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판을 고발한다 분류
종교냐 경건이냐(약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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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7월호>
야고보서 1:26<한글킹제임스성경>
『너희 가운데서 종교적으로 보이는 어떤 자라도 자기 혀를 제어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마음을 속인다면, 이 사람의 종교는 헛된 것이라 .』
<개역성경/개역개정판>
『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
1. 야고보서의 저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다. 이 야고보는 헤롯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무렵에 헤롯왕이 교회에서 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치더니,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라』(행 12:1,2).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가 있었고 또 세베대의 아들들인 사도 요한과 야고보가 있었는데, 바로 이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기록한 것이다.
믿음과 행위에 대해서 어설픈 이론들을 내놓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믿음에서 나온 행위가 없다면 그가 믿은 것인지 믿지 않은 것인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말만 하면서 행동으로 내보이지 않는다면, 그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 교회 성도들은 거의 다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의 질고를 지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양쪽 손목과 두 발에 못질을 당하신 채 십자가에 아홉 시간이나 달려 계셨고, 강한 햇볕에 노출되셨을 때 그 고통이 얼마나 크셨겠는가? 주님께서는 그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라고 소리 지르시며 숨을 거두셨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에덴에서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그 죄가 사망과 함께 침투했을 때, 인류는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나 사망과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 5:12).
이처럼 성경은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룬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1-13).
죄는 육체의 죽음과 더불어 혼적 생명으로 하여금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심판을 받게 한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롬 6:23). 여기에서 사망은 육체의 죽음뿐 아니라 혼적 생명이 영원히 고통받는 것도 의미한다. 마가복음 9장에서는 지옥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무려 세 구절에서 똑같은 말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4,46,48). 하지만 이 부분에서 개역성경은 지옥을 두 번이나 지워 버렸다(44,46절).
많은 교단 교회들과 이단 집단들은 지옥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지옥에 대해 거의 설교하지 않는데 이것은 대단히 이상한 현상이다. 지옥이 무섭다고 해서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다면 지옥을 대비하지 않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은사주의자들도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기도하면 무엇이나 풍성하게 받게 된다고 믿고 있기에, 교인들에게는 교회 생활에 열심을 내면 부자가 되어 세상에서의 복들,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생의 자랑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지옥을 믿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지옥을 설교하게 되면 그들의 이런 주장과 이율배반적이 되는 면이 있기에 그들은 지옥을 가르치지도 설교하지도 않는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옥을 헬라어 "게헨나"(Gehenna)로 음역하여 부르면서 지옥에 대한 진리를 감추고 있다. 이단 교회들일수록 세상에다 소망을 두게 하며, 교회에만 열심히 다니고 교회의 말만 잘 들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거짓되이 가르친다.
2. "믿음이냐 행위냐"로 논쟁을 하는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닌데, 이런 많은 설교자들과 성도들은 행위가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까지 단정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믿음과 행위에 대해 잘못 인식하는 문제가 있고, 특히나 마틴 루터 같은 개혁주의자는 『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약 2:24)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야고보서는 난로에 던져 넣고 불태워 버려도 괜찮은 지푸라기 같은 서신서다."라고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미숙한 성도들에게 더 나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점은 성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조금만 유념해서 보고 깨달았다면 조금도 문제가 될 소지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당연히 죄인이 구원을 받는 데는 믿음이 필수적이기에,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Saviour)로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혼을 구원해 주신다. 『이 복음 안에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롬 10:9,10).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 4:5).
"예수 그리스도,"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온전한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기에서 주(Lord)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행함이 없어도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겠다고 작심하고 입으로 고백하면 그 죄인의 혼은 마귀의 소유에서 그리스도께로 옮겨진다. 영은 어떤가? 영은 죽어 있었는데,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면 죽은 영이 살아나게 된다. 영이 살아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도 성경도 알 수 없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라도 마귀의 자식이다.
전도서 3:21에는 영들이 나오는데, 곧 사람의 영과 짐승의 영이다. 또한 하나님의 영과(고전 2:11) 마귀의 영이 있다(마 13:4,19).
죄인된 사람이 자신이 죄인으로 태어난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신다(롬 4:5). 이것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에 아무도 자랑하지 못한다고 하셨다(엡 2:9). 죄인이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순간적으로 38가지 이상의 변화가 일어난다. 럭크만 목사님은 이 점을 설명하실 때,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클러치를 밟은 상태에서 기어를 전진으로 놓은 뒤 가속 페달을 슬며시 밟음과 동시에 클러치를 떼면 엔진의 온갖 기계가 일제히 작동하는 것으로 비유하셨다.
거듭난 사람이 무엇으로 자기가 거듭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겠는가? 물론 구원받기 위해 행위를 가지고 설쳐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 새벽에 교회에 가는 것인가? 왜 금요 철야를 하고 금식하는가? 십일조와 때때로 내는 감사 헌금 외에 왜 22여 가지나 되는 헌금을 하는 것인가? 교회 건축도 안 하면서 건축 헌금을 거두고,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았으면서도 선교 헌금을 거두며, 또한 교회나 구역 모임에서 모일 때마다 돈을 거두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3. 자, 이제는 행위에 대해 말할 차례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어쩔 때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행위로 보이는가? 거리에 나가서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 전도지를 건네주며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세요."라고 말한다든지, 특히 자신이 남자일 경우라면,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거나 시장에 운집해 있는 불특정 다수 또는 버스나 기차를 기다리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또한 "사람은 죄 때문에 죽으며, 구원받지 않고 죽으면 지옥의 불못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는 것"을 거리설교를 통해 전한다든지, 그런 일이 행위로 보이기에 여름에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콜라나 마시고 겨울에는 커피나 마시고 있다면 과연 그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행보이겠는가?
그것은 마귀를 즐겁게 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게으른 자의 본보기일 뿐이다. 『너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길들을 살펴보고 지혜롭게 되라. 개미는 인도하는 자도, 감독하는 자도, 다스리는 자도 없으나』(잠 6:6,7). 그런 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기에 개미에게 가서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받은 은사로 좋은 글을 써서 교회의 월간지나 계간지에 투고하고, 좋은 책을 써서 다른 사람들을 계도하는 데 사용하고, 전도지를 만들어 배포하며, 성경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가르쳐 주고, 가난한 성도들을 방문해서 도울 수 있으면 도와주고, 교회 안에서도 가르치고 협력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것을 돕는 일에 능력껏 동참해야 한다. 노래를 잘하고 연주를 잘하는 성도도 교회 안에서 쓰임받을 수 있다. 이런 일들이 행위이기에 "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이 있던가? 야고보서는 그런 뜻으로 행위를 말씀하지 않았다.
당신의 은사는 무엇인가? 주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역량이 있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그것이 행위라고 거절하겠는가? 많은 교회들이 사람 수를 자랑하고 교회 건물을 자랑하고 차량 수를 자랑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라면 일주일에 몇 명이나 주님 앞으로 인도했는지를 자랑해야 한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니, 혼들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잠 11:30).
변개된 개역성경은 "경건," 즉 믿음의 근간을 헛것이라고 했다. 믿음으로 꽉 찬 마음은 행위로 드러나는 것이 정상이다. 『사람이 가슴에 불을 품었는데 옷이 타지 않을 수 있겠느냐?』(잠 6:27)
믿음은 필연코 행위를 가져온다. 결코 게으름을 미화하지 말라!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