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개역개정판을 고발한다 분류

“Mercy Seat,” - 자비석인가, 속죄소인가? (출애굽기 25: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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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4월호>

<한글킹제임스성경>
너는 순금으로 자비석을 만들되 그 길이는 이 큐빗 반, 그 너비는 일 큐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금으로 두 그룹을 만들되, 두들겨서 만든 것으로 자비석 양끝에다 둘지니,
<한글개역/개역개정판>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 “Mercy Seat,” 즉 자비석을 <한글개역/개역개정판>은 속죄소라고 번역했다. 여기에서만 그렇게 번역한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 25,26,30,31,35,37,39,40장, 레위기 16:2,13,14,15, 민수기 7:89, 역대기상 28:11, 히브리서 9:5도 그러하다. 히브리어로 카포렛은 “죄를 덮는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먼저 숫염소 새끼 두 마리를 취하고 번제제물로 숫양 한 마리를 취했다(레 16:5). 숫염소 한 마리는 죽여 속죄제물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산 채로 두었다가 속죄하여 광야로 보내 줬다(레 16:8-10). 죽임을 당한 숫염소는 속죄를 이룬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나 살아 있는 숫염소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하여 은혜의 보좌인 자비석으로 간다. 『너는 자비석을 궤 위에다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안에다 넣을지니라』(출 25:21). 성막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언약궤이다. 상자처럼 생긴 궤 안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항아리가 들어 있고 그 위에는 자비석이 있으며 금으로 만든 두 그룹이 날개를 펴서 그 자비석을 덮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지시하셨을 때 맨 먼저 이 궤를 만들라고 하셨다(출 25:10). 이는 하나님께서 지성소에 계셔야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속죄와 구원 계획을 마련해 놓지 않으셨다고 상상해 보라. 인간이 무슨 수로 하나님을 찾아 만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작하셔야 함을 보여 주신 것이다. 모든 인간은 깊이 깨닫고 감사해야 한다. 인간이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려고 아들을 제물로 내놓을 마음을 정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의 구속 사역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제거하실 어린 양으로 드려지기 위하여 여자에게서 태어나실 때를 시편 40:6-8은 이렇게 예언했다.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오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희생제물과 예물을 바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주께서 번제들과 속죄제들은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관하여 기록한 것과 같이)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였노라.” 하셨도다』(히 10:5-7).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지 않은 종교들은 인간에게서 먼저 시작하여 행위로 뭔가를 이루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죄인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이를 수 없다.
성막의 바깥뜰에는 놋제단이 있는데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와 놋제단의 망의 높이가 같다. 만일 성소와 지성소를 막는 휘장이 없다면 제사장은 놋제단 위에서 불타고 있는 양을 통해서 똑같은 높이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이 나의 고백, 결심, 헌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2.. “하나님께서는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for the remission of sins)” 『이는 이것이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마 26:28).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대제사장이 했던 일은 자기가 하는 일로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근거 위에서 명령대로 의식을 행했을 뿐이다. 그 일은 하나님의 자비로 이루어졌다. 대제사장이 아무리 깨끗이 씻고 자기 죄를 용서받았다 해도 하나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그는 지성소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인간의 의가 하나님의 의에 어떻게 다다를 수 있었겠는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언약궤 위에 있는 속죄소에서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그는 언약궤 위에 있는 자비석 앞 휘장 안 성소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지니, 그래야 그가 죽지 않으리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서 자비석 위에 나타남이니라』(레 16:2).
그는 속죄를 받으러 지성소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비하심 가운데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비석』을 “속죄소”라고 번역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를 인간의 종교 행위로 이루려고 하는 의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것에 의하여 인간들이 죄를 씻음받은 것이 아니라 로마카톨릭처럼 지금도 매주 주일 12시가 되면 의식을 행함으로써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를 무시한 개신 교회들의 의미없는 경배와 찬양들이나 피 없는 거짓 고백들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속죄소란 바로 고해소와 같은 말이다. <한글개역/개역개정판>이 카톨릭 성경인 것이 분명하며 이런 성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믿지 않는 카톨릭의 잔재들인 것이다. 지성소에는 촛불이 없다. 불이 없지만 어둡지 않다. 하나님이 빛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은 어둡지 않다.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그 안에 들어갈 때면 별 생각이 다 들고 무서웠을 것이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는 그곳에서 죽어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레 16: 14-17을 읽어 보라).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면 밝고 엄숙한데 그는 자비석에 피를 뿌린다. 그리고 물러서서 나온다. 진땀나는 순간을 1년에 한 번씩 겪어야 했던 것이다. 그 다음 해에 지성소를 생각하면 1년 동안 죄와 연관된 모든 생각, 언어, 행동에 조심했을 것이다. 우리가 은혜 시대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려 주신 보혈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7). 지금도 로마카톨릭은 자기들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도와주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흉내를 내고 있다. 온 세계에 9억 명 이상이 그런 짓을 하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
3. 『율법에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그림자는 있으나, 그것들의 형상 자체는 없으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희생제물들로는 그곳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랬더라면 그들이 제물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이는 경배 드리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면 죄들에 대한 의식이 더 이상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이 희생 제물들로 인하여 해마다 죄들을 다시 생각나게 하였나니』(히 10:1-3).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한 번 희생제물로 드려지셨기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을 믿고 쉬는 일뿐이다. 우리는 이제 성막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해 그 일을 마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그곳에 들어가셔서 자비석 위에 앉으셨기 때문이다.
주님이 십지가에 달리셨을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드리웠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던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새 언약 “New Testament”를 이루시고 돌아가셨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만일 지성소에 자비석이 아니고 속죄소가 있다면 모든 교인들은 카톨릭처럼 매주 제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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