다. 지상 생명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산 채로 죽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요나는 주님의 명령을 거절하고 주님의 낯을 피하여 타시스로 도피하려다 바다에 던져져 고래에게 삼켜졌고 또 다른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어떤 사고와 재앙으로 땅 속에 또는 물 밑에 갇힐는지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지하에 매몰되어 죽은 광부가 6,300명이 넘었습니다. 죽어 지옥으로 가는 사람과, 죽어도 지옥에 가지 않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칠레의 광부들은 지옥을 69일간 경험하고 살아났지만, 지금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구원받지 않으면 진짜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아야 합니다. 그 교훈을 배워야 참으로 승리하는 성도로 사는 것입니다. BB
여기에 실린 "이 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