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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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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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9월호>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상에서는 40초마다 한 명씩 누군가가 자살하고, 1분마다 한 건씩 살인 사건이 일어나며, 100초마다 한 사람씩 전장에서 죽는다(2002년 기준). 살인자들과 변태 성욕자들은 미국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도 그러한 죄들에 대해 관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한 해만 해도 15,872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정도이다. 카인이 아벨을 쳐서 죽인 이래로 약 10억 명의 사람들이 싸움과 전쟁 때문에 죽었다. 이처럼 인류는 쉬지 않고 살인을 저질러 왔던 것이다.

1. 우선 처벌받지 않는 살인자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례로 오늘날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낙태 시술자들”이다. 나는 낙태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가르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살인”이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물론 다른 목사들은 그렇게 가르친다. 정말로 낙태가 살인이라면 성경 말씀에 따라 낙태 시술자를 죽여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펜사콜라에 살았던 어떤 장로교 목사는 그렇게 믿었고, “태아들”을 살해하는 것을 막으려고 낙태 시술자를 죽였다가 결국 살인죄로 처벌을 받았다.
수많은 마피아 살인자들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예컨대 시카고의 마피아 보스였던 토니 아카르도는 갱단에서 80년 동안 활동하다가 은퇴했는데, 그는 연방수사국에서도 감히 그를 기소하지 못했다고 비웃었다. 적어도 90명의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있었다. 로마카톨릭의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은 70년 동안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했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역시 많은 사람을 죽였으나, 그들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는 단 한 번도 감옥에 간 적이 없다.


또한 “한 사람의 인격”을 암살하고도 무죄가 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실제 살인은 아니다. 그러나 처벌만 없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그 일을 저지르고 말았을 것이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나 살인자요, 살인자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이 그의 안에 거하지 않음을 너희가 아느니라』(요일 3:15). 음주 운전을 하다가 누군가를 죽인 자들도 처벌받지 않는다. 교도소에 가거나 옥살이를 할지언정, “살인”에 대한 성경적 처벌인 “사형”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자들도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의 대가로 형벌을 받지 않는다. 로마카톨릭에서는 유대인들을 “그리스도를 살해한 자들”이라고 불렀다. 물론 당시에 살았던 유대인 세대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마 22:7, 행 7:52).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분의 옆구리에 창을 찌른 것은 로마인들이었다. 로마카톨릭이 유대인들을 보고 그리스도를 살해한 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과 같다.


사실 모든 죄인이 예수님을 죽인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 자주 듣는 말은 “저는 누군가를 죽인 적이 없어요!”이다. 죄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인 책임이 자기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 있고, 그로 인해 늘 양심에 찔림을 받는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죄가 되셨다면(고후 5:21), 그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분명 당신에게도 있는 것이다. 현재 당신은 “유예 기간”을 누리고 있다. 지금 당장 그것에 대해 처벌받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당신의 죄를 위한 속죄로 받아들일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2. 살인자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경우들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동물을 죽인 짐승을 죽이라고 하시지 않았다. 음식으로 먹으려고 동물을 사냥하는 사람들도 보호하신다. 닭 모가지를 비틀고 소나 양을 잡아먹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라고 하신 적도 없다. 숭어, 농어, 빨간퉁돔, 블루피쉬 등을 잡아 튀겨 먹었다고 해서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햄버거를 먹는 것을 보며 “살인마 같으니!”라고 울부짖지만 그야말로 정신 나간 소리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고양이가 쥐를 잡고, 사자가 얼룩말을 죽이고, 곰이 연어를 잡아먹어도 “끔찍한 살해를 저질렀다!”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과실 치사한 사람들을 보호하신다. 율법에서 금지된 것은 “계획된 살인”이다(민 35:20,21, 마 19:18). 한편 어떤 사람이 “우발적으로” 누군가를 죽였을 때, 곧 사전에 계획된 것도 아니고 악의로 저지른 것도 아니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살인죄를 적용받지 않는다. 그러한 경우에는 “도피 성읍”으로 피신하여 대제사장이 사는 날 동안 보호를 받았다가 자신의 성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처럼 그 살인자가 『피의 보복자』(민 35:25)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고의가 아닌 “우발적으로” 발생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방어”를 하다가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죽인 사람도 보호하신다. 자기방어를 하다가 죽는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이다. 자기방어는 필수적인 요소이고 주님께서도 그것을 허락하셨다. 하지만 영국은 이런 점에 있어서 사회적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영국성공회 교회보다 모슬렘 사원이 더 많은 영국에서는 모슬렘들이 “거리에서” 칼로 사람들을 죽인다. 그런데도 경찰들은 칼을 들고 다니는 모슬렘들을 체포하기는커녕,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는 영국 시민들을 체포한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은 부당하게 처벌받거나 자기방어를 하다 죽기까지 한다. 요즘에는 경찰들이 도망치는 범죄자에게 총을 쏠 수 없다. 부적절하거나 과도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사형에 처하지 않는 또 다른 살인은 “군대의 명령”에 따라 행해지는 살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인들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죄로 인해 그들을 죽이라고 사울에게 명령하셨다(삼상 15:1-3). 이것은 일종의 “군대 명령”이었다. 왜냐하면 『주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리라고 주께서 맹세하셨기 때문』(출 17:16)이다. 마호메트는 이런 말씀들을 악용하여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종교적인 알리바이를 고안해 냈다. 다시 말해 이슬람교는 죄인들의 온갖 뒤틀린 정욕들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교인 것이다. 한편 성경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롬 13:1)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육군이든, 해병이든, 해군이든, 공군이든, 군대에서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복무하고 있는 군인들이 적을 죽이라는 합법적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전혀 죄가 아니다.


3. 하나님께서 명명백백하게 정죄하시는 살인자들이 있다.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살인자는 “카인”이다. 당시에는 명문화된 법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카인을 죽이시지는 않았지만, 그분 앞에서 그를 쫓아내시어 “도피자와 유랑자”로 만드셨다(창 4:12-16). 비록 육신의 생명이 그 즉시로 끝나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카인은 영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땅을 경작해도 농작물을 기를 수 없었기에 도시를 짓고 살아야 했다. 훗날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문명을 전 지구적인 홍수로 수장시키셨을 때, 카인의 자손 중에는 그 누구도 방주에 타지 못하고 물속에 수장되어 지옥으로 직행했다.
“연쇄 살인범들” 중에 이름이 잘 알려진 몇 사람을 거명하면 다음과 같다.


1. 헝가리의 “바토리 에르제베트” 백작 부인은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약 650명의 젊은 여자들을 죽였다(1585-1609).


2. “깡패들의 왕”이라 불리는 인도의 “부람 제메다르”는 931명의 사람을 목 졸라 죽였다.


3. 독일의 “브루노 루드케”는 85명의 여자를 살해했다(1928-1943).


4. 미국의 “헨리 하워드 홈스”는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기간에 200여 명의 여인을 죽였다.


5. 연쇄 살인과 열차 강도로 유명한 블랙 잭 “톰 캐첨”은 붙잡혀서 교수형을 당했다.


6. “요크셔리퍼”로 불리는 영국의 “피터 서트클리프”는 13명의 매춘부와 함께 밤거리를 걷는 두 명의 여인을 살해했다.


7. 미국의 “게리 M. 하이드닉”은 6명의 여자를 납치하여 고문하고 강간했으며, 그중에서 두 명은 죽이기까지 했다.


8. 미국의 “헨리 리 루커스”는 자기가 213명의 사람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9. 미국의 “딘 코일”은 동성연애자로서 28명의 십 대 소년과 젊은 남자들을 죽였다. 경찰이 그를 붙잡지는 못했지만, 그는 공범인 “엘머 헨리”가 쏜 총에 죽고 말았다.
이상 열거된 이름들은 연쇄 살인범들의 수의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이런 살인자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아는가?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가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이는 피로 인해 그 보복이 그 땅을 더럽힘이니, 그 땅은 피를 흘린 사람의 피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곳에 흘려진 피에 대해 깨끗해질 수 없느니라』(민 35:33).


사람들은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는다. 성경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출 21:24)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로마카톨릭의 마피아가 자행하는 개인적인 복수와 아무 관련이 없다. 계획적으로 다른 사람을 해친 범죄자에게 판사가 정의로운 법적 판결을 내리는 상황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두 명의 소년을 유인하여 동성연애한 죄로 인해 붙잡혔다가 다시 풀려나 33명의 젊은이를 죽인 연쇄 살인마 “존 웨인 게이시”의 경우와 30명의 여자를 자신의 차로 끌어들여서 살해한 “데트 번디”의 경우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경우를 볼 때, “정의”가 좀처럼 실행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그 누구도 참된 공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마약에 취한 어떤 흑인이 시속 160km의 속도로 차를 운전하면서 보행자들과 다른 운전자들을 위협했다. 경찰들이 강제로 그를 멈춰 세우고 연행하려고 하자 그는 거세게 저항했다. 그래서 경찰들은 곤봉을 써서 그를 제압했는데, 이때 어떤 사람이 경찰들에 의해 그 흑인이 구타당하는 장면을 촬영했고, 이 자료를 입수한 한 언론 매체가 그 사건을 부풀리면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인종 차별이다!” 하지만 당시 차에 함께 타고 있던 다른 두 흑인은 그런 취급을 받지 않았다! 결국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가? 경찰들은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고, 마약에 찌든 채로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경찰들에게 반항했던 그 범죄자는 40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다. 과연 이것이 “정의”란 말인가?

4.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죽이는 행위,” 곧 “자살”을 반대하신다. 성경에서 자살하는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앗아갈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없다. 왜냐하면 자살한 사람은 이미 자신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잘 읽어 보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너희의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라. 이는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심이니라』(벧전 5:7). 이러한 말씀을 아는 사람이 스스로 죽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와 달리 “자살”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아니다. 물론 유다 이스카리옷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으로서 자살했다. 한편 삼손은 자살했지만, 구약적인 의미에서 구원받은 사람이었다(히 11:32-40).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를 거절한 사람은 “영적인 자살”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는 점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과 똑같이 자신의 혼을 죽이는 일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고 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셨다(렘 27:13, 겔 18:31; 33:11). 죽을 필요가 없는데 왜 굳이 죽으려고 하느냐는 말씀이다.

“죄의 삯은 사망”일지라도 반드시 지옥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옥은 사람을 위해 마련된 곳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다(마 25:41). 다시 말해 지옥에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전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3:9).
당신은 죽은 이후에,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가 존재하지 않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뜨겁게 타오르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던져져 더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왜 자신이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천장에 밧줄을 매달고 목매어 자살하는 것과 똑같이 “영적인 자살”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나를 거슬러 죄를 짓는 자는 자기 혼을 해치는 자니, 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은 죽음을 사랑하는 자들이라』(잠 8:36).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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