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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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때(히 9:10) vs. 새롭게 되는 때(행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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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3월호>

개혁의 때(히 9:10) vs. 새롭게 되는 때(행 3:19)


의사가 환자를 수술대 위에 눕혀 놓고 수술용 칼로 배를 갈라놓은 채 어떻게 할 줄 몰라 의학전서를 펴놓고 환부의 얼마만큼을 잘라낸 후 어떻게 봉합해야 할지를 알았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이런 의사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은 양날 가진 시퍼런 칼이다(히 4:12). 많은 목사들이 사람의 몸, 혼, 영을 다루겠다며(살전 5:23)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며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쓰는 칼이 이가 빠져 있고 갈지 않아 무디고 녹이 슬어 있다면 그 칼로 어떻게 사람의 혼과 영을 가르며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며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잘라낼 수 있겠는가? 삭제되고 변개된 엉터리 성경은 무디고 녹슨 칼과 같다. <한글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은 너무 무디고 이가 많이 빠져서 혼과 영을 가를 수 없다. 그들의 성경에는 몸, 혼, 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만 있다. 또 어떤 목사들은 양날 가진 예리한 칼을 가지고 함부로 장난을 치고 있다. 성경을 가르쳐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며 성령님은 성경에 기록된 데서 벗어나서는 절대로 가르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을 배격하는 그런 목사들은 성경을 잘못 해석해 놓은 주석서를 붙잡고 그들을 따라감으로써 자신들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면서 하고 있다면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든지 불문하고 그런 사람은 어리석고 악한 사람이다. 수술할 줄 모르면 수술하지 말아야 하고 설교할 줄 모르면 강단에 서면 안 된다. 의사는 몸의 일부분만을 수술하여 잘못되면 육체에 해를 끼치게 되지만 설교자가 혼과 영에 유해를 가하면 마귀에게 넘겨주어 영원한 정죄를 받게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함부로 성령의 칼을 휘둘러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당시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요즘 목사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백성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그들의 행보는 진리에서 멀리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가리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힐책하셨다(마 15:14). 뿐만 아니라 이들 종교지도자들보다는 어린 아기들이 더 순수하고 보다 잘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시여, 이런 일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기들에게는 나타내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그러하옵니다. 아버지시여, 이는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선함이니이다』(눅 10:21). 하긴 자만하고 건강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갓난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2:2)고 말씀하셨고, 구약에서도 주님은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 힘을 두심은 원수와 복수자를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시 8:2)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그가 누구에게 교리를 깨닫게 해 줄 것인가?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에게로다.』(사 28:9)라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우리는 주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어떤 사람들에게 조명을 주시어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통찰하게 하시는가(고전 2:10)를 알 수 있다. 주님은 바른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깨닫게 하셨고 그들로 좋은 책을 쓰게 하시어 역시 진리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깊이를 알게 하는 데 기여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틀린 성경을 들어 쓰셔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칼이 아닌 것을 칼인 양 제멋대로 휘둘렀던 성경 주석가들과 그들에게서 컨닝했던 목사들이 남긴 열매는 무엇인가? 수치와 불명예와 악한 열매들로서 결국 이런 열매들은 진리를 훼손시켰고 배교를 조장했으며 말씀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들의 반석은 우리의 반석과 다른 것이다(사 32:31). 그들이 쓰는 포도주는 순수한 포도주가 아니라 용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다(신 32:32,33). 틀린 성경 때문에 성령님으로부터 조명을 받지 못한 주석가들이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인간의 지혜로 성경을 해석했는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도 알지 못하면서 덜커덩 붙잡고 아는 체했다간 지울 수 없는 수치를 짊어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성령님은 성도들을 도우시려 오셨고 성도들에게 진리를 깨우쳐 주시려고 오셨다(요 14:26; 16:13).
그런데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을 보라. 계속 성령을 달라고 울부짖고 있으며 심지어 이른 비를 A.D. 33년의 오순절로 여기고 늦은 비를 이 시대에 오실 성령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 비는 농사를 짓도록 내리는 비이고, 늦은 비는 밀이 자라도록 내려주는 비인 것도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불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마 3:11,12, 살후 1:8,9). 이 불은 지옥 불인데 그들은 성령으로 착각하고 지옥 불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 은사주의자들은 갓난아기들도 하지 않은 일들을 이처럼 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러는가? 잘못된 주석서에서 배운 잘못된 목사들을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 예배는 오직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여러 가지 씻는 것과 육신의 율례들에 근거한 것으로 이것들은 개혁의 때까지만 부과된 것이로다』(히 9:10).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키라. 그러면 주의 임재하심으로부터 새롭게 되는 때가 올 때 너희 죄들이 지워지리라』(행 3:19). 이 두 구절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말씀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두 상황이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도록 하자.

A. 개혁의 때(히 9:10)
1. 『개혁의 때』를 이해하려면 히브리서 9:6-10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어떤 책이 가장 어려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임이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나 무섭고 믿기 어려운 사건들이 기록되었기에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내용을 기록된 대로 믿을 수 없기에 난해한 책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앞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여기에 기록된 내용을 다 믿겠으니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읽어 보라. 그리고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요한계시록>을 7번 정도 반복해서 정독하게 되면 이 나라에서 요한계시록의 주석 전문가가 될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책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라 히브리서이다. 왜 히브리서가 난해한 책인가?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를 연결하는 전환기적 책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는 교회 시대에 적용할 부분도 있지만 환란 시대에 적용할 부분들이 대부분이다. 이 점을 모르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12장까지는 A.D. 55년 이전에 기록된 것이며 13장은 그로부터 훨씬 뒤인 A.D. 64년경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가 사도 바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2.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매년 한 번의 대속죄일(출 30:10, 레 16:15-25; 23:27)에 지성소에 들어갈 때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제단 주위의 뿔들에 바르고 그 위에 그 피를 손가락으로 일곱 번 뿌려 제단을 깨끗하게 하였다. 이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자신과 자기의 가족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의 죄들을 속죄해야 했던 것이다. 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금향로를 가지고 갔어야 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금향로를 금제단으로 알고 있어 엉뚱한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금향로는 금제단이 아니다. 첫째 성막이란 성소를 말하며 둘째 성막은 지성소를 말한다(히 9:6,7). 그런데 히브리서 9:8에서는 『첫째 성막이 서 있는 동안에도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제사장이 드린 성막 제사는 동물의 피로 드렸지만 아무리 많이 드렸어도 동물의 피는 그들의 양심을 깨끗게 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성막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모형에 불과했던 것이다. 동물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자비를 수천 대까지 간직하며 죄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나 범법자가 결코 깨끗게 되지는 아니하리니』(출 34:7) 『이는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오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희생제물과 예물을 바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4,5).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려고 침례인 요한에게 갔을 때 요한이 뭐라고 했던가?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요 1:29, <개역성경>에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이라고 잘못 번역했다). 그리스도의 피는 믿는 사람의 죄와 양심을 정결케 한다. 자신이 죄인으로 태어난 것을 알았으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그분의 피로 완성해 놓으신 구속 사역을 믿고 그 안에서 쉬기만 하면 된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일은 한 번이면 족하다. 새벽 기도에 다닐 필요도 없고 철야 금식을 할 필요도 없으며 교회에다 구원을 위해 돈을 많이 갖다 낼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제물도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는 없고 육신적인 열성으로 드리는 카인의 제사 같은 예배도 받지 않으신다. 악인이 드리는 희생제는 주님께 가증할 뿐이다(잠 15:8). 말씀대로 믿고 행하지 않으면서 하는 기도 역시 가증할 뿐이다(잠 28:9).
3. 『개혁의 때』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어 제물로 자신을 바치시던 때를 말한다. 과거 성막이나 성전에서 드려졌던 제사들은 모두 낡은 제도들로써 개혁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런 제사들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느니라』(마 9:13, 호 6:6). 『다 이루었다』(요 19:30). 이것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면서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의 선언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드려질 제사가 없다. 로마카톨릭은 매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모르면 가증한 일들을 신성한 일들로 여기고 실행하게 된다.

B. 새롭게 되는 때(행 3:19)
1.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키라. 그러면 주의 임재하심으로부터 새롭게 되는 때가 올 때 너희 죄들이 지워지리라. 또 하나님께서 전에 너희에게 전파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리라. 하늘은 만물이 회복될 때까지 그분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 일에 관하여 그의 모든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니라』(행 3:19-21). 『새롭게 되는 때』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를 말한다. 사도 베드로는 구약의 선지자들, 즉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했던 것이다(사 46:2, 렘 50:20, 암 9:14,15).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스라엘의 죄들은 지워지고 회복될 것이라는 말이다. 거의 모든 주석가들이 죄들이 지워지는 것을 개인의 구원으로 잘못 이해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해석한 것일까? 그들의 머릿속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셨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또 다윗과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들을 폐기하셨고 그 대신 교회에게로 주셨다는 터무니없는 해석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엉터리 해석은 이를 철통같이 믿어 후천년주의자들이 된 로마카톨릭을 낳았고 개신 교회들 역시 로마카톨릭에 동조함으로써 무천년주의자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동일하게 여겨 교회에만 속하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는 줄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했다면 유대인 랍비와 로마카톨릭 교황뿐 아니라 어떤 설교자들이나 주석가들도 죽으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새롭게 되는 때』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때를 말한다.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도 사지 아니하였고, 네 희생제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도 아니하였으나 오히려 너는 네 죄들로 나를 수고롭게 하고, 네 죄악들로 나를 괴롭게 하였도다. 나, 곧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네 허물들을 없애는 이니 네 죄들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4, 25). 『오 야곱과 이스라엘아, 이 일들을 기억하라. 이는 네가 나의 종임이라. 내가 너를 조성하였으니 너는 나의 종이라. 오 이스라엘아, 너는 내게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 내가 짙은 구름 같은 네 허물들을, 구름 같은 네 죄들을 지워 버렸으니 내게로 돌아오라. 이는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라』(사 44:21,22). 모든 주석가들이 이 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성경 지식에 조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바른 성경을 사랑하고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조명을 주신다. 무조건 주석가들의 주석을 믿으려 하면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을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성령님의 도움을 청하라. 바른 성경과 바른 주석을 보게 하실 것이다. 최소한의 분별력만 있다 해도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며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된다(딤후 2:1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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