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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거인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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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4월호>
사무엘상 17장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다. 구약의 이야기들이 단지 재미만 주는 것 같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고 말한다. 구약에 기록된 사건들 대부분이 바울에게 계시로 알게 하신 “신약의 교리”와 많은 교리적인 차이가 있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인에게 풍성하고 좋은 교훈을 준다(롬 15:4).단지 “구약”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약의 사건들을 경시하면 많은 교훈을 놓치게 된다. 특히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쉽게 에워싸는 죄와의 싸움”을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 또한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히 12:1). 여기서 “쉽게 에워싸는 죄”란 그리스도인 각자가 잘 이기지 못하는 어떤 특정한 죄를 가리킨다. 다른 죄들은 잘 이기는데, 유독 그 특정의 죄에 대해서만큼은 잘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큰 죄”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본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거인”이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윗이 사용한 물매는 약 1.2m 길이에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반으로 접으면 0.6m 정도였으며, 그 가운데는 작은 주머니 같은 것이 있었다. 거기에 골프공 크기만 한 돌을 넣은 상태에서 가죽 한쪽 끝을 손목에 매고 다른 한쪽을 손에 쥐고 돌리다가 그 쥐고 있던 가죽을 놓으면 돌이 날아가는 원리이다. 그렇게 날아간 돌에 사람이 맞으면 정말 큰 타격을 입는다. 골리앗처럼 이마 정중앙에 맞으면 그야말로 골로 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윗은 골리앗을 죽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평이하게만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에는 많은 교훈이 담겨 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약한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다윗은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을 이겼다. 그는 시냇가로 내려가 돌 다섯 개를 취했는데, 이는 한 번의 물매질로 골리앗을 맞추지 못할까 봐 그랬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가 골리앗의 가족 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삼하 21:22).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미약한 무기”를 사용하셔서 칼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다가오는 대적, 곧 평생을 전장에서 누빈 훈련된 직업 군인을 이기게 하셨다. 성경은 골리앗을 가리켜 『어려서부터 전사』(삼상 17:33)라고 말씀한다. 때때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작은 존재”로 만드신 후에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신다(고전 1:27-29). 일례로 삼손은 “나귀의 턱뼈”로 승리했고, 재판관 샴갈은 “소몰이 막대기”로 승리했다. 또한 이방의 군대 대장이었던 시스라는 한 여인이 내리친 “장막 못”에 머리가 박혀 죽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들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고전 1:28) 만들기를 좋아하신다.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와 싸울 때는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가? “깨진 항아리”와 “등불”과 “나팔”이 전부였다! 135,000명의 군대와(판 8:10) 맞서 싸워 이겨야 하는 불가능한 전투였으나 그는 승리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력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치까지 끌어내리신다. 이는 하나님만이 승리를 가져오실 수 있는 분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다.
두 번째로,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거인을 마주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고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빌 3:3)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세상은 “너 자신을 믿어. 넌 할 수 있어. 네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만 있다면 너는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이내 고꾸라져서 얼굴을 땅에 처박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벧전 5:8). 아무도 이 으르렁거리는 사자를 자신의 힘으로 이기지 못했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노아, 모세, 베드로, 바울 등 모든 성도가 사탄의 공격에 쓰러진 적이 있으며, 우리 또한 이 사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사탄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이 싸움에 나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기뻐하며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 안에 선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롬 7:18). 이런 육신의 힘만 믿고 전쟁에 나갔다가는 무조건 패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인 골리앗의 “패인”이었다. 『그 필리스티아인이 일어나서 다윗을 마주하려고 가까이 오자, 다윗이 서둘러 그 필리스티아인을 마주하여 진영을 향하여 달려가더라』(삼상 17:48). 말하자면 처음에 골리앗은 앉아 있었으니 자신을 과신한 것이다. 또한 다윗은 그와 싸우기 위해 그를 마주하여 그를 향해 달려갔지만, 골리앗은 달려가지 않았다. 『그때 다윗이 그 필리스티아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내게 오지만』(삼상 17:45)이라고 했는데, 골리앗의 “투구”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었다. 본래 머리에 쓰고 있던 “투구”는(삼상 17:5) 어디로 갔는가? 이렇듯 골리앗은 “자신의 힘”을 신뢰했다.
결코 자신의 힘으로 전쟁에 나가서는 안 된다.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그렇게 하다가 “워털루”에서 대패했다. 전투가 치러졌을 당시 네이 원수는 그를 재촉하며 “지금 공격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나폴레옹은 계속 그 시기를 미루기만 했다. “그렇지만 황제 폐하, 현재의 전황을 볼 때 이렇게 하시는 것이...”라고 네이가 말하자, 나폴레옹은 “전황이라고? 무슨 전황 말이오? ‘전황’이라는 것은 짐이 만드는 것이오!”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폴레옹은 그길로 그렇게 끝나 버렸다.
세 번째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힘”으로 전투에 나갈 수 없다. 『다윗이 그의 갑옷 위에 칼을 차고 걸으려고 해 보았으나 익숙하지 아니하므로,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이것들이 내게 익숙지 아니하므로 입고 가지 않겠나이다.” 하고 그것들을 벗은 후』(삼상 17:39).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입고 출전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을 입어 보고는 “제가 이 갑옷을 사용해 본 적이 없기에 입고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다윗은 자신에게 맞는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가야 했던 것이다. 약 2.1m나 되는 사울의 갑옷을 입은 다윗의 모습이 어떠했겠는가? 아마도 갑옷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을 것이다. 당신도 영원히 나의 신앙에 의지해서 살 수 없다. 당신의 어머니, 아내, 남편의 신앙에 의지해서 살 수도 없다. 자기 발로 스스로 일어서야 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이다.
1346년에 북부 프랑스에서 있었던 크레시 전투에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12,000여 명의 군대로 프랑스 왕 필립 6세의 40,000여 명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전투가 치열해지자 에드워드 3세의 아들 블랙 프린스가 패하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도망쳐야 할 만큼 상황이 매우 다급해졌다. 그는 아버지 에드워드 3세에게 전갈을 보내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에드워드 3세는 “왕자 스스로 용맹하게 싸워 존엄함을 쟁취하도록 하라.”라고 답했는데, 이는 “존엄한 기사가 되고 싶으면, 자신의 힘으로 용맹하게 싸워 그 자격을 얻도록 하라. 그것은 내가 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었다. 왕자는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용맹하게 싸워 전투에서 이겼다!
다른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고 해서 당신 자신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사용할 수 없었다.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가야 했으니 그것은 바로 물매였다. 이는 그것이 그가 자주 사용했고, 또 잘 다룰 수 있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당신도 다른 사람의 재능을 결코 빌릴 수 없다. 프랭크 노리스에게서 배운 젊은 사역자들이 그를 따라 하려다가 실패하는 것을 나는 종종 보아 왔다. 여러분 중에는 나처럼 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거리 설교나 개인 구령 방식 그리고 그 외 다른 사역에서 본받을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따라 하지는 말라.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당신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사역해야 한다. 나는 밥 존스 시니어의 설교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설교를 사용하여 설교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일부 쓸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많이 쓸 수 없었다. 그가 설교할 때만큼 그렇게 무게가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만의 “재료”를 만들어야 한다.
『다윗이 더 말하기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나를 구해 주신 주께서 이 필리스티아인의 손에서도 나를 구해 주시리이다.” 하니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가라,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리라.” 하니라』(삼상 17:37). 이후에 다윗이 출전하면서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아는가? “너는 내게 칼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오지만, 나는 네가 모독한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다. 내가 너의 머리를 잘라 새들에게 먹이로 줄 것이다!”(삼상 17:45,46) 이때 골리앗도 일어서면서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라고 했다. 골리앗이 창을 들고나오자, 다윗도 물매를 돌리면서 전광석화처럼 돌을 날려 보내 골리앗의 양 눈 사이에 정확히 꽂았고, 결국 그 거인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승리의 공은 다윗의 것이란 말인가? 이 부분이 바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마지막 교훈이다.
우리는 “오직 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투에 나가야 한다. 전쟁은 주의 것이기에 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그 전쟁의 승리를 우리의 손에 주실 것이다. 『아사가 주 그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여, 많은 수로든지 힘이 없는 자들로든지, 주께서 도와주시는 데는 아무것도 아니니이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는 우리가 주를 의지하며 주의 이름으로 이 무리를 대적하러 감이니이다. 오 주여,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소서.” 하더라』(대하 14:11). 남왕국 유다의 아사 왕은 전쟁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라고 말했다. 모압과 암몬 자손이 쳐들어왔을 당시 주의 영이 임한 야하시엘도 여호사밧 왕과 유다 백성을 향해 “전쟁은 주의 것이다!”(대하 20:15)라고 선포했다.
과연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우리가 육신과 전쟁할 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육신을 이기게 하실 수 있다는 의미다. 침례인 요한은 『그분은 융성해야만 하나 나는 쇠잔해야만 하리라.』(요 3:30)라고 했다. 전쟁은 주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롬 12:1; 6:12,13). 『힘으로도 아니요, 능력으로도 아니며, 오직 나의 영에 의해서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슼 4:6). 이것이 바로 다윗의 승리의 비결이었다(잠 16:3, 히 9:14).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엡 6:11,13)라고 명령하셨다. 우리 자신의 전신갑옷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갑옷”이다. 전쟁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힘은 주님께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쉽게 에워싸는 죄를 이길 힘이 없는 것이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며 나의 구원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시며 내가 신뢰할 나의 힘이시요, 나의 방패시며 나의 구원의 뿔이시며 나의 높은 망대시니이다』(시 18:2). 따라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만 전쟁에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전쟁” 그 자체이다. 우리 각자의 문제들과 죄들을 대항해서 싸우는 전쟁이다. “세상”과 “마귀” 그리고 우리의 “육신”을 대적해서 싸우는 전쟁인 것이다. 밥 존스 시니어는 자주 “믿음의 싸움이 이 세상의 모든 전쟁보다 더 잔혹하다.”라고 말했다. 솔직히 군인 집안 출신이었던 나는 그 말에 코웃음 쳤다. 그러나 그가 옳았다. 오히려 믿음의 싸움이 여러 측면에서 더 잔혹하고 더 오래 지속된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이 전쟁은 계속된다. 수 주 또는 수개월을 넘어 수십 년 동안 지속된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라고 했다.
『전쟁에 임하는 자는 아무도 이생의 일들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자기를 군사로 뽑은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여러분은 어떻게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가? 적을 마주 보며 싸우고 있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끝까지 싸울 것인가? 적을 마주하며 싸우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포기한 채 총은 한 발도 쏘지 않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줄행랑을 칠 것인가? 이제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오시는 날, 우리 각자가 대적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젖 먹던 힘을 다해 가능한 한 빨리 총을 발포하며 싸우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딤후 4:7,8).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