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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의 나팔(겔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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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9월호>
1995년 7월 26일자 「기독저널」이라는 주간신문은 이상한 기사를 다루고 있었다. 김기동 목사가 이단이 아니라고 대서특필로 변호한 기사였다. 지난해에는 장로교 통합측 총회가 조용기 목사를 이단에서 풀어주는 난센스를 연출하더니 이번에는 한 주간 신문이 김기동 목사를 이단에서 풀어주고 있었다.필자의 의문사항은 두 가지이다.
첫째, 장로교 통합측 총회나 모 주간 신문에게 이단의 정죄와 해제에 대한 어떤 권한이 주어졌는가?
둘째, 그런 해금조치(?)를 본 조목사나 김목사는 그런 조치(?)에 대하여 스스로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젠 됐다는 식의 안도를 할 수 있었을까?
통합측 총회와 「기독저널」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했더니 이단이고, 또 이단이 아니라는 것인가? 과연 누가 누구를 이단으로 정죄할 자격이 있는가가 이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이단이란 누구의 해석을 빌릴 필요 없이, 교회가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성경대로 하지 않고 교단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성경 위에 군림하여 권위를 행사하거나 교단의 전통을 성경의 권위보다 우위에 두고 행사하게 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된다. 그런 행위를 묵과함으로써 비성경적 교리가 확산되면 어리고 무지한 사람들이 그런 교리에 오염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경종을 주어서 거기에 참예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어떤 한 개인의 견해로 이단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이단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 이단이라고 한다고 해서 이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이단이라고 하면 이단인 것이다. 이단이란 용어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상표가 아니라 성경이 내리는 단죄이다. 어떤 신문이나 잡지, 교단 총회가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지적하여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이들은 도대체 누가 부여한 권위로 이단을 운운하는 것인가? 어떤 특정 교단의 교리와 틀리기 때문에 이단이라면, 그와 다른 교단의 교리로 그 특정 교단을 보면 그들도 이단이 될 것이 아닌가?
교회사 2000년 동안에 카톨릭과 친카톨릭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이단시’ 해왔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 역시 유대인들에게는 이단 교리였다(행24:14).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이단이 되었거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단이 되었던가? 유아세례, 세례, 성령세례, 방언, 거듭난 성도의 몸이 아니라 교회 건물을 성전으로 여기는 것, 니콜라파(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 짓고 평신도를 지배하려는 것), 권사, 여자 목사, 여자 장로, 여자 집사제도 및 세례 교인을 구원받은 사람으로 간주, 구약의 절기를 신약교회가 지키는 것,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고 가르치는 것, 지옥에 관해 설교하지 않는 것, 교단 교리 확산을 선교로 여기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것,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등 수많은 성경적 오류들을 가진 사람들이 누구를 이단으로 정죄할 자격이 있는가? 심지어 변개되고 삭제된 로마 카톨릭 성경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를 정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들의 정죄에서 풀려나려는 사람들도 우습지만 이들을 정죄하고 또 풀어주는 사람들은 더더욱 가관이지 않은가?
한국의 개신교(극단적 칼빈주의를 실행하는 대부분의 장로교단과 침례교단, 알미니안주의를 실행하는 감리교단과 성결교단, 그들을 복합적으로 실행하는 오순절 교단 등) 때문에 이단 교회들이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개신 교단들이 바른 성경을 펴내 성경대로 실천하는 교회들을 두었더라면 비성경적 교리를 실천하는 교회들이 등장했을 때 어떻게 발을 붙일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들 개신 교회들은 자신들의 운신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교회 성장을 위해, 아니 먹고 살아야 했기에(빌3:19) 오히려 그들의 이단 교리들을 앞다투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 실행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채 장자교단을 자랑하고 있으며 어떤 교단은 보수 신앙이 아니면서 보수라고 하고, 복음주의가 아니면서 복음주의라고 하며, 근본주의 신앙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근본주의라고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지금 이 나라 교회들은 방언을 정상적인 신약교회의 교리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조목사나 김목사나 다른 사람들도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면 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덫에 걸리나, 주를 신뢰하는 자는 누구나 안전하니라』(잠29:25). 이들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라면 진리의 영께서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이 옳은지 그른지 일깨워 주실 것이 아닌가?(요16:13) 정녕 이들이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면 “악을 미워해야 할 것이다”(잠8:13). 왜냐하면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잠1:7; 9:10). 그뿐만 아니라 성경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무지로 인해 자신들을 이단이라고 말한 사람들을 일깨워 주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악을 미워해야 한다(시97:10). 바른 교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틀린 교리를 미워해야 한다. 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악을 증오해야 한다. 성경적 교리를 실천한다면 왜 다른 사람들이 핀잔하도록 허용하는 것인가? 조목사나 김목사는 자신들의 사역이 왜 바른 것인지 성경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국민일보와 일요신문을 만들어 자기들의 방패로 삼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자기들 나름대로의 견해로 상대를 이단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가령, 100명이 어떤 성경구절에 대해 각기 해석을 내린다면 얼마나 많은 의견들이 나오겠는가? 그 의견 중에서 어떤 의견이 옳은 것인가? 지금까지는 입김 센 교단이나 유명학교를 나온 신학자나 인정받는 목사 등이 권위를 행사해 왔으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 나라에 바른 성경이 없었고 그에 기반한 바른 지식이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리는 하나인데 그 진리는 성경의 구절들로 증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경을 모르면 그 시비에 관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것이다.
지면 관계상 「기독저널」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점만 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려 한다.
1.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영원 전에 나셔서...”라는 설명에 대해서
위 신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영원 전에 나셔서”라고 썼다. 예수님께서 영원 전에 태어나셨다면 어떻게 아버지와 동등하게 되시겠는가? 『그는 만물 이전에 계시고 또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존속하느니라』(골1:17). (그 외에 딤전3:16, 요1:1, 창1:1, 요1:10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삼위의 한 분이 되지 못하신다.
골로새서 1:15은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첫 태생이시니』라고 말한다. 시편 1:7과 히브리서 1:5에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라고 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믿었고,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화형시켜 죽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칼빈도 「기독저널」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에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셔서 창세기 1:1에서 삼위 중에 한 분이 되셨다고 했다. 존 칼빈은 이 점을 잘 몰랐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지, 사람을 믿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과 함께 몰락한다. 그 사람이 칼빈이든 어떤 주석가이든 무조건 믿으면 낭패를 당한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로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된 분이시다. 그 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신 첫 번째 분이시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첫태생이 되신 것이다(골1:15). 창세기 3:15의 씨는 “여자의 씨”이다. 여자에게 무슨 씨가 있는가?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여자의 씨에서 태어나신다고 하셨고 여자의 씨를 물려 줄 세 여인은 모두 불임인 여자들이었다(사라, 리브카, 라헬). 하나님께서는 불임인 세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잉태가 가능하게 하셨는데, 특히 사라는 그 때 90세였고 여자 나이 90세에 아이를 밴다는 것은 턱도 없는 일이었기에 주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들은 사라는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실현시키셔서 이삭을 분만하게 하셨다.
언제나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가장 정확한 교리서이기 때문이다(딤후3:16,17). 사람이 영으로 거듭나게 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예수님같은 모습으로 변화한다(빌3:21, 요일3:2).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제 죽으면 부활하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들림받게 되는 것이다(요11:25,26). 만일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처녀에게 잉태되어 태어나지 않고 남자의 씨로 태어나셨더라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신 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피이지 사람의 피가 아니다(행20:28). 살과 피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15:50). 사람이 거듭나지 않은 채로 살다가 죽으면 썩어버리고 말며 혼은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
2. “귀신은 불신자의 영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이 말은 성경에 반대되는 말로 매우 심각한 오류이다. 사람이 죽으면 거듭난 사람의 혼은 셋째 하늘의 낙원에 가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혼은 (영은 죽어 있기에 가치가 없음) 지옥에 간다(눅16:19-28, 막9:44,46,48).
교회가 서고,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전도집회를 하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목사가 되고, 교인이 되고 하는 것 모두가 일차적으로 사람을 지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가? 지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지 않는 목사, 바른 성경을 외면하는 목사는 절대로 하나님이 부르신 일꾼이 아니다. (성경에서 지옥을 가리는 것은 마귀의 술책이며, <개역한글판성경>에는 그러한 이유로 마가복음 9:44,46이 삭제되었다.)
주님은 천국보다 지옥에 관하여 훨씬 많이 언급하셨고 설교하셨다. 지옥은 사람을 보내기 위하여 만든 곳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을 보내기 위해 만든 곳이다(마25:41). 교회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놀다가 지옥에 보내는 것은 마귀의 종들이 하는 짓이다. 거듭나지 못한 채 착한 일만 하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죽으면 지옥에 간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고 그 혼백이 떠돌아다닌다면 성경이 틀린 것이 되고 예수님께서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지옥에 가지 않는데 교회는 존재해서 무엇하겠는가? 교회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교회놀이를 하다가 지옥에 보내는 곳인가? 무엇을 설교하는가? 이것을 바로 이단 교리라고 하는 것이다. 2000년 교회사 중 죽은 사람의 혼백이 이 세상에 떠돌아다닌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경에 무지한 사람밖에 없었다. 이들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를 따르는 자들이다(딤전4:1).
김목사는 자신의 교리를 <개역한글판성경>으로 뒷받침하는데, 틀린 성경으로는 바른 교리를 제시할 수 없다. 김목사는 창세기 1:27과 2:7은 아담과 이브가 아니라 하며 여기에 덧붙여 첫 사람 아담이 영적인 존재라 했다. 창세기 1:27과 2:7이 각기 다른 아담과 이브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단교리이다. 김목사는 창세기 3:5의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서...』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6:3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아담 이전에 존재했던 다른 사람들로 보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창조한 인간은 아담이었다. 흙으로 사람을 빚고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시니 그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창2:7, 고전14:45). <개역한글판성경>은 그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해서 여기서 이원론이 생긴 것이다. 성경을 변개시키면 큰 일이 나는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여기서부터 성경이 해석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1) 아담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존재들(heavenly beings), 즉 영적 존재들이었다(창6:4, 욥1:6; 38:7 - 펨버(Pember)와 워치만 니도 아담 이전에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잘못 믿었다).
2) 하나님께서 이들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 것이었다(영광의 찬양, 엡1:6,12,14).
3) 욥기 38:7에서 『언제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두 기뻐서 소리쳤느냐?』에서 우리는 이들 천상의 존재들을 알 수 있다.
4) 『너희는 신들이며, 너희 모두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손들이라』(시82:6)고 이들에 대해 말한다. 이들은 신들이라고 불렸다.
5) 이들이 하늘의 처음 처소를 떠나 땅으로 내려와 사람의 딸들과 교접함으로써 거인을 낳았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행위였고, 홍수의 심판을 가져온 원인이 되었다. 『또 자기들의 처음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주께서 영원한 사슬로 묶어 큰 날의 심판 때까지 흑암 속에 가두어 두셨느니라』(유6). 이들이 갇혀 있는 곳은 지옥 중에서도 타타루스(벧후2:4)이다.
성경으로 성경을 풀면 누가 누구를 단죄하겠는가? 누가 김목사를 이단으로 단죄하겠는가? 김목사는 이런 사실을 모르면서 8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무엇으로 양육하며 침례교회를 운운하는가? 성경을 112번이나 읽었다면서 이런 진리를 몰랐다는 것은 책장만 112번 넘겼거나, 아니면 변개된 <개역한글판성경>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조명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베뢰아 아카데미에서 4천 5백 명이 배출되었다면 그들도 역시 김목사와 같은 이단 교리로 무장했을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 무슨 힘이 있겠으며 어떻게 그들이 차세대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주님은 성경을 모르면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말씀하셨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2:15).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불러 쓰시겠는가? 만일 그렇게 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께서 사역자로 부르신 사람들은 하나같이 담대했다(모세, 여호수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느헤미야, 아모스, 미카, 베드로, 바울, 스테판...). 신약교회의 순교자들은 단 한 사람도 비겁하지 않았다. 비성경적 교리를 성경적 교리인 양 주장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요, 비겁한 사람이 하는 행위이다. 까닭없이 자기를 욕하는 사람들을 묵과하는 것 또한 비겁자의 행위이다. 『악인을 정당화시키는 자와 의인을 저주하는 자들은 둘 다 주께 가증하니라』(잠17:15).
지금은 비성경적 교리를 실행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르며 그 변명이 어리석은 자들 사이에서는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롬14:10, 고후5:10)에 서서도 그런 변명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는 것을 믿지 않는가?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다.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갈1:10). 주님은 엄숙히 경고하신다. 『나, 곧 내가 너희들을 위로할 이라. 네가 누구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사51:12)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와 가장 유사한 것은 사탄의 교회이다. 바른 성경에 유사한 것은 가짜 성경이며 하나님의 일꾼을 가장한 거짓 종도 있기 때문에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의 교리를 바꾸면 사탄의 교리가 된다(딤전4:1). 김목사는 지금부터라도 지난날의 비성경적 교리를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성경대로 양들을 양육할 때 주님으로부터 칭찬받고 상과 유업을 받는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면서 비성경적 교리를 실천해서 사람들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아야 하겠는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 귀신쫓고, 방언하며, 신유의 은사를 연습하지 않는 목회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것이 영성훈련이나 교회성장으로 이어져 엄청난 배교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음을 우리 모두는 목도하고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대형 교회들은 복음과 진리의 지식으로 사람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흉내 낸 은사로 모은 것이 아닌가? 사람만 많이 모으면 성공적이라고 하는데 성경에는 성공적 목회라는 말이 없다. 진리의 말씀으로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지만 교회사역은 먼저 신실해야 한다(고전4:1).
비진리가 진리를 가장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이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믿음을 파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비성경적 교리를 확산시켜 성도들을 오염시킨 사람을 두둔하는 그 신문사의 저의는 무엇이며 무슨 일을 목표로 놓고 나아가고 있는가 묻고 싶다. 8만 명의 교인을 자랑하는가? 8만 명이 바른 성경과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했다면 이 나라는 진작 복음화가 되었을 것이고 김목사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인정받는 주의 종이 되었을 것이다.
성경을 변개시키는 자들과 교리를 잘못 가르친 자들은 하나님과 그 분의 자녀들의 적이 된다. 그 심각성을 모른다면 성령님의 인도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성령께서 일깨워주시는 진리의 지식은 그처럼 불확실하거나 혼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전14:33).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