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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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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1월호>
ᅟ인류의 불행과 저주는 “먹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인간이 “먹지 말아야 할 열매를 먹었을 때” 죄와 사망이 이 땅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먹느냐 먹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것은 “생사”(生死)가 걸린 문제였는데, 먹으면 “죽음”이요, 먹지 않으면 “영생”인 것이다. 만일 첫 사람 “아담”이 금지된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마음대로[freely]』 먹을 수 있게 허용된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고 주 하나님과 “영원무궁토록” 살면서 이 땅을 다스리고 다산하며 번성해 나갔을 것이다(창 1:28).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성경의 기록은 『남자와 그의 아내가 둘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더라.』(창 2:25)라는 말씀 뒤에 이런 문구가 추가로 기록되면서 종결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그들은 동산 가운데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주 하나님과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더라.”
그러나 “행복”은 없었다. 오히려 먹는 문제에서 시작된 불행은 또 다른 먹는 문제를 낳았으니, 곧 “기근”이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더러운 죄들과 가증한 죄인들로 가득 찬 “악한 현 세상”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시는 “3대 재앙”(렘24:10, 『칼[전쟁]과 기근과 전염병』) 중 하나이다. 먹지 말아야 할 열매를 먹음으로써 시작된 저주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먹지 못하게 하는 “기근”의 형벌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지구상에서 인류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가 “기근”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 재앙이 가져온 기아와 영양실조로 인한 죽음은 매우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진행되는 속도가 상당히 느리며, 과정이 심히 고통스럽고,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카나안 땅에서 겪은 기근(창 12:10)을 시작으로 환란 기간에 신비의 바빌론인 로마카톨릭의 멸망과 연관해서 일어날 기근(계 18:8)까지 “열세 차례의 기근”이 기록되어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최악의 대기근”은 1958년과 1960년 사이 “중국”에서 일어났는데, 어리석은 공산당 지도자들의 “대약진 운동”이라는 “경제성장 정책”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고, 여기에 홍수와 가뭄까지 겹치면서 4,300만 명의 중국인들이 사망했다. 두 번째 최악의 대기근도 “중국”에서 일어났다. 중국 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풍으로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기근이 발생했다. 이 기근으로 식량 폭동이 매일같이 일어났는데, 그 폭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이죽었다. 결국 이 기근으로 사망한 중국인들의 수는 2,500만 명이었다. 세 번째 최악의 대기근은 1783년 “인도”에서발생했는데, 당시 예년과 다르게 비정상적으로 비가 적게 내리면서 방대한 양의 농작물이 말라 죽었고 상당수의 가축들도 식량과 식수의 부족으로 폐사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1,100만 명의 인도인들이 사망했다.
그 외에도 1932년과 1933년 “구소련”에서 독재자 “스탈린”의 어리석은 “집단화 정책”으로 일어난 기근 때문에 1,000만 명의 소련인들이 사망했고, 1770년 인도 동부의 서벵골주와 방글라데시 일대를 아우르는 “벵골”에서는 심각한가뭄과 작물 부족 그리고 그 지역을 식민지로 삼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아편 정책으로 발생한 기근 때문에 1,000만명, 곧 벵골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가 희생되었다. 1917년과 1921년 사이 “러시아”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혁명 및 내전으로 일어난 기근 때문에 500만 명이 사망했고, 1994년과 1998년 사이“북한”에서는 어리석고 무지한 “김정일”의 광기 어린 정책과 집중 호우로 일어난 기근 때문에 3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죽었다. 당시 “어린이 사망률”은 1,000명당 93명이었고, “임산부 사망률”은 산모 1,000명당 41명으로증가했다고 한다. 1917년과 1919년 사이 “페르시아”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불러온 가뭄과 전염병으로 인한 기근 때문에 200만 명의 페르시아인들이 죽었고, 1845년과 1853년 사이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에 생긴 치명적인 질병으로기근이 발생하여 150만 명의 사람들이 죽고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으로 피난 갔다.
한편 이런 대기근이 일어난 나라들을 보면, 중국, 러시아(구소련),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이나 인도, 방글라데시, 페르시아(이란) 같은 “힌두교 또는 모슬렘 국가들,” “아일랜드” 같은 “로마카톨릭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나라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믿지 않고 멸시하고 거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앙”은 절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해 분노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을 존중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해야 한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재앙으로부터 피할 수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그런데 이런 물리적인 기근보다 훨씬 더 심각한 “역대 최악의 대기근”은 “영적 대기근”이다. 『빵의 기근도 아니요, 물로 인한 갈증도 아니라 오직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기근』(암 8:11)인 것이다. 『사람들이 바다에서 바다까지,북쪽에서 동쪽까지 방황할 것이요,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달릴 것이나 그것을 찾지 못하리라』(암8:12). 이처럼 오늘날 배교한 마지막 교회 시대에는 “영적 대기근”이 세계 전역을 휩쓸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풍조가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성경을 존중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심지어 교회들, 특히 신성한 강단에 서 있는 “목사들”이 앞장서서 살아 있는 말씀을 멸시했고, 칼로 난도질해 놓았으며, 생수의 근원이자 살아 있는 빵인 『진리의 성경』(단 10:21)을 거절했다. 그 결과 아무 유익도 줄 수 없는 “가짜 성경들”(개역성경, 개역개정판, 킹제임스흠정역성경전서 등)만 양산했고, 그들이 만든 물통들은 깨졌으며(렘 2:13),그들의 빵에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만 가득하여 누룩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어났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영적 음식물 쓰레기”천지인 것이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누구라도 멸망할 것이나,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보상을 받으리라』(잠13:13). 『나를 존중하는 자들을 내가 존중하고 나를 멸시하는 자들을 내가 소홀히 여기리라』(삼상 2:30).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을 치유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남아 있지 않으며, 오직 진노의 심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첫 사람 아담은 먹는 문제에서 실패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셨다. 『그 시험하는 자가 주께 나아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에게 명하여 빵이 되게 하라.”고 하더라. 그러나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 4:3,4). 먹는 문제와 관련한 시험에서 마귀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서 백성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신 적이 있는데, 요한복음 6장에서 이른바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10,14,26절)을 행하신 것이다.
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에 관한 위대한 설교도 하셨는데, 설교 주제는 다름 아닌 “먹고 사는 것에 관한 문제”였고, 그 “생명의 빵”을 먹으면 첫 사람 아담이 잃어버렸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시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생명의 빵이라.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었으나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니그것을 먹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또 내가 줄 이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줄 나의 살이라』(48-51절). 하지만 『빵을 먹고 배부른』(26절), 곧“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에만 집착해 있던 백성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 사람이 자기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가 있겠느냐?』(52절)라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자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생명의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막대기들”을 찔러넣으셨고 “못들”을 박으셨다(전 12:1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가졌나니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이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임이라.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하느니라.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 역시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너희 조상이 만나를먹고 죽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3-58절). 그러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이강력한 『성령의 칼』(엡 6:17)에도 불구하고 전혀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은 주님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때 주의 제자 중 많은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기를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그것을 들을 수 있겠느냐?”고 하니라...그때부터 제자들 중 많은 자들이 물러가고 더 이상 주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0,66절).
그들은 “영적인 말씀”을 “문자적인 말씀”으로 오해해 버렸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63절). 성경에 관한 한, 완전히 “문외한들”인 로마카톨릭의 교황이나 추기경,주교, 신부 등도 무지한 유대인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고, 소위 그들의 “성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살과 피로 생각하며 매 주일 아침 11시마다 “사육제”를 즐기고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실제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시냐?”라고 하면서 줄행랑쳤지만, 카톨릭교도들은 “왜 못 먹느냐? 마시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면서 식인종처럼 예수님의 살과 피에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계속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히 6:6)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부인하고 있다. 매주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살”을 찢어서 먹고 실제 “피”를 흘려서 마시는 가증스러운 집단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주님의 실제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으라”는 것이었다.『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니, 즉 그분이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라...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또 이것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니, 아들을 보고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라. 그리고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가졌나니』(29,35,40,47절). 예수님의 설교를 전혀 오해하지 않은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여...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들이 있나이다.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또 확신하나이다』(68,69절). 영생의 말씀들을 지니신 “생명의 빵,”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으면 그 누구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보통의 “빵”은 “밀”로 만들어진다. “밀”이라는 곡식을 빻아 고운 가루로 만든 후, 이 가루를 물에 반죽하고 이겨서 불에 얹어 놓고 구웠을 때 “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빵”을 만드는 “밀”은 이 땅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밀”이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곡식”인 “만나”를 광야의 백성들에게 내려 주셨듯이, “생명의 빵”과 그 빵을 만드는 이 “한 알의 밀”은 이 땅이 아닌 셋째 하늘에서 내려왔다(요 6:32,33). 우주 끝에 있는 유리 바다를 건너 이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수많은 낟알로 이루어진 풍성한 열매들을 맺었는데(요12:24), “갈보리의 맷돌”로 갈아지고 빻아져서 고운 가루가 되었고, “진노의 채찍질”과 “십자가의 고통”으로 짓이겨져 피범벅이 되었으며, 지옥의 뜨거운 불길에서 구워진 이후 “생명의 빵”으로 부활하여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참된 생명을 주는 “영원히 살아 있는 참된 빵”이 되었다. 이제 그 누구라도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게 된다. 이 빵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어느 누구에게든지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 1:12).
18세기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1789-1799)은 “빵의 평등권”(The Bread of Equality)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는데,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빵”은 정치적인 도구였고 사람들의 계급을 나누는 수단이자 “권력”이었다고 한다. “농민들”은 거친 호밀이나 보리로 만든 딱딱하고 거무스름한 빵만 먹을 수 있었고, 흰색의 부드러운 빵은 “귀족들”의 주식이었다. 당시 가난한 농민은 돼지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의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았기에 “딱딱한빵”을 먹어야 열심히 일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고결한 귀족은 하나님께서 고상하고 연약한 소화 기관을 주셔서 “흰 빵”만 먹게 하셨다는 것이 지배자들의 논리였다. 그러다 보니 농민들은 “부드러운 흰 빵”을 먹다 발각되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사회적인 윤리와 기강을 해쳤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어 처벌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시민들은 “빵을 달라!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쳤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먹을 것을 달라는 외침이 아니었고,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빵,” 곧 “빵의 평등권”을 달라는 “일성”(一聲)이었다.이에 그들은 “빵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오직 한 종류의 빵만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고 선언했고, 그 일환으로 부유한 귀족들이 먹는 고운 밀가루로 된 흰 빵이나 가난한 농민들이 주식으로 삼는 거친 호밀로 된 검은 빵을 더 이상 만들지 말라는 조항을 만들었다. 이후 혁명이 일어난 지 4년이 되던 해, 프랑스 정부는 “빵의 평등권”을 인정하면서 “길이는 80cm, 무게는 300g”으로 제한하라는 “빵의 형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때부터 프랑스의 모든 빵 가게에서는 오직 한 종류의 질 좋은 빵, 곧 누구나 “평등하게 먹을 수 있는” 빵만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즐겨 먹는 길쭉한 모양의 “바게트”(baguette)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먹을 수 있도록 “생명의 빵”을 제공하셨다. 이 빵을 먹지 않고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지 말라. 어쩌면 이 글이 당신을 향한 마지막 초청일지 모른다. 『아, 너희 목마른 자들은 누구든지 물들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으라. 정녕, 와서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사라』(사 55:1).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