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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성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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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0월호>
박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교 학장동정녀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는 성경의 핵심 교리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이 구절에서 『처녀[virgin]』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알마”( , almah)인데, 성경 변개자 “오리겐”(A.D. 184-254)이 만든 최초의 “대역(對譯) 성경,” <헥사플라(Hexapla, “육란 성경”)> 제3란의 번역자 “아퀼라”(A.D. 95-137)는 히브리어 “알마”를 헬라어 “네아니스”(νεανις)로 번역했다. 이는 성령 하나님께서 “처녀”라고 기록하신 것을 “네아니스,” 곧 “젊은 여인”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개시킨 것이다. 참고로 아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에비온 학파” 소속이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7:14의 예언이 성취된 마태복음 1:23에서 헬라어 “네아니스”가 아닌 “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로 기록하심으로써, “한 아들을 낳는 존재”가 “젊은 여자”가 아니라 “처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보라, 한 처녀[a virgin]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해석하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마 1:23).
한편 변개된 한글 성서들인 “개역성경,” “개역개정판,” “새번역”은 이사야 7:14에서 “처녀”로 번역했으면서도, “난외주”를 달아 “젊은 여자” 또는 “젊은 여인”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들 변개된 성서들이 본문에 숫자로 표기하여 난외주를 달아 놓은 것은, 그 구절이 난외주의 내용처럼 번역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인데, 이처럼 “동정녀 탄생”이 부정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 부활, 승천 등 믿음의 모든 근간이 무너지게 된다. 본래 유대인이었던 아퀼라는 한때 기독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갔으며, 로마 제국의 제10대 황제 “티투스”의 치하에서 우상들을 예루살렘에 다시 세웠고, 마태복음 1:23의 “파르테노스”는 “동정녀 마리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처녀”는 말 그대로 『남자를 모르는』(눅 1:34) 여자, 곧 “남자와 잠자리를 전혀 갖지 않은 여자”를 의미하는 반면, “젊은 여자”는 “문자 그대로의 처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성령님에 의해 예수님을 잉태했을 당시, “요셉”과 정혼은 했어도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요셉과 혼인한 이후에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까지는 요셉과 동침하지 않았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하니라. 그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으나 동침하기 이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그녀에게 나타났더라.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녀를 공개적인 본으로 삼기를 원치 않고 은밀히 버리려고 작정하더라... 그녀가 첫아들을 낳기까지 그녀를 알지 아니하였다가 낳으니 그가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더라』(마 1:18,19,25). 여기에서 『첫아들』이라는 표현은 “다른 자녀들”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마리아가 낳은 다른 자녀들, 곧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이 “최소 여섯 명”(막 6:3 -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 누이들)은 더 있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탄생”은 “처녀”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나신 것이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이후 요셉과의 정상적인 동침을 통해 다른 자녀들을 더 낳은 것이다. 그런데도 로마카톨릭은 “마리아 숭배”를 위해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을 주장하려고 『첫아들[firstborn son]』에서 “첫”(firstborn)을 삭제했다.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을 위시한 변개된 한글 성서들도 한결같이 “아들”이라고 번역함으로써 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그대로 반영했다.
“마태”뿐 아니라 “누가”도 동정녀 탄생의 확실함을 증거했는데, 본래 직업이 “정식 의사”였던 누가는 엄마 배 속에 있는 태아가 “인간 아버지” 없이 잉태되었다는 신비로운 “의학적인 현상”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그는 이 부분을 “천사”를 통해 아주 신중하게 기술했다. 『그 천사가 대답하여 그녀에게 말하기를 “성령께서 너에게 임하실 것이며, 가장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그러므로 너에게서 탄생하실 그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눅 1:35). 이에 누가는 요셉이 예수 그리스도의 “문자적인 아버지”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들이 그를 보고 깜짝 놀라며, 그의 모친이 그에게 말하기를 “아들아,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걱정하며 너를 찾았다.”라고 하니,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나의 아버지의 일을 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더라』(눅 2:48,49). 이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셉을 “그분의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 요셉은 직업이 “목수”였다. 만일 요셉이 “문자적인 아버지”였다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일,” 곧 “목수의 일”을 하셔야 했다. 하지만 지금 예수님께서는 “목공소”가 아닌 “성전”(눅 2:46) 안에 계시면서 『아버지의 일』, 즉 『아버지 하나님』(요 6:27)의 일을 하셨다. 『나의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하노라』(요 5:17).
요셉은 예수님의 “문자적인 아버지”가 아니었고, 예수님은 요셉의 “문자적인 아들”이 아니셨다. 다만 『요셉의 아들로 (알려졌던 바)』(눅 3:23), 요셉의 “문자적인 씨”가 아니셨던 것이다. 그래서 누가는 이 부분을 계속해서 신중하게 다루는데, 특히 “부모”라는 단어 대신 『요셉과 주의 모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요셉과 주의 모친이 그 아기에 관한 것을 듣고 이상히 여기더라... 그 절기가 끝나서 돌아올 때, 아이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나, 요셉과 주의 모친은 그것을 모르더라』(눅 2:33,43). 이 두 구절에서는 “요셉”과 “주의 모친 마리아”를 구분함으로써 요셉이 “주의 부친,” 즉 “예수님의 문자 그대로의 아버지”가 아님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요셉의 문자적인 씨”가 아니라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을 통해 태어나셨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변개된 “개역성경”은 누가복음 2:33,43의 『요셉과 주의 모친』을 「그 부모」로 변개시켰고, “개역개정판” 역시 「그의 부모」와 「그 부모」로, “새번역”도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의 부모」로, “쉬운성경”도 「예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부모들」로 변개시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고 있다. 물론 누가복음 2:27,41에서 『부모』라는 표현이 두 번 나오지만, 그것은 당시 예수님의 주변 사람들이 사용한 “통상적인 지칭”이었을 뿐이며, 누가복음 2:33,43에서는 각각 『요셉과 주의 모친』이라고 분명하게 구분함으로써 그 실상을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동정녀 탄생”은 “인류의 구원”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4-19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 또한 헛것이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거짓 증인들로 밝혀지리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정녕 살아나지 아니한다면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일으켜지지 못하셨으리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한 것이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이생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참된 복음의 시금석이며 다른 종교들은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다. “마호메트”는 부활하지 못했다. “석가모니”도 부활하지 못했다. “조로아스터”도, “공자”도, “마리아”도 부활하지 못했다. “부활”은 “예언”과 더불어 성경적 기독교 신앙만이 지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것이다.
한편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기” 위해서는 “죄”가 없으셔야 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셨으면서도 어떻게 “죄성”을 물려받지 않고 탄생하실 수 있었는가?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동정녀 탄생”이라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셨다. 곧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나타나시는 방법”으로 해결하신 것인데, 이것이 바로 “경건의 신비”다.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딤전 3:16).
한번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만일 다윗이 그[곧 “그리스도”]를 주라 부른다면 어떻게 그[곧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 되겠느냐?』(마 22:45)라고 질문하신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단 한마디도』(마 22:46)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예수님의 질문은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심도 있는 생각이나 어려운 공식을 요구하는 질문도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 믿을 수 있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다시 말해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 곧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고,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아들’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인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다윗의 씨로 이 땅에 태어나시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건의 신비”이자, “동정녀 탄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요셉의 아들”이나 “인간 목수” 정도로 여기고, 심지어 음행을 통해 태어난(요 8:41) “사생아”로까지 간주했던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의 성경 실력은 “빵점”이었다!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이런 “초보적인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면 뭐 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서기관이면 뭐 하며, 성전에서 섬기는 대제사장이면 뭐 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도 제대로 모르고, 진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다면, 그런 영적인 직분을 가졌으면 뭐 하고, 또 안 가졌으면 뭐 하겠는가? 목사면 뭐 할 것이며, 집사, 장로, 권사, 전도사, 강도사 등의 직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연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유명한 신학교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 탄생”을 하심으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인류를 위한 속죄를 이루셨고, 또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 그런 면에서 “동정녀 탄생”은 “부활”을 입증해 주고, “부활”은 “동정녀 탄생”을 입증해 준다. 만일 예수님께서 동정녀 탄생을 하지 않으셨다면, “육신의 아버지”가 있었다는 뜻이 되고, 결국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죄성을 물려받은 것이 되기에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탄생을 하심으로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죄성을 물려받지 않으셨고, 결국 죄가 없으시기에 죽음에서 부활하실 수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변개된 성서들은 주님을 한낱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가증한 성서들”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