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개역개정판을 고발한다 분류

인자가 오신 이유와 구원의 영원한 보장 (마태복음 1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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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5월호>

<한글킹제임스성경> 10 너희는 이런 어린아이들 중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항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뵙고 있느니라. 11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는 것이라.
<한글개역성경/개역개정판> 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이 구절은 각 사람에게 “수호 천사” (Guardian Angel)가 있음을 알게 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수호 천사들, 즉 성 페트릭, 성 크리스토퍼, 성 미가엘 등은 개인 대신에 사회적 집단을 수호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성경 구절로 어떻게 설명해도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은 그것이 미신적인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성경 구절로 확실한 사실을 정립시켜 보기로 하자.
(1) 천사들은 기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행 7:30,32, 창 32:30, 유 9).
(2) 천사들은 어디에서나 남성으로 표현된다(창 32:29, 눅 24:4-6, 행 1:10,11, 요 20:12,13, 계 19:17). 중성으로서 날개를 가졌다는 것은 카톨릭 그림장이들의 착각일 뿐 천사에게 날개가 있다는 성경적 근거는 없다. 본문에서의 천사는 33세의 남성이다. 성경 다른 구절에서도 예수님과 같은 33세로 표현되어 있다(빌 3:20,21, 요일 3:1-3, 마 22:30).
(3) 모습을 드러낸 천사는 개교회 회중을 대표하거나(계 1- 3장) 민족(나라)들을 대표한다(단 12:1; 10:21, 사 63:9).
(4) 그들은 하늘에 있으며 하나님 앞에 있다(눅 15:7,10, 마 16:27, 딤전 5:21).
(5) 그들 중에 많은 수가 세상으로 오기 위하여 자기들의 지위를 떠났고 범죄했다(유 6, 벧후 2:4, 창 6:1-6, 욥 38장). 이들보다 훨씬 많은 수가 앞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욥 1,2,38장, 창 6:1-6, 눅 17:26- 30, 계 12:4-13, 행 14:11-13).
수호 천사들은 실제로 활동한다. 특별한 경우에는 성도들을 돌보기도 한다(히 1:14). 창세기에서 하갈의 시중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와 파선하는 배에 있던 바울과(행 27장) 감옥에 갇힌 베드로에게도 역시 천사가 돕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하나 마태복음 18:10에는 이 세대에 알려 주어야 하는 귀중하고 현실적인 진리가 있다. 그것은 “거듭난 성도의 영원한 보장”이다. 거듭난 성도의 구원은 절대로 상실되지 않는다. 이것은 확고한 주님의 약속이다. 구원의 상실에 대한 위험을 말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구원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먼저 출생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교회에만 열심히 다니면 진리를 몰라도 구원받는다고 믿을지 모른다. 이처럼 칼빈주의의 엉터리 교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완전히 타락했기에 무능력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수 없을 만큼 되어 버렸다는 비성경적 가르침이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된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등의 교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성도의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엉터리요 비성경적 오류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동장치로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중의 하나는 인간들로부터 창조주를 숭앙하게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인간의 의지를 고정시켜 놓지 않으셨다. 오른손을 드시면 피조물인 인간은 다 함께 일어나서 경배하고 왼손을 드시면 다 착석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 의지로(원하는 대로) 경배하게 하셨다. 인간은 자기 의지를 올바로 활용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죄짓지 않을 수 있으나 자기 의지를 잘못 활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고 욕심과 욕망과 환락을 추구하여 죄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그 가치관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관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가치관을 더 중요시함으로써 성경을 무시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브에게 죄를 짓도록 하지 않으셨다. 이브 자신이 자기의 의지에 따라 범죄한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언제부터인가 자기 의지를 상실한 로봇 인간들인지도 모른다. 창세기 6:5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자기들의 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기준을 따라 죄와 타협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것을 후회하시고 인간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시기로 결심하셨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교회 생활을 통해 필자에게 가장 강렬하게 부각되었던 점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의 구원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들의 지성을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옳고 그른 것”(right and wrong)에 대한 지성이 아니라 “선과 악”(good and evil)에 대한 분별력이다(신 1:39, 롬 5:13,14; 4:15; 7:7-9).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분별력의 유무에 관한 기준은 “악은 하나님의 법칙을 위반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때까지 죄가 그 아이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 부모가 자기 자녀의 구원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은 그 아이가 하나님의 법칙을 깨달을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 법칙에 순응하지 않고 완강하게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예정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예정해 주셨다고 믿고 있을 텐데 이런 점에서 이들과 저들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부모들이 왜 그처럼 안달을 하며 자녀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그것은 자녀들이 거듭나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옥, 그곳은 실제적인 고통이 가해지는 곳이며 한 번 가면 영원히 그 고통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방문객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가끔 자신은 모태신앙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때 필자는 정직하게 “부모로부터 타락한 성품은 이어받아도 신앙은 이어받지 못한다”(엡 2:1-4, 롬 5:12-18)고 말해 준다. 물 뿌림을 받음으로 갓난아이가 지옥행을 면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사기인 것이다.
마태복음 18:11이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에는 삭제되었다. 그리고 동일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에서 번역한 기존의 한글 성경들에도 물론 없다. 필자는 삭제된 구절이 지니고 있는 진리의 교훈이 어느 만큼 지대하며 그 구절이 삭제됨으로써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500여 군데 삭제된 2,000여 단어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8:11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는 것이라.』의 “인자”의 상대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같은 내용이 누가복음 19:10에서도 반복된다. 그 구절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말하기 전이다(행 3:25,26 참조).
일반적으로 성경 독자, 목사, 교사 할 것 없이 유대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많은 성경 참조 구절로 인하여 언제나 혼란을 겪는다. 그 이유는 첫째, 오늘날의 성경 독자와 목사, 교사 95%가 이방인 즉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그처럼 많은 성경 구절들을 좋은 설교에 적용하기 때문에 성경 구절을 찾아서 고정된 자리에다 그것을 적용시키면 다른 설교자들로부터 막강한 저항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마태복음 18:11은 그 좋은 예가 된다. “잃어버린 자”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마 10:6)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잃어버린 사람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다. 고린도후서 4:3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해주고 있는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인들처럼 “잃어버린 자”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잃어버렸다”(lost)라는 말은 아담으로부터 십자가까지 23번 나오고 예수님의 부활 후에는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구약에서의 “잃어버린 양”과 신약에서의 “잃어버린 양”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지 이방인을 말하지는 않았다(겔 33,34장, 렘 50:6; 33:13). 또한 예수님은 성경에서 인류의 목자로서는 조명된 적이 없으시다. 예수님은 구약의 유대인의 목자시요(시 23), 신약의 히브리인(히 13:20)의 목자시며, 거듭남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축복을 나눠 가지는 이방인들의 목자이시다(구원받은 성도들, 요 10:2-16). 마태복음 18:11 -13을 보면 “잃어버린 양”을 찾으려고 목자가 곧바로 나갔던 것을 읽을 수 있다. 여기의 전체 내용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지만 마태복음 18:11은 오늘 이 세대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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