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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교리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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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10월호>
1900년 초에 시작되었던 오순절운동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 나라는 초대형 교회가 여의도에 생기고부터 오순절 교회의 진원지였던 미국의 캔사스 주보다 더 오순절화 되어가고 있다. 어떤 교리든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인정받아야 되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성경적 교리로 세워진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지지성명을 내거나 하는 방식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아무런 참견이나 비판 없이 수용되어 성경적인 것같이 보인 것도 성경으로 조명해 보면 비성경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필자는 가끔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제칠일안식교인들이나 몰몬교도들을 만날 때면 왜 당신 같은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하는지 아는가를 물어본다. 그들의 대답은 대부분 자기들이 이단이라고 비평하는 사람들은 성경적 근거 없이 비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요즘 신문에 보면 교리를 가지고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소송사건에 대한 기사를 대한다. 세상 판사가 무엇을 알아서 성경적 교리를 놓고 판결할 것인지 그 기준이 궁금하다. 영적 할례도 받지 않은 세상 법관이 육법전서로 하나님의 말씀을 왈가왈부한다는 것부터가 어린애 장난 같은 일이다. 고소하는 자와 당하는 자, 판결하는 자와 그 판결을 보고 수긍할 자들 모두가 한낱 유희에 끼어들고 있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은 판단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을 판단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고전2:15).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인데 오히려 세상으로 끌려 들어가서 세상의 판결을 받고 있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올바로 행하는 것인가?
오순절 교리는 첫째, 방언과 방언의 해석, 이상, 꿈, 예언 등을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에게 주신 메시지로 알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이런 것들을 성경적 교리로 받아들이려면 성경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적 근거가 없는데도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성경 외적인 것을 교리로 받아들인 셈이 된다. 성경을 가장 모르는 사람은 성경의 모든 구절이 교회에 주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어떤 성경구절이나 되든 안 되든 교회에다 적용시키려 든다. 이것은 시작부터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근본적으로 유대인들의 역사와 그들에게 연관된 이방인들의 시대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구약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모순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성경적 교리가 될 수 없다. 성경외의 메시지는 (잘못 해석한 것을 포함하여) 반성경적 메시지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다 무엇을 덧붙이는 행위를 특별히 경고하고 계신다(신4:2, 계22:18,19).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은 성경의 한 두 구절로 성경 전체를 해석하려고 드는 사람들이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소위 오순절 교인들이 주장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가 아닌 모두가 외국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누구보다도 방언을 많이 했다고 해서 헛소리를 한 것으로 착각하고 방언을 하면 바울을 닮는 줄 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외국어를 많이 했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만 봐도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 시리아어 등이요, 복음을 전한 그가 여행하는 여러 지방에서 외국어에 소홀히 했겠는가? 고린도전서 14장 총 40절 가운데서 한 절 한 절 짚어보면 방언을 긍정적으로 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간주했던 것이 역력하다. 한 오순절 교회의 목사에게 방언을 왜 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 화평의 창시자이신데(고전14:33), 자신이 아무 소리나 낸다고 해서 알아들으신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모독행위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 분의 자녀에게 정확한 언어를 주셔서 교제하게 하셨다. 그것은 우리에게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그 분의 말씀을 정확한 그 나라 언어로 계시해 주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방언으로 설교하는데 아멘할 사람이 있겠는가?(고전14:6-12) 방언은 사도들의 표적이다(고후12:12). 특별한 주님의 사역을 수행하게 하기 위하여 사도들에게 주셨던 사도들의 표적은 사도들의 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끝났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몸에 있는 가시도 제거하지 못했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의사 누가를 계속 대동하고 다녔다.
사도행전 2장과 고린도전서 14장이 방언을 권장했다 한들 그 두 장으로 성경 전체의 교리를 압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은사주의자들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성경을 바로 아는 사람들이 카톨릭을 성경적 신약교회라고 다니겠는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은사주의 교회들을 성경적 신약교회라고 다니겠는가? 카톨릭에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인다 해도 성경을 모르는 그 사람들이 그들 교회가 성경적으로 하는지 안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다니는 것이다. 은사주의 교회의 회원들도 이와 마찬가지 경우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 교회들은 그들의 회중의 숫자로 그들의 교리를 지지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라면 성경으로 그 진부를 가려야할 터인데 이들은 모인 회중으로 평가받으려 하고 있다. 성경을 모르는 무리가 그 얼마라 해도 성경교리를 해석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자기들의 교리를 변증하는 이들은 곧잘 “성령의 새바람이 불고 있다. 성령이 무슨 일을 하실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한다.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성경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은 성경에 모순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또 성령님은 독자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일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을 증거 하시는 일을 하신다. 『그분은 스스로를 말씀하지 않으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요16:13). 이상이나 꿈이나 방언이나 예언은 온전한 것이 올 때까지였다. 신약성경이 완성되기까지 사도들에게 주어진 은사는 특별한 것이었다. 이 점을 성경은 분명히 선을 그어주고 있다.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아니하나 예언들이라도 끝이 올 것이요 방언들이라도 그치게 될 것이며 지식도 끝나게 되리라』(고전13:8). 그것이 끝이 오고 끝나게 되어 있다.
세상에 속했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나면(벧전1:23) 말씀으로 씻기어(엡5:26) 순수한 말씀의 젖으로 양육되어야 한다(벧전2:2).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다(엡4:30). 이 어린아이가 태어난 후 씻기지도 아니하고 일정한 시간에 젖도 주지 않고 시큼한 맛을 지닌 이상한 것을 입에 넣어 주며 방언을 해야 구원받은 증거라 했다면 이 아기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적으로 갓난 어린아이가 기도하면 만사형통할 수 있는가? 이 아기는 믿음이 형성되기도 전에 영문 밖으로 던져져 버린 격이다. 이것은 분명히 다른 복음이고 그들의 말대로 “순복음”(Full Gospel)인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은혜의 복음이 아니다. 은혜의 복음이 아닌 것은 다른 복음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도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갈 1:7,8).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오되 이 교리를 가지고 오지 아니하면 그를 집에 영접하지도 말고 그에게 문안하지도 말라. 이는 그에게 문안하는 자는 그의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요이 10,11).
거짓 방언으로, 거짓 은사나 거짓 이적들로 속이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하는 일이 아니고 사탄의 속임수인 것이다. 이 속임수에 걸려들면 안 된다. 거짓 교사들은 성경을 형식적 수단으로 삼아 사람들을 모으는데 썼다. 그들의 방식을 성경의 권위보다 우위에 두며 대개는 은사를 더 많이 가졌다는 그들의 지도자에게 둔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과 육신을 그의 무기로 삼는 사람과 그의 마음이 주로부터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렘17:5). 이들이 더욱 비성경적으로 치닫는 것은 “성령으로 연합하자”는 기치아래 로마카톨릭과 더불어 교회연합운동(에큐메니칼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다.
둘째, 이들에게는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없다는 것이다. 삭제되고 변개된 성경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하나도 교회성장, 둘도 교회성장이 그들의 관심사이다. 이들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 교회성장이라고 알고 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거듭난 사람들을 양육하며 교회에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선교사를 파송한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구원의 복음보다는 은사주의에 매달리게 만드는 것은 사역이 아니다. 이 교회성장론에 기여한 인물들이 두 사람 있는데, 곧 포도원 그리스도인 친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 설립자인 존 윔버(John Wimber)와 풀러신학대학 교회성장연구원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이다. 두 사람은 서로 간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치유, 이적, 표적 등에 관련된 가르침으로 오순절 교회의 비성경적 교리를 훨씬 초월하여 실행하고 있다. 이들은 소위 “특정 지역을 점유하는 영들”(territorial spirits)의 악령 쫓아내기를 주장하며 세계의 복음화의 과업을 위해서는 이것 역시 절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펴는 이런 새 운동은 “능력복음화운동”(Power Evangel- ism), 신유, 표적, 이적 복음화운동 또 “성령의 제 3물결”(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의 이름으로 오늘날 급속히 확산되어가고 있다. 이 대로라면 오순절교회화운동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도처로 확산될 조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배제되고 성령만을 내세우는 이들의 운동이 이상하지 않은가? 신약교회사상 이들 말고 성령운동을 편 신실한 주의 종들이 있었는가?
셋째, 이들이 강조하는 신유는 많은 성도들이 성경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의 눈은 사람을 외양적으로만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은 사람의 속마음을 살피신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삼상16:7). 하나님께서는 징계의 방법으로 육체의 고통을 쓰시기도 하신다. 세상 중심적으로 살려는 성도를 주님 중심적인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히12:3-11, 욥23:10). 하나님은 능력이 없으셔서 치유하지 못하신 것이 아니라 아무나 무조건 치유해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치유하신다. 다만 그 치유자가 누구인가가 문제이다. 바울은 자신의 몸속에 있는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3번이나 기도하였지만(고후12:1-10) 하나님은 치유해주지 않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뜻대로 이뤄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일 뿐 하나님께 내 뜻대로 움직이셔야 된다고 명령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든 병이 다 치유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병이 생겼다면 우연한 일이 아니다. 자신을 잘 살펴보고 외적이나 내적 요인이 없다면 기도하면 대부분 치유 받는다. 그러나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정상화에 이상이 있을 경우는 죄들을 자백하고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여자들을 교역자로 두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이다.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딤전3:2). 만일 여자도 교역자가 될 수 있다고 하셨으면 성경은 감독은 한 “남편의 아내”이어야 한다고도 기록되었을 것이다. 또 집사의 아내들이라 했지(딤전3:11) 여집사라고 하지 않았다. 이를 뒷받침해주기 위해서 그 앞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자는 온전히 순종함으로 배우게 하라.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 할지니라』(딤전2:11,12). 또 방언에 있어서도 여자는 교회에서 떠들지 말라고 명시하고 있다(고전14:34). 성경에도 없는 여러 직분이 교회 안에서 주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신약교회에서 하나님이 정해주시지도 않는 것을 실행할 수 있는가?
다섯째,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복음을 전파함에는 이적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이적이란 지도자가 안수하면 졸도하거나 뒤로 넘어지는 현상이다. 이들은 이런 일을 요한복음 18:6로 정당화시키려 한다. 이런 것을 행한 교회는 일찍이 교회사에 없었다. 이것은 악령들이 장악한 무속종교의 한 형태일 뿐이다. 복음은 단순하다. 구원받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제물로 드려져서 모든 사람의 죄를 이미 용서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 분을 구주로 믿고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죄가 씻겨지고 혼이 구원받게 된다. 이것은 어떤 이적을 체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롬1:16). 요한계시록 13:3에서 환란 때 그 짐승이 치명상을 입었을 때 다른 짐승이 와서 살려주는 이적을 보여주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 인간이 행하는 이적이 아니다(살후2:9-11). 마귀도 이적을 행하며 치유하고 생명까지 살려주는 이적을 행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섯째, 사탄의 능력과 공중 권세의 통치자에 대한 성도의 자세에 관한 비성경적 가르침이다. 그들은 사탄을 묶는다고도 말하고 사람에게서 쫓아내고 이 세상에서 쫓아낸다고도 말한다. 요한계시록 12:7의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로부터 도망하리라』(약4:7),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이다. 이 마귀와 대적하기 위해서 우리는 완전무장을 해야 한다. 『너희는 마귀의 술책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엡6:11). 그리스도인의 전술은 공격적이 아니라 방어적이다. 우리는 마귀의 세력들과 싸우거나 토론하지 않고, 다만 대적하기 위해서 성경구절을 인용할 뿐이다. 그러나 틀린 성경이 능력이 있거나, 성령의 칼이 될 수 있겠는가?
혹자는 말하기를 마태복음 10장에서도 『마귀를 내어 쫓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①열두 제자들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신 것이다. 거기에는 교회도 없고 그리스도인도 없다. ②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만 가라고 하셨지 이방인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③가서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지 은혜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더구나 순복음을 전하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성경은 공부하지 않으면 잘 모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신학교가 있는 것인데 자격 없는 선생들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의 믿음의 열정이 식어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순절 교회들이 확산시킨 비성경적 교리들 때문에 많은 진리들이 가리워져 버린 것을 본다. 즉 성경이 완성된 후 그쳐야 할 방언들을 거듭난 성도이면 말해야 된다고 하는 가르침, 성령세례를 기다려야 한다는 가르침 등으로 어린 생명들이 이런 비성경적 교리를 경험하려다 보면 믿음이 진리에 뿌리내릴 겨를이 없이 고사하고 만다. 성령을 가장 잘 안다고 떠드는 이들이 성령님에 관해서 가장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성령님이 이 세상에서 하시는 일은 이 세상을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며(요16:8-11), 성도의 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 중보 해주시며(롬8:26,27) 성도들을 진리로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며 위로해 주신다(요14:15-26, 16:7,13).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께서는 성경에 모순되고 반대되는 것은 절대로 가르치지 않으신다. 거짓 교리를 수용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성도 자신에게 있다. 어설픈 교리로는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본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해야 한다. 특정한 교파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가? 그리스도의 종이면 이 세상 신인 사탄에게 붙잡혀 있는 마귀의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이겨오는 일을 해야 한다. 오순절 교파의 교리는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마6:33)고.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