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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디가 손칼로 두루마리를 잘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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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8월호>
예레미야 36:21-24<한글킹제임스성경>
21 왕이 예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자, 예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왕과 왕 옆에 서 있는 모든 고관들의 귀에 그것을 읽었더라.
22 그때 왕이 아홉째 달에 겨울 궁에 앉았고 그의 앞에는 화덕 위에 타오르는 불이 있더라.
23 예후디가 서너 장을 읽고는 그것을 손칼로 잘라서 화덕에 있는 불에 던지니 온 두루마리가 화덕에 있는 불에 다 탔더라.
24 그 왕이나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씀들을 듣고서도 두려워하거나 그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더라.
<개역한글판성경>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방백의 귀에 낭독하니
22 때는 구월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삼편 사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24 왕과 그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예레미야 36장은 성경 변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제시해 주고 있다.
첫째,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에는 “예후디가 서너 장을 읽고 나서 그것을 자기의 손 칼로 잘라서 화덕에 있는 불에 던졌다”고 되어 있는데,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들에는 “왕이 베어서 불에 넣었다”로 바꾸어져 있다(한글개역성경 참조).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왕”을 작은 글자로 쓰고 있다.
본문에서 예후디가 왕 앞에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말씀을 잘라서 없애버린 것은 그렇게 하면 자기들에게 내린 경고와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음에서 나온 것이다. 마치 교회시대에 지옥을 성경에서 지우면 지옥의 형벌에서 면제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과 같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둘째, 본문은 성경 삭제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하신 말씀을 예후디가 손칼로 잘라서 화덕불에 넣어 불살라 버렸기에 원본은 없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예후디는 분명히 성경을 삭제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존하시는 것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는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여기서 모든 성경(all Scripture)은 원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어로 된 성경은 그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히브리 맛소라 원본이 있다 해도 히브리어를 “잘”(완전히 해독하고 그 의미를 알고 자유로운 해석을 할 수 있는 경우)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원본은 그의 성경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헬라어 <표준원문>도, 독일 <루터성경>도, 영어 <킹제임스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의 성경이란 자기가 쓰고 있는 언어로 된 성경을 말한다. “Scripture”란 바로 그 성경을 말한다.
성령님께서는 성경 기록자들에게 영감을 주시어 구약은 히브리어(맛소라)로 신약은 헬라어(표준원문)로 일점일획의 오류가 없게 기록해 놓으셨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서 예후디가 원문을 칼로 잘라 불에 태워버렸다면 원문이 없어져 버린 것인데 이 영감으로 기록된 원문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인간이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무효와 되겠는가?(롬 3:3)
우리는 여러 신학교에서 성경에 관해서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얼마만큼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이제 알게 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다면, 거짓 학자들이 최초의 원본에만 영감이 주어졌다는 거짓말도 하지 않을 것이며, 원본이 없기 때문에 완전한 번역본은 있을 수 없다는 거짓말도 하지 않을 것이며, 성경 원어를 모르면 성경을 알지 못한다는 거짓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보존하지 않으셨다면 왜 영감으로 기록하셔야 했겠는가? 성경을 보존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인간 마음대로 보존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어려워서 그만두었다면 이 세상에 누가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보존된 것인지 안된 것인지 모른다면 당신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구원받은 사람에게 성령이 내주하시어 모든 진리에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죽으면 셋째 하늘의 낙원에 간다는 사실을,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님이 오시면 들림받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백보좌심판, 새예루살렘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원본이 보존되었는지 안되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성경적 사실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만일 가르치고 있다면 자기도 믿지 않는 것을 거짓되이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한 은하계에 천억 개 이상의 별을 가진 은하계를 3천억 개 이상 만드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 800,000 단어를 보존할 수 없으시겠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만 믿고 그 성경이 보존되었다는 사실은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 이유는 존재하지도 않는 성경에 대하여 영감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이 쓴 책들과 그들이 하고 다니는 말을 보면, “성경의 무오성”, “영감받은 성경”, “성경을 읽자”, “성경으로 돌아가자” 등의 말을 한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성경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보존되었다고 믿지 않는 사람은 성경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영원히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카톨릭 계열 성경이 본문을 왕이 잘라 불태운 것으로 오역한 것은 27절에서 『왕이... 말씀들을 불사른 후...』 때문에 왕이라고 바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표현이 여러 곳에 있다. 『다윗이 다윗 성읍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들을 짓고』(대상 15:1). “솔로몬이 성소와 지성소의 기명들을 만들었다”(대하 3:3- 17; 4:1, 렘 52:20). 이 말은 다윗이나 솔로몬 왕이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도 여호와킴의 임재에서 예후디가 잘라 불에 넣었던 것이다.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예레미야 36:23에서 예후디가 칼로 잘라 불에 태워버렸던 원본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심을 우리로 의심할 수 없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전 두루마리가 불살라진 후 주님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불살라진 이전의 말들을 거기에 기록하라고 하셨다. 『그러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취하여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니, 그가 유다의 여호야킴왕이 불사른 책의 모든 말씀들을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온 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많은 비슷한 말씀들을 거기에 더하였더라』(렘 36:32).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이시기에 인간의 손으로 훼손시켰다고 해서 말씀을 잃어버리실 수 없다. 이런 것이 마귀의 계략에 의하여 훼손될 것도 미리 아실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앞에 훼손된 말씀보다 더 완벽한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기록된 말씀을 믿는 것인데 그 말씀이 믿을 수 없을만큼 훼손되고 변개되어 있고 심지어 최초의 원본에서 잘못 전수된 것이어서 제대로 보존되지도 않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 말씀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말씀을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주님을 잘 섬길 수 있겠는가? 예후디가 불에 태웠던 원본은 예레미야 45장-51장으로 다시 기록된 것들이다. 우리는 예레미야가 스라야에게 그 두루마리를 읽은 후에 돌에 매어 유프라테스 가운데다 던지라고 한 그 말씀은 불에 태워졌던 그 말씀을 복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렘 51:63).
자기가 모르는 외국어로 된 성경을 최종권위로 삼고 있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다. 박만수 전도사와 인하대학 정동수 교수는 자기들은 킹제임스맨이고, 필자는 TR맨이라고 떠들어대며 다닌다. 또 이들은 <킹제임스성경>이 이미 번역되어 있는데도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다며 소문을 내고 다닌다.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일는지 모르지만 <한글킹제임스성경>과 한 구절도 같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 도둑질해다가 그들의 성경을 만들면 표절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고 위법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하루는 필자가 박만수 전도사에게 전화로 물어 보았다. 박 형제에게 참으로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최종권위가 되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몇 번을 다짐해도 그렇다고 했다. 그 성경이 잘 되었느냐고 물으니 잘 되었다고 했다. 이해하느냐고 했더니 이해한다고 했다. 몇 번이나 읽었는데 잘 되었더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한 채 한참 있더니 한 번 읽었다고 했다. 박만수 전도사가 한 번 영한사전을 찾아서 읽은 <킹제임스성경>이 그의 최종권위가 될 만큼 이해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뻔뻔스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 있는 박 형제의 아버지에게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펼쳐 보여 주며 최종권위라고 하라 했더니 머쓱해졌다. 그 다음 질문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최종권위라면 그것을 그냥 사용하지 왜 번역하느냐고 물었더니 답하지 못했다. 이런 친구들이 있는 것이다. 최종권위란 의미도 모르면서 미국 사람들이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옹호하는 글을 읽고 한국 사람인 것을 망각한 채 앵무새처럼 그들의 주장을 펴는 것이다. 외국어로 된 성경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최종권위가 될 수 없다.
요점은 두루마리 서너장을 잘라 불에 넣은 사람이 왕인지 예후디인지도 중요하지만 원본이 훼손되었으므로 온전한 사본도 번역본도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그분의 섭리적인 방법으로 보존되어 있다. 히브리 <맛소라원문>, 헬라어 <표준원문>, 독일의 <루터성경>, 프랑스의 <올리베탄성경>, 이태리의 <디다체>, 스페인의 <레이나발레라성경>, 영어 <킹제임스성경>, 한국의 <한글킹제임스성경>으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믿을 성경도 없는데 교회는 왜 존재해야 하며, 신학교는 무엇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