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시편묵상 분류

선한 사람의 걸음은 주께서 정하시니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3월호>

시편 37편은 표제가 『다윗의 시.』로 되어 있다. 총 40절로 이뤄진 이 시는, ① 의인에게 주는 훈계(1-11,27-29,34절)와 ② 의인과 악인의 대조(12-26,30-33,35-40절)로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윗이 늙었을 때 써 내려간 시이며(『내가 어려서부터 지금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받거나 그의 씨가 걸식함을 아직 보지 못하였도다.』 - 25절), 그 시작부터 초조함이 흐르고 있다.

『행악자로 인하여 초조해 하지 말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풀같이 곧 베어질 것이며 푸른 나물같이 말라질 것임이라』(1,2절). 다윗은 악인의 번성에 대한 의인의 초조함과 시기로 운을 뗀다. 의인의 시기와 초조함이란 일종의 "생의 불합리성"으로 인한 분노를 말하는데, 의인에게 고통을 주는 악인이 "그의 악한 계책을 성사시켜 번성할 때"(7절) 의인은 애가 타는 마음으로 분통을 터뜨릴 수 있다는 얘기이다(시 73:2,3,16). 심지어 8절은 『화를 그치고 노여움을 버리라. 결코 악을 행하려고 초조해 하지 말라.』라고까지 명령한다. 악인에게 노여움을 품거나 스스로 복수하려고 하지도 말라는 것인데, 『악인은 의인을 대적하여 음모를 꾸미며 그를 향해 이를』 갈아도(12절) 의인은 악인을 대적하여 이를 갈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복수는 주께 속한 것이며, 그분께서 악인의 심판 날이 오는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13절). 또한 악인의 번성은 잠깐일 뿐, 『잠시 후면』(10절) 『그들이 풀같이 곧 베어질 것이며 푸른 나물같이 말라질 것』이기 때문이다(2절). 시편 37편은 이처럼 의인을 짓밟고 번영하는 악인의 끊어짐에 관해 여러 구절에서 반복하고 있다(9,20,22,34,36,38절). 주님께서 "악인의 끊어짐"에 관해 이렇듯 반복적으로 언급하시는 것은, 악인의 끊어짐이 곧 그분의 지대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님의 성도가 죄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성경적이지만(엡 4:26), 악을 악으로 갚고 싶어 분노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라는 것이다(벧전 3:9). 예수님께서 그 본을 보여 주셨으니,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자들에 대해서는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셨지만(마 21:12,13), 선을 행하다 고난을 당하실 때에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셨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아니하셨으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자신을 의탁하』심으로써(벧전 2:23) 우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던 것이다(벧전 2:21).

따라서 주님께서는 본 시편에서 의인이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 주신다. 즉 『주를 신뢰하고 선을 행하라.』(3절), 『주를 기뻐하라.』(4절), 『너의 길을 주께 맡기고 또 그를 신뢰하라.』(5절), 『주 안에서 쉬고 인내하며 그를 기다리라.』(7절)고 하시는 것이다. 역으로 보면, 고난당할 때 초조해하는 사람은 주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며, 고난당할 때 악인을 시기하는 사람은 주를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길을 주께 맡기고 신뢰하는 이가 아닐 뿐더러, 인내심이 없으므로 주 안에서 쉼을 얻고 그분을 기다릴 수도 없다.

주님의 뜻은 우리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의 명령들에 순종할 때 있게 될 긍정적인 결과들을 제시하시며 "기운을 내라!" 하신다. 즉 악인이 번성할 때 주를 신뢰하고 선을 행하면 『네가 땅에 거할 것이요, 진실로 그가 너를 먹이시리라.』는 것이며(3절), 시기와 초조함을 억제하고 주를 기뻐하면 『그가 네 마음의 소원들을 네게 주시리라.』는 것이다(4절). 또 자신의 길을 주께 맡기고 신뢰하면 『그가 이루어 주시』며(5절) 『그가 네 의를 빛같이 가져오시며 네 공의를 대낮같이 가져오시리라.』는 것이고(6절), 주 안에서 쉬고 인내하며 그분을 기다리면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요, 화평의 풍요함으로 기뻐하리』라는 것이다(9,11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만일 그가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라. 이렇게 함으로써 네가 그의 머리에 숯불을 쌓을 것이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 주님께서는, 악인에게 고난을 당하는 의인이 그 고난을 잘 견뎌 낼 수 있도록 "힘을 내라!"고 독려하신다. 이미 승리했음도 강조하시며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밝은 미래를 제시하신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 16:33).

교리적으로 볼 때, 본문 11절은 산상 설교인 "마태복음 5:5"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요, 화평의 풍요함으로 기뻐하리로다.』(11절).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따라서 온유한 자가 받게 될 유업의 땅을 언급한 11절은, 시편의 예언적 구도가 재림과 천년왕국에 맞춰져 있음을 알려 준다. 의인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내용이 무려 다섯 구절에 걸쳐서 나오며(9,11,18,22,29절), 특히 "11절"이 천년왕국 헌법인 "산상 설교"와 정확히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시편 37편은, 문자적이고 눈에 보이는 정치적인 메시아 왕국을 상속받을 민족인 유대인을 다루고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통치에 관한 본문인 것이다. 그렇기에 시편 37편에는 대환란 때의 의인인 "환란 성도"를 박해하는 악인, 곧 "적그리스도"와 그를 멸망시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말씀이 두드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① 『한 사람의 의인이 가진 적은 것이 많은 악인들의 부보다 더 낫나니 이는 악인의 팔들은 부러질 것이나 의인은 주께서 붙드심이라』(16,17절). 대환란 때의 "의인"은 짐승의 표를 거부할 것이기에 사고팔지 못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14절)로 살아야 한다(계 13:16,17). 그리고 "악인의 팔이 부러짐"은 적그리스도의 상한 팔에 관한 스카랴서의 예언을 읽게 한다. 『양떼를 버려 둔 우상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칼이 그의 팔과 그의 오른눈에 임하리니, 그의 팔은 바싹 마르고 그의 오른눈은 완전히 어둡게 되리라』(슼 11:17).

② 『주께서는 정직한 자의 날들을 아시나니 그들의 유업이 영원하리로다. 그들은 재앙의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며 기근의 날들에 배부르리라. 그러나 악인은 멸망하고 주의 원수들은 어린양들의 기름같이 되리니 그들이 타서 연기 속으로 사라지리라』(18-20절). 본문의 『정직한 자』는 시편 37편에 등장하는 『의인』을 가리키며, 그들은 대환란 동안 이 세상에 대기근이 닥칠 때 "셀라 페트라"라 불리는 바위 성읍으로 도피하여 3년 반 동안 초자연적으로 부양받아 "기근의 날들에 배부르게" 될 것이다(계 12:14, 미 7:14, 시 74:14). 또한 『악인은 멸망하고 주의 원수들은 어린양들의 기름같이 되리니 그들이 타서 연기 속으로 사라지리라.』는 말씀은, 대환란 때 짐승의 표를 거부하고 그에게 경배하지 않는 의인들을 목 베어 짐승에게 제물로 바칠 악인들이 처할 운명에 관한 예언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오히려 그들이 『어린양들의 기름같이』 불타서 연기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불"과 함께한다(말 4:1,3, 살후 1:7-9).

③ 『내가 큰 세력을 가진 악인을 보았더니 푸른 월계수같이 뻗어나갔으나 그가 사라져 버렸으니, 보라, 그가 없어졌도다. 정녕, 내가 그를 찾아 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도다』(35,36절). 『큰 세력을 가진 악인』은 대환란 때 의인들을 박해할 적그리스도를 뜻하며, 성경은 이 적그리스도를 "푸른 월계수"에 비유한다. "월계수"는 이교도들의 의식에 사용되는 나무로, 로마 제국에서는 "승리자들"을 위한 월계관으로 사용되었고, 델포이 신전의 제사장들은 악령에 사로잡혀 예언을 할 때 월계수 잎을 입에 물었다고 한다. 월계수는 천천히 자라며 뿌리를 견고하게 내린다. 적그리스도 역시 천천히 모습을 나타내어 이 세상의 통치자로서 뿌리를 견고하게 내린다.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나니 현재는 막는 자가 있어 막을 것이나 그가 그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만 그리하리라. 그리고 나서 그 악한 자가 나타나리니...』(살후 2:7,8). 월계수는 다 자라면 10-15m에 달하는데, 이는 적그리스도가 『큰 세력을 가진 악인』으로 활동할 것을 보여 준다. 겨울에도 늘 푸른색을 띠는 월계수의 모습에는, 다른 나무들이 겨울을 힘겹게 보낼 때 자신은 푸르게 번영한다는 의미가 있다. 적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동안 번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푸른 월계수 같던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때 악인은 끊어지리니 네가 그것을 보리라』(34절). 『그가 사라져 버렸으니, 보라, 그가 없어졌도다. 정녕, 내가 그를 찾아 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도다』(36절). 『범법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마지막은 끊어지리로다』(38절).

시편 37편은 이처럼 대환란과 재림에 관한 진리가 풍요로우면서도,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되고 도전적인 말씀 또한 풍성하다. 『선한 사람의 걸음은 주께서 정하시니 주께서 그의 길을 기뻐하시느니라. 그가 넘어져도 완전히 쓰러지지 아니함은 주께서 그의 손으로 그를 붙드심이라』(23,24절). 선한 사람, 곧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정하신 길이다.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정하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그 길 가운데에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주님은 그분께서 정하신 걸음을 걷는 우리가 그 길에서 넘어져 완전히 쓰러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손으로 붙드시어 다시 일어서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거룩하신 손에 붙들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그 말씀대로 실행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마음에는 그의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31절). 의인의 실족은 걸음걸이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 마음을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고 그 마음으로 말씀을 찬양하며 주님을 신뢰한다면 설령 그 길에서 죽을지언정(전 8:14, 막 8:34,35, 행 7:59,60; 12:1,2) 육신을 입은 자들이 가하는 공격에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시 56:4). 『오 내 원수야, 나를 대적하여 기뻐하지 말라. 내가 쓰러진다 해도 일어날 것이요, 내가 어두움 가운데 앉을지라도 주께서는 내게 빛이 되시리라』(미 7:8).

"첫 사랑"을 기억하여(계 2:4,5) 쓰러져도 다시 또 일어나야 할 이 십자가의 길에서 해야 할 일은, 주님께로부터 지혜를 얻어 세상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의 혀는 심판을 말하는도다』(30절). 성령께서 오신 목적은 『그분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는 말씀으로 요약된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에 대하여, 참된 의(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 세상의 통치자가 받을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요 16:9-11).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라 불리는 이 세상의 통치자는 이미 "갈보리"에서 심판을 받았다(골 2:15). 그가 현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멸망을 앞둔(롬 16:20, 계 20:10) 군주가 한시적으로 다스리는 것일 뿐, 그의 멸망은 이미 2천 년 전 갈보리 십자가에서 확정되었다. 마귀에게 넘겨진(눅 4:6)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일은 결코 순조롭지 않다. 『그러나 의인들의 구원은 주께 있으니 그는 고난의 때에 그들의 힘이시라. 주께서 그들을 도우시고 그들을 구하시리라. 그가 그들을 악인으로부터 구해 내시며 그들을 구원하시리니 이는 그들이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라』(39,40절). 어렵고 힘에 부쳐도 반드시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이 길 위에서 "온전하고 정직하게 행한다면 그 사람의 마지막은 화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37절). 고난의 때의 도움과 구원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이 충만한 복을 누리려면 기필코 주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