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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들을 행하는 자들과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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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3월호>
요한계시록 22:14<한글킹제임스성경>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Blessed are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 that they may have right to the tree of life, and may enter in through the gates into the city.)
<개역한글판성경>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라.』
이 둘을 비교할 때 몇 가지 현저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첫째,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를 <개역한글판성경>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다. 왜 두루마기가 등장하며, 그것을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신학적 근거를 제시해 보라. 물론 이들은 성경적 근거를 댈 수 없다. 두루마기를 빨아야 하는 신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성경을 이렇게 변개시켜 놓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성경을 공부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경을 변개시킨 사람들의 무지하고 어리석고 마귀적인 점까지도 찾아서 설명해 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들이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계시록 17:14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째, 그 계명을 지킨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말은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권리 때문이다. 그런데 개역성경대로라면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고”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기에 복이 있다는 말이 된다. “생명 나무에 나아간다”는 말로는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생명 나무를 먹지 않은 사람은 죽는다. 이들이 누구인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화로운 몸을 입은 사람들이 아니라, 환란시대와 천년왕국 기간에 주의 계명을 지켜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직 영생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담이 동산의 과실들을 먹어 영생을 누릴 수 있었던 방식대로(창 2:9,16) 영생을 얻어야 죽지 않는다. 생명 나무에 참여해 영생을 얻고 영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전과 같이 남자와 여자로 산다. 그러나 교회시대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화로운 몸을 입는 독특한 사람들이다(빌 3:20,21, 요일 3:1-2).
이 시대에 은혜의 복음을 거부하고 죄짓고 세상의 풍조에 따라 산 사람들 중에 “환란 때도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고 어깨 너머로 들은 말에 귀가 솔깃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교회시대 성도와 환란 성도는 어떻게 다른가? 환란 성도는 죽지 않고 살아서 들림받았어도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다시 죽는다. 엘리야는 환란 성도의 유형인데 엘리야는 휴거되었다가(왕하 2장), 변형산에 모세와 함께 나타났다(마 17장). 그는 다시 모세와 함께 지상에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 죽었다가(계 11장) 환란 끝에 부활할 것이다.
이 생명 나무가 에스겔 44- 48장에 나오는 나무와 유사하기에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계시록 22장의 나무는 생명 나무라고 되어 있지만, 에스겔에서는 생명 나무라 하지 않고 단지 “나무”라고만 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에스겔 47:1-7은 이스라엘 땅을 지칭하나, 계시록 22장은 새 예루살렘에 있는 강을 말한다. 에스겔의 도성에는 성전이 있지만, 계시록의 도성에는 성전이 없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환란시대에서 천년왕국으로 넘어온 사람들과 천년왕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 곧 마태복음 5,6,7장의 산상설교를 지켜야 한다. 이 산상설교가 천년왕국의 헌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초림 때 천국복음(마 10장)을 전하셨으나,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부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다윗의 보좌에 앉으시어 영원무궁한 통치를 시작하시는 것은 연기되었다(눅 1:31-33).
우리는 계시록 20:13-14에서 사망과 지옥이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본다. 따라서 천년왕국 기간 동안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은 계명을 지켜 생명 나무를 먹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먹은 열매에는 영생이 있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이와같이 두루마기를 빨았다고 해서 그 생명 나무에 참예한다는 것은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지 않은가! 환란시대에는 믿음뿐만 아니라 행위도 있어야 한다. 즉 끝까지 견디며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아야 구원받는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에서는 마태복음 5,6, 7장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가 구원받아 생명 나무에 참예할 수 있다(<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요한계시록> 참조). 따라서 개역성경의 두루마기 운운하는 것은 성경을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이다.
성경에서는 대환란으로부터 나온 사람들에 대하여 계시록 7:14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다.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흰 옷”은 그가 구원받고 난 후
행위로 얻는 자기 의를 말한다. 따라서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다”는 말은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았다는 말이 아니고, 그들의 행위로 옷을 이미 씻어서 그 옷들을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다는 말이다. 이들은 교회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대환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개역한글판성경>은 이 부분에서도 틀렸다. 이 부분을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개역한글판성경, 계 7:14).
이런 성경으로 설교하는 자들은 거짓말로 설교하는 것이다. (참고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세상에서 받는 고난과 대환란을 각각 “환난”과 “환란”으로 분명히 구분했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