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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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거부된 왕국 (시편 2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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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4월호>

시편 22편은 “아옐렛 샤할”이 표제이다. 이 표제는 “아침의 암사슴” 또는 “새벽”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아침”을 언급함이 분명한 것은 “밤중”에 해당하는 십자가 처형(1-24절) 뒤 이어지는 “25-29절”이 아침이기 때문이다. 25-29절은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이며, 이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의 태양』(말 4:2)으로서 떠오르시는 아침이다. 본 시편은 십자가 처형이라는 암울한 예언과 달리, 주님께서 『의의 태양』으로서 떠오르시는 “재림의 아침”을 표제로 한 것이다. 시편 22편은 1) 십자가 처형(1-21절)과 부활(22절) 2) 야곱의 고난의 때(23,24절) 3) 천년왕국(25-29절) 4) 교회 시대(30,31절)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지 아니하시며 나의 신음하는 말들을 멀리하시나이까?』(1절) 주님의 십자가를 예언한 시편 22편은 1절부터 우리를 갈보리 십자가의 외침으로 인도한다. 『제구시경에 예수께서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하시니,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이라』(마 27:46). 다윗은 그가 시편을 기록하던 때로부터 약 1,100년 뒤에 있을 갈보리 십자가에서의 외침을 정확히 기록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영감을 주셔서 기록한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딤후 3:16). 다윗이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며, 그 십자가에서 외쳐질 그 음성을 알았겠는가? 시편 22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다.
『오 나의 하나님, 내가 낮 동안에 부르짖으나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며 밤 동안에도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나이다』(2절). 『나의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보여 준다. 『나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는 분이라면 “나의 소유”가 되신 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왜 “나”의 부르짖음에 밤낮 귀를 닫고 응답하지 아니하실까? 『오직 너희 죄악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나누었고 너희 죄들이 그의 얼굴을 너희로부터 가렸기에 그가 듣지 아니하심이라』(사 59:2). 예수 그리스도의 “버림받으심”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주님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죄로인해 잠시 외면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순간 그 아들을 외면하셨고, 그분께 죄에 대한 모든 진노를 쏟아부으셨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오 주여, 주는 거룩하시나이다』(3절).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찬양이 불리는 곳에 거하심을 뜻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찬양 받으신 곳은 “성막”이다. 『찬양』은 “성막”을 의미한다.
『우리 조상들이 주를 신뢰하였고 그들이 신뢰하였기에 주께서 그들을 구하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었더니 구원을 받았고, 그들이 주를 신뢰하였더니 수치를 당하지 않았나이다.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들에게 멸시거리니이다』(4-6절). 조상들이 주님을 신뢰하여 부르짖었을 때 응답해 주신 주님께서 지금 그분을 신뢰하는 “나”의 기도에는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여기서 “나”는 곧바로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된다.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는 『벌레』로 묘사되실 뿐만 아니라, 『벌레』가 되신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의 자신을 『뱀』으로도 묘사하셨다(요 3:14). 주님께서는 뱀인 마귀의 입장이 되시어 그가 이 우주에 가져온 죄를 십자가에서 감당하셨다.
주님과 관련된 “벌레”와 “뱀”은 동일한 색깔을 지닌 동일한 족속이다. 벌레는 “붉은 구더기”이고, 『옛 뱀』(계 12:9)은 『붉은 용』(계 12:3)이다. 이것은 마귀를 아비로 둔 죄인이 죽을 때 그가 왜 벌레가 되는가를 보여 준다.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4). 이 구절에서 『그들의 벌레』는 지옥에 간 죄인이다. 살아 있을 때 회개하지 않은 마귀의 자식들은 죽으면 그들의 아비인 붉은 용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혼을 잃어버린” 결과이다(마 16:26). 사람이 혼을 잃는다는 것은 그 혼이 사람의 모습을 잃고 “붉은 구더기” 모양을 띠게 됨을 뜻한다. 지옥에서 벌레가 되어 불타게 될 죄인들을 대속하시려고 주님께서 『벌레』 취급을 당하신 것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조롱하며 비웃나니 그들이 입술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그가 주께서 자기를 구하실 줄 신뢰하였도다. 주께서 그를 기뻐하시니 그를 구하시게 하라.” 하나이다』(7,8절). 이 말씀 역시 다윗의 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예언임을 보여 준다. 『그가 다른 사람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면 지금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하라.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으리라』(마 27:42).
『그러나 주는 나를 태에서 꺼내신 분이시며 내가 내 어머니의 가슴 위에 있을 때 내게 희망을 주셨나이다. 나는 태에서부터 주께 맡겨졌으니 주는 모태에서부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9,10절).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이전과 출생 과정(출산)과 출생 이후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주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셨고(마 1:18), 탄생 후 마리아의 가슴 위에 계실 때에도 하나님만이 희망이 되어 주셨다. 사람으로 나셨을 때 먹고 마시고 씻고 눕는 것을 전적으로 사람의 손에 맡기셨지만, 주님의 탄생을 알고서 둘러싼 마귀들로부터 보호해 주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마리아 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호한 것이 아니다.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고난이 가까이 있으나 도울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고 바산의 힘센 황소들이 나를 둘러쌌나이다. 그들이 내게 입을 벌림이 마치 찢고 울부짖는 사자 같나이다』(11-13절).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둘러싼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에 대한 언급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대적하는 무리는 “짐승”이다.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20). 당시 유대 사회에서 종교 지도자들로서 존귀를 지니고 있었을 그들은 주님께서 보실 때 “황소들”과 “울부짖는 사자”에 불과했다. 그들이 했던 일은 『울부짖는 사자』(벧전 5:8)인 마귀의 일이었다. 그들과 동일한 부류가 에스겔 2:6에서는 “전갈”로, 마태복음 23:33에서는 “뱀들”과 “독사들”로 불린다.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는 것이 주님께 “사람”으로 대우받는 길이다.
『내가 물같이 쏟아졌으며 나의 모든 뼈는 어그러졌고 내 심장은 밀초 같아서 나의 내장 가운데서 녹았나이다. 내 기력이 질그릇 조각같이 말랐으며 내 혀는 잇틀에 붙었나이다. 또 주께서 나를 사망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싸고 악인의 무리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그들이 내 손과 내 발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들을 셀 수 있으니 그들이 나를 보며 쳐다보나이다. 그들이 그들 가운데서 내 겉옷을 나누고 내 속옷을 제비뽑나이다』(14-18절). 이 구절들은 골고다의 광경이다. 십자가의 주님께서는 극도의 탈수 상태를 겪으셨고, 기력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사지를 잡아당겨 못박히셨기에 모든 뼈가 어그러졌다. 그러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기에 뼈를 다 셀 수 있었다(요 19:36). 주님을 둘러싼 『개들』은 이방인들(마 15:26,27), 곧 로마 병사들이다. 바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발을 찔렀다. 『개들이... 내 손과 내 발을 찔렀나이다』(16절).
『또 주께서 나를 사망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15절). 『진토』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생명이 시작된 곳이자(『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 창 2:7), 생명이 끝나는 곳이다(『너는 흙이니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 창 3:19). 진토가 있는 땅은 저주를 받아 생명을 유지시킬 수 없기에(창 3:17) 그것은 『사망의 진토』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생명이 없고 사망이 있다.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도록 하라. 하늘은 우리의 『복된 소망』(딛 2:13)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곳이다!
『그들이 그들 가운데서 내 겉옷을 나누고 내 속옷을 제비뽑나이다』(18절). 이 행위를 하던 초림 때의 죄인들은 이 예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예언을 성취하고 있었다. 『그때 병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서 주의 겉옷을 들고 네 조각으로 나누어 각자 한 조각씩 가지며, 또한 주의 속옷도 가지니...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그것을 찢지 말고 누가 가질 것인지 제비를 뽑자.” 하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끼리 내 옷을 나누고 내 속옷도 제비를 뽑나이다.’라고 말한 성경을 이루려 함이라』(요 19:23,24). 예언의 성취는 성경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게 하는 시금석이다(사 41:21-23). 본문 18절만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모든 예언이 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내 손과 내 발을 찔렀나이다.』(16절)는 어떠한가?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요 5:39).
『그러나 오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오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혼을 칼에서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19,20절). 주님은 육체적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칼을 찬 개의 세력에서 구해 냄을 받지 못하셨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께 『개』는 폰티오 빌라도이며, 이 빌라도의 세력에서 구해 냄을 받지 못하셨다. 『내 유일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혼으로, 그 혼은 구해 냄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혼을 지옥에 버려두지 아니하셨다(시 16:10).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이는 주께서 유니콘들의 뿔들로부터 나를 들으셨음이니이다』(21절). 『사자』는 사탄이다. 주님께서는 사탄으로부터 구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이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고, 주님은 죽으셨다. 『유니콘들』은 셋째 하늘의 초자연적인 짐승이다. 그곳에는 엘리야를 불병거에 태우고 올라간 “불말들”도 있다. 유니콘은 주님과 그분의 군사들이 재림 때 타고 내려올 흰말들이다(계 19:11,14). 셋째 하늘에 말들이 있어야 타고 내려오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유니콘들의 뿔들로부터 들으셨다는 것은 유니콘들이 있는 셋째 하늘에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주님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부활시키신 것이다! 다음의 22절이 바로 주님의 부활을 예언한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내가 주를 찬양하리이다』(22절). 여기 22절에 이르러, 본 시편은 “부활”로 분위기가 반전된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인들에게 『두려워 말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하라.』(마 28:10)고 하시고, 또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러나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또 나의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라.』(요 20:17)고 하신 일로 일차적으로 성취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유대인 형제들에게 『주의 이름』 곧 “아버지의 이름”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나 본문 22절은 히브리서 2:12에서 “교회”에 적용된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교회 가운데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셨으며』(히 2:12). 여기서는 시편의 『회중』이 『교회』로 바뀌었다. 주님의 형제들은 “유대인 형제들”은 물론,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된다(롬 8:29). 주님의 부활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한 효력이 있다(롬 1:16).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들은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야곱의 고난의 때”(23,24절)를 잠시 거쳐 “천년왕국”(25-29절)으로 이어진다.
『주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양하라. 너희 야곱의 모든 씨들아, 그를 영화롭게 하라. 너희 이스라엘의 모든 씨들아, 그를 두려워할지어다. 이는 그는 고통받는 자의 고통을 멸시하거나 증오하지 않으셨고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도 않으셨으며 그가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음이라』(23,24절). 야곱의 씨를 다루는 이 구절은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인 “대환란”에서 야곱의 씨들이 구원받는 것을 말씀한다. 그리고 다음 구절들은 “천년왕국” 때 있을 일들을 묘사한다.
『큰 회중 가운데서 나의 찬양이 주께 있으리니 나는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 앞에서 나의 서원들을 갚으리이다. 온유한 자는 먹고 만족할 것이요, 주를 찾는 자들은 그를 찬양할 것이니 너희 마음이 영원히 살 것이라. 세상의 모든 끝이 기억하고 주께로 돌이키리니 민족들의 모든 족속들이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 이는 왕국이 주의 것이요, 주께서 민족들 가운데 통치자시기 때문이니이다. 땅 위의 모든 풍요로운 자들이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로 내려가는 모든 자들도 그 앞에 절하리로다. 자신의 혼을 살려 둘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25-29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1-21절)와 부활(22절) 이후로 야곱, 곧 이스라엘의 씨들 가운데 고통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이 응답되는 것은(23,24절) 야곱의 씨들이 『야곱의 고난의 때』를 거쳐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일은 분명 죄와 죽음과 지옥과 무덤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이스라엘에게 확증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언하여 말하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어서 너희로 너희의 무덤들로부터 나오게 하여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리라』(겔 37:12, cf. 호 13:14).
본문 25절은 어느 정도 다윗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지만, 26절의 『온유한 자』는 “주께로 돌이키는” 환란성도들을 가리키며, 26-29절은 그들이 주님과 통치하게 될 천년왕국을 묘사한다. 27절의 『세상의 모든 끝이 기억하고 주께로 돌이키리니 민족들의 모든 족속들이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는 재림 이후 천년왕국에서 있을 일이다(슼 14:16, 사 2:2). 따라서 본 시편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뒤 대환란을 잠깐 비쳤다가(23,24절) 곧바로 천년왕국(25-29절)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어지는 마지막 구절(30,31절)은 “교회 시대”이다. 시편 22편은 “십자가 - 부활 (- 대환란) - 천년왕국 - 교회 시대”라는 사뭇 “의미심장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한 씨가 그를 섬길 것이요, 그것이 주께 한 세대로 여겨지리라. 그들이 와서 태어날 한 백성을 위한 그의 의를 선포하리니 이는 그가 이것을 행하셨음이라』(30,31절). 『한 씨』는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낳으실 『한 백성』이다. 이 씨에 대해 이사야 53:10은 『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라고 말씀한다. 이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태어난 교회이다. 『한 세대』란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세대, 곧 교회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시편 22편에서 “사도행전의 과도기적 구조”를 읽게 된다. 사도행전은 이스라엘이 십자가 처형 이후(1-21절) 부활하신(22절)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선지자들에게 감춰진 교회 시대 없이 - 벧전 1:10-12) 왕국이 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25-29절, 행 7장).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스테판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면 재림하시려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셨다(행 7:55). 그때 오셨더라면 “적그리스도”의 예표인 카이사의 식민 지배하에 고통받던 “야곱의 씨들의 고난”을 끝내시고(시 22:23,24) 분명 “천년왕국”(25-29절)이 임했을 것이다. 그러나 왕국은 끝까지 다시 거부되고 스테판의 죽음 뒤 “교회 시대”로 서서히 경륜은 옮겨간다. 왕국이 임할 수도 있었지만 임하지 못하고, 감춰진 교회 시대가 펼쳐질 것을 본 시편의 마지막 두 구절(30,31절)을 통해서 내다보신 것이다.
시편 22편은 30,31절에서 교회 시대의 도래를 암시한 것을 끝으로 다음 시편인 23편에 그 바통을 넘겨준다. 시편 23편은 사도행전 7장에서 왕국이 최종적으로 거부된 뒤 도래한 “교회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 교회 시대의 시편이 끝나면 다음 24편에서 대환란 끝에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시며 재림하시는 『영광의 왕』께서 나타나신다(시 24:8-10). “십자가 - 부활 - 다시 거부된 왕국 - 교회 시대 - 재림(천년왕국)”이 시편 22,23,24편이 이루고 있는 구조이며,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세대주의적 진리이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