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해외기사 분류

설교자를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2월호>

종교개혁 이후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설교자로의 부르심"(Call to Preach) 혹은 "사역으로의 부르심"(Call to the Ministry)에 대한 많은 혼란이 있어 왔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최초로 "개인적인 구령 사역"을 믿음으로 실행했던 무리는 경건주의자들과 모라비안들이다(필자의 <신약교회사> 제20장 『독일의 용사들』 참조). 목사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구령하는 그리스도인도 "설교자"라 할 수 있는데, 죄인들은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정기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성인 그리스도인을 "목사 양반"이라 부르며 비아냥거린다. 그들은 지나가면서 "설교 좀 그만 해!" 하고 소리친다. 여기에서 우리는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등이 모두 망각한 중요한 진리를 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곧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형제뿐만 아니라 자매도 "복음의 증인"이라는 의미에서는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널리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하더라』(행 8:4). 여기서 『사람들』(they)은 3절에 나오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모두 통칭하는 표현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자매들"이 자신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 줬을 뿐만 아니라(고후 8:4, cf. 눅 8:3), 그와 함께 "복음 안에서 수고했던" 자매들을 도우라고 권면하고 있다(빌 4:3).

오늘날 그리스도인 자매들에 관해 두 가지 잘못된 성경 해석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디모데전서 2:12의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는 말씀에 대한 오해이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자매가 일단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서는 안 된다고 잘못 해석한다. 그러나 그 구절은 그런 뜻이 아니라 아내 된 자매가 자신의 남편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또 하나는 고린도전서 14:34, 곧 『너희의 여자들을 교회 안에서 조용히 하게 하라.』는 말씀을 오용함으로써 생겼다. 즉 사람들은 "주께 구속받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해야 할"(시 107:2) 문제에 있어서도 단지 자매라는 이유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절도 전혀 그런 뜻이 아니며, 다만 집회에서 여자들이 예언하거나(고전 14:29) 방언해서는(고전 14:27) 안 된다고 말씀하는 내용이다. 성경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와 부활을 처음으로 전파한 것은 다름 아닌 "여자들"이었다(눅 24:9,10, 마 28:5-8).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후 "예루살렘에서 구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한 것도 "여자"였다(눅 2:38). "여권 신장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케케묵은 남성 우월주의적인 책이라고 비난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 당시 주님을 따랐던 모든 여자들이, 하나님께서 이브를 만드신 이래로 여자들을 위해 세상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분은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보았음을 말씀하고 있다(눅 23:27,48,49, 요 8:9-11, 눅 7:44-47, 막 5:25-34).

성경에서는 아버지 하나님도, 아들이신 예수님도, 성령님도, 족장들도, 감독들도, 집사들도, 남편들도 모두 남성이다. 성경을 믿지 않는 나라에서는 여자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라크, 이란, 인도, 캄보디아, 태국, 파키스탄, 알제리, 터키 등에서 살아 보라. 그곳 남자와 결혼해서 과연 여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사는지 확인해 보라.

우리는 성경에서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바울처럼 반드시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님을 볼 수 있다(딤전 1:12). 또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예레미야처럼 "선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렘 1:5).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자매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또한 당연히 전파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 전파"의 측면에서 자매들도 설교자라 할 수 있지만, 신약에서는 어떤 여자도 직분을 받은 사도나 집사 또는 감독(목사, 장로)으로 불리지 않는다. 지역 교회 안에서의 모든 직분에는 안수가 필요한데, 신약에서는 여자가 안수받지 않으며, 또 안수받은 여자 사역자도 없다. 성경의 원리를 무시하면 결국 레즈비언 여자 목사나 레즈비언 여자 집사를 만들어 내게 된다. 즉 디모데전서 3:2,12에 따르면 목사와 집사는 "한 아내"를 둬야 하는데, 여자들이 목사와 집사가 된다면 "다른 여자"를 아내로 둬야 하기 때문에 결국 레즈비언 여자 목사, 레즈비언 여자 집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설교자로의 부르심"이나 "설교자로서의 자격" 등을 말할 때는,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에 넣어 주심"(Putting in the Ministry)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6:4에서 말씀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일과 말씀의 사역에 전념하리라.』 즉 평생토록 하나님의 처분에 맡겨져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며 섬기는 삶을 일컫는다. 단지 "온전히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이나 "헌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다(롬 6,7장). 반면에 앞의 구절은 한 주 내내, 한 달 내내, 일 년 내내 교리에 수고하고 말씀을 공부하며, 그 말씀으로 섬기고 상담하고,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며 기도하면서 『전도자의 일』(딤후 4:5)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목사들에게 준 지침들 안에는 복음 전파자로서의 임무가 포함되어 있음을 명심하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며, 전도자의 일을 하고 네 직무를 완수하라』(딤후 4:5).

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을 사역에 넣으시려고 설교자"로 부르실 때면 손수 사람들을 뽑으신다. 어떤 목사, 학자, 소위 "성직자"도 하나님의 결정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사역에 넣겠다고 하시면 넣으시는 것이고, 한 사람을 사역에서 빼겠다고 하시면 빼내시는 것이다. 교단이나 다른 누군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존 칼빈 이후로 교단들 내에서 활동하는 "권력자들"은 디모데전서 3장을 악용한다. 디모데전서 3장에는 17개의 요구 사항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싫어하는 설교자가 있을 경우에, 그중 15개의 사항을 충족시켰고 또 아무리 설교자로서 성공했다 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꼬투리를 잡아 그를 제거해 버린다. 그런 후 그중 한두 개 정도만 충족하는 자들을 "자격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대신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교단이 말하는 "자격 있는" 목사들은 완전히 불합격자들이다. 그들은 한 번만 결혼했고, 또 "선한 행실"도 했다고 하지만, 그 실상은 타락하고 아무런 능력이 없으며, 성경 말씀과는 반대로 성경 교사로서 완전히 "빵점"이고(딤전 3:2), 탐욕스럽기로는 유다 이스카리옷, 게하시, 아합도 혀를 내두를 정도인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일일이 헤아려서 한 명당 1달러만 부가해도 큰돈이 될 것이다. 누가 강단에 서고, 누가 강단에 서지 말지를 결정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누구든지, 또 어떤 집단이든지 회중 위에 군림하고(벧전 5:3) 로마 황제처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마 20:25), 성도들의 믿음을 세우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사역"이 아니다(골 4:17).

그렇다면 어떤 젊은 청년이 있다고 할 때, 그는 성경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설교자로 부르신 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다음 다섯 가지 조건으로 어느 정도는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다섯 가지 모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은 해당되어야 한다.

① 우선 성경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자신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고 똑똑하며 잘났는지를 내보이려는 의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

② 어떤 상황에서든 종교적인 논쟁이 일어날 때, 가만히 입 다물고 있지 못한다.

③ 마음속에 죄인들을 지옥에서 구해 내고자 하는 참된 영적 부담이 있다. 지옥의 실재와 주님께서 지옥에 대해 하신 말씀들을 있는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마 13:50; 25:41, 막 9:44-48).

④ 사역이 아닌 다른 여러 직업들에서 종사해 보았지만 스스로 즐거워하거나 만족할 수 없었고, 또는 성공할 수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일 하나 제대로 못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⑤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들이 지속적으로 열린다. 단순히 감옥의 죄수들에게 전하거나 요양원에서 설교하거나 주일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거리에서 설교하는 정도의 사역이라 할지라도 계속 기회들이 생기며, 가끔씩은 "열린 문들"이 나타나기도 한다(고전 16:9).

만약 앞의 다섯 가지가 모두 분명하게 자신의 삶에서 나타나고 있다면, 주님께서 당신을 부르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부르심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또한 반드시 기억할 것은, 부르심이 곧 "능력을 주심"(Enabling)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레미야는 태어나기 전에 "부르심"을 받았지만, 20살 정도가 되어서야 "능력 주심"을 받을 수 있었다. 사무엘도 10대일 때 부르심을 받았으나, 엘리가 죽을 때까지는 이스라엘을 위해 예언하지 않았다. 어떤 성인 형제들은 부르심을 받고 나서 몇 주 안에 혹은 몇 개월 안에 "능력 주심"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빠른 시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오랫동안 인생이나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부르실 수 있다. 배경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모스는 뽕나무 열매를 거두는 자였으며 "목사 집안"이 아니었다. 빌리 선데이는 야구 선수였고, 마태는 세리였으며, 멜 트로터는 술고래였고, 필자의 친구 에드먼드 디낭트는 깡패였다. M.R. 디한은 의사였으며, 샘 존스는 술주정뱅이 변호사였고, 할데인 형제들 중의 하나는 해적이었다.

필자가 펜사콜라성경신학원을 세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은 누구나 올바로 성경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집안인지, 돈 좀 있는 중산층인지,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는지, 교회에서의 경력은 많은지, 추천장은 있는지 등을 굳이 따지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학교나 교회나 목사로서의 어떤 체면을 따지지 않는다. 다만 "높은 학문적인 수준"과 "고매한 성별"을 떠벌리는 위선적이고 세속화되어 버린 신학교들이 제공해 주지 못한 기회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설교자들에게 주기 원했으며,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목적을 성취했다.

필자는 구원받기도 전에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던 두 명의 성경대로 믿는 설교자들을 알고 있는데, "사이클론" 백스터 맥클레던과 레이 씨이다. 레이 씨(밥 존스 시니어의 조카)는 구원받지 못한 해병 전사였다. B.H. 캐롤도 무신론자였는데, 구원받기 전에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밥 존스 시니어는 앨라배마 주 도탄 근처에 있는 브랜든 스탠의 땅콩 농장에서 일했었다. 필자 럭크만은 회심할 당시 낮에는 디스크자키로, 밤에는 댄스 밴드 드러머로 살았었고, 양친 모두 설교자라고는 단 한 명도 배출하지 않은 집안이었다. 필자의 선친과 그 윗분들은 대대로 미 육군 장교들로서 군인 집안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부르신다. 또한 쓰시기 원하시는 사람을 쓰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기 원하시는 사람을 붙드신다. 당신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또 그렇게 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인간이 감히 왈가불가할 수 없다. 『주가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외모를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실 때면 많은 경우에 그가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을 때 부르신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어부로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열심히 박해하고 있었다. 마태는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고 있었다. 베반스 웰더 형제는 미국 제일은행의 은행장이었다. 디한은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고, 루터는 카톨릭 신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으시다.

미국에서 어떤 주보다 더 많은 설교자를 낳은 주는 노스캐롤라이나이며, 그 다음은 텍사스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의 사역 아래에서 약 130명의 젊은이들을 사역에 넣어 주셨고(1980년 기준) 그들은 지금도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1980년 이후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역에 들어갔는지 계산해 보지 않았다. 또한 필자가 목회했던 펜사콜라의 브렌트침례교회와 성경침례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에게 안수를 줬는지 정확하게 기록해 놓지는 않았지만 90명은 족히 넘는다.

자, 모든 젊은이들에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주 하나님께서 물으신다. 『누가 나를 위하여 행악자들을 대적하여 일어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죄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여 일어날까?』(시 94:16)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랴?』(사 6:8)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신실한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BB

해외기사 135 / 6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