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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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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3월호>
『내가 내 형제들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들에게는 외국인이 되었나이다. 주의 전을 위한 열성이 나를 삼켰으며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나이다』(시 69:8,9).위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예언으로서(요 2:17), 특히 8절은 "예수님의 모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로마카톨릭은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녀"라고 주장한다. 마리아가 영원한 처녀라면, 요셉 역시 영원히 총각이어야 한다. 그러나 8절에 따르면 예수님의 모친에게는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 이 자녀들은 마가복음 6:3에 나와 있고 그중 네 명은 이름까지 명시되어 있다. 그들은 로마카톨릭이 주장하듯이 그리스도의 "사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친의 "자녀들"이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의 마리아"와 "로마카톨릭의 마리아" 사이에는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로마카톨릭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부여한다. 예를 들면 마리아가 "전지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약 12억 명의 카톨릭교도들이 하는 기도 내용을 동시에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마리아가 예수님처럼 "죄 없이 태어났다."(무염시태, 無染始胎)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육신하신 아들 하나님께 해당하는 속성이다. 로마카톨릭은 크리스마스 17일 전인 12월 8일을 "무염시태 대축일"로 지킨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구주가 되시려면 그분의 어머니 역시 죄 없는 여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어머니도 죄 없는 여인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만들면 "하나님의 할머니"도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로마카톨릭의 마리아는 성경에서 묘사하고 있는바 그녀의 삶 속에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겸손히 순종했던 유대 여인 마리아와는 판이하게 다른 존재인 것이다!
1. 성경의 실제 마리아는 아담과 이브의 모든 자손들처럼 지극히 평범한 죄인이었다. 그녀는 예루살렘에서 아기 예수님께 할례를 행해야 했을 때, 율법에 기록된 대로 그녀의 정결례를 위한 "속죄제"에 합당한 제물을 가지고 나아갔다(눅 2:24, 레 12:1-8). 여느 죄인들처럼 마리아도 구주가 필요한 죄인이었는데, 그녀는 이 부분을 시인했다(눅 1:46,47). 침례인 요한의 모친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만났을 때, 그녀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내 주의 모친』(눅 1:43)이라고 불렀다. 두 호칭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곧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계시기 때문에 누가 낳지 않아도 되는 분이시지만(미 5:2),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은 처녀인 마리아의 몸 안에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그 몸이 형성되셔야 했던 것이다(눅 1:35). "예수"는 인간으로서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영국의 정복자 윌리엄 1세는 그의 혼을 마리아에게 맡겼는데, 그것은 그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다. 이는 그의 혼을 그와 똑같은 죄인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반면에 빅토리아 여왕은 그녀의 영을 주님의 손에 맡겼다. 실로 현명한 여왕이었던 것이다! 당신이 죽을 때 자신의 혼이나 영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정하신 분께 맡겨야 한다. 즉 당신을 위해 극심한 형벌을 받으실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셨고, 그의 모친 마리아처럼 죄인이 아니신 예수 그리스도께 맡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심이라』(히 7:25). 당신도 마리아를 신뢰하는가? 그런데 그녀는 자기 아들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눅 2:43-45). 예수님을 잃어버린 마리아가 당신은 잘 돌봐 줄 것 같은가? 자신의 자식도 챙길 수 없었던 여인에게 당신의 혼을 맡긴단 말인가? 만약 마리아가 훌륭한 어머니였다면, 어떻게 한집에 살고 있는 다른 자녀들이 그들의 형제인 예수님을 믿도록 설득하지도 못했단 말인가?(요 7:5) 마리아는 전혀 훌륭한 구령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2. 마리아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특별한 존경도 요구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단 한 번도 "어머니"라고 부르시지 않았다. 교황도 이러한 진리를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모친을 이방의 개로 여겨지는 "이방 여인"(마 15:22-28)이나 "마귀 들린 적이 있던 여인"(눅 8:2, 요 20:15)을 부르듯이 『여인이여』(요 2:4; 19:26)라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이렇게 부르시는 예수님을 나무라지 않았고, 제5계명(출 20:12)을 위반했다면서 정죄하지도 않았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그분의 어머니를 부정하시고 오히려 요한에게 마리아를 맡기셨다. 『또 그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어머니를 보라!"고 하시더라. 그 시로부터 그 제자가 그 여인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니라』(요 19:27). 주님께서 마리아를 그렇게 대하신 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어떤 집에서 무리를 가르치고 계셨을 때도 주님께서는 『누가 나의 모친이며 또 형제들이냐?』(막 3:33)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때 역시 마리아가 그분의 모친임을 부정하신 것이다(막 3:34,35).
구약 시대에 『훌륭한 여인』(왕하 4:8)이라고 불린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어떤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는 않았다(왕하 4:13). 마리아 역시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여인"으로 불리지도 않았다. 다만 마리아에게 소식을 전한 천사가 그녀를 가리켜 『여자 중에서 복받은 자』(눅 1:28)라고 말했을 뿐이다. 카톨릭교도들은 "묵주 기도"를 하면서 이 부분을 인용하지만, 사실 성경에는 "여인들보다 복받은 여인"(판 5:24)인 켄인 헤벨의 아내 "야엘"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여인에게도 기도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어리석은 교황들은 이런 진리조차 모르는데, 그들은 성경에 관한 한 가장 무지한 자들인 것이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그녀에게 했던 말에 근거해서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복받은 사람이라고 부르리라.』(눅 1:48)라고 말했다. 마리아가 그렇게 추론한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말했을 때는 예수님께서 그 말을 바로잡아 주셨다(눅 11:27,28).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리아보다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에서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언급되고 있는 곳은 그녀가 다른 여인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때였다. 당시 그녀는 120명의 제자들 중에 섞여 있었는데(행 1:13-15),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마리아를 신경 쓰지 않았고, 그들을 위해 아들 하나님께 중보해 달라고 간구하지도 않았다. 마리아 역시 그런 식의 요구를 하지 않았다.
필자는 구원받기 전에 펜사콜라에 있는 미카엘성당의 설리번 신부에게 "카톨릭 개종자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그가 책자 하나를 주었는데, 수많은 거짓말들로 가득 찬 책자였다. 즉 마리아를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다리"라고 말했고(거짓말, 갈 4:4,5),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전"이자(거짓말, 고전 3:16,17, 고후 6:16), "이새의 뿌리"라고 했으며(거짓말, 사 11:10, 롬 15:12), 심지어 "다윗의 홀"이라고도 말했던 것이다(거짓말, 창 49:10, 민 24:17). 또한 "아론의 막대기"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정하신 대제사장이 누구인가"를 보여 주는(민 17:5,8) 표현으로서 죽은 나무에서 생명이 나오는바 "부활의 예표"였다. 5세기까지는 그 누구도 마리아의 "성모승천"(聖母昇天) 같은 것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성경은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으며 초기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외경에만 나오는 내용이다. 마리아는 휴거 이전에 몸을 입고 하늘에 올라간 적이 없으며, 그 누구를 위한 대제사장이나 여자 제사장이 된 적도 없고(히 3:1), 그 누구를 위한 "구속주"나 "중보자"가 된 적도 없다(딤전 2:5). 심지어 로마카톨릭은 마리아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라고 가르치는데 이것 역시 신성모독적인 거짓말이다(골 2:9). 또한 "이교도들을 위한 구원"이라고 가르치는데, 성경은 예수님만이 "구원"이시고(눅 2:30,31) 이방인들에게 빛을 비추려고(눅 2:32) 오신 분이라고 말씀한다.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도 마리아는 이방인들의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롬 15:16, 갈 1:16). 이처럼 성경의 마리아는 그러한 칭송을 받을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을 요구한 적도 없다. 오직 『그[예수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라.』(요 2:5)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3. 마리아에게서 배울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그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이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주의 여종이오니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눅 1:38)라고 말하면서 주님의 뜻에 순종했다. 또한 그녀가 예수님께 할례를 행하려고 성전에 왔을 때 시므온은 그녀에게 『칼이 또 네 자신의 혼을 찌름같이 되어』(눅 2:35)라고 말했는데,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단지 메시아를 낳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것은 곧 그녀의 첫아들인 예수님께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다가 죽으시는 모습을 "어머니의 심정"으로 고통스럽게 지켜보아야 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로마카톨릭은 이런 것까지도 "성모성심"(聖母聖心)으로 곡해하여 마리아 숭배를 위해 이용했다. 마리아는 그녀의 "아들"이 죽기까지 수난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그분을 향해 울부짖고 조롱하고 모독하는 군중 속을 통과하여 갈보리까지 걸어가시는 그 길을 따라갔고,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모든 뼈가 어그러진 모습과, 예수님께서 어서 죽기를 바라는 미친 죄인들 앞에서 벌거벗겨진 채로 매달려 있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마리아는 여인으로서 엄청난 "마음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자아에 대해서는 죽고 오직 하나님께 대해서만 살아야 했던 것이다. 오늘날 성인 남녀들 가운데 자신을 부인하는 일에 있어서 마리아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또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존귀하심"을 지켜 드렸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율법 박사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네 아버지[요셉]와 내가 걱정하며 너를 찾았다.』(눅 2:48)라고 말했는데, 요셉이 예수님의 "문자적인" 아버지가 아닌 것을(눅 1:30-35) 알면서도 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예수님이 "사생아"(요 8:41)로 불리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성경을 믿고 자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에 관해 가르쳐 주는 훌륭한 어머니를 둔 사람은 얼마나 복이 있는가!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어머니는 그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가르쳤다. 잭 하일스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매일 밤 잠자리에서 이렇게 따라하도록 시켰다.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다! 하나님께서 이 책을 쓰셨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존귀하심"을 아들 앞에서 드높였고, 결국 그것이 잭 하일스를 지켜 주었다. 한때 그는 존 R. 라이스를 비롯하여 기독교대학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그의 믿음을 숨기기도 했지만, 훗날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다시 "어머니의 믿음"으로 돌아가서 <킹제임스성경>을 온전히 믿었고 그것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높였다. 레스터 롤로프는 성경을 그의 어머니에 빗대어 설교하기도 했다. 즉 테네시 템플에서 열린 미국 남부침례교친교회 모임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설교했을 때 이렇게 설교했던 것이다. "나의 이 <킹제임스성경>을 공격하는 당신들은 마치 나의 어머니를 공격하는 자들 같소. 당신들이 나의 어머니를 칼로 공격한다면, 나 역시 당신들을 제대로 혼내 줄 것이오!"
마지막으로 마리아는 어려운 일을 당해도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항상 "진실한 태도"를 견지했던 것이다. 그녀의 아들이 사악한 자들에게 살해당한 것은, 정말이지 그 여인을 한계에 이르도록 몰아붙이는 엄청난 시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그 시험을 통과했던 것이다. 1889년 펜실베이니아 주 존스타운에서 발생한 대홍수로 인해 한 그리스도인 여인이 네 명의 자녀를 모두 잃었다. 그녀는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에게 물에 뜰 수 있는 "판자 조각" 같은 것들을 건네주었고, 그녀 자신은 아무것도 붙들지 못한 채 홍수에 떠내려갔다. 그러나 그 여인만 살아남고 자식들은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그때 이 불쌍한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가서 마음을 정돈해야겠어요." 그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견고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큰 내적 고통을 겪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옛날 장로교 목사 드위트 탈마지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한번은 뉴욕에서 목회를 했던 그가 어떤 아파트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한 70대 여인이 아파트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당시 체력이 좋았던 탈마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혼자서는 그 계단 도저히 못 올라가세요!" 그러고는 그 할머니를 번쩍 안아 들고 40개의 계단을 올라가 집까지 모셔다 주었다. 필자가 구원받지 못한 여인들, 특히 로마카톨릭 같은 거짓 종교의 노예가 되어 버린 여인들이 성사들,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종교적인 행위, 선행 등으로 하늘나라에 가려고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여인이여, 너는 그 계단을 혼자서는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 내가 너를 데려다 주마!"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면 마리아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래전에 요양원의 한 나이 든 여인이 구원을 받은 이후 우리 교회에 와서 침례를 받고 싶어 한 적이 있었다. 그 가련한 여인은 겨우 걸어 다닐 정도로 몸이 연약했는데, 침례탕에서 물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내내 필자가 꼭 붙들어 줘야 했다. 그녀는 무서운 나머지 계속해서 "놓지 마세요! 절대 놓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사람이 늙으면 넘어지거나 심하게 다치는 것을 무척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다치면 젊을 때처럼 빨리 낫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이렇게 말했다. "체중을 저한테 완전히 실으세요. 제가 넣었다가 뺄 테니!" 구원을 위해서는 침례, 미사, 선행, 교회 출석,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 등이 필요하지 않다. 오직 당신의 모든 "체중"을 예수님께 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 당신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공로만 온전히 신뢰하라. 그렇게 하면 당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 결코 마리아를 신뢰하지 말라!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