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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의 순수한 피 vs. 포도즙의 붉은 술 (신명기 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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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5월호>
<한글킹제임스성경> 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 양들의 기름과 바산에서 기르는 숫양들과 염소들과 기름진 밀알로 먹이셨으며, 또 너는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한글개역/개역개정판성경>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1.개신교 목사와 신학자들 대부분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원인은 왕국과 신약 교회를 혼동하는 데서 야기된 것이다. 왕국복음은 은혜의 복음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십계명과 율법을 지켜야 했지만 신약 교회의 회원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거듭나야 하며 은혜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천국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된다. 구약에서 택함을 받은 백성은 유대인들을 말하는데 주로 남침례교와 장로교가 신봉하는 칼빈주의 5대강령에 머리를 박고 있는 자들은 택함받은 백성을 칼빈주의자인 자기들이라고 잘못 해석한다. 거기서부터 그들의 해석은 꼬이기 시작하여 조금 더 가면 길을 잃고 소경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 신학자들이 쓴 책들이 처음에는 그럴싸하게 나가다가 조금 있으면 헤매게 되는데 그야말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출애굽기 19:5,6에서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독특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교회로 가져와서 영적으로 적용해선 안 된다. 여기에서 『나의 언약』이란 “Covenant”를 말한다. 이 내용을 담고 있는 구절을 우리는 베드로전서 2:9,10에서도 본다.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자비를 받지 못했으나 이제는 자비를 받았느니라』(벧전 2:9,10).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땅을 치리하시는 신정통치의 왕국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다윗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거부했기에 왕국은 2,000년 뒤로 연기되고 그 사이에 등장한 것이 교회 시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했더라면 그때 천년왕국이 실현되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교회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는 신정통치와는 관계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적 통치만 있다. 개신교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헤매는 것은 “Covenant”와 “Testament”를 구분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대적 진리를 거부해 버리고 스스로 멍청이가 되기를 자초하고 있다. “Covenant”라는 언약과 비교할 때 “Testament”는 새로운 언약이다. 첫 번째 언약(Covenant) 아래서 사람들은 동물의 피로 정결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죄들을 덮어 주는 구속인 “atonement”였을 뿐 그들의 양심을 정결케 할 수는 없었다. 이 “atonement”란 단어는 그래서 신약에서는 로마서 5:11에 단 한 번 쓰였다. 『자비를 수천 대까지 간직하며 죄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나 범법자가 결코 깨끗게 되지는 아니하리니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과 그 자손들의 자손들 삼사 대까지 미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출 34:7). 히브리서 9:22의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피를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셨던 피는 영원한 피이고 하나님의 피(행 20:28)였기에 모든 인류의 죄를 구속하는 데 유효했으며 믿는 사람들의 양심을 깨끗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그런데 개신교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믿는 성도들과 맺는 “New Testament” 외에 또 하나의 새 언약, “New Covenant”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서 허물을 발견하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보라, 그 날들이 오리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new covenant]을 맺으리라』(히 8:8). 성경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에 이 두 언약을 구분하지 못하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질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신약에서 새 언약인 “New Covenant”가 다시 등장해서 그들을 바보로 만들어 주는가?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와 대환란 시대 사이에 있는 전환기적인 책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신약적 구원 개념을 가지고 히브리서를 해석하려 하면 해석 자체를 엉망으로 만들게 된다. 그래서 우리 나라 목사들과 신학자들 99%가 히브리서 6:4,5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동원, 김상복, 옥한흠, 조용기, 하용조, 홍정길, 이종윤, 오정현, 이영훈 목사 중에 이 주제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땅에서 고명한(?) 목사들이라 한다. 그들이 성경을 가르치게 되면 악인의 쟁기질처럼 하면 할수록 죄만 더 쌓게 된다(잠 21:4). 은혜의 시대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대환란 때는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 카톨릭과 감리교 등의 행위 구원은 이 두 시대에 구원받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대환란 때는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조금 견디다가 배급을 타먹기 위해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게 되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요한 웨슬리는 이 두 시대의 구원받는 방법을 몰랐기에 교회 시대에도 끝까지 견뎌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르메니우스도 마찬가지로 그 점을 몰랐던 것이다.
2. 본문에서 말하는 포도의 순수한 피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포도송이에 새 포도주가 보이면』(사 65:8). 새 포도주가 병이나 잔에 있지 않고 포도송이에 있다는 것은 포도송이에서 막 짜낸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말한다. 영어를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wine”과 “vine”을 구별하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wine”은 포도를 원료로 사용해 발효시킨 쥬스이다(fermented juice of grapes - Webster 사전). 원래 포도로 만든 술이다. 그러나 “vine”은 줄기가 뻗어가면서 달리는 열매인 포도를 말한다. 발효된 포도주는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금지된 것이었다(잠 23:31; 20:1). 유대인들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새 포도주, 즉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었다. 물론 3년에 한 번씩 곡물의 십일조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이 너무 힘들면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원하는 것들을 사고 독주를 마시고 즐기라고도 했다(신 14:21-26). 주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포도의 순수한 피로 예표된 참 음료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새 언약(New Testament)을 말씀하시면서 신약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마 26:28).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 전까지, 즉 마태복음 27:50까지는 율법 시대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율법을 신약 교회의 교리로 오해하며 적용해서 성경 해석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디한(M.R. DeeHan) 박사와 존 맥아더(John MacArther)와 같은 사람은 심지어 예수님의 피가 사람의 피와 동일한 것이라고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만일 예수님의 피가 인간의 피와 같다면 그 피로써는 인류의 죄를 제거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로마카톨릭은 미사에서 성체라며 발효된 술을 마신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성서에는 포도즙의 붉은 술이라고 되어 있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들에서 나온 것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 포도니, 그 송이들은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용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라』(신 32:32,33).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않음을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스스로 판단하는도다』(신 32:31). 주님은 신약 교회 성도들에게 주의 만찬식을 거행하여 쪼개진 빵을 먹고 새 언약을 상징하는 피를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기억하라고 명령하셨다(고전 11:23-26). 이 빵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상징이다. 잔을 마시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상징이다. 요한복음 6:53-57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예수님 당시 주님을 따랐던 자칭 제자들도 오늘날의 카톨릭같이 이해하지 못해서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요한복음 6:63은 전체의 설명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실제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셋째 하늘에 살아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로마카톨릭의 성체 미사는 그래서 쓸데없는 종교의식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시지 않고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신다면 그들은 주의 손에 들려져 있는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주의 손에 한 잔이 있으니 그 포도주는 붉고 완전히 혼합되어 있도다. 그가 그것을 쏟으시니 지상의 모든 악인들이 그것의 찌끼를 짜 마시리로다』(시 75:8)(사 51:17, 렘 25:15).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