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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지키지 말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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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3월호>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부활절”을 지키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 17:5)인 “로마카톨릭”이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골 2:8)를 따라 만들어 낸 “헛된 종교 의식”이기 때문이다. “부활절”(Easter)은 “고대 바빌론 종교”와 결탁한 로마카톨릭의 “이교도적인 미신”에서 비롯되었다. 『그 일이 유대인들을 기쁘게 한 것을 알고서 그가 베드로도 잡고자 하더라. (그 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 그가 베드로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네 조의 병사들을 붙여 교대로 지키게 하니 이스터[Easter]가 지나면 그를 백성들 앞에 끌어낼 의도였더라』(행 12:3,4).“이스터”는 그 기원이 바빌론 “칼데아”에 있다. 하늘의 여왕 “벨티스”(Beltis)의 여러 명칭 중 하나인 “아스타르테”(Astarte)는 고대 셈족이 섬긴 “풍요와 생식의 여신”인데, 이 여신을 시돈인들은 “아스토렛”(Ashtoreth, 왕상 11:5,33)이라 불렀고,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달의 여신”으로 섬겼으며, 앗시리아인들과 바빌론인들은 “이슈타르”(Ishtar)라 불렀다. 바로 이 명칭에서 “이스터”가 비롯되었으니, 그들의 여신을 숭배하는 “이교도 축제일”이 된 것이다. 이것이 “헤롯”이 지킨 축제였는데, 그가 로마인이자 이두메인(에돔인)으로서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였기 때문이다.
헤롯은 분명 자신의 종교 축제인 “이스터”를 지킨 것이지 “유월절”을 지킨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 완전히 무지한 변개된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이스터”를 “유월절”로 오역했는데, 이는 본문에서 “이스터”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유월절”(Passover)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스카”(πάσχα)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물론 헬라어 “파스카”는 성경의 거의 모든 구절에서 “유월절”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파스카”가 “유월절”로 번역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그 때는 무교절 기간이더라』(행 12:3). 곧 “유월절”이 지난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7일간”(레 23:6-8)의 “무교절 기간”인 것이다. 또한 헬라어 “파스카”는 유대인들의 절기 “유월절” 외에도, 헬라어를 말하는 헬라인들에게 “이스터”를 의미할 때 종종 사용되는 단어다. 더구나 헤롯이 유대인들의 절기인 유월절을 지켜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가 베드로를 처형시키는 데 있어서 유월절을 의식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런 이교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만큼 자기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유월절”을 결코 의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만큼은 “파스카”를 “유월절”이 아닌 “이스터”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바르게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더불어 헬라어 “파스카”를 “이스터”로 정확하게 번역했다.
그리고 이것이 온갖 이단 교리의 온상지인 로마카톨릭을 통해 기독교적으로 각색되어 “부활절”이 되었는데, 다시 말해 “부활절”은 하늘의 여왕 “아스타르테”를 숭배하는 고대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된 절기인 것이다. 또한 그들은 부활절 이전 40일의 기간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고 시험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기 위해 기도와 금식과 속죄를 행하는 “사순절”(Lent)을 지키는데, 이 절기 역시 바빌론의 신 “탐무스”(Tammuz)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이교도 절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알렉산더 히슬롭의 <두 개의 바빌론>, p.105 참조). 『그때 그가 나를 북쪽을 향한 주의 집의 대문의 입구로 데려오시더라. 보라, 거기에는 여인들이 탐무스를 위하여 울며 앉아 있더라』(겔 8:14). “탐무스”는 “님롯”과 “세미라미스”(님롯의 어머니) 사이에서 음행으로 태어난 아들로,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로 불린다. 1년 365일의 기간 중에 절반은 죽어 있고, 나머지 절반은 살아 있는 “식물 신”의 성격을 띠는데,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흉내 내기 위해 사탄이 만들어 낸 “모조품”인 것이다.
한편 “이스터”를 지키는 풍습에서 비롯된 “부활절 과자”는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는 의식에 사용되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바이런트”(Byrant)는 “신들에게 바쳐진 거룩한 빵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보운’(Boun)으로 불렸다.”라고 했으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Diogenes Laertius)는 과자의 주성분에 대해 “고운 밀가루와 꿀로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미신적인 이교도 풍습”에 관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너는 그들이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행하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비들은 불을 지피며 여인들은 가루 반죽을 하여 하늘의 여왕에게 과자를 만들며 다른 신들에게 술제물을 부어 그들이 나로 격노케 하였느니라. 주가 말하노니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하느냐? 그들이 자기 자신들의 얼굴에 수치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냐?』(렘 7:17-19)
또한 무지한 교회들은 부활절만 되면 “부활절 달걀”을 만들어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이 “부활절 달걀”의 기원 또한 명백히 이교도적이다. 고대 드루이드교도들은 그들의 의식에서 달걀을 성스러운 상징으로 사용했고,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바쿠스 신을 기념하는 축제일 밤에 “달걀로 거행하는 의식”을 가졌다. 힌두교 설화에서는 현세를 의미하는 황금색 달걀이 등장하고, 일본인들의 전설에도 구릿빛의 신성한 달걀이 등장하며, 중국에서도 부활절과 같은 시기에 물을 들이거나 색을 칠한 달걀이 사용되었다. 바빌론의 “신비스러운 알”에 관한 전설에 따르면, 크기가 거대한 “알” 하나가 하늘로부터 유프라테스 강으로 떨어졌는데, 물고기들이 그것을 강가로 굴려오자 비둘기들이 그 알을 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알이 부화하자 거기에서 “비너스”가 나왔고, 훗날 그녀는 시리아의 “여신”으로 불렸다. 바로 이 “비너스”가 다른 나라에서는 앞서 언급한 “아스타르테,” “아스토렛,” “이슈타르” 등으로 불린다. 이렇게 해서 “달걀”은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는 “이스터”의 상징물 중 하나가 되었다. 말하자면 로마카톨릭은 “아스타르테”의 “알 신화”를 기독교적으로 각색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상징”으로 삼아 버린 것이다.
필자는 “성”이 “박”씨로서 “밀양 박”씨 규정공파 26대 손이다. 필자의 “시조”는 신라 최초의 왕이 된 “박혁거세”로 “알”에서 나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한 땅에 여섯 마을이 있었는데 부족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 여섯 부족의 시조들은 기원전 69년 3월, 그들의 나라를 세워줄 “왕”을 찾고 있었는데, 한번은 어떤 우물곁에서 흰 말이 무릎을 꿇고 그들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하늘을 향해 길게 울면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말이 날아간 자리에는 알이 하나 있었는데, 쪼개 보니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알”에서 나온 대단한 족보와 대단한 가문 아니던가!
종교 의식으로 달걀 껍데기를 예쁘게 꾸미는 관습은 고대부터 있었는데,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타조 알”을 사용했고, 고대 북유럽 튜턴족에서는 봄의 여신인 “에오스트레”(Eostre)를 기념하면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토끼”와 “달걀”을 사용했다. 어떤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달걀 껍데기를 빨간색으로 물들이기도 한다. 필자도 과거에 한 대학교 선교단체에 몸담고 있었을 때 부활절을 즈음하여 달걀을 삶아 예쁘게 꾸미고 예쁜 비닐로 열심히 포장했던 기억이 난다. 부활절에 달걀을 먹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는데, 이것이 마치 죽은 듯 보이는 달걀에서 병아리가 새 생명으로 소생하는 것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무지하고 어리석은 교회들, 곧 “현대판 ‘이스터’ 우상 숭배자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땅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무렵, 과거에 급제한 수재요, “고종”의 지시로 일본에 파견된(1881년) “조사 시찰단”(신사 유람단)의 일원인 “이수정”은 한 일본인 교수에게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번은 그가 도쿄에 있으면서 조선으로 선교사를 보내 달라는 편지 한 통을 미국 기독교계에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가 1883년이었고, 당시 이 편지는 미국 교계 안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1885년 4월 5일, 미국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가 이 격동의 땅에서 선교하기 위해 인천 “제물포”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이래로 1945년까지 60년 동안 우리나라로 들어온 개신교 “해외 선교사”는 무려 1,529명이나 된다고 한다.
한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에 들어왔던 그날은 마침 “부활절”이었다. 소위 “부활절”에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당시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날에 느꼈던 감회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과연 그의 바람대로 이 땅을 밟았던 1,529명의 선교사들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사역을 온전히 펼쳤던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들어와서 주로 했던 일은 하나님의 섭리로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번역하는 사역이나 복음 전파를 통한 구령 또는 진리의 지식을 통한 양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암담하고 비참한 땅에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독교를 “구국과 저항의 종교”로 이 땅에 뿌리내리게 했으며, 우리나라 “근대화의 정신적 지주 역할”만 담당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미국 선교사들은 사대문 밖 일반 백성들이 사는 마을들로 가서 의술을 베풀었고, 아이들을 가르쳐서 근대적인 교육이 싹트게 했으며, 독립 운동과 사회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세계열강들의 침략과 수탈과 간섭의 틈바구니 속에서 긴박했던 격동의 역사와 암울한 비운의 시기를 보내야 했던 이 “흑암의 땅”에 기독교가 들어와 하늘에서 비치는 한 줄기 “빛”이 이 “죽음의 땅”의 불쌍한 백성들을 소생시켜 주는가 싶었는데, 그 빛은 금세 사그라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빛을 따라 들어온 것은 “변개된 성경”인 “로스역”(1882년)과 “변질된 복음,” 곧 복음과 진리보다는 학교와 병원 설립이 우선이었던 “사회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본적인 사역 방향이 이러하다 보니, 근대적인 사회 운동은 많은 진전을 보였을지 모르지만, 영국과 미국의 “대각성 시대”(필라델피아 교회 시대, 계 3:7-13)에 볼 수 있었던 참다운 영적 부흥이나 개혁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못했다. 소위 “부흥 운동”으로 잘못 알려진 “평양부흥운동”이나 “원산부흥운동”은, 배교한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계 3:14-22)에 전 세계적인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의 물결” 속에서 나타난 “마귀적인 열매”였다. 당시 소위 부흥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길선주 목사”는 유교, 관성교, 선도교 같은 전통 종교들과 샤머니즘에 심취한 신학자였다. “미혹의 영”으로 충만한 그의 기도는 선도를 수행했을 때 체험했던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그의 잘못된 “본”은 “새벽기도회”나 “통성기도,” “철야기도회”처럼 한국의 전통 종교와 샤머니즘적인 방식이 교회들 안에 자리 잡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이한 “한국식 기독교”를 정착시킨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보니, 오늘날 그들의 뒤를 잇는 교회들은 마땅히 교회가 해야 할 일, 곧 “복음과 진리의 지식을 전파하는 일”은 제쳐두고 엉뚱한 일들에나 전념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나라 기독교계는 금년도 “부활절”(4월 9일)을 맞아 “2023 부활절 퍼레이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부활 주일”부터 “성령 강림 주일”까지 50일 동안 광화문 광장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 축제”를 개최하겠다는 것인데, 기독교인은 물론 일반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 축제를 열어 국내를 넘어 전 세계인의 축제로 부활절 퍼레이드를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본 부활절 퍼레이드를 총괄하고 있는 “CTS 문화사업본부”가 마련한 프로그램을 보면 “모두가 하나 되어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자”(The One), 곧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에큐메니컬적인” 슬로건 아래 “퍼레이드 행사”와 “기념 음악회”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퍼레이드 행렬”에는 “노아의 방주 연출,” “오병이어 퍼포먼스,” “이스터 나눔 퍼포먼스” 등의 프로그램이, “기념 음악회”에는 “클래식,” “CCM과 워십,” “연합 합창,” “갈라 뮤지컬,” “K-POP”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과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들더러 세상 풍조에 따른 “문화 행사”나 즐기라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인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셋째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명령하시며 『부활의 증인』(행 1:22)이 되라고 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 교회들은 부활절 달걀이나 삶고 문화 행사나 음악회 열기에 바쁘지, 정작 부활의 증인으로서 담대하게 입을 열어 복음과 진리를 전파하지는 않는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이교도의 절기에서 비롯된 부활절을 지키지 않는다. 지켜야 할 어떤 이유도, 명분도 없다. 물론 “부활”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는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죽었어야 할 “죽음의 자리”에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우리가 당연히 묻혔어야 할 “무덤의 자리”에 우리 대신 묻혀 계셔야 했고, 우리가 응당 감당했어야 할 “진노와 저주의 자리”에서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와 죄에 대한 저주를 받으셨으며, 우리가 반드시 영원한 불길 가운데서 영원히 고통받았어야 할 “지옥의 자리”까지 우리 대신 갔다 오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계셨기에 “지옥의 문들”과 “사망의 문들”을 열어젖히셨고, 또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나와 바로 그 “부활의 자리”에 서셔서 자신을 구주로 믿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으라고 죄인들을 초청하신다. 그리고 그 “초청의 자리”로 나아와 구원받은 성도들의 경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과 함께 그들을 보내시면서 “파송의 자리”에 세우신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첫날에 “영과 진리로 경배 드리는 자리”에 서 있는 성도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복음 전파의 의무를 지니고 주님을 섬기는 “신실한 일꾼들의 자리”에 서 있음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