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해외기사 분류

하나님의 사역에서 “탈선”하지 말라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3월호>

피터 S. 럭크만 / 김진석 옮김

기차가 선로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리는 “탈선”했다고 말하는데 요즘에는 여객 수송용 항공기에도 유사한 표현을 쓰는 것 같다. 나의 유년시절(1921-1931)에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여객기가 아니라 기관차였다. 똑똑한 소년이라면 적어도 5개의 철도 노선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또한 소년들 중에는 기차를 타고 여행해 본 적이 있든 없든 철도 노선을 10-15개나 알고 있는 친구들도 여러 명 있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과거에 철도가 하던 역할을 트랜스월드항공, 브래니프국제항공, 아메리칸항공, 피드먼트항공, 레이크센트럴항공, 노스센트럴항공, 유에스항공, 모호크항공, 써든항공, 트랜스텍사스항공,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이스턴항공 등의 항공회사가 대체했다. 하지만 소싯적에는 유니언퍼시픽, 산테페, 볼티모어앤드오하이오, 루이빌앤드내슈빌, 펜실베이니아, 뉴욕센트럴, 트웬티스리미티드, 밀워키로드, 미주리퍼시픽 등의 철도 노선이 우리의 관심사였다. 독자도 알듯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필자가 지금(당시 64세) 사역을 DC-10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보다 승객과 화물을 실은 열차에 비유하는 이유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볼 때 “사역”은 증기의 힘을 받아 천천히 출발하여 점점 추진력을 더해가는 기관차와 같다. 당연히 주님께서 수석 기관사이시고, 제동수는 성령님의 역할이다. 그리고 나의 임무는 단순히 “석탄을 모두 삽으로 퍼 넣고 기차가 계속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일리노이 센트럴 철도회사가 운영했고 케이시 존스가 운전한 “캐논볼호”는 1900년 4월 29일 소위 “약속의 땅으로의 작별 여행”을 떠났는데, 앞에 정차해 있던 4대의 차량과 추돌했을 때 유일한 사망자가 케이시였다. 존 뉴베리가 멈춤 신호를 보냈는데도 케이시가 계속 진행하여 추돌했기 때문에 일종의 자살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필자 또한 “약속의 땅으로의 여행”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기차에 타는 승객과 화물에 관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기에 이 지면을 빌어 당신과 그것을 “공유”하고자 한다(나도 현대인들이 쓰는 “공유”라는 말을 써 봤다. 현대인들은 “공유하다”는 말을 “회개하다”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첫째, 승객은 각 역마다 바뀐다. 어떤 사람은 타고, 어떤 사람은 내린다. 37년 동안 사역을 하고 나니 처음에 나와 함께 시작한 이들 중 남아 있는 이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기관차에 붙어 있는 대부분의 차량은 20년에서 25년 전부터 함께했고 원래부터 있던 차량도 있으며, 지금까지 이탈한 차량만 해도 수백 대이다.

둘째,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관차와의 연결을 끊었고 “이탈”했다. 이런 차량들 대부분이 기차가 화물을 운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하나가 아닌 두세 개의 기관차들이 차량들을 이끌기 원했다. 그들 중 일부는 계속 움직이는 것에 지쳐서 잠시 쉬고 싶어 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연결하거나, 혹은 분리하는 화물차량을 싫어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타고 싶은 차량에만 타기 원했고, 그렇지 않으면 여행 자체를 거부했다. 그래서 그들은 선로에서 자기가 타고 싶은 차량만을 기다리다가 죽고 말았다. 그들이 좋아하는 차량은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이탈했다가 다시 탑승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중 일부는 창밖에 비치는 어떤 경치에 현혹되어 자기 여행이 비로소 끝났고 약속의 땅이 바로 여기라고 판단해 버리기도 했다.

셋째, 그런 이들 중 두어 사람은 기차가 사고 난 뒤로 선로를 벗어났다. 그들은 기관차가 작동하지 않아 다시는 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차는 그들 없이도 전속력으로 “노선”을 따라 운행을 계속했다. 그들 중 일부는 정거장에서 기차를 갈아타면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행만큼이나 좋다고 생각하며 떠났다. 어떤 이들은 원형 기관차 차고에 수리차 잠시 정차했다가 나중에 완행 기차를 타고 오기도 한다.

넷째,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화가 났다는 이유로 억지로 기관차를 멈춰 세워서 이탈했다가 이미 2,000마일이나 앞서 가버린 기차에 다시 탑승하려 하는 승객들이다. 그들은 남반구에 몇 달 내지는 몇 년 동안 앉아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제트기를 잡아타고 날아가서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자 다시 탄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차에서 하차했을” 때와 상황이 달라진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예전 같지 않다!

1 “화부”(목사)는 더 강력해졌다. 기차가 2,000마일을 달리는 동안 석탄을 삽질하여 계속 퍼넣다 보면 화부는 근육이 붙기 마련이다.

2 “기관사”(주님)는 그동안 밤낮으로 속도 조절기를 제어했고 짜증내기 좋아하는 승객을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시지 않는다. 그는 기차가 “달려갈 길을 모두 달리는” 데만 전념하고 있다(딤후 4:7).

3 “제동수”(성령님)는 선로로 들어오는 소나 술 취한 사람, 선로에 멈춰 있는 자동차, 차단 막대가 내려온 뒤에도 앞으로 튀어나온 자동차의 트렁크, 눈보라, 얼어붙은 선로 등의 “아슬아슬한 상황”을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그 역시 기차가 “예정대로” 운행되게 하려고 모든 시간을 바쳤다. 그래서 누가 다시 탔는지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재탑승자들”은 그들이 기차를 버렸을 때보다 기차에서 더 많은 잘못된 점을 발견한다. 즉 이제는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애초에 그들이 기차에서 내린 이유였다. 이전에 그들은 자신의 희망과 변덕대로 되지 않아서 불만이었고, 아무도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묻지도 않아서 뿔이 났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승객들이 기차에 타고 있으며, 새로운 승객들 대부분은 그들이 내린 후에 탑승한 사람들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어울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뭔가가 잘 맞지 않을뿐더러 잘 맞아 들어갈 수도 없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기차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내린 사람들이 결코 참여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함께 경험했다. “외부인”이 된 그들이 이제는 참여할 수 없는, 기차의 여정 속에 있었던 궁핍과 고통, 박해 가운데서 싹튼 동지애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2) 기차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수없이 많이 보았으나 재탑승자들은 그것을 놓치고 보지 못했다. 계속 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승객들은 영적으로 강화되고 은혜 안에서 성장했다. 또한 그들은 사역의 성격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떠났다가 나중에 다시 합류한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고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암 3:3) 다시 탑승한 사람들이 “육신”을 보았던 바로 그곳에서, 여전히 남아 있던 승객들은 “주님”을 기뻐하는 법을 배웠다. 재탑승자들이 단지 설교를 “강의”라고 치부한 반면, 나머지 승객들은 “믿음이 성장했다.” 재탑승자들이 “독재”와 “선동”이라고 불만을 품은 반면, 함께한 승객들은 “영적인 리더십”을 보았다.

다섯째, 기차를 계속 타고 있던 이들은 기차나 다른 승객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좋은 것들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악천후, 연료 부족, 정전, 눈보라, 급유를 위한 정지, 비상 정지, 지연 등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차에 남아” 있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약속의 땅까지 가는 길이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요 15:18; 16:3, 히 11장).

나 역시 목사와 교사, 복음 전도자, 거리설교자로 37년간 사역한 후에 내 기차에 연결된 “차량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49년부터 나의 기관차와 석탄차에 합류한 40,000대의 차량 중 1949년부터 함께한 차량이 약 20대 정도이다. 1959년에 연결된 약 50대와 1969년에 연결된 약 100대가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1979년에 연결된 약 500대가 남아 있고, 그 밖의 모든 차량은 (30,000대 이상) 새로이 연결된 차량들이다. 또한 1949년부터 “나와 함께” 있었고 지금도 나와 함께하는 목회자가 약 10명 정도 된다. 게다가 1949년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밀착해 온 성도가 약 10명 정도 된다. (즉 그들은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도 여전히 나를 믿고 내 사역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다.) 나는 미국 내 거의 모든 주에 있는 300개의 지역 교회에서 500회가 넘는 집회에서 설교한 후에도(그렇게 함으로써 1953년부터 1983년까지 적어도 60,000명의 새로운 사람들과 접촉한 후에도) 1949년에 시작했을 때와 동일한 기관차, 동일한 기관사 및 제동수와 함께하고 있으며 1985년에도 여전히 철로를 질주하고 있다! 나는 시속 110마일(177km)의 속도로 철로를 따라 곧장 앞으로 달리고 있다. 이는 미국인들이 익히 아는 “허밍버드호”(L&N사), “플라밍고호”(L&N사), “캐논볼호”와 같은 기차들보다 빠른 속도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새마을호”나 “KTX,” “SRT”보다 빠른 속도로, 그만큼 사역의 추진력을 늦추지 않고 달려왔다는 뜻임 - 역자 주). 나는 “속도제한 - 시속 55마일”이라는 표지판을 무시하고 달려왔다. (나는 55세가 넘어섰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인생은 용감한 기관사와 함께 높은 산을 따라 만들어진 위험한 철로를 달리는 증기 기관차에 탑승한 것과 같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성공적으로 달려가야 한다. 오르막길 구간과 곡선 구간과 터널 구간을 조심하라. 결코 흔들리지 말라. 결코 낙심하지 말라! 속도 조절기를 손으로 꽉 붙잡고 눈은 앞에 있는 선로에 두라!”

나는 내 기차가 종착역인 “그랜드 센트럴역”에 천둥과 같은 소리를 내며 도착하고 기관차의 엔진이 멈춰 서고 밸브에서 증기가 터져 나올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나는 “믿음을 지키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기”를 원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역장”께서 친히 석탄으로 얼룩지고 굳은살로 가득한 내 거친 손을 붙잡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라』(마 25:21). 나는 석탄을 퍼나르던 삽을 내려놓고 내 목마름을 달래 주던 물병도 버리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하고 정결한 강에서 내 혼을 씻을 것이다. 그런 후 나는 “늘 푸르른 생명 나무의 그늘 아래 앉아” 쉴 것이고,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나의 사역에 함께한 “승객” 명단을 보시며 그분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하실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기관차에 붙어 있는 화물과 승객을 데리고 무사히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다. 기관차에 연결된 차량들의 행렬에서 스스로 이탈한 차량들은 내 책임이 아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다루실 것이다. 『데마는 이 현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크레스케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티아로 갔으며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는 내 사역에 필요한 사람이니라』(딤후 4:10,11). 이것이 내가 “사역”에 대해 가진 신념이며 또한 사역을 비유하고자 할 때 당신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들이다.

언젠가 앞에 놓인 선로에 안개가 자욱했을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훨씬 더 선명해졌다. 나도 과거에는 수천 개의 분기점, 노선 변경 구간 등에서 제대로 운행하지 못했고 또 길을 잘못 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직선 구간만 내 앞에 남아 있는 듯하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라! 있는 힘껏 밟아라!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 『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모두 달릴지라도 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너희도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고전 9:24). BB

해외기사 135 / 2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