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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황혼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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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12월호>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시 90:10). 성경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는 구절들이 여럿 나오는데, 모두 노인들이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루고 있다.대개 나이가 들면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하느라 마음이 침체되기 십상이다. 자주 외로움을 느끼고,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자신은 타인에게 짐만 될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본 글에서는 인생의 황혼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시편 71편"의 내용을 중심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리투아니아라고 한다. 또한 대학생들의 주된 사망 원인 중 하나도 자살이라고 한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모델로 경력을 쌓기 시작해서 부정한 성관계를 발판으로 최고 여배우의 위치에 오른 여성이 있었다. 잡지 누드모델로 활약하여 미국의 섹스 심벌로 추앙받기도 했는데, 바로 마릴린 먼로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모두 가졌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많은 여인이었다. 돈과 인기를 누렸으며 사람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그녀는 원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요즘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이 사회적인 쟁점이 되고 있다. 즉 "명예롭게 죽기"를 원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나 말기 환자가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지만, 세상 죄인들은 이런 예외적인 상황을 허용해 주면 그것을 빌미로 더 큰 죄악을 범하게 된다. 예컨대 정부가 이런 처지에 직면한 사람들 중에서 살릴 사람과 죽일 사람을 임의로 결정해 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실제로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러시아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아직 심장이 뛰고 있고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는 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상에 남겨 놓으신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진작 데려가셨을 것이다.
우선 이곳 지상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상에 남겨 놓으신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소망을 지니고 더욱더 주를 찬양하리이다』(14절). 생의 끝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 많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다윗이 생애 막바지에 마지막으로 기록한 노래가 사무엘하 22장이다. 『그러므로, 오 주여, 내가 이방 가운데서 주께 감사드리며, 또 내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삼하 22:50). 사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인생 여정의 끝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애에서 이루어 주신 일들과 지금도 이루시고 있는 일들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나이 많은 성도들은 젊은 성도들보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젊었을 때처럼 방해하는 요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구식 감리교 설교자 밥 슐러(1880-1965)와 같은 나이 지긋한 성도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나는 슐러 목사를 그가 70대였을 때 보았는데, 심장 마비를 앓아서 몸의 왼편은 거의 마비되어 있었고 왼쪽 눈은 감겨 있었으며 다리도 절면서 걸었다. 당시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에 있는 밥존스대학교로 와서 그런 몸으로 50분간이나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다.
다시 말해 수많은 죄인들이 지옥으로 향해 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할 노인들이 필요한 것이다. 『내 입이 주의 의와 구원을 종일 전하리니 내가 그것을 헤아릴 수 없음이니이다』(15절). 어떤 성도가 침대에 누운 채로 죽어 가고 있었는데, 구원받지 않은 그의 아들이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예수님을 슬쩍이라도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슬쩍이라도 본 적 있냐고? 얘야, 나는 지난 40년 동안 예수님만 주시하고 살았단다." 당신이 70-80대에 접어든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충분히 주님을 본 것이다. 이제는 그분에 대해 증거해야 할 때다!
『내가 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리니 내가 주의 의, 곧 주의 의만을 선포하리이다』(16절). 신약 성도들에게는 무엇이 "하나님의 의"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롬 10:3,4, 고전 1:30). 오래 살면 살수록 구주이신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말을 해야 한다. 나는 십 대 손자와 함께 살았던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느 날 이 손자 녀석이 여자 모델과 록 가수들의 사진들로 자기의 방 벽을 도배하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던 할머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그림을 사 와서 손자의 방 벽에 걸어 놓았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손자가 붙여 놓은 사진들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다만 예수님의 그림을 사진들이 붙어 있는 벽 중앙에 걸어 놓았을 뿐이다.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본 손자는 다른 모든 사진들을 제 손으로 떼어 냈다. 한번은 그의 친구가 놀러 와서 깨끗해진 벽을 보고 왜 사진들을 다 떼어 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손자가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셨는데, 당연히 다른 모든 것들은 내려와야지!" 그는 적어도 예수님과 자기 할머니에 대해 그 정도의 존경심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할머니는 손자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어도 주님을 위한 좋은 증인이 될 수 있었다. 이처럼 나이가 많이 들어서 말을 잘할 수 없는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복음전도지를 편지 봉투에 넣어 보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처럼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만 골몰한 나머지 다른 큰 기회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제 내가 늙고 백발이 된 후에도 오 하나님이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내가 주의 능력을 이 세대에 전하고 또 주의 권능을 장차 올 모든 사람에게 전할 때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18절). 흔히 할머니들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지니지 못한 능력 하나를 가지고 있다. 비할 데 없이 마음이 완악한 젊은이라도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다가와서 "여보게 젊은이, 하나님께서 자네를 사랑하시고 나도 자네를 사랑한다는 점을 잘 알았으면 좋겠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네를 위해 죽으셨고, 나 또한 자네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네!"라고 말할 때 감동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옆에 있는 친구들을 의식해서 당장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지언정, 그 말을 오랫동안 두고두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노인이 거친 젊은이들을 상대하는 게 위험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손해 볼 게 뭐가 있는가? 분명 주님께서는 당신을 보호해 주실 것이고, 설령 얻어맞아 죽는다 할지라도 그만큼 당신은 하늘나라에 더 빨리 가게 될 것 아니겠는가! 한번은 어떤 사람이 존 R. 라이스에게 죽이겠다고 협박했을 때, 그는 "나를 지금 당장 하늘나라로 보내 주겠다는 그런 식의 말로는 결코 협박할 수 없을 것이오!"라고 응수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자세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적인 배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의 권능을 장차 올 모든 사람에게』(18절) 전할 수 있도록 진력해야 한다. 나이가 든 그리스도인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은 자문해 봐야 한다. "내 손자들은 나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언젠가 어떤 어린 손녀가 그리스도인 할머니에게 물었다. "왜 할머니는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읽으세요?" 그러자 그 할머니는 "응, 기말고사 준비하고 있는 거란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소망을 지니고 더욱더 주를 찬양하리이다』(14절). 대체로 나이가 들면 행동이 느려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줄여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모세, 다윗, 바울 등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야구나 낚시, 사냥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바울은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이 다가왔다고 해서 불평하거나 자기 처지를 한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혹자는 바울이 처자식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처자식이 있었던 여호수아는 어떠했는가? 그는 인생 말년에 아무도 자기를 찾아오지 않고 자식들이 전화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평하며 보내지 않았다. 백 살을 넘긴 나이에도 여호수아는 여전히 주님을 섬기겠노라고 말했던 것이다(수 24:15).
나는 다윗 휘하의 전사들 중 하나였던 엘르아살의 일화를 좋아한다. 그는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되 『그의 손이 칼에 달라붙을 때』까지 싸웠다(삼하 23:9,10). 전투가 끝난 뒤 전우들이 그의 칼을 손에서 떼어 주었을 때, 칼을 단단히 붙들었던 그의 손에는 필시 칼 손잡이 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성령의 칼』(엡 6:17)을 너무나 꽉 붙들어서 그 칼을 자신의 일부가 되게 할 수 있는(시 119:11) 그런 성도들이 필요하다. 창세기 1:1에 엄지손가락을 붙이고 거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 22:21에 이르기까지 손바닥으로 둘러서 꽉 쥔 채로, 소위 "선하고 경건하며 헌신된" 근본주의자들이 뭐라고 유혹하며 떠들든지 그 칼을 절대로 내주지 않을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들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밥존스대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밥 존스 시니어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이따금씩 그는 병동에서 가방을 꾸리고 나와 집회에 가야 한다며 기차를 타기 위해 길가에서 기다리곤 했었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설교하러 다녔기에 설교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병원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가려 하는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제일 사악한 마귀야! 내가 설교하러 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잖아!"
드위트 탈마지 목사의 교회에는 90대의 늙은 "십자가의 용사" 한 명이 있었다. 한때 장로교 목사였던 그는 미국의 제4대,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메디슨과 제임스 먼로의 자문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 노인은 어찌나 노쇠했던지 서서 찬송을 부를 때는 예배당 기둥을 붙들고 일어나야 했다. 이윽고 그가 임종할 때가 되자 탈마지 목사가 그를 찾아와 기도해 주려고 했다. 그는 탈마지 목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저도 목사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어요. 저는 이들 죄인들에게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고 하늘나라를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선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 침대에 누운 채로 두 팔을 벌리고 20분 동안 설교를 했다. 그 역시 너무도 단단하게 성령의 칼을 붙든 나머지 칼이 그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신 역시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 연수의 힘이 수고와 슬픔이 되었다 할지라도, 마지막 한 번 더 힘을 내어 그 칼을 휘두르면서 구주이신 예수님에 관해 온종일 말할 수 있다! 『내 입이 주의 의와 구원을 종일 전하리니』(15절). 『내 혀도 온종일 주의 의를 말하리니』(24절).
전혀 늙지 않을 그곳에서
제임스 C. 무어
저 멀리 하늘나라 강변에 대해 들었다네
주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내 본향
결코 죽음 없는 그곳
늙음 없는 내 본향
아름다운 본향에는 방황할 일 없으리
이제 곧 그곳에서 편히 쉬겠네
만왕의 왕 주님께 복된 찬송 영원토록 드리리니
늙음 없는 내 본향에서
나의 달려갈 길 마치고
면류관 받으리
모든 슬픔 고통 사라질 때
앞서간 성도들 만나 영원히 주를 찬양하겠네
늙음 없네 늙음 없네 전혀 늙지 않을 그곳에서
늙음 없네 늙음 없네 전혀 늙지 않을 본향에서
나는 본 글을 읽는 독자들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른다. 아몬드 나무에 이미 꽃이 피기 시작했을 수도 있고, 태양 빛이 저 영원의 산들 위를 덮은 설원에 반사되어 당신에게 비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건강을 유지시켜 주셔서 당신으로 하여금 정신력을 말짱하게 해 주실지 어떨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온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입을 열 수 있는 한,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중단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계속 전진해야 한다.
당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라! 믿음을 지키라! 침체하지도 말고 낙담하지도 말라! 주님께서 주시는 기회들을 놓치지 말라! 또한 하나님께 기회를 더 주시라고 기도하라! 당신이 달려왔던 믿음의 경주에서 결승선이 가까이 왔다고 속도를 늦추지 말라! 『형제들아, 나는 내가 붙잡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만 한 가지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에 손을 뻗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쫓아갈 뿐이라』(빌 3:13,14).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