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해외기사 분류

감사의 희생제를 드리라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2월호>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찬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드리자. 이것이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감사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나온다. 『그들로 감사의 희생제를 드리며 기쁨으로 그의 행사들을 선포하게 하라』(시 107:22).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일에 감사하라.』(살전 5:18)라고 권면했는데, 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감사가 “희생”일 때가 종종 있는데, 때로는 감사하는 일이 마음을 아프게 할 만큼 무척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이후로 미국인은 감사하지 않는 국민이 되었다. 복지 국가의 국민들은 자기들이 마땅히 모든 것을 받아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기 쉽다. 즉 “국가는 나를 먹여 살려 줘야 해!”라고 하면서 당연시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성경 읽기와 기도를 없애고 그 대신 진화론과 성교육을 도입한 미국은 “모든 좋은 선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약 1:17) 사실을 더 이상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미국을 동성연애자들이 차지해 버렸다. 어떤 나라가 감사하기를 그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의 백성들을 “버림받은 마음”과 “수치스러운 욕정”에 내버려 두시어 남자는 남자와 더불어, 여자는 여자와 더불어 음행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하신다(롬 1:21-28).

1. 그리스도인은 기쁨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자신의 고용주를 항상 기쁘게 섬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한데, 개인 소득세와 연방 준비 제도가 시행되고 미국 민권법이 발효된 이후로, 미국인들은 선택권이 있었다면 결코 찬동하지도 연루되지도 않았을 일들을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자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정부를 섬기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주님을 섬기는 일은 더욱 기쁨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 중에서 자본주의나 미국의 정부 형태에서 기인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며 성경을 믿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미국에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미국이 지금도 위대한 나라인 이유에 대해 그저 “환상”만 갖고 있는 사람은 여행을 많이 해 보지 않아서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으로 가득 찬 나라들을 가뭄, 장마, 태풍, 지진, 홍수, 화산 폭발 등으로 심판하신다. 그런 나라들은 대개 성경을 구하기가 힘들고 구원받은 사람들도 절대적으로 소수이다.

한번은 어떤 모슬렘이 내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선지자인 마호메트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주었습니까?” “그분은 내게 진리를 주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질문은 그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주었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그러자 나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나의 선지자께서는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당신의 선지자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선지자 마호메트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일화를 흑인 모슬렘들이 득실대는 교도소에서 전했더니, 거기서 복역 중이던 흑인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좋아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여기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하여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요일 4:10). 만약 당신이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을 위해 죽어 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모른다면, 어떻게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친구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나니』(요 15:13). 부처도, 마호메트도, 마리아도 당신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섬기는 주님께서는 내가 그분의 친구가 아니었을 때조차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롬 5:6-10). 그 사랑은 당신에게도 해당된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데, 어찌 그분을 섬기는 일이 힘들다고 불평할 수 있겠는가!

2. 우리가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너희는 주,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라. 우리를 지으신 분은 우리들 자신이 아니라 그분이시라』(시 100:3). 나의 조상 중에는 원숭이가 없다. 당신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문제이다. 설사 내게 다른 감사의 제목이 없다 해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사람들은 내가 교황을 “원숭이 인간”이라고 부르면 발작을 일으키려고 한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창세기는 신화”이고(요한 바오로 2세) 창세기 1-11장은 진화론의 조명 아래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황부터 추기경, 주교, 신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그야말로 “원숭이 인간들”인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믿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내가 과학자들처럼 어떤 틀린 가정이나 가능성을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나는 나를 만드신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또한 그분께서 “어머니 자연”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드린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사실이(창 1:26,27) 인간과 동물을 구분지어 준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비록 그 형상이 죄로 인해 타락하여 망가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모습[similitude]』(약 3:9)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이다.

3. 우리에게 선한 목자가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초장의 양이로다』(시 100:3).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시 23:1). 나의 목자는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계시며(요 10:14) 나를 위해 죽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셨다(요 10:11). 부처는 그의 추종자들 중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죽을 마음이 없었다. 그는 그의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20년 동안 앉아 있었고, 그러는 동안 그의 가족은 고통을 당해야 했다. 내가 길에서 벗어나면 나의 선한 목자께서는 온화한 모습으로 다가오셔서 나를 다시 바로잡아 주신다. 나는 모슬렘들처럼 같은 종교를 믿고 있는 누군가가 나를 죽일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나는 지난 62년 동안 사역해 오면서 “주님은 선한 목자가 아니에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은 것을 후회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 보지 못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데려가셨거나 집이 불타 버린 상황에서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그리스도인을 보지 못했다. 나의 선한 목자께서는 양들의 필요를 채워 주신다. 우리의 밥상에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을 올려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주께서 내 원수들의 면전에서 내 앞에 식탁을 마련하시나이다』(시 23:5). 미국인들은 잠이 안 올 때 흔히 “양을 센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목자이신 주님께 마음에 있는 것을 말씀드리면 된다. 나는 잠자리에 들 때 목자의 음성을 들으면서 잔다. 성경을 녹음한 CD를 틀어 놓고 그것을 들으며 자는 것이다.

4.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도 감사드릴 수 있다. 『이는 주께서는 선하시고 그의 자비는 영원하며 그의 진리가 모든 세대에 지속되기 때문이라』(시 100:5). 여기에서 모든 세대에 지속되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을 것인데(벧전 1:23-25), 이 우주가 활활 불타 없어진 뒤에도(벧후 3:10-12) 성경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마 24:35). 당신은 성경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드려야 한다. 지금도 지구상의 52개 나라에서는 성경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거나 개인이 성경을 소지하는 것을 정부가 방해하고 있다. 일례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성경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 이란의 모슬렘 정부는 성경 공회를 완전히 폐쇄시켜 버렸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그곳에 주둔해 있는 미군 그리스도인 병사에게 현지 주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라고 고향에서 보내 온 성경을 미군이 직접 불태우기도 했다. 이는 모슬렘들이 성경을 소지하거나 그것을 배포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현 미국 정부는 공립 학교나 공공건물에서 공개적으로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다. 이제는 무신론자들이 호텔 객실에까지도 성경을 비치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대학교 채플에서 성경을 치워 버린 사건도 있었다. 정부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은 우리의 성경을 빼앗아 가려 하고 있다. 그 대신 그들은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종의 기원>인가?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인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런 것들은 죄와 죽음과 사후의 생에 대해 어떤 답도 주지 못한다. 다윈과 마르크스의 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나 경제의 사다리를 힘겹게 기어 올라가는 짐승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럭크만, 당신은 무식하니까 성경을 믿는 거요!”라고 하면서 비아냥거린다. 그렇다! 나는 성경보다 똑똑하지 못하다. 열 살 때부터 시작해서 황반 변성이 생길 때까지 나는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었다. 그러나 성경과 같은 책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책을 알고 있다면 내게 알려 달라. 나는 언제라도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오히려 성경을 읽지 않는 자들이 자기 마음을 닫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죄도 짓지 않고, 슬픔도 겪지 않으며, 필요한 것도 없다면 이 복된 성경이 필요 없을 것이다. 중세 암흑시대와 종교 개혁 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주기까지 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나라들이 여럿 있다. 당신은 성경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성경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라!

5.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기쁨으로 주를 섬기라. 노래하며 그의 임재 앞으로 나아오라』(시 100:2). 죽은 종교들의 특징 중 하나는 노래가 없다는 점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신들은 그들을 찬양하는 노래가 없다. 알라나 마호메트를 노래하는 모슬렘은 없다. 이런 말을 여러 번 했더니 누군가가 내게 마호메트에 관한 노래가 하나 있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다고? 마호메트가 알라의 마지막 “선지자”이고 모든 인류의 완전한 본이라면 왜 노래가 하나밖에 없는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노래가 500곡이 담긴 찬송가를 가지고 있다. 다른 찬송가 네 권을 좀 더 뒤지면 100곡 정도는 더 나올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노래는 600곡인 데 반해 마호메트에 관한 노래는 달랑 한 곡밖에 없는 것이다. 모슬렘들은 그 정도로밖에 그들의 “선지자”를 존경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 “선지자”는 모슬렘들을 위해 해 준 것이 없는 것이다.

감사하라! 내게는 “조 복스”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으로 건너온 독일인으로, 미군에 입대하여 미국 국적을 얻기 위해 한국 전쟁에 참전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었을 무렵 조의 부대는 얼어 죽을 듯한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병사들은 크리스마스 저녁으로 칠면조 통조림을 보급받았는데, 추위로 얼어 버린 깡통을 총검으로 힘들게 따서 먹느라 대부분이 구시렁대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병사들을 점검하고 있던 중대장이 조에게 물었다. “조, 지낼 만한가?” “네, 중대장님! 정말로 이것은 군인이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입니다. 독일에서는 이런 것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중대장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십시오!” 그러자 중대장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복 주시기 바라네. 자네 같은 병사가 부대 안에 200명만 더 있으면 좋겠어!”

주님께서는 당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가?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는 우리의 “대장”(히 2:10)을 기쁘시게 해 드림으로써 칭찬받을 수 있게 된다. 만사형통하고 배부르고 건강하며 돈이 넉넉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가 아프고, 전기세를 낼 돈도 없고, 차는 고장이 나서 수리비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고,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밥상에 김치 반찬 하나밖에 없을 때도 당신은 감사할 수 있는가? 그때야말로 감사드려야 할 때이다! 그렇게 “감사의 희생제”를 드림으로써 당신은 주님께서 주시는 “어떤 것들”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보여 드릴 수 있는 것이다.

펜사콜라 시의 한 요양원에서 지냈던 “솔터”라는 자매가 있었다. 그녀는 25년 동안 침상에 누운 채로 지내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방문할 때마다 그녀는 항상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내가 “솔터 자매, 주님을 찬양해 보세요!”라고 말할 때면, 그녀는 요양원이 떠나갈 정도로 우렁차게 “주님을 찬양하라!”라고 외쳤다. 사지가 멀쩡하고 운동도 할 수 있는 당신이 교회 안에서 찬양하는 것보다 훨씬 크게 외쳤던 것이다. 나는 말했다. “솔터 자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길 원합니다! 자매님 같은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 200명만 더 있으면 좋겠어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정말로 감사드릴 일이 없는 상황에서조차 최소한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 정말 감격스럽지 않은가? 지옥에서 불타는 가운데 영원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은가? 나는 정말로 기쁘다! 나는 구원받았을 때 이제는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난생처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었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더욱 감사했다. 지옥에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도 가게 되었다니! 영광, 영광!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가게 되고, 또 누가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실지 알고 있다!(딤후 1:12) BB

해외기사 135 / 2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