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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고치를 보며 성도들의 부활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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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10월호>
농촌 출신인 필자가 어렸을 적 살던 시골 동네에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기 위해서 여인들이 물레질을 하는 집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물레질하는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뜨거운 물에서 갓 나온 군침 도는 번데기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당시 군것질거리가 많지 않은 시골에서는 어른, 아이들 할 것 없이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물론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번데기 장수들로부터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는 값싼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그렇게 고소한 맛을 내는 번데기가 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본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번데기가 누에고치 속에 있다가 때가 되면 나방으로 변신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이것을 영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일생과 부활에 대해 적용해 볼 수도 있는데,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겨서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일으켜지며 수치로 심겨서 영광된 것으로 일으켜지며 약한 것으로 심겨서 능력 있는 것으로 일으켜지며, 육신의 타고난 몸으로 심겨서 영적인 몸으로 일으켜지느니라. 육신의 타고난 몸이 있고 또 영적인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2-44).
번데기는 누에고치 안에서 나온다. 그런데 누에의 일생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한지도 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문헌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겨울 내내 알로 있던 누에가 봄에 뽕잎이 나와 자랄 무렵에 애벌레로 깨어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도 거듭나기 전에는 자연인이었다.) 알의 형태는 편평한 타원형으로 지극히 작다. 알에서 막 깨어난 애벌레는 색이 검고 털이 많은데, 개미와 같아 보인다고 해서 개미누에라고 부른다. 이 개미누에를 1령이라고 부르며, 26~27℃ 기온에서 약 3~4일간 뽕잎을 먹고 나면 잠을 잔 뒤에 허물을 벗는다. (아직 어린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영적인 잠을 잔다. 그러다가 눈을 뜨고 다시 재헌신하여 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누에의 허물벗기는 누에가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으로 첫 허물을 벗고 나온 애누에를 2령 누에라고 한다. 또한 2령 누에가 이틀 반 정도 뽕잎을 먹고 자란 뒤 두 번째 허물을 벗으면 3령 누에라고 부른다. 1령에서 3령까지의 누에는 연한 뽕잎을 골라 따서 주어야 하며, 잎이 마르지 않도록 습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 누에의 발육에 도움을 준다. (막 태어난 그리스도인도 순수한 말씀의 젖을 먹어야만 하듯이 이처럼 성장 단계가 있다.)
누에는 환경이 더러우면 잘 자라지 못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누에를 키우려면 주변을 청결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도 잡다한 우상들을 제거하고 믿음생활에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여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대신 누에는 흙 속에서 살지 않기 때문에 성장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세상 사람들이 늘 주시하도록 노출되어 있다.) 먹이는 오로지 뽕잎뿐. 뽕잎을 실컷 먹고 한잠 푹 자면 쑥쑥 자라나서 허물을 벗는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그래서 그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면 성장하게 된다.) 3령 누에가 허물을 세 번째 벗으면 4령 누에, 네 번째 벗으면 5령 누에라고 하며, 이러한 누에를 큰 누에라고 부른다. 큰 누에 때에는 뽕잎을 가장 많이 먹는 때로, 특히 실샘이 만들어지는 5령 3일부터는 누에가 일생 동안 먹는 뽕잎 양의 90% 이상을 먹게 된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때쯤이면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데 익숙하다.)
5령 누에가 되면 몸무게가 약 5~6g 정도로 길이도 27배 정도 길어진 상태이다. 5령 누에가 일주일 정도 뽕잎을 더 먹게 되면 누에의 몸이 투명해지면서 고치를 지을 준비를 하게 된다. 몸 속의 견사 샘에서 만들어진 액체가 가득 차게 되면 실을 토하는 관을 통해 뱉어내면서 고치를 지어간다고 한다. 실을 토하기 시작한 후 2~3일이 지나면 고치가 거의 완성되며, 누에의 크기가 많이 작아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누에가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고 나방이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열매를 맺는다.)
특히 몸에서 실을 뽑아내어 고치를 만드는 누에의 모습은 그것을 관찰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누에가 고치를 짓기 시작한 지 약 일주일이 지나면 크기가 작아진 누에는 고치 속에서 번데기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누에가 고치 안에서 번데기로 변한 후 다시 나방으로 탈바꿈하여 비좁은 고치 구멍을 뚫고 나와 부활한 후 알 낳기가 끝나면 4~5일 후에 그 나방은 죽어 버린다. 누에 개체의 입장에서는 그것으로 일생은 끝나 버리는 것이지만 알을 낳고 죽었기 때문에 그 알에서 다시 새로운 누에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두에서 밝힌 부활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일으켜지며 또 어떤 몸으로 오는가?"라고 하니 너 어리석은 자야, 네가 뿌린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리라.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앞으로 될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밀이나 다른 씨앗의 알맹이일 뿐이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뜻대로 씨앗에다 형체를 주시되 씨앗마다 그 고유한 형체를 주시느니라. 모든 육체가 다 같은 육체는 아니니 어떤 것은 사람의 육체요, 어떤 것은 짐승의 육체며, 어떤 것은 물고기의 육체요, 또 어떤 것은 새의 육체라. 또한 하늘에 속한 몸들도 있고 땅에 속한 몸들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들의 영광이 다르고 땅에 속한 것들의 영광도 다르니라』(고전 15:35-40).
누에로 일생을 마감할 것 같았던 누에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로 있을 때 바깥세상을 상상도 못했던 번데기가 나방으로 변신하여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몸을 입고 훨훨 날아다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의 이성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곧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는 순간에 변화된 새로운 몸을 입고 훨훨 날아서 우주를 여행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 그리고 이 위대한 약속! 이 얼마나 기다려지는 일들인가?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그때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전 15:51-54). BB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을 계몽하고 감동과 용기를 주고 변화시켰다. 인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나름대로 활동하다가 그 이름을 남기고 사라져 갔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각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지 영향력을 끼치기 원했고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글들을 썼다. 그러나 그들은 일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동기부여를 하기도 했고 많은 지식들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영원하고 완전한 것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문제를 다루지 못했거나 잘못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체를 육성하고 만족시키는 데는 크게 공헌을 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영적인 문제들에는 정확하게 접근하지 못했고 실로 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각종 서적들을 통해서 유익한 것들을 취할 수 있고 각종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정말로 사람들에게 좋고 유익한 것이라면 이것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육체에 유익한 것들과 실생활에서 유익한 것들은 유한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영적인 것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오히려 육신적으로(건강이나 세상 철학과 학문 등) 자신감이 넘칠라치면 여지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위치에서 만용을 부리기 쉽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현재 생명은 물론 영원한 생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몸의 훈련은 유익이 적지만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하여 현재와 미래에 생명의 약속을 소유하게 하느니라』(딤전 4:8). 그래서 그것을 깨달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얘기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영적인 글들을 많이 써서 수많은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그런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최고의 문장가는 누구인가?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내 마음이 좋은 일을 시로 읊나니 내가 왕을 위하여 쓴 것들을 말하리이다. 내 혀는 능숙한 작가의 펜이니이다』(시 45: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곧 훌륭한 글이 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강력한 힘이 있다. 『이방이 격노하고 나라들이 요동하였으나 주께서 음성을 내시니 땅이 녹았도다』(시 46:6).
성경 말씀을 통해서 또는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말씀으로만 이루셨다는 사실이다. 창조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단지 말씀만 하셨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는 것들로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어다니는 것과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24).
그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분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의 말씀으로 온 우주를 붙들고 계신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히 1:3).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인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에 인간들에게 나타나실 때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곤 하셨다. 『주께서 실로에 다시 나타나셨으니, 이는 주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주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음이더라』(삼상 3:21). 실로 그분께서는 그분을 부지런히 찾고 찾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갈급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시시때때로 계시해 주시기도 하셨다. 『주께서는 너를 겸손하게 하시고 너를 배고프게 하셨으며 너도 모르고 네 조상도 모르는 만나로 너를 먹이셨으니, 이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능숙한 작가의 펜이신 하나님의 혀는 결국 하나님께서 택하신 저자들을 통해서 신구약 66권의 성경을 허락해 주셨는데,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그 어느 작가도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계시와 가르침과 교훈들을 남겨 두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모되게 하고 그 변모된 사람들을 온전케 되도록 인도하셨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그러나 하나님의 교훈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기를 자기 원수대하듯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다. 『네가 교훈을 싫어하고 내 말을 네 뒤에 던지는도다』(시 50:17). 그들은 자신들에게 들어온 복을 걷어차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 어느 작가의 설득력 있는 글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의 말씀이다. 하나님으로 말하면 그의 길은 완전하고 주의 말씀은 단련되었으며 그는 자기를 의뢰하는 모든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며(시 18:30), 또한 주의 말씀은 옳으며 그의 모든 역사는 진리 가운데서 이루어진다(시 33:4).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의 고난 중에 위로가 되고, 그들을 소생시키는 힘이 있으며(시 119:50), 또한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졌다고 말씀하시고(시 119:89),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씀하신다(시 119:105). 그래서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참되며 모든 주의 의로운 명령들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시 119:160).
이처럼 순수한 작가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단어들을 다 아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과 같은 작가가 그 어디에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신다(잠 30:5).
그래서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경이로우신 말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그분의 말씀을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이것을 들으라. 세상의 모든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다 함께 들을지어다. 내 입은 지혜를 말하고 내 마음의 묵상은 명철을 가져오리라』(시 49:1-3). 그리고 그 말씀에 힘을 얻고 우리의 반석이신 그분의 말씀을 드높이며 그분을 찬송하고 또 찬송해야 한다. 『하나님께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의 왕께 찬송하라, 찬송하라』(시 47:6).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