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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삼키는 가증한 의식,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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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9월호>
매주일 오전 11시가 되면, 소위 “미사”를 드리면서 “인육”을 먹는 가증한 “종교 집단”이 있으니, 곧 “로마카톨릭”이다! 카톨릭 사제들(주교들, 신부들)은, “미사” 중에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를, 그들의 축사를 통해 초자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바꿀 수 있다고 거짓말한다. 이런 가증한 속임수는, 아래의 <카톨릭 교회 교리문답, 1994>에서 확인할 수 있다.「우리의 구속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빵의 형태로 그분이 제공해 주시는 것이 실제 몸이라 하셨으므로, 그것은 항상 하나님의 교회가 믿는 바였으며, 이제 다시 이 거룩한 공회는 빵과 포도주를 성별함으로써 빵이 그리스도 우리 주의 몸의 실체로 바뀌며, 포도주가 그의 피의 실체로 바뀐다고 선언하는 바이다. 이러한 변화를 거룩한 카톨릭 교회가 화체설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고 알맞은 것이다」(제1376항).
「성찬 의식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거룩한 성령의 간구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 빵과 포도주이다」(제1333항).
「그리스도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성별하는 순간에 성찬식에 임재하시며, 성찬 빵 조각이 있는 동안 계속 머무신다. 빵을 떼는 것이 그리스도를 나눌 수는 없기 때문에, 각 빵 조각 속에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하고도 전체적으로 임하시며, 각 부분들에 완전하고도 전체적으로 임하신다」(제1377항).
이 어리석고 무지한 집단은 이런 가증한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요한복음 6장”을 “근거 본문”으로 제시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성경에 무지한 자들”인지, 또 “얼마나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데 둔한 집단”인지만 드러날 뿐이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행 28:26)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해한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이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임이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하느니라.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 역시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너희 조상이 만나를 먹고 죽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하시니라』(53-58절). 이 본문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54,56절)라는 말씀은, “로마카톨릭”의 주장처럼, “인육”을 즐기는 “식인종”이 “식인 풍습”(Cannibalism)을 즐기듯,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뜯어 먹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잔에 담아 마시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63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은 지금 “문자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초림 당시, 이 말씀의 진의를 오해한 “유대인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그것을 들을 수 있겠느냐?』(60절)라고 반문했고, 결국 『제자들 중 많은 자들이 물러가고 더 이상 주와 함께 다니지』(66절) 않게 되었다. 이에 반해 어리석은 “로마카톨릭”은 그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문자적”으로 실행하는 가증한 짓을 행하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의 “참된 의미”는 “주님의 실제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니, 즉 그분이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라.”고 하시니라』(29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또 이것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니,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라. 그리고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고 하시더라』(40절).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졌나니』(47절). 이렇듯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의미가 너무나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기에, 그 말씀을 오해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당시 똑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설교를 듣고 있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혀 오해하지 않았고,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열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시니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들이 있나이다.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또 확신하나이다.”라고 하니라』(67-69절). 말하자면 “영생의 말씀들”을 지니신 “생명의 빵,”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으면”(“먹으면”) 그 누구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54절). 『나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졌나니』(47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요 3:36).
“미사”는 로마카톨릭의 모든 고문과 박해, 살상, 부패의 온상이다. 왜냐하면 교황주의자들은 이 “미사”를 앞세워, A.D. 700년에서 1700년까지 무려 천 년 동안,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소위 “화체설”을 믿지 않으면, 화형이나 참수를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런 끔찍한 살상을 서슴지 않았던 카톨릭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 등은 “미사”에 관한 공식적인 입장을 다음과 같이 표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 마지막 만찬, 미사는 하나이며, 동일한 희생제이다. 이상 세 희생제들은 동일한 희생과 동일한 사제와 동일한 제물을 공유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말할 것도 없고, “마지막 만찬”에서 기원한 “주의 만찬”은, 마귀들의 소굴인 “로마카톨릭”이 행하는 “미사”와 결코 “하나”가 아니며, 또 전혀 “동일하지” 않다!
우선 1828년에 출간된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미사”라는 단어 안에 “축제” 또는 “휴일,” 곧 “축하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축하하는 의식”인 셈이다. 이것만큼 가증스러운 발상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인데, 어떤 부모에게 한 아들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이 아들이 자기가 범하지도 않은 죄로 인해 끔찍한 사형대에서 비참하게 처형되었다. 과연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기 아들을 살해한 도구(“십자가”)를 가져다가 집 안에 대대적으로 진열해 놓고, 아들의 죽음을 “축하하기” 위해 매주일 11시마다 한 번씩 “축하 파티”를 열겠는가? 이에 반해 “주의 만찬”은 축하하는 의식이 아니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식”이다. 『내가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달해 주었나니 이는 주 예수께서 넘겨지시던 그 밤에 빵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며 식후에도 이와 같이 잔을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나의 피로 된 새 언약이라. 이것을 행하여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이라』(고전 11:23-25).
이렇듯 우리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식이 “주의 만찬”인 것이다. 그래서 “빵”은 십자가 위에서 『쪼개진』(고전 11:24, 개역개정판을 위시한 변개된 성서들에서는 삭제됨)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고, “잔”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 “실제 몸”과 “실제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카톨릭교도들은 “미사” 때 먹는 빵을 예수님의 실제 몸, 곧 거룩한 몸으로 생각하여 이 빵을 “성체,” 곧 “거룩한 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성체”를 고이 모신답시고 “성체 용기”까지 만들어 그 빵을 정성스럽게 담아 놓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빵” 자체를 실제 “예수 그리스도”로 숭배하며 섬기는 것인데, 그 빵을 “거룩한 용기”에 담아 카톨릭교도들 앞에 전시하고, 이에 그들은 그 빵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거나 눈을 감고 묵상에 잠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때 “사제들”은 그 빵을 가지고 회중을 축복하고, 축복이 끝나면 그 성체를 높이 들고는 마을을 행진하는데, 그들이 깃발과 태양같이 생긴 둥근 모양의 기구와 성체 용기를 높이 앞세우고 나아가면, 회중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뒤를 따라 줄지어 행진한다. 또한 향을 이리저리 피우면서 지나갈 때, 높게 들린 거룩한 빵, 곧 “성체”를 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나가신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앞에 엎드린다. 이것이 바로 “미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로마카톨릭의 “우상 숭배,” 곧 고대 바빌론 종교의 태양신 숭배를 흉내 낸 가증한 의식이다.
한편 카톨릭교도들은 “미사”에 사용되는 “포도주”를 예수님의 실제 “피”로 생각하며 마시다 보니, 중세 암흑시대에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간혹 포도주를 마시다가 자기가 입고 있는 옷에 흘린다든지, 성당 의자 또는 바닥에 흘리거나 묻히기도 하고, 때로는 손이나 턱, 수염 등에 묻히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 부위에 단순한 포도주가 묻은 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가 닿은 것으로 간주하여, ‘그 포도주가 묻은 신체 부위나 옷, 의자, 바닥 등은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또한 ‘그렇게 아무 데나 묻히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사제들은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빵을 포도주에 살짝 적셔서 신도들의 입속에 직접 넣어 주거나, 아니면 아예 포도주는 안 주고 빵만 준다든지 했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많이 남은 포도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소위 거룩한 “사제들”이 몽땅 다 마시고는 “술에 잔뜩 취해” 버린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남은 포도주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 속에 종종 난색을 표하곤 한다. 왜냐하면 그 포도주는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오늘날 “개신교회들” 안에서도 나타나는데, 남은 포도주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땅에 파묻어 버리는 것이다. 충신교회의 원로목사인 “박종순 목사”는 “빵과 포도주는 ‘식용,’ 곧 ‘먹는 용’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여 정숙하게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한다. 도대체 “정숙하게 처리하는 것”이 어떻게 처리하는 것인가? 우리 “성경침례교회”에서는 “주의 만찬”에서 남은 “포도주”(포도즙)를 “어린아이들”이 마신다. 그것은 예수님의 실제 “살”과 실제 “피”가 아니라, 실제 “살”과 실제 “피”를 상징하는 실제 “빵”과 실제 “포도즙”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이 있는데, 로마카톨릭 “미사”에서는 “발효된 포도주,” 곧 “술”을 사용하지만, “주의 만찬”에서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 곧 “포도즙”을 사용한다는 점이다[성경에서 “포도주”(wine)는 두 가지 용례, 곧 “발효된 포도주”와 “포도즙”으로 사용됨]. 『또 잔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모두 마시라. 이는 이것이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제부터 내가 너희와 함께 나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그 날까지 이 포도 열매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더라』(마 26:27-29). 『이 포도 열매에서 난 것』, 곧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손에 들려 있는 “포도 열매”를 가리키며 말씀하신 것이고, 또한 그 열매를 손으로 직접 짜서 “잔”에 담아 제자들에게 줘서 마시게 하신 것이다. 이렇듯 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포도송이를 잔에 대고 짜서 담은 “포도즙”이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새 포도주』(잠 3:10, 사 65:8) 또는 『포도의 순수한 피』(신 32:14)라고 말씀한다. 반면에 로마카톨릭의 “미사”에서 사용되는 포도주는 “발효된 포도주,” 곧 “술”로서 『용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신 32:33)으로 불린다.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않음을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스스로 판단하는도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들에서 나온 것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 포도니, 그 송이들은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용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라』(신 32:31-33).
“끔찍한 진실” 한 가지가 있는데, 교회의 휴거 이후 “대환란 기간”에 “적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참수당한 유대인들의 몸으로 환란 성전 “번제단” 위에서 마귀에게 희생제를 드릴 것이고, 유대인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것이다. 이 끔찍한 “인신 제사”와 “살육,” 그리고 “식인 행위”에 관해서는 “다윗”이 이렇게 예언했다. 『다른 신을 급히 쫓는 자들의 슬픔이 커지리니 나는 그들이 바치는 피의 술제물을 바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름들도 내 입술에 두지 아니하리라』(시 16:4). 『피의 술제물』은, 오랫동안 로마카톨릭 “미사”에서 소위 “성만찬”이란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던 의식의 일부분이다. 그들은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살”과 “실제 피”라고 믿으면서 먹고 마신다. 일종의 “피의 술제물”을 바치는 것이며, 또 이런 가증한 의식을 통해 “피의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정녕, 그들이 자기 아들들과 자기 딸들을 마귀들에게 제물로 바쳐 무죄한 피, 즉 자기 아들들과 자기 딸들의 피를 흘려 카나안의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쳤으니 그 땅이 피로 오염되었도다』(시 106:37,38). 『너희가 또 내 백성의 살을 먹고 그들에게서 가죽을 벗겨 내는도다. 그들이 백성의 뼈를 부수어 잘게 다지기를 마치 솥과 가마솥 안에 넣을 고기처럼 하는도다』(미 3:3). 살육당한 유대인들이 마귀들에게 제물로 바쳐질 뿐 아니라 “먹히는” 것이다. 교회가 휴거되고 나면, “멸망의 아들”로 불리는 적그리스도가 세상 전면에 등장하여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의 “자비석” 위에 앉아 하나님으로 자처할 것이고(살후 2:3,4), 그의 “살인 특공대”가 붙잡은 유대인들을 제물로 받을 것이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흘린 실제 피를 잔에 담아 가증스러운 “로마카톨릭 미사”를 대대적으로 집전할 것이다. 그러면서 “영적인 의미”로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문자적인 의미”로 왜곡하여 다음의 구절들을 낭독하게 될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이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임이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하느니라』(요 6:54-56). 이에 성경은 “창녀”로 불리는 로마카톨릭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경고한다! 『그녀에게서 나오라... 그녀의 죄들에 동참자가 되지 말고 그녀의 재앙들도 받지 말라』(계 18:4).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