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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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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0월호>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각종 사랑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정감 있는 단어이다. 성경에는 첫 사람 아담과 이브의 사랑은 물론이요,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문자적으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늙은 나이에 낳은 독자 아들을 사랑했던 아버지 아브라함과 그 아버지를 사랑하여 믿고 따르며 죽음에까지 순종했던 아들 이삭의 이야기이다. 성경의 첫 번째 책에 처음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이 보여 준 극진한 사랑, 즉 “부자지간의 사랑”은 누구나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이제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서, 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 줄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시더라』(창 22:2).그 다음으로 기록된 “사랑”의 내용은 남녀 간의 사랑을 적고 있는데 바로 아브라함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이삭이 결혼하여 그의 아내인 리브카를 사랑하는 모습이다.
『이삭이 그녀를 자기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가서 리브카를 취하니, 그녀가 그의 아내가 되었고 그가 그녀를 사랑하였더라. 이삭이 자기 모친이 죽고 난 후 위로를 받았더라??(창 24:67).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은 부모와 자식들 간의 사랑, 즉 이삭이 사랑한 에서와의 부자지간의 사랑과 이삭의 아내 리브카가 특별히 사랑한 야곱과의 모자지간의 사랑도 따로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부모의 편애를 숨김없이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삭이 에서를 사랑했는데 이는 그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라. 그러나 리브카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창 25:28). 성경은 이런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간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 주시고, 또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신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진한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임을 중점적으로 말씀하신다. 그런데 성경은 이 아름답고 놀라운 대서사시와도 같은 긴 사랑의 여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언젠가는 그 사랑이 아름답게 완성될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내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음이라.“고 하더라』(계 21:4).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막연한 것이 사실인지라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하곤 한다. 그 중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한다.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탕자의 비유에서 보자면, 그 배은망덕한 아들을 노심초사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그 아들의 모든 죄를 용서함은 물론, 어서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이 잘 그려져 있는데, 이 모습을 통해서 오늘날 잃어버린 바 된 혼들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아들은 자신의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다니면서 방탕한 삶을 살다가 결국은 거지가 되고, 할 수 없이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죄를 지었다고 자백하며 아들이라고 불릴 만한 자격은 없으나 다시 받아 줄 것을 간청한다. 그 때 아버지의 반응은 그 아들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최상의 대우를 해주며 따뜻하게 맞아 준다는 내용이다(눅 15:11-24). 이것은 바로 탕자를 조건 없이 받아들인 그의 아버지와 같이 이 세상의 죄인들을 조건 없는 사랑으로 받아 주시겠다고 날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잃어버린 자들을 아직도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노라면, 문득 복음을 거절하는 것은 물론 사악한 악담으로 그분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물 건너 생면줄 던지어라.”(<영광을 주께> 398장)는 3절에 “시급히 생명줄 던지어라. 극심한 고난을 당하누나. 사망의 바다와 세상 물결 저 캄캄한 곳으로 쉬 가겠네.”라는 가사로 절박함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사에 어울리는 대상은 바로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선량한 자들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게 복음의 생명줄을 던져야 하고 그중에는 그것을 붙잡는 자도 붙잡지 않는 자도 있겠지만, 탕자처럼 자발적으로 돌아오는 자에 대해서만이 그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죄인들을 위하여 내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분께 순종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고 죄인을 구원하시어 자신의 몸인 신부로 삼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역시 놀랍기만 하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그처럼 사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사랑하셨건만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다. 또한 이삭이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여 결박을 당했듯이 아들 예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여 기꺼이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여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인간들을 향한 놀라운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리하여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할 죄인들의 신분은 죄 용서함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급격한 신분상승으로 이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을 성경은 신비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위대한 신비라.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 관하여 말하노라』(엡 5:32).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시되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사랑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남편들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라고 말씀하신다. 『남편들아, 너희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엡 5:25).
구약성경 솔로몬의 노래에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 책에 기록된 신랑과 신부의 사랑 고백을 보라! 얼마나 최상의 표현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 화답해 주는가!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에 있는 캠퍼 송이로다. 보라, 나의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보라, 너는 어여쁘도다. 너는 비둘기의 눈을 가졌도다. 보소서, 나의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아름다우시며 참으로 사랑스러우시니 우리의 침상도 푸르나이다』(솔 1:14-16). 이것은 신부가 신랑을 향하여 쏟아 놓는 찬사들이다. 그런데 신부보다 신랑이 더욱더 강렬하게 그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는 사실은 신부에게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신랑의 말을 들어보자.
『내 사랑아, 너는 모두가 어여쁘니 네게는 흠이 없구나. 나의 신부야, 레바논으로부터 나와 함께 가자. 레바논으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의 정상에서, 스닐과 헤르몬의 정상에서, 사자들의 굴들에서, 표범들의 산들에서 바라보아라.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아 갔구나. 네가 한 쪽 눈과 네 목의 사슬 한 개로 내 마음을 빼앗아 갔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어여쁜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훨씬 더 낫고 네 향유 내음은 모든 향료보다 더 낫도다! 오 나의 신부야, 네 입술은 벌집의 꿀처럼 흐르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으며, 네 옷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도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겨진 동산이요, 닫혀진 우물이며, 봉해진 샘이로다』(솔 4:7-12). 물론 이 은혜는 우리의 의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신랑 되신 주님께서 흘려 주신 보혈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감개무량한 삶을 살고 있는지 구원받은 죄인들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새 예루살렘으로 묘사하고 있다(계 21:9-10).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랑 되신 주님과 영원히 함께할 날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게 해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있던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은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는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을 생명수의 강가로 초청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이 땅에서 지금 떵떵거리는 세상 특권층과는 질적으로 다른 영적 특권층인 것이다. 『또 성령과 신부가 말하기를 “오라.” 하더라. 듣는 자도 “오라.” 말하게 하고, 또 목마른 자도 오게 하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할지어다』(계 22:17). 이 놀라운 주님과의 사랑의 여정은 천년왕국에서의 천년 통치가 끝나면 영원세계로 이어져 그야말로 범우주적인 사랑의 대서사시가 완성되게 될 것이다. 이런 놀라운 미래를 약속하시고 알게 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자!!!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