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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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신의 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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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1월호>

미국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나라들은 더 이상 왕이 통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통치체제는 공화국이나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이다.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 왕을 세웠도다』(시 2:6).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정부를 세우실 때 대통령이나 국회 또는 의회가 아니라 "왕"을 세우시는 것이다. 성경의 중심 주제는 구원이 아니라 "왕국"이다. 물론 성경에 구원의 진리가 계시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죄인들이 그분의 아들을 죽였던 날보다, 그 아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왕국을 받게 될 날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신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시편 118:24의 말씀을 주일예배를 언급하는 구절로 즐겨 인용한다. 『이 날은 주께서 정하신 날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영적인 교훈으로 적용한다 해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요일이든 경배의 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어떤 특정한 요일을 말하고 있지 않으며, 문맥상 교회 시대가 아니라 "재림"에 대한 내용이다. 즉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신 주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시 118:22, 막 12:10)이 되시는 때를 언급하고 있는데, 부수는 돌이신 주님께서 지상의 모든 나라들을 산산조각 내시고 그분의 왕국으로 온 세상을 채우실 때인 것이다(마 21:44, 단 2:44,45).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그 통치권을 확보하신 그 왕국을 받으실 날을 보고 싶어 하신다(빌 2:5-11).

세상 나라들은 왕의 통치하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서 마귀가 세운 불법적인 왕, 곧 적그리스도가 왕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계 13:1-5). 적그리스도는 카이사처럼 전 세계를 통치하는 독재자가 될 것이다(눅 2:1). 성경에서 "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예수』(Jesus)라는 이름이 약 930회 나오는 데 비하여 "왕"(king)이라는 단어가 2,400회 정도 나온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주』(LORD)라는 이름은 6,500회 이상, 『하나님』(God)이라는 이름은 3,800회 이상 나온다는 점을 감안해도, "왕"이라는 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한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이란 무엇인가? 왕은 한 나라의 남성 최고 통치자를 가리킨다. 어떤 통치 기구가 왕을 선정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왕의 가문에 태어남으로써 왕이 된다. 영국과 유럽에는 이런 왕가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 왕가의 군주들은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신성한 왕권"을 받은 것처럼 행세했는데, 이것은 구약에서 배운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라고 세우신 왕들에게 주신 그 특권을 자기들도 받았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왕권을 남용했을 때 왕국들은 전복되고 왕가들의 권세는 축소되고 말았다. 오늘날 영국의 왕이나 여왕은 국가적인 자부심을 보여 주기 위한 "상징적인 존재"일 뿐, 법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실질적인 권세"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다면 "당신의 왕"은 누구인가? 기본적으로 "왕"은 당신을 통제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다.

1. 우선 말과 말을 탄 사람을 생각해 보라. 말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고, 그 재갈은 고삐로 연결된다. 말을 탄 사람은 그 고삐로 말이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할지를 결정한다. 즉 말 탄 자가 그 말의 "왕"인 것이다. 그가 "이랴!"라고 외치면 말은 달려야 하고, "워워"라고 하면 천천히 걷거나 멈춰 서야 한다. 말이 아니라 말 탄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11:2에서는 예수님께서 두 명의 제자를 보내시며 『아무도 타보지 않은 매여 있는 나귀 새끼 한 마리』를 끌고 오라고 지시하신다. 나귀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나타낸다(욥 11: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짐승을 붙잡으시고 안심시키신 다음 그 위에 타시어 왕으로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그 나귀의 왕이기도 하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왕도 되시는가? 당신은 예수님의 지시를 곧이곧대로 따르고 있는가?

우리가 구원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게 된다. 성경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골 1:27)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고전 6:19)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 몸 안에 살고 계시지만, 옛 사람은 여전히 그 몸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휴 파일 목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는 십자가와 보좌가 있는데, 당신이 보좌에 앉으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셔야 하기에,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시기 위해서는 당신이 십자가에 매달려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또한 "성도 안에 거주하시는 분(Resident)께서 대통령(President)이 되셔야 하고, 성도 안에 거하시는 분(Boarder)께서 사장(Boss)이 되셔야 한다!"라고 운율을 맞춰 설교하곤 했다. 즉 우리 안에 사시는 주님께서 고삐를 쥐고 우리를 이끄셔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말을 할 수 있는 어떤 말이 "네 왕이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연히 "누구이긴 누구요? 내 안장에 앉아 계신 분이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안장에 앉아 계시는가?

2. 차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마음대로 행선지를 지정하고 속도를 조절해서 운행하는 차는 없다. 운전자가 "왕"이며, 그 차가 무엇을 할지를 운전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차를 흔히 "자동차"(自動車, Automobile)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자동"이 전혀 아니다. 운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며, 차 스스로에게는 어떤 권위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운전자는 누구인가? 운전자가 시원찮을 때, 사고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술 취한 사람이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차선을 벗어나 난간을 들이박더니 세 번 구른 후 도랑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마침 현장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고속도로 순경이 그 차로 급히 뛰어갔다. 운전자는 창문 바깥으로 튕겨 나갔지만 예상과 달리 부러진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경찰이 물었다. "차를 그런 식으로 몰다니, 술에 취한 거요?" 그 운전자가 대답했다. "그럼, 술 취했으니까 그렇게 운전했지, 아니면 내가 무슨 스턴트맨이라도 되는지 아시오?" 당신의 삶에는 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가? 그 자리에는 반드시 주님께서 앉으셔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기도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왜냐하면 도로에 나온 차들 중에서 열 대 중 한 대 꼴로 술 취한 사람이 몰고 있고, 사십 대 중 한 대 꼴로 마약중독자가 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하면 안 될 만큼 나이가 많은 운전자가 괜히 운전대를 잡았다가 당신을 들이받는 경우도 있는데, 도로교통법을 모두 지키고 속도위반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무색할 정도이다. 그런가 하면 행인을 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도망가 버리는 운전자들도 있다.

과연 당신의 왕은 누구인가? 여자가 한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 누가 그 여자의 왕이 되는 것인가? 성경 말씀에 입각할 때 누가 그녀의 삶에서 왕이 되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즉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1:3). 『아내들아, 너희는 너희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무슨 고릿적 얘기에나 나올 법한 시대착오적인 말을 하는가?"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따라야 한다. 내가 "남성우월주의자"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저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물론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 남편이 예수님을 전혀 닮지 못한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아내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이 무언가를 말할 때 주님의 말씀처럼 순종해야 한다. "남편이 그릇된 결정을 하면 어떻게 하죠?"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남편이 그 결정에 대해 주님 앞에서 해명해야 하고, 아내는 책임을 면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남편이 그릇된 결정을 하더라도 그 일을 주님께 맡기고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

과연 당신의 삶에서 당신의 왕은 누구인가? 어떤 찬송가에는 "내 인생의 왕이시여, 주님께 왕관을 씌워 드리오니, 오직 주님께만 영광이 영원히 있기를 바라나이다."라는 가사가 씌어 있다. 물론 교리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왕으로서 다스리시지 않는다. 재림하실 때에야 비로소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것이다. 나는 지금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견지에서 말하고 있다. 과연 누가 당신의 삶을 주도하고 있는가? 실제적으로 말해서 누가 당신을 다스리고 있고 누가 당신의 왕이냐는 것이다.

3. 비행기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혼자 날아가는 비행기는 없다. 조종사가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조종장치가 있잖아요?"라고 물을지 모른다. 사실 자동조종장치라는 것도 조종사가 미리 프로그램을 입력하고 작동시켜야 운항이 가능하다. 결국은 조종사가 이착륙을 시켜야 하는 것이지, 컴퓨터 스스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오늘날 전장에서 사용되는 "무인 드론"조차도 벙커에 있는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보며 조종한다. 조종사가 그 비행기의 왕인 것이다. 때로는 조종사가 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게 되어 탈출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조종사가 승객들 모두를 구조할 수 없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불시착하기도 한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인가? 비행기는 본래 스스로 날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다.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통치할 왕이 필요한 것이다. 옛날에 자기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그러니까 저 모양이지! 저 사람은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조종하려고 할 때 인생은 망가지게 된다.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두 동강이 날지도 모른다. 옛 찬송가에는 "나의 구주 예수님, 인생의 험한 바다를 통과해 나갈 때 내 배를 조종하소서."라는 가사가 씌어 있는데, 비록 배에 관한 가사이긴 해도 "원리"만 보면 배나 비행기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누군가가 배나 비행기를 통제해서 올바르게 조종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생기는 법이다. 과연 당신의 인생은 누가 관장하고 있는가?

4. 자연스럽게 마지막 비유는 바다에 떠 있는 배로 연결된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할 때 선장은 그 배의 "절대적인 통치자"이다. 그의 계급이 뭐든지 간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일단 바다로 나가는 순간 선장이 그 배의 왕이 되는 것이다. 항공모함이든, 구축함이든, 초계어뢰정이든, 예인선이든 모든 배가 마찬가지이다. 선장이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게 되어 있다. 언제 닻을 내리고 올릴지를 결정하는 것은 선장의 몫이다. 어뢰를 쏘고 함포를 발사하는 시점이나 선수의 방향과 항로 등을 결정하는 것도 선장의 몫이다. 선원들 중에 누군가가 반란을 꾀하려 한다면 그는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한다. 해군 함정의 경우 해병들이 함교에 있는 선장을 보호한다. 왜 그런가? 그가 왕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선원들의 생사가 그 선장이 내리는 결정의 옮고 그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에 "비스마르크 전함"을 건조했었다. 당시의 비스마르크 호는 대서양에서 가장 큰 전함으로서 독일 해군의 자랑거리였다. 비스마르크 호의 첫 번째 임무는 북대서양으로 가서 영국의 보급 수송 선단을 급습하는 것이었는데, 그 첫 전투에서 영국의 순양함 "후드 호"를 침몰시켰다. 그러나 연료 탱크에 손상을 입은 비스마르크 호도 프랑스로 피해 나와 수리를 받아야만 했다. 그때 영국은 이 비스마르크 호를 격침시키기 위해 그 위치를 추적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마침 독일 함대의 뤼첸스 제독이 무선 침묵을 깨는 바람에 그 위치를 탐지할 수 있었다. 영국군은 어뢰로 배를 공격하는 뇌격기를 보내 비스마르크 호의 "키"를 손상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뒤이어 영국 함대는 전투 능력을 상실한 비스마르크 호를 향해 쉴 새 없이 포탄을 날렸다. 포탄이 비스마르크 호의 전면을 강타했을 때 뤼첸스 제독도 전사했다. 설상가상으로 갑판 위의 함포들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에른스트 린데만 함장은 어떤 명령을 내리는 일조차 포기해 버렸다. 급기야 함장이 아닌 선임장교가 배를 포기하고 침몰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에 비스마르크 호는 2천 명이 넘는 독일 해군 병사들과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배는 반드시 훌륭한 선장이 몰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가장 위대한 "선장"(Captain, 히 2:10)을 모시고 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우리의 배를 안전하게 항구로 몰고 가실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당신의 인생을 다스리고 있는가? 누가 당신을 관장하고 있는가? 육신이나 세상 혹은 마귀인가?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가? 정직하게 답해 보라. 누가 당신의 왕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다른 존재와 함께 한 보좌에 동석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당신이 그 보좌에 앉으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실 수밖에 없다. 이제 그 운전대와 고삐는 주님께 드리고 당신은 십자가 위로 올라가야 할 때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당신의 인생의 보좌에 앉으실 자격이 있는 왕이시기 때문이다. 『자기 때가 되면 주께서 나타나시리니 그분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통치자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딤전 6:1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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