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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에서 강조했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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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3월호>
때때로 성경에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여호수아가 죽을 때(수 24장),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모세도 그가 등장하기 전부터 죽을 때까지의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를 출애굽기에서 되짚어 보았다. 사도 바울도 참수당하기 전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았다(행 20:17-21,26, 31,33-35). 어떤 때에는 뒤돌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눅 9:62, 빌 3:13,14).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당신을 넘어뜨리는 경우라면 좋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과거는 예수님의 피 아래에 있다. 때로 성경은 돌아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한다(사 51:1,2).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행하셨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사역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하고자 했는지 말하려고 한다.우선 나는 성경을 모든 읽을거리 위에 가장 높이 두려고 했다. 내가 “성경”이라고 말할 때,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추측할 필요가 없다. 어떤 대학에서는 “성경”이라고 말할 때, 아무도 본 적 없는 종이 더미인 “원본”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성경”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책, 곧 <킹제임스성경>을 지칭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성경을 당신이 읽는 모든 신문, 잡지, 다른 변개된 성경들이나 백과사전보다 높이 두려고 했다. 절대적인 것들이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앨라배마주 버밍엄은 사우스다코타의 수도가 아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리에도 정답이 있고 오답이 있다. 오케스트라가 조율을 할 때, 모든 악기는 피아노에 맞춘다. 나는 당신에게 절대적인 기준을 준 것이고 그것은 영어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영국인이 아니다. 내 조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나는 영국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절대적인 시간도, 절대적인 온도도, 절대적인 진리도 영국이 기준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이다. 미국에는 온도에 대한 자체적인 기준이 없다. 영국의 열 단위(BTU)가 기준이다. 정확한 시간을 알고 싶다면, 영국으로 가야 한다. 바로 영국 그리니치로 말이다. 그런데도 누가 당신에게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라거나, “좋은 번역본과 나쁜 번역본이 있으니, 그냥 네가 선호하는 것을 택하면 된다”고 말하는가? 나는 절대적인 진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절대적인 시간은 영어로 되어 있으며, 절대적인 온도도 영어로 되어 있고, 절대적인 위치도 영어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진리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점에 이상할 것이 무엇인가?
『왕의 말이 있는 곳에는 권위가 있나니』(전 8:4). 미국에서 만든 성경으로는 아무런 권위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왕이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떠나기 전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의탁하노니 그 말씀이 능히 너희를 굳게 세워 줄 것이며』(행 20:32). 만약 한 사람의 최종권위가 자기 자신이라면, 그는 실질적인 무신론자이다. 즉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적인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만약 당신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신 자신을 최고의 권위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즉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두뇌보다 더 확실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만약 내 머리만을 의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옳고, 문체에 있어서도 옳으며, 교리적으로도 옳고, 실제적으로 옳으며, 예언적으로 옳고, 그 명령에 있어서도 옳다. 내가 말하는 “책”은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바로 이 “성경책”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성경(Holy Scriptures)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경은 숨을 쉬지는 않지만 당신의 집에서 생명이 있는 유일하게 살아 있는 존재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세상 사람들이 이 성경을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타락하고 악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 성경이 당신을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든지, 죄가 당신을 성경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다. 나는 이 점을 분명히 전하고자 했다.
나는 또한 “복음 전파”의 필요성을 전하려고 했다. 당신이 실제로 복음을 전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했다. 광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입을 열어야 한다. 딕맨(Dickman) 형제는 원래 복음을 전파하지 않았을 많은 성도들이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이름만 그리스도인이며,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사람들이 어쩌다가 자기 집 앞에 딕맨 형제가 만든 표지를 세워 둔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지만, 그저 유약한 자들이다. 그런데 이웃이 와서 묻는 것이다. “저게 뭐예요?” 그러면 그들은 할 수 없이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이러한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필시 반대자들이 입을 열어 반대하겠지만 염려하지 말라. 확신하건대, 주님의 재림이 지체되면 미국에서도 로마카톨릭과 동성애자들, 또 여성에 대한 성경 말씀을 설교하는 것을 범죄시하여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내리는 법이 생길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이미 그런 법이 시행되고 있다.
자, 또 한 가지 내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선교사들”의 중요성이다. 나는 무슨 프로그램이나 선교 단체가 아니라, 선교사들에게 직접 헌금하도록 권장했다. 선교사 멜빌 콕스(Melville Cox)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천 명이 쓰러지는 것이 낫다.” 오래전에 제임스 길모어(James Gilmore)는 몽골로 갔다. 그는 30년 동안 단 두 명의 회심자밖에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꾼이 적고 할 일이 가장 많은 곳에서 사역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몽골로 갔다. 그는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다!
오래전에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추운 밤에 우리는 발에 담요를 덮고, 숯불이 깔린 작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통역사를 대동하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당시 나는 도쿄 라디오 방송국(현 NHK 도쿄 라디오)에서 무선 통신 장교로 근무했다. 대화가 뜸해질 즈음, 한 일본인이 말했다. “중위님, 음악 얘기는 그만하고 ‘부처’에 대해 얘기합시다.” 그들은 나를 불교 신자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 난 스즈키(Suzuki) 밑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었고 단 4개월 만에 반야(般若)를 깨달았다. 그들 중 몇몇은 그것을 깨닫기 위해 14년 동안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린다. “아, 그때 내가 구원받은 상태였다면, 얼마나 큰 기회였을까!” 나는 일본어, 러시아어, 영어를 할 줄 아는 통역사를 옆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신뢰했다. 한 번에 여덟, 아홉 명씩 나를 둘러싸고 내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반드시 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이 이러한 선교 부담을 강하게 갖기를 바란다. 당신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재정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가정 문제 등이 산적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현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다른 가정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 특히 젊을 때는 더욱 어렵다. 당신에게는 이미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다. 형제여, 나도 그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나는 성도들이 선교사를 지원하는 일에 대해 부담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나는 또한 과학과 학문을 과대평가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이 둘은 겉보기처럼 위대하거나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과학이 암이나 에이즈, 에볼라를 막을 수 있는가? 과학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을 멈출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과학이 당신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충분한 돈이 있다면, 과학은 당신의 고통을 조금 덜어 줄 수 있다. 그것이 과학이 해 줄 수 있는 전부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수백만 명이 매일 고통 속에서 죽어 간다. 심지어 돈이 있어도 그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과학의 현실이다. 과학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학문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특히 기독교 학문을 당신이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스피로스 조디에이츠(Spiros Zodhiates)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헬라어 원본”을 운운하며 킹제임스성경을 비평하는 학자였다. 한번은 그의 집회에서 그와 대화할 기회를 가졌는데, 사실 매일 식사할 때마다 그 사람과 최대한 가까이 앉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는 늘 나를 피했다. 그래서 결국 그의 책 판매대 앞에서 기다리다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여기서 ‘헬라어 원본에서 온 진리(Truth from the Greek text)’라고 광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네, 맞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당신은 ‘원본 헬라어 원문’을 가지고 있지 않죠?” “네,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원본 헬라어 원문’이라고 광고합니까?” “우리는 가능한 최고의 헬라어 원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당시 시중에는 스물네 종의 다른 헬라어 원문이 나와 있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슬-알란드 원문이 가장 좋은 원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그렇다면 네슬 헬라어 원문의 비평 장치를 연구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얼굴을 붉혔다. 그것을 연구해 본 적도 없으면서도 자신을 학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나는 성도들이 하늘나라를 더욱 실제적으로 느끼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당신에게 허무하게 만들어 하늘이 더욱 실제적으로 느껴지게 하실 수 있다. 내 그림이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린다. 설교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설교를 한다. 찬송가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을 부른다. 결국 하늘나라만이 영원한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후 4:18).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요 14:2). 감옥에 갇힌 어떤 이탈리아 순교자가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는 “레오나인 감옥의 아름다운 과수원에서...”라고 썼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관점을 가질 수 있는가? 이런 일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가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처럼 견디었기 때문이라』(히 11:27).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지금 서 있는 땅을 볼 수 있는가? 그 땅은 불타 버릴 것이다. 그랜드 캐니언을 볼 수 있는가? 그것도 불길에 휩싸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즉 하늘나라, 지옥, 천사, 새 예루살렘, 당신의 혼과 같은 것은 영원하다. 나는 당신이 이 진리를 깨닫도록 애썼다.
마지막으로, 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하려고 했다. 이 일을 위해 당신이 좋아하는 인물들 중 일부를 낮추었고, 때로는 비판하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것을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표트르 대제”도 아니고, “그레고리 대제”도 아니다. “위대하신 대왕”은 예수님이시다! 내게는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스타”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새벽별”(Morning Star)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개된 NIV에는 이사야 14장에서 마귀를 “새벽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은 올바르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또 빛나는 새벽별이라』(계 22:16). 또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벧후 1:19).
나의 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내게는 주님께서 소망의 별, 위로의 별, 용서의 별, 그리고 구원의 별이시다. 나는 “모든 이름 위에 있는 한 이름”(빌 2:9)을 높이려 했다. 내가 얼마나 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나의 의도였다. 이 땅에서 이 이름 외에는 구원이 없다. 그리고 그 이름은 침례교도도 아니고, 카톨릭도 아니다. 마리아도 아니고, 마호메트도 아니다!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마 1:21). 성경은 종교는 아무도 구원하지 못한다고 천명하였다. 십계명, 교회 회원이 되는 것, 침례 이런 것은 좋은 것일 수 있지만, 그것들이 당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어떤 행위나 제도를 통해 받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체(Per- son)를 통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였는가? 그분을 소유하였는가?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