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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멸시받지 않는 희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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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7월호>
시편 5 1편은 『악장에게, 다윗의 시, 그가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가 그 표제이다.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죄를 지적받고서 기록한 본 시편은 ①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함(1,2절) ② 오직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음을 인정함(3,4절) ③ 태생적으로 죄인임을 고백함(5,6절) ④ 죄로부터의 정결에 대한 갈망(7-10절) 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기초로 한 새로운 각오들(11-15절) ⑥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희생제(16,17절) ⑦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재림)에 관한 예언(18,19절)으로 구성되어 있다.『오 하나님이여, 주의 자애하심을 따라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의 온유한 자비들의 풍성함을 따라 내 죄과들을 지워 버리소서. 나의 죄악으로부터 나를 철저히 씻으시고 나의 죄로부터 나를 깨끗하게 하소서』(1,2절). 죄지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씻겨야 한다. 다윗은 이 시를 시작할 때 특히 처음 두 구절을 무척이나 힘주어 기록한 듯하다. 『나를 철저히 씻으시고』의 "철저히"라는 말씀에 그 힘과 간절함이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죄지은 성도 자신의 간구가 필수적이다. 다윗의 간구는 죄의식에 짓이겨진 상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선지자 나단의 지적에 변명하거나 피해 가려 하지 않았고, 칼로 찌르는 듯한 책망과 가책에 『내가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노라.』(삼하 12:13)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죄에 대해 정당화하지 않고 이 참회의 시를 써 내려간 것이다. 그는 단순한 자비가 아닌 『주의 온유한 자비들의 풍성함』을 구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가증한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즉 그 죄들은 다윗 자신의 버림받음과 죽음을 예고할 만큼 중한 것이었다.
『내가 내 죄과들을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 주의 목전에서 이 악한 행실을 행하였으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롭게 되시고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리이다』(3,4절). 애써 외면하려 해도 다윗의 죄들은 그의 앞을 떠나지 않았다. 죄를 지은 그를 줄곧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는가?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과 그녀의 남편을 살해했던 일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밧세바를 데려오게 하려고 사자들을 보냈을 때(삼하 11:4) 그들은 다윗이 왜 그녀를 데려오려고 하는지 몰랐다. 우리야는 다윗이 왜 자신을 전쟁 중에 불러들여서 술 취하게 하고 밧세바와의 동침을 유도했는지(삼하 11:6 -13) 알지 못했다. 그 뒤 우리야를 죽이라는 편지를 그의 손에 들려서 요압에게 보냈을 때(삼하 11:14,15) 우리야 자신은 그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 모든 죄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하나님만은 정확히 알고 계셨다.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 주의 목전에서 이 악한 행실을 행하였으니』, 곧 주님은 다윗의 음흉한 죄들을 일일이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인간이 죄를 짓는 궁극적인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요셉은 동침을 요구하는 주인의 아내를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고 하며 책망했다. 하나님과 무관한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의롭고 순전하여 아무도 그분의 심판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악을 행하는 것이므로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할 수가 없다. 주께서 모두 보고 계셨으니 누가 그분의 심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다만 어찌할 수 없는 죄인으로서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여, 주께서 죄악들을 지켜보신다면 오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용서하심이 주께 있으니 주께서는 두려워함을 받으시리이다』(시 130:3,4).
사도 바울은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롭게 되시고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리이다.』(4절)라는 말씀을 로마서 3:4에서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라고 인용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하에서 ①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롭게 되시고』를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로, ②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를 『 판단받으실 때에 』로 바꾸어 인용했다. 주님께서 "판단받으실 때"가 언제인가? 그것은 "백보좌 심판 때"이다. 그때가 되면 죄인들이 불못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온갖 구실을 갖다 붙여 "주님을 판단함으로써" 자신들은 옳고 주님이 틀리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 의해 그렇게 『판단받으실 때에』 주님께서는 『주의 말씀』을 펼쳐 보이심으로써 그들의 유죄를 입증하실 것이다.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라는 로마서 3:4이 성취되는 것이다. 주님은 그분을 판단하려 드는 죄인들을 그분의 의로운 말씀을 펼쳐서 이기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같이 거짓말쟁이들임을 주의 말씀으로 입증하실 것이다.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기록된 바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함과 같으니라』(롬 3:4).
이제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조성되었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배었나이다』(5절). 이것은 다윗의 본질이자 모든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죄인이다(욥 15:14; 25:4).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변화가 그의 "감추어진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그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수 있다고 고백한다. 『보소서, 주께서는 마음에 있는 진실을 원하시오니 주께서는 감추어진 곳에서 나로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6절). 따라서 지금 우선적으로 바라는 일은 죄에서 정결케 되는 것이다. 죄의 예표인 문둥병을 우슬초로 정결케 하듯이(레 14:4-6) 깨끗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깨끗게 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더 희게 되리이다... 나의 죄들로부터 주의 얼굴을 가리소서. 나의 모든 죄악들을 지워 버리소서』(7,9절). 이러한 죄의 용서를 통해 오는 행복은 죄인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서 가져오실 일이다. 『나로 기쁨과 즐거움을 듣게 하소서. 주께서 꺾으신 뼈들이 즐거워하리이다』(8절). 다윗은 죄로 인해 "뼈가 꺾이는 듯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주께서 그 모든 죄악들을 지워 버리실 때 기쁨과 즐거움이 회복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다윗은 죄에서 정결케 되는 것만큼이나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다. 즉 그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바른 영을 새롭게 해 주신다면, 그를 내어 쫓지 않으시고 성령을 거두어 가시지 않는다면, 그래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만 주신다면,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영으로 진리를 위해 살면서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죄인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이다. 『오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의 면전에서 나를 내어쫓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주의 자원하는 영으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법자들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리이다』(10-13절). 죄를 짓고 하나님과 멀어져 버린 인생의 시간들은 잘못 써 내려간 책과 같다. 성도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인생의 원고에 잉크를 엎질러 가며 아무렇게 낙서를 해 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낙서장을 누구에게 읽으라고 줄 것인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이 그와 같다면, 죄로 망쳐 버린 생의 초고(草稿)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백지로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마무리 원고를 써 나가야 한다. 죄를 멀리하면서 성경대로 거룩하고 충실하게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지금 부끄럽게 여기는 그 일들에서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그런 일들의 끝은 사망이니라』(롬 6:21). 『우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를 행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도다』(벧전 4:3).
『그리하면 내가 범법자들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리이다.』(13절)라는 말씀은, 죄에서 돌이킨 성도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표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서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회개한 성도는 그와 같은 열정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다윗의 바람은, 한 자루의 초처럼 일편단심 주님만을 위하여 여생을 불태우는 것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남은 생을 쓴다면 하나님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인정해 주실 것이다.
이후 다윗은 피를 흘린 죄에서 구해 주시면 주의 의를 소리 높여 노래하고 주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한다. 『오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주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내 혀가 주의 의를 소리 높여 노래하리이다. 오 주여, 주께서는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면 내 입이 주의 찬양을 보이리이다』(14,15절). 그런데 왜 이토록 절박한 것일까? 시의 시작부터 용서를 구하고 또 구하는 모습이 초조하기만 하다. 혹시 용서받지 못할 죄라도 저지른 것일까? 그렇다. 다윗의 죄들은 율법적으로 희생제가 적용되지 않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였다. 『주께서는 희생제를 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그렇지 아니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 주께서는 번제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16절).
다윗의 "간음"과 "살인"은 희생제물로 죗값이 치러질 수 없는 사형죄였다. 『다른 사람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즉 자기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음한 자와 그 간음한 여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0:10). 『또한 너희는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민 35:31). 속전이 요구되지 않는 가증한 죄들을 범한 다윗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죽을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제시했던 것은 제물보다도 더 나은 "상한 영"과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이었다. 『하나님의 희생제들은 상한 영이니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17절). 신약성경은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고(요일 3:14,15), 여인을 보고서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마 5:28) 가르친다. 음욕은 살인과 더불어 "육신의 일들"에 포함되며, 그러한 죄들을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 된다(갈 5:19-21). 다윗은 간음 및 살인과 관련하여 영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갔다. 어디 이 두 죄들뿐이겠는가? 모든 육신의 일들에 영과 마음의 새로움이 요구된다. 육신의 죄들을 단호하게 떨쳐 버리고 거룩한 삶을 참신한 자세로 추구하고자 할 때, 바로 그 자세가 하나님께 멸시받지 않는 희생제가 되는 것이다.
『주의 선하신 기쁨으로 시온을 향하여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벽들을 쌓으소서. 그때 주께서는 의의 희생제들과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때 그들이 주의 제단에 수송아지들을 드리리이다』(18,19절). 예루살렘 성벽들이 세워지는 때는 이스라엘이 모든 죄악에서 깨끗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이다(겔 36:33-36). 그날에 천년왕국 성전에서는 다시 희생제사가 드려질 것이다(겔 40-46장). 다윗은 솔로몬이 자기 대신 건축한 다윗의 장막(대상 22장, 왕상 5-8장)이 다시 세워지고 파괴된 성벽들이 재건축되는 때를(행 15:16)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언하고 있다. 성령님께서는 "선지자"인 다윗을 통하여, 메시아를 "살인"하고 세상과 "간음"한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죄악을 용서받고 회복되는 "재림"의 때를 다윗이 바로 그 죄들에서 회복되는 것과 중첩시켜 "예언"하신 것이다. 죄를 지었다면 주님과의 관계를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자비와 용서를 통해 죽음의 심판을 면하게 해 주실 이는 주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