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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그리고 책망과 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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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12월호>
『이는 계명은 등불이 되고 법은 빛이 되며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 되어』(잠 6:23). 『현명한 사람을 한 번 책망하는 것이 어리석은 자를 백 번 때리는 것보다 더 깊이 박히느니라』(잠 17:10). 『순종하는 귀에 현명하게 책망하는 자는 금귀고리와 정금 장식물 같으니라』(잠 25:12)."견책하다"와 "책망하다"는, "말로 바로잡다"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서로 비슷하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견책하고 책망하며 권고하라』(딤후 4:2). 사실 책망과 꾸짖음은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대놓고 꾸짖는 사람을 친구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아이들은 늘 꾸지람을 듣는다. "아직도 잠자리 정리를 안 했니?" "옷을 그렇게 입고 밖에 나간다는 거니?" "소파에서 일어나 뭐라도 좀 해라!" "우유 다 마시기 전에는 못 간다." "일단 야채부터 먹어야 과자를 먹을 수 있어!" 정말이지 아이들 입장에서는 항상 그런 책망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좀 재미있게 살고 싶은데 부모가 모든 일에 사사건건 통제하려 한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당신이 훗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훈계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까지 당신이 인생을 망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책망"을 듣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종종 우리는 그 책망을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명령하신 시리아의 벤하닷을 살려 준 일로 인해 한 젊은 선지자가 아합을 책망했을 때, 그는 그 책망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든 나머지 『무겁고 불쾌한 마음으로』(왕상 20:43) 집으로 돌아갔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향해 『당신이 그 사람이니이다.』(삼하 12:7)라고 꾸짖었을 때 다윗은 올바른 반응을 보였는데, 변명하지 않고 『내가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노라.』(삼하 12:13)라고 자백했던 것이다. 이로써 다윗은 자비를 얻었지만 "강력한 책망"만큼은 받아들여야 했다. 잘못을 깨닫게 되었을 때 다윗처럼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교만"은 마음을 높아지게 하여 스스로를 방어하게 만든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정해 놓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떤 일에도 쓰실 수 없었다." 자신이 별것 아닌 지극히 "평범한 존재"임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젊은이는 군대에 갔다 오는 것이 좋다! 교관, 하사관, 장교들로부터 욕도 들어 보고 괴로움도 당해 봐야 스스로를 별것 아닌 존재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이 교회에 와서 "죄인은 지옥으로 가서 마른 장작더미처럼 활활 탈 것이다."라는 설교를 듣고 있기가 힘들다는 것을 필자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설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라디오 방송 설교자들은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다. 청취자들이 돈을 보내 줘야 라디오 방송국에서 계속 설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림 설교"를 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의 돈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혼내 주길 원할 뿐입니다." 필자는 설교를 부드럽게 하면서 청취자가 보내 준 2만 달러를 받는 것보다, 누군가가 "당신의 어조가 맘에 들진 않았어도 진실이 담긴 당신의 설교를 통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라고 보내 온 편지를 받기 원한다.
리차드 움브란트는 복음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루마니아의 강제 수용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공산주의자들이 처음 루마니아를 접수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 아는가? 그들은 설교자들이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다"라고 설교하는 것은 좋지만, "마귀가 악하다"라는 설교는 하지 못하게 했다. 요한복음 3:16이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 등과 같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괜찮아도, 죄와 지옥과 마귀에 대해서는 설교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공작을 펼친 후에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고 감금하는 가운데 결국 교회들을 폐쇄시킨 것이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는 "오늘날의 기독교는 성경이 없는 종교이자, 성령님이 없는 기독교이며, 지옥이 없는 하늘이요, 참된 거룩함이 없는 겉치레이자, 하나님이 부재한 도덕률이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여기에 "수치와 책망을 주지 않는 기독교 교육이자, 구령이 없는 성별"을 추가하고 싶다. 필자는 "목적이 이끄는" 프라미스키퍼들의 "구도자 중심"의 설교자들이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일에 관해 단 한마디의 말이라도 내뱉는 것을 들어 보지 못했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그리스도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딤후 4:3). 건전한 교리는 "책망"과 관련이 있다(딤후 3:16). 특히 바울이 젊은 설교자에게 『너는 건전한 교리에 부합되는 것들을 말하며』(딛 2:1)라고 권면했을 때, 그것들은 모두 "휴거"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이었다(딛 2:12-14).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하지 않기 때문인데, 곧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께서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라고 말씀하셨다. 죄에 대해 책망하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요 16:9). 요한계시록 21:8에서도 인간을 불못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으로 "두려워하는 것"과 "믿지 않는 것," 이 두 가지 죄를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손해를 당할 것이 두려워서 믿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로 지옥에 가기 싫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한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이 있고 당신의 역할이 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당신을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고(딛 3:5),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요 1:12). 구원에 있어서 당신의 책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시인하는 것이며(롬 10:9,10), 하나님의 책임은 예수님을 믿은 당신의 죄들을 용서하시는 것이다.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 되어』(잠 6:23), 즉 책망에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생명을 유지시켜 줄 수 있다. 어떤 상황이든지 "합당한 책망"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당신이 잘못했다면 마땅히 책망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잘 유념하여 그 책망에 따라 변화해 가는 것이 잘하는 일이다. 때때로 현명한 책망은 유익한 방향으로 우리를 바로잡아 준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 인격을 잘 형성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을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자기 부모를 "아동 학대"로 고발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자란 아이들은 인격이 형성되지 못하여 결국 범죄자가 되고 만다. 혹시 당신도 이 땅의 부모가 무언가를 시킨다는 이유로 그분들을 "야비하고 나쁜 사람들"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하늘의 아버지께서 무언가를 하라고 시키실 때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할 것인가?
당신은 누구의 훈계를 받아들이는가? 기독교 대학의 교수들은 진리에 관한 한 자신들보다 전혀 나을 게 없는 학자들의 지도를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성경을 고치는 학자들은 누구의 훈계를 듣는가? 소위 기독교 유명 인사들은 절대로 그들을 훈계하는 법이 없다. 낙태, 변태 성욕, 좌익 사회주의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설교를 해도, 성경을 망치는 자들을 반대하는 설교는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성경 말씀이 당신을 책망할 수 없다면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 변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면, 과연 그런 자들을 누가 책망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책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나운 "고물상 개"와 같은 필자를 일으키셔서 성경을 고치는 자들의 엉덩이를 물어뜯게 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필자 외에도 더 많은 신실한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지난 130년 동안 성경을 변개한 출판사들, 번역자들, 교수들을 대항하여 맞서게 하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런 죄인들에게는 선지자 엘리야처럼 일어나서 그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며 놀려 줄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하다(왕상 18:27). 이는 성경 변개자들이 이미 그들의 강의실에서 감히 성경을 모독하고 조롱하고 비웃었기 때문이다. 모슬렘들도 마찬가지이다.
현명한 책망이 매서운 벌보다 훨씬 낫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자백하고 스스로를 바로잡는 것이 하나님께 매질을 당하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겠는가?(히 12:5,6) 성경 말씀으로 매를 맞는 것이 교통사고, 질병, 가정 파탄, 파산, 불구 등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낫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징계들을 있는 그대로 다 내리셨다면 진작 우리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플로리다 주의 잭슨빌에서 목회를 하던 한 친구가 그의 교회의 집사 한 명과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한번은 골칫거리인 그 집사를 교회 앞에서 마주쳤는데, 그는 담배를 피우면서 목사인 친구의 얼굴에 연기를 뿜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십일조도 잘 냈고 이 교회에서 내 맘대로 해 왔소. 나는 당신이 오기 전부터 있었고, 당신이 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오!" 그러자 그 친구가 이렇게 대꾸했다. "당신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의 목사가 아니니까, 이제는 당신이 직접 하나님과 상대하도록 하시오!" 결국 그다음 날 새벽 4시에 그 집사는 죽고 말았다. 그는 그의 목사의 말을 듣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를 다루는 방법이나 정도에 있어서 하나님보다는 목사인 내 친구가 훨씬 "유했기" 때문이다.
어떤 성도들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목사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조금도 일깨워 줄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직접 다루셔야 한다. 그런데 때때로 주님께서는 아주 매서운 교육 방법을 사용하신다. 성경 말씀으로 고함치고 혼내는 목사 아래 있는 것이 주님의 매로 엉덩이를 맞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용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무시하는 것이냐?』(롬 2:4)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완고한 마음을 따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계속 거절한다면, 그는 "진노의 날에 그에게 임할 진노"만 쌓게 된다(롬 2:5). 지금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중에는 큰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닫아 버렸다. 어떤 기자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지금 죽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생각대로 변명하면서 자신은 안전하다고 대답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책망과 꾸짖음을 받으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의견에 근거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시고, 결국 그들로 하여금 지옥에서 눈뜨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행하시는 "최악의 일"은 그를 무지하게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 즉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교회에 20년, 30년, 40년 이상 다녔으면서도 목사로부터 "당신은 죄인이고 지옥에 가서 불타게 될 것이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오!"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는 일인 것이다. 이렇게 설교하기를 꺼려하는 설교자는 "십일조를 내는 사람들"을 잃어버릴까 봐 그렇게 한다. 자기가 돌봐야 하는 사람들의 "혼"보다 "수입"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다.
필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좋아한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그곳 상공을 지나갈 때면 "영적인 기근"을 감지하게 된다. 성령님께서 그 나라의 국민들을 다루시기를 그만두신 것이다. 물론 선교사들이 한두 명씩 주님께로 이겨오기는 해도 대규모의 부흥이나 회심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루시는 것을 중단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다루고(합리주의, 고등 비평 등), 하나님의 백성(유대인)도 함부로 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카봇"(삼상 4:21)이라 쓰시고 그 나라를 다루시기를 중단하시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그래? 너희 학교들에서 성경도 없애고 기도도 없애고, 또 십계명도 필요 없단 말이지? 좋아, 맘대로 해 봐. 지금부터 변태 성욕자들이 화장실에서 너희 자식들을 능욕하고, 모슬렘들이 트럭으로 너희를 치고, 마약 중독자들이 총을 쏘아 대고, 국제사회주의자들(공산주의자들)이 거리에서 폭동을 일으켜도 나한테 우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그토록 너희들이 원하니까 그대로 해 줄 것이다!"
『오 땅아, 들으라. 보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오리니, 곧 그들의 생각의 열매라. 이는 그들이 내 말들과 내 법에 경청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라』(렘 6:19).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