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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많은 제자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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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3월호>
도마는 소위 “의심 많은 제자”로 종종 묘사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도마를 성경 전체에서 가장 놀라운 일들 가운데 하나를 보여 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셨다. 즉 그 어떤 “성경 개정자”도 바꿀 수 없는 진리를 말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공격하는 현대의 변개된 번역본들조차 예수님께서 “주님”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말씀하는 이 구절만큼은 결코 바꾸지 못했다. 『도마가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하니』(요 20:28). 한편 요한복음 14장에서는 “도마가 의심하는 장면”이 나오고, 20장에서는 “도마가 회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도마의 의심
요한복음 11장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 했고, 이에 도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가서 죽자!”(16절)라고 말했다. 실로 용감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러했던 도마가 “의심”을 품게 되는데,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성도들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말씀하는 곳에 이르자 의심을 드러낸 것이다(1-6절). 이 일은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일어났으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월절 전날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주님께서는 다락방에서 설교하셨는데,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하시기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요한복음 14:1-6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절대적인 보장”을 말씀하고 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과 “세 권의 서신서”에서 특징적인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알다”라는 단어다(요일 3:14; 4:13 등).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요일 5:13).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이 두 구절은 “영생에 관한 절대적인 보장”을 다루고 있다. 구원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보장”인 것이다! 하늘나라에는 구원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방이 예약되어 있고, 큰 저택들이 지어져 있으며, 장소에 대한 모든 준비가 끝났고, 우리 개개인의 이름도 대문 앞에 붙어 있다!
나는 1949년 3월 14일에 전화로 예약을 마쳤다. “제가 이곳을 떠나려고 하는데, 갈 곳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하룻밤 묵어도 될까요?”라고 내가 문의했더니, 주님께서는 “여기서 묵으려면 하룻밤은 안 되고 영원히 살아야 한다. 여기에 묵지 않으려거든 불못에서 영원을 보내야 한다.”라고 대답하셨다. 이에 나는 “저는 불못에서 영원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곳을 예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고, 주님께서는 “그냥 예약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네! 그러면 ‘제 이름’을 남겨 놓을까요?”라고 물었고, 주님께서는 “아니다! 너의 이름은 아무 쓸모가 없고, 오직 ‘예수’라는 이름만 필요하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저 하늘나라에 있는 방 하나를 예약했고, 그 결과 지금은 나를 위한 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시몬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내게도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벧전 1:4)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의심하기 시작했다. 『도마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 길을 알 수 있나이까?”라고 하니』(요 14:5). 이에 주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유일한 길”(the way)이심을 말씀하신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나라에 가는 많은 길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상대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께서는 “네가 내게로 오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불교도, 도교도, 카톨릭교도, 개신교도, 침례교도, 감리교도, 통일교도, 크리슈나 추종자, 조로아스터교도, 장미 십자회원, 절대론자, 상대론자 등 그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 당신이나 당신의 부모 혹은 형제자매나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신부, 주교, 추기경, 교황, 목사, 구루 등 당신이 따르는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속 좁은 편견”이라고 말한다. 도마의 마음을 흔든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다시 말해 도마는 “교육받은 죄인”이었다. 자기 딴에는 교육을 많이 받은 자로서 한 가지 길 외에도 무언가 다른 길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 가지 길만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단순하게 보인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는 것”이 얼마나 단순한 일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이런 단순한 말씀이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허구한 날 “사랑”에 대해 떠벌린다. 그러나 인간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신 분이 계신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처럼 쉽게 만드신 이유는 그 어떤 어리석은 바보라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문제는 당신이 “어리석은 자들” 중의 하나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십자가를 전파하는 것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고린도전서 1:22-28에서 말씀하는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고린도전서 3:18에서는 소위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만일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이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러면 현명한 자가 되리라.』 실용주의니, 실존주의니, 신(新)아리스토텔레스주의니, 신(新)플라톤주의니, 논리적 실증주의니 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어떻게 보시는지 아는가? 매우 “어리석은 것들”로 보신다!
구원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적시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흔히들 이렇게 묻는다.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이교도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런 건 어때요?” “저건 왜 그런 거죠?” 사람들은 명석하고 호기심 많은 자신의 지성을 버리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는 편을 택하겠다는 심산이다. 당신은 “나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회개하고 돌이키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가 말하노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라』(사 55:8,9).
도마의 회심
한편 도마는 회심했고 깨달았다. 바로 “한 분 주”와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그러한 사실이 불교, 도교, 유교, 개신교, 로마카톨릭, 그리스정교 등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된다(요 20:24-29). 처음에 도마는 “보는 것이 믿는 것”(요 20:24,25)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경은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히 11:1)라고 말씀한다.
도마는 일종의 실존주의자였고 논리적 실증주의자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내린 “의미”에 관한 정의를 따르는 자였다. 즉 통제된 환경에서 물리적인 감각으로 실증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유물론자나 공산주의자도 그렇게 믿는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종교”다. 모든 공산주의자는 광신적인 자들이다. 공산주의자들 대부분은 이런 사상을 너무 광신적으로 추종한 나머지 그것을 위해 죽기도 하고, 또 나라를 팔아먹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광신도가 아닌 공산주의자를 만나 보지 못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종교는 다름 아닌 “인간”이며, 그들이 섬기는 신은 자기 자신의 “뇌”이다.
이렇듯 도마가 의심하고 있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문이 잠겨 있는 장소에 문을 통과해서 나타나셨고(요 20:26), 곧장 도마에게로 다가가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다(요 20:27). 이 장면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도마가 예수님의 손이나 옆구리의 상처를 향해 손을 내미는 모습을 그려 넣은 그림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도마가 그렇게 했다는 말씀이 없다. 그저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을 뿐이고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가운데 도마는 뒤로 물러나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요 20:28). 유대인들의 기준에 따르면 도마는 “우상 숭배”를 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도마가 눈에 보이는 “형상”에 경배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이유도 주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 또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셨기 때문이다(요 10:33).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요 8:58)라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누군가가 자신을 눈에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처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는 점을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씀하시는 바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위대한 선생”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으로서 “말씀을 전파하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나 다름없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나만이 유일한 길이며 다른 길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면, 당신은 성경 전체를 읽지 않고 산상설교만 읽는 “자유주의자”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회피하고 떠나려 한다면,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그렇게 가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다. 실제로 제자들이 예수님께 “사람들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에 실족한 것을 아십니까?”라고 물으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모든 초목은 뽑힐 것이라』(마 15:13).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면, 주님께서는 “신성 모독자”가 되신다(요 20:28). 여기에는 중간 지대가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니시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셨다면, 그런 주님을 “위대한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주님께서는 썩어 빠진 신성 모독자가 된다! 주님께서 자신이 그러하다고 선포하신 바로 그분이 아니시라면, 예수님께서는 배교한 이단자에 불과하다. 주님을 “선한 사람”이라고조차 부를 수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경배하는 것을 거절하시지 않았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거절하고 중단시키셨어야 옳다. 어떤 사람이 사도 베드로 앞에 엎드리자, 그는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행 10:26)라고 말했다. 선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행할 것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기꾼이 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도마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요 20:29). 예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의 경배를 그대로 받으셨다. 여호와께서 받으셔야 할 경배를 있는 그대로 받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이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견지에서는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이 우상 숭배자들처럼 보일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하는데,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히 1:3). 도마가 그러했듯이, 우리 역시 회심했기에 이 사실을 믿는다. 우리는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한다. 즉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 그대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곳 지상에서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골 2:9) 거하시는 분이셨고, 지상에서 사시고 숨을 쉬시고 고난을 겪으시고 죄인들을 위해 “피의 대속”을 이루시려고 오셨다는 사실도 믿는다. 절대적으로 구주가 필요하고 비참하고 연약하며 변덕스럽고 무력한 죄인들인 우리를 위해 대속적인 희생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마음과 혼과 학교와 교회와 가정과 자녀와 재산과 생명과 건강과 안녕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 등 그 모든 것을 다 맡겨 드릴 정도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확신한다. 당신이 무슨 수를 쓴다 해도 우리의 확신을 제거할 수 없다. 우리는 도마와 다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나서야 믿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내가 이러한 고난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믿은 분을 알고, 내가 위탁한 것을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서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