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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사용해야 할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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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8월호>
피터 S. 럭크만 / 김진석 옮김『그러나 유리를 통해 보는 것같이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되느니라』(고후 3:18). 『누구든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고 행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타고난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이는 그가 자기를 보고는 가서 즉시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잊어버림이라』(약 1:23,24). 성경은 거울과 같다. 왜냐하면 거울처럼 당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을 말해 준다.”라든가, “당신의 친구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준다.”라거나, “당신이 읽는 책이 당신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라는 소위 “있어 보이는 말들”을 내뱉는데, 그 모든 요소들은 공통적으로 가식과 위선을 담고 있다. 죄의 본성을 지닌 인간을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평가할 수 있는 “절대 거울”은 오직 “성경”뿐이다. 본 글에서는 성경이 지닌 거울의 속성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해 보려고 한다.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당신이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대놓고 거짓말할 수 없다. 거울을 보면서 실상과 다른 것을 말할 수는 있지만 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거울에 보이는 당신이야말로 다른 누구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이다. 거울은 진실을 말해 준다. 성경이 모든 사람보다 높이는 존재가 누구인 줄 아는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행여나 당신은 예수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높일 수도 있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했던 인물 중에 성경이 말씀하는 가장 위대한 인물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부처나 마호메트가 아니다. 이런 썩어 버린 자들은 예수님 근처에도 올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 관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마 3:17)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 아들을 통해서 『그분 자신의 뜻으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셔서 우리로 그의 피조물들 가운데 첫열매들에 속한 자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약 1:18).
예수님께서 변형산에 올라가셨을 때 베드로는 “장막 세 개를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또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마지막은 모세를 위해서 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모세와 엘리야는 각각 율법과 선지서들을 상징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말고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셨다. 사람들에게는 그들 자신이 따르는 모델이나 우상이 있다. 그들은 매스컴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는 영화배우나 운동선수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알고서 따른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가장 위대한 인물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거울에 비친 실상을 놓고 거울을 탓할 수 없다. 사람들은 책임을 전가하기 좋아한다. 그런 특성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서 기인했음을 창세기 3장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거울을 쳐다봤는데 웬 괴물이 있으면 바로 당신이 괴물인 것이다. 거울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탓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모습은 당신의 부모, 형제, 스승, 친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당신이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옛말에 “성경이 나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든지, 내가 지은 죄들이 나로 하여금 성경을 읽지 못하게 막든지 둘 중 하나다.”라고 했다.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나는 나는 성경을 제일 좋아합니다”라고 노래하면서 정작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이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이 신실했든 불성실했든 성경은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고후 5:10). 당신이 성경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성경이 당신의 육신적인 생각들을 반대하고 당신도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혹자가 말했듯이, 당신이 성경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성경이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당신의 속내를 다 말해 주기 때문이다. 마귀는 당신 옆에 바짝 붙어서, 당신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고리타분한 생각보다 더 세련된 생각들을 가졌다고 착각하며 스스로를 높이도록 만든다.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최종권위”임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고 뛰어난 당신의 생각을 자꾸 추켜세우려 드는데, 그 모든 생각들을 성경에 비추면 헛것보다 가벼운 것이 되어 버린다(시 62:9).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성경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드러나지 않게 성경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당신은 “성경이 나에게 찔림을 주는데 어떡하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당신 자신을 말씀의 불에 노출시켜 죄의 찌꺼기를 태우라. 당신 자신을 성경에 노출시키고 필요하다면 성경이 당신을 쏘게 하라. 성경이 쏜 총알에 맞는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래도 성경이 무서운가? 당신이 말씀을 읽기 무서워하는 원인은 성경이 당신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울은 자란다. 5살 때 보아도, 15살 때 보아도 거울은 당신을 그대로 보여 준다. 백발에 피부가 자글자글해진 노년의 때에도 이 거울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성경은 살아 있는 책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살아 있고 자란다. 성경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면 당신 자신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을 보여 준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 잘못된 인상을 취한다. 나이가 들면서도 자신이 더 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거울은 당신과 함께 자라며, 당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고, 앞으로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를 알려 준다.
깨진 거울은 왜곡된 이미지를 보여 준다. 깨진 거울을 봐서는 당신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당신의 이미지 자체가 뒤틀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경 번역본들이 바로 깨진 거울들과 같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권위를 인정받은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이며, 다른 변개된 성경들은 거짓된 이미지를 보여 준다. 놀이동산 같은 곳에 가면 오목 거울과 볼록 거울이 전시된 곳이 있다. 아이들이 가서 그런 거울 앞에 서면 뒤틀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새로운 “성경들”도 이처럼 뒤틀리고 왜곡된 모습을 보여 준다.
만약 모든 경제학자들을 모아 그들의 이론을 설명하게 두면, 아마도 45개의 서로 다른 길을 제시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새로운 성서들을 모아 놓으면 서로 다른 45개, 아니 모아 둔 성서들의 개수보다 더 많은 수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잡스럽고 너저분한 기준이 아니라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절대적인 기준 같은 것은 믿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한 시간(GMT, Greenwich Mean Time)이 절대적인 시간이다. 절대적인 경도를 알고 싶은가? 영국에 그 기준이 있다(IERS, International Earth Rotation Service, 이 또한 앞서 언급한 GMT를 기반으로 정립된 체계이다 - 역자 주). 절대적인 온도도 영국열량단위(BTU, British Thermal Unit)에 따른 온도이다.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은가? “영국 성경”을 구하라. 몇 시인지 알고 싶은가? “영국 성경”을 구하라. 온도가 몇 도인지 알고 싶은가? “영국 성경”을 구하라. 미국이 아니라 “영국” 성경을 구하라!
당신은 오늘날의 설교가 어떤지 아는가? “당신의 위치가 어떻게 되죠?”라고 물으면 “아, 그건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죠.”라며 아리송한 대답을 내놓는다. 이는 “지금 몇 시죠?”라고 물으면 “제 시계는 7시 8분 전인데, 저 시계로는 7시 10분 전이고, 당신 시계는 어때요? 다 괜찮으니까 원하는 대로 고르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성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가진 성경은 뭐라고 말하죠? 아, 그 번역보다 이 번역을 선호하신다고요?” 하는 식으로 요상하게 대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절대적인 시간이 있듯이 단 하나의 절대 진리만이 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시계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에 맞춰야 한다. 당신이 무신론자든 불교 신자든 힌두교 신자든 무슬림이든 근본주의자든 상관이 없다. 진리는 오직 <킹제임스성경>이 절대 진리이다. 당신은 권위를 인정받은 <킹제임스성경>을 믿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모든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 진리를 가졌다. 그 사람이 무엇을 진리라고 믿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은 자신을 올바로 투영해 주는 바로 그 성경이 있어야 한다.
어두움 속에서는 자신을 치장할 수 없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귀지를 파고, 면도를 하고, 향수를 뿌리고, 머리를 빗는 행동들을 어두움 속에서는 할 수가 없다(요 3:19,20). 치장하고 옷을 잘 차려입으려면 거울에 가까이 가야 한다. 성경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없다. “성경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어두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이며, 거울에 자신을 비춰볼 수 없으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에 가까이 가야만 성경으로부터 빛을 받아 깨달을 수 있다.
오래전에 한 카톨릭교도가 그 지역 교구민과 대화하게 되었다. 편의상 이 교구민을 “패트릭”이라고 부르자. 이 패트릭이 요즘 성경을 읽는다는 소문이 돌자 그 카톨릭교도가 말했다. “패트릭, 성경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네. 그걸 깨달을 수도 없다고.” 그러자 패트릭은 대답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곳도 있죠. 그런데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축복을 많이 받아요.”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자네 아이들이 성경을 읽게 해서는 안 돼.” “성경에 보면 성경을 자녀들에게 읽어 주고 자녀들에게 성경에 대해서 말하라고 되어 있어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패트릭, 카톨릭 교회가 말씀의 순수한 젖을 주는 거라고.” 이에 패트릭은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제가 직접 젖소를 가지는 편이 낫겠어요!” 아멘, 아멘! 나는 순수한 말씀의 젖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의존할 필요가 없다! 젊은이가 여기 펜사콜라성경신학원에 와서 공부하고 졸업할 때, 무엇을 믿고 떠나는지 아는가? 그는 럭크만을 믿는 게 아니라 성경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떠난다.
당신은 거울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시내로 출근하면서 아침에 면도하지 않고 가는 남자는 없다. 시내에 장을 보러 가거나 누구를 만나러 가거나 병원에 갈 때 먼저 거울을 보면서 시간을 쓰지 않는 여자는 없다. 아무리 가난해도 거울 정도는 모든 여자가 가지고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성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거울을 보면서 시간을 많이 쓰지만 성경에는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당신은 어두움 속에 숨을 수 없다(욥 34:22, 잠 15:3). 빛으로 나아와야 한다. 하루를 시작할 때 성경과 함께해야 하며, 성경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하루를 가장 잘 시작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당신이 빛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거울 두 개를 마주보게 해서 세워 보라. 거울 두 개가 서로를 비추게 되면서 그 상이 무한하게 된다. 성경도 그렇다. 성경은 하나의 원을 이루며 끝없이 계속 이어지는 책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성경을 읽고 공부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성경은 아무 유익이 없다.
거울을 가지고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당신의 집에는 성경이 몇 권이나 있는가? 당신은 성경을 읽는가? 『그러나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단순히 듣기만 하는 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약 1:22). 또한 성경을 사서 단순하게 읽기만 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행위이다. 당신은 성경을 쓰신 분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요 5:39).
성경을 알고 성경을 읽는다면(진지하게 읽든, 책장을 넘기며 읽는 시늉을 내든) 성경의 저자를 소유해야만 한다. 단순히 성경을 여러 권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성경은 베스트셀러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성경은 베스트셀러이자 가장 위대한 책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성경이 나올 때마다 나가서 구입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성경 속에 수록된 그림 몇 개만 뒤적여 보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 둔다. 사람들이 변개된 성서들을 만들어 성경을 모방하고 악용하고 조롱한다 해도 성경은 세상을 다스린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33)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 진전이 없게 된다(살전 2:13). 성경에 시간을 쓰라! 성경이 있으면서도 성경에 시간을 쓰지 않는 사람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젊은 부자 관원과 같다. 그 부자 관원은 주님께 와서 어떤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고, 자신은 어릴 때부터 계명들을 지켜왔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자 그는 돌아가 버렸다(마 19:16-22). 가진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는 생명의 빵이신 분께 나아와서 그 빵에 입맞춤하고 그 영광의 주님을 접촉한 후에, 다시 돌아가 지옥으로 간 것이다.
성경을 들고서 그것을 읽을 때, 물리적으로 말하면 당신은 지상에서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이 아니다. 성 경은 잃어버려도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성경에 잉크가 묻어도 하나님을 더럽힐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 물리적으로 말하면 당신은 주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성경 한 권을 1,200페이지라고 할 때, 하루에 40페이지씩 읽으면 30일 안에 일독을 할 수 있다. 20페이지를 읽으면 두 달에 일독을 할 수 있다. 그것도 너무 많다고 한다면 10페이지를 읽으면 일 년에 삼독을 할 수 있다. 이 말은 구원받은 지 10년이 되었는데 성경을 30회도 읽지 않았다면, 당신은 정말 게으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다. 당신이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는 혹시 어두움 속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3:19-21)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성경이 당신을 죄짓지 않도록 지켜 주든지, 아니면 당신의 죄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게 막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당신은 어떤 편을 택하겠는가?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