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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사원에서 벌인 “땅 밟기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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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09월호>
일부 한국 교인들이 지난 7월 4일 불교 최대 성지 중 하나인 인도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에서 기타를 치며 찬송을 부르고 큰 소리로 기도하다가 이를 제지하는 한국 승려와 마찰을 일으킨 일이 발생했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이다.”라면서 “스님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했고, 이에 화가 난 승려가 이번 일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하자 자진 철수했다고 한다. 이처럼 만용에 가까운 무분별한 행위를 두고서 누군가는 “공격적 선교가 아니라 자해적 선교”라고 비꼬기도 했다.몇 년 전 서울 봉은사에 들어가 땅 밟기를 하며 기도한 젊은 청년들로 인해 교회들이 비난을 받은 일이 있었다. 또 이슬람 국가에 들어가 그들의 실정법을 어기며 그들만의 방법대로 땅 밟기와 기도를 한 자칭 선교팀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으로 죄인들을 구령할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그런 행위들로 비난을 받는 등 부작용만 낳았다. 그럼에도 귀국해서는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하기도 했지만 정상적인 신앙의 눈으로 보면 성경적인 선교가 아니었다. 비싼 항공료와 체류 비용을 썼다는 것과 이교도 국가에 가서 선교(?)를 했다는 자의적인 위안 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들은 절간 등 우상 숭배지에 가서 기도로 악한 영을 제압한다는 이유로 소위 “땅 밟기”라는 의식을 행한다. 그것은 성경을 오해했기에 벌어지는 헛된 행위이며, 오늘날 신약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다. 이런 일들을 행하는 일부 몰지각한 자칭 사역자들과 열정으로만 무장된 무지한 청년들은 그런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 성경을 잘못 적용하여 가르친 엉터리 성경교사에게서 배운 왜곡된 믿음일 뿐이다.
국내에서 꽤 알려진 선교단체 대표 최모 씨는 “땅 밟기 기도가 왜 잘못된 것이냐?”라면서 항변했다. “아프리카까지 가서 그 땅을 밟고 기도하는데 왜 가까운 우리 이웃 절간에 가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또 몇 년 전 봉은사 땅 밟기와 기도 행위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모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땅 밟기 기도’는 땅을 밟고 기도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 영적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여 기도함으로 그 영적 세력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러한 기도 형태는 적극적이고 전투적이며 공격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불교는 우상 숭배이다. 당연히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 우리의 혈육 국민들이 우상에서 벗어나도록 어디에서든지 기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할 수만 있으면 불교 절간에서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집에까지 방문하여 우상에서 벗어나도록 축복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땅 밟기 기도를 적극 옹호했다.
최 씨와 같은 이들은 그들의 땅 밟기 의식에 본질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이것이 약속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밟는 땅을 다 네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이러한 말씀은 지금 신약 시대에는 그 땅과 그 거민들에게 영적 회복과 축복을 주리라는 뜻으로 대개 해석한다. 부동산을 넘겨받는다는 뜻으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둘째는 영적 전쟁의 의미이다. 영적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여 기도함으로 그 영적 세력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기도 형태는 적극적이고 전투적이며 공격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전쟁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의 영토에 들어가 여리고 성을 돌며 기도하라고 하셨다. 백성들은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에도 순종하여 일곱 번이나 성을 돌며 기도했다. 그랬더니 성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기도는 전투적이 아니라 신실한 믿음과 진지한 자세로 마음속에 있는 바를 하나님께 솔직히 아뢰는 것이다. 물론 적극적이며 끈질긴 기도가 필요하지만 전투적이라는 표현과는 다르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무장 방법은 에베소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 이는 너희가 악한 날에 저항할 수 있으며 또 모든 일을 다 이루기까지 서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서서 진리로 너희의 허리띠를 두르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화평의 복음을 준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짐으로써 능히 너희가 악한 자의 모든 불붙은 화살을 끌 수 있을 것이라. 또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성도들을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깨어 있으라』(엡 6:13-17). 그리스도의 군사의 기도는 전투적이 아니라 “모든 인내와 간구”의 기도이다. 이렇게 무장하고 기도한다면 훌륭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영적 전쟁에 임할 수 있다. 특히 성도의 호흡인 기도는 항상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어야 한다. 절간에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그들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 있고, 성령 안에서 마음속의 소원을 언제 어디서나 간절히 아뢸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성냄과 주저함이 없이, 어디서나 거룩한 손들을 들고 기도하기를 바라노라』(딤전 2:8). 그러나 한국 선교 단체들은 여리코성을 도는 이스라엘 군대를 연상하면서 “땅 밟기 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군대는 여리코성을 돌면서 단 한 마디의 말이나 그 어떤 소리도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고(수 6:10), 이스라엘이 마음속으로라도 기도했다는 내용은 성경에 단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데, 이스라엘이 여리코성을 돌면서 기도했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다. 또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진 후 아브라함에게 주신 『일어나서 그 땅을 가로와 세로로 걸으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겠음이라.』(창 13:17)는 말씀마저 신약 교회에 자기 멋대로 영적으로 적용시켜, 결국 특정 지역에 직접 가서 실제적인 땅을 밟고 기도하게 되었고, 오늘날처럼 비성경적이고 수치스러운 열매만 무성히 맺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성경적인 지식 없이 열성만 가득한 이들이 주님을 자의적으로 섬겨 보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헛된 종교놀이를 멈추고 다음의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함으로써 하루 속히 잘못된 열성에서 돌이켜야만 한다. 『내가 그들에 대해 증거하노니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열성은 있으나 지식을 따라 된 것은 아니니라』(롬 10: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