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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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마주한 죄인 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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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11월호>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는 어떻게 하랴?”고 하니, 그들 모두가 말하기를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하더라』(마 27:22).

사도행전 4:26,27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심문받으셨을 때 “폰티오 빌라도”가 주님을 대적했던 무리 한가운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결심하기도 했었다(행 3:13). 말하자면 빌라도는 두 입장 사이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정말 난처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을 본 적 있는가? 당시 빌라도는 로마의 총독으로서 “죄 없는 사람”을 다뤄야 했었다.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밖에 있던 군중들은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으니, 빌라도로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빌라도는 성경에서 “비참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빌라도를 비참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사실 그가 “선량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그가 특별히 죄를 지었다는 말씀이 없다. 빌라도는 그저 평범하고 선하며 정직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으나, “겁쟁이”였기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용기가 없었고, 그것이 그의 큰 결점이었다. 만약 그에게 옳은 일을 행할 용기가 있었다면, 그는 역사상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추앙받았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링컨이나 나폴레옹보다 빌라도에 관해 더 많은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


빌라도가 직면한 문제는 간단했다. 그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때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세상도 그와 똑같다. 죄인들이 직면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회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신은 예수님을 영접할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그분이 선포하신 대로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라면, 당신은 그분을 회피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시며, 완전하고 죄 없는 사람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죽지도 않으신다. 이미 한 번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 뒤로는 “항상” 살아 계신다. 성령님께서는 악한 현 세상에서 과거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사람들을 책망하고 계신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요 16:9).
『빌라도가 자기로서는 아무것도 설득할 수 없고, 오히려 소요가 일어난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맡으라.”고 하자』(마 27:24). 빌라도는 예수님을 회피하려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오늘날 미국에도 수십만 명의 성인 남녀들이 빌라도와 동일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는 어떻게 하랴?』(마 27:22)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직면해야만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회피하고 등을 돌리려 한다. 세상 종교들은 모두 바로 이것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빌라도는 어떻게 했는가?

▣ 빌라도는 “하찮은 일”로 여기면서 예수님을 지나치려 했다 ▣


빌라도는 예수님을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다. 이슈나 중요한 일이 못 되는 것처럼 취급했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를 데리고 가서 너희의 율법에 따라 재판하라.”고 하니』(요 18:31 a). 사람들은 늘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하찮게 취급하며 회피하려고 한다. “나도 내 종교가 있고, 당신도 당신의 종교가 있잖소.” “나는 모태에서부터 성공회 교인이었으니까, 성공회 교인으로 죽을 것이오.” “나는 성사도 많이 했고 어렸을 때 성당에서 봉사도 했어요. 그런데 당신이 뭐라고 지금 나에게 이러는 거요?” 사람들은 핵심 이슈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피하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빌라도도 예수님을 직면해야 하는 문제를 넘겨 버리고 싶었기에,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하라!”라고 유대인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우리가 누구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적법지 못하나이다.』(요 18:31 b)라고 말했다. 물론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훗날 스테판에게 돌을 던져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된 것은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었다(요 19:36).

▣ 빌라도는 “비겁함”으로 예수님을 회피하려 했다 ▣


『빌라도가 갈릴리라는 말을 듣자, 이 사람이 갈릴리 사람인가 묻더라. 그런 후에 그가 헤롯의 통치 구역에 속한 줄을 알자마자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헤롯에게로 그를 보내니라』(눅 23:6,7). 빌라도가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갈릴리라면 헤롯의 ‘관할 구역’이니까, 헤롯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 되겠군.” 이런 사람들은 대개 “겁쟁이들”이다.
용기에는 두 가지 종류, 곧 “물리적인 용기”와 “영적인 용기”가 있다. 나는 실제로는 전혀 겁쟁이가 아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영적인 배짱”이 없는 것이다! 빌라도는 도둑도, 술주정뱅이도, 간음자도, 호색가도, 거짓말쟁이도, 변태 성욕자도, 신성 모독자도, 착취자도, 납치범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영적인 용기”가 없었기에 “자신의 혼”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주님을 헤롯에게 넘겨 버렸다. 죄인들은 다 이런 식이다. 이런 식으로 주님에게서 달아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면서 걱정하고, 또한 ‘예수님을 영접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까?’ 하면서 염려한다. 그러나 결국 “비겁함”도 효과가 없었다. 빌라도가 헤롯에게 보냈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헤롯이 예수님을 다시 그에게 돌려보낸 것이다(눅 23:11).

▣ 빌라도는 “영리함”으로 예수님을 피하려 했다 ▣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이 사람이 백성을 현혹한 자라 하여 내게 데려왔도다. 보라, 내가 그를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나 너희가 고소한 일에 대하여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을 찾지 못하였고... 그러므로 나는 그를 매질한 후 놓아주겠노라.”고 하니라. (명절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게 되어 있더라.)』(눅 23:13-17). 사람들은 머리를 써서 예수님을 회피하려고 한다.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아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나의 “선친”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선친께서는 10년간 대학 교육을 받으셨으며, 아이큐 150에 박사 학위 소지자셨다. 대학에 간 것도, 지질학을 공부해서 진화론이 맞고 창세기가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교회의 종이 크면 클수록 그 안에 박쥐들이 많이 사는 법이다!” 또한 보스턴의 MIT에서 석사 학위도 받으셨다. 아버지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지성인”이셨다. 그러나 그 머리를 창세기의 진리를 회피하는 데 사용하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명석하다는 자들은 성경을 공격하는 데 자신의 인생 전부를 할애한다. 성경을 공격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에서 무언가 틀린 것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럭크만 씨, 당신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아세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것을 어떻게 아세요?”라고 묻곤 한다. 이에 나는 “1949년에 펜사콜라 시내에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안다.”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을 아는 것이다!
빌라도는 말했다. “여기 두 명의 죄수가 있다. 곧 ‘바라바’와 ‘그리스도’이다. 내가 누구를 놓아주랴?” 빌라도는 필시 ‘사람들이 살인자이자 강도인 바라바를 원하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의 영리함도 소용없었다. 『그러자 그들이 일체가 되어 소리질러 말하기를 “이 사람을 처단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라고 하니 (그는 그 성읍에서 난동을 부리고 살인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힌 자더라.)』(눅 23:18,19). 또다시 빌라도는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 빌라도는 마지막 수단으로 “타협”을 이용했다 ▣


“타협”은 여러 사람이 시도하는 방법이다. 다른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대개 타협한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처리해야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을 때, 갑자기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왔다.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당신과 그 의로운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게 하소서. 내가 오늘 꿈에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많은 것으로 고통을 받았나이다.”라고 하더라』(마 27:19). 빌라도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군중은 피를 보기 원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 원한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예수를 피범벅으로 만들어 군중들에게 그런 예수의 모습을 보여 주면, 분명 그들도 예수를 동정하면서 풀어 주라고 할 거야.’ 『나는 그를 매질한 후 놓아주겠노라』(눅 23:16). 『그러므로 그때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고 병사들은 가시로 관을 엮어서 그의 머리에다 씌우고 자주색 겉옷을 입히며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하며 손으로 주를 치더라』(요 19:1-3). 빌라도는 병사들을 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채찍질하게 했다. 이 또한 성경 예언의 성취였다(사 53:5, 시 129:3).
대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마지막 시도”가 바로 이것이다. ‘이제 죄를 안 짓고 살면서 가족들을 교회에 데리고 다니면 되겠지!’ ‘가정 예배를 드리고 성경 구절들을 외워야지.’ ‘술친구들을 끊어야겠어.’ ‘이제 복권은 사지 말아야겠다.’ ‘교회 회원이 되고 침례 또는 세례를 받으면 되겠지.’ 많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것이 바로 “타협”이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무죄하다고 벌써 두 번이나 선언했지만, 그분을 석방할 용기는 없었다. 이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면서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시자 빌라도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이제는 됐다고!’ 『이 사람을 보라!』(요 19:5) 그런데 군중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요 19:6). 빌라도는 또다시 예수님을 직접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군중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행하였느냐?』(눅 23:22)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우리의 율법에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하나이다. 이는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하더라』(요 19:7).


이후 빌라도가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그는 그리스도를 다시 불러서 “네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지 않았다. 『그때 빌라도가 주께 말하기를 “네가 나에게 말하지 않느냐? 나에게는 너를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고 너를 놓아줄 권세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더라』(요 19:10). 피범벅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에서 네게 주신 것이 아니라면 너는 나를 대적할 아무런 권세도 갖지 못하였을 것이니라』(요 19:11). 이 말에 빌라도는 두려움에 떨었다! 『이때부터 빌라도는 주를 놓아주려고 애쓰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말하기를 “당신이 이 사람을 놓아주면 당신은 카이사의 친구가 아니니이다. 자신을 왕이라고 하는 자는 누구나 카이사를 대적하여 말하는 것이니이다.”라고 하니라』(요 19:12).


‘어떻게 하면 좋지? 이제 어떻게 하지?’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을 상대해야 했다. 예수님을 회피하려고 세상에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빌라도가 자기로서는 아무것도 설득할 수 없고, 오히려 소요가 일어난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맡으라.”고 하자』(마 27:24). “비참한 죄인 빌라도”를 보라! 만약 그가 용기를 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그에게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당신이 이 사람을 놓아주면 당신은 카이사의 친구가 아니니이다.』 그렇다! 먹고살 것을 생각해야 했다. 사람들은 “총독으로서의 그의 수입원”을 걸고넘어졌다. 전승에 따르면 폰티오 빌라도는 4년 뒤에 총독 자리를 잃고 흑해로 유배되어 거기서 자살했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가운데 빌라도가 갈등했던 상황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지, 아니면 거절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만약 빌라도가 용기를 냈더라면, 그는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여기에 있다.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는 어떻게 하랴?』(마 27:22)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성경은 명명백백하게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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