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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의 충만함 vs. 이방인의 충만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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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3월호>
성경에는 “일곱 신비”(Seven Mysteries,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피터 럭크만” 박사의 저서 <일곱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참고할 것)를 위시하여 “열다섯 개”의 서로 다른 『하나님의 신비들』(고전 4:1)이 기록되어 있다. 이 “신비들”을 “초림”부터 “재림”까지 경륜적인 순서에 따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초림”과 관련하여, 1)『경건의 신비』(딤전 3:16)가 계시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신비”로, “성육신의 신비,” 또는 “아버지의 신비”(골 2:2)로도 불린다.그다음 “교회 시대”와 관련해서는 총 “여덟 개”의 신비가 계시되는데, 2) 먼저 『복음의 신비』(엡 6:19, cf. 고전 2:7)가 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에 관한 신비”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 20:24) 그 자체이다. 3) 다음으로는 “성도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골 1:26,27, cf. 갈 2:20)인데,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각 그리스도인의 몸을 “성전”으로 삼고 그 안에 내주하시는 신비인 것이다. 그래서 간단하게 “내주하시는 신비”라고도 부른다. 4)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엡 3:4, 골 2:2; 4:3), 곧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는 신비”가 있다(엡 3:1-12, 골 4:3,4, cf. 롬 16:25,26). “그리스도의 몸”(유기체로서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이 『신비의 교제』(엡 3:9)에 참여하게 된다. 5) 다음으로 『믿음의 신비』(딤전 3:9)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모두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믿음 그 자체”를 신비라고 말씀하는 것인데, 이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표적을 봐야 믿는 유대인들”과 달리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를 세상 사람들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조차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을 “신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6) 그다음은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신비』(계 1:20)이다. 이 신비는 “2천 년 ‘교회 시대’에 관한 진리”(계 2,3장)를 담고 있는 신비이다. 7) 그리고 물리적인 왕국에 관한 『천국의 신비들』(마 13:11)과, 8) 영적인 왕국과 연관된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들)』(막 4:11, 눅 8:10)이 있는데, 전자는 “교회 시대”에 신비적인 형태로 감추어진 “천국”(Kingdom of Heaven)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마 13,18,20,22,25장), 후자는 “교회 시대”에 나타나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막 4:1-34, 눅 8:4-18; 13:18-21). 9) 그다음 교회 시대와 관련된 마지막 신비는 “교회의 휴거의 신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그리스도인이든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든지,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처럼 “변화된 몸”으로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는 것이다(고전 15:51-56, 살전 4:13-18, 요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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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휴거” 이후로는 “환란 시대”가 펼쳐지는데, 환란 시대와 관련된 신비는 모두 “세 가지”이다. 10) 우선 『불법의 신비』(살후 2:7)가 있으며, 이것은 앞서 언급한 “경건의 신비”와 반대되는 신비로, “사탄이 적그리스도로 육화한 신비”이다(살후 2:2-8). 사도 “요한”은 이 신비를 가리켜 『짐승의 신비』(계 17:7)라고 명명했다. 11) 다음으로는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계 17:5)라고 말씀하는 “큰 바빌론의 신비”가 있는데, 이것은 『큰 창녀』(계 17:1)인 “로마카톨릭”과 연관된 신비로서, 『여자의 신비』(계 17:7)라고도 불린다. 12) 또한 『위대한 신비』(엡 5:32)로 불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의 신비”가 있는데(엡 5:23-32), 이것은 “환란 시대 끝”에 이루어질 『어린양의 혼인식』(계 19:7)과 연관이 있다(계 19:7-9; 21:9,10). 하지만 이 신비는 “불법의 신비”나 “큰 바빌론의 신비”와 다르게, 이곳 지상이 아닌, 저 셋째 하늘에서 이루어진다. 신비가 등장하는 “시대”만 일치할 뿐이다.
이후 환란 시대가 끝날 무렵,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인데, “재림”과 연관된 신비는 “두 가지”이다. 13) 먼저 『하나님의 신비』(계 10:7)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 재림하시는 신비”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재림 그 자체”를 가리켜 “하나님의 신비”라고 말씀하는 것이다(골 2:2, 계 11:15). 14) 그다음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의 신비”가 있는데, 일시적으로는 “메시아”를 거부했던 이스라엘이 완고한 상태로 완전히 버려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민족적으로 구원받고 회복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신비”이다(롬 11:25,26). 15) 마지막 신비는 “만물의 회복의 신비”이며, 이것은 “천년왕국”부터 시작해서 “영원 시대”로 넘어가는 기간에, 『때가 찬 경륜 안에서...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함께』(엡 1:10) “모으신다”는 내용의 신비이다(엡 1:9,10, 행 3:19-21).
이상 “열다섯 가지 신비” 가운데 “열네 번째”인 “이스라엘의 회복의 신비”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이스라엘]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롬 11:25,26).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until the fulness of the Gentiles be come in]』(25절)란 말씀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until the times of the Gentiles be fulfilled]』(눅 21:24)를 의미한다. 『이방인들의 때』는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기간”인데(눅 21:24), 이 기간의 문을 처음으로 열어젖힌 장본인은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으로서, 그는 세계 최초로 전 세계적인 통치권을 위임받은 “이방인 왕”이었다. 『오 왕이여, 왕은 왕 중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왕께 왕국과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셨나이다. 또 사람의 자손들과 들의 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살고 있는 모든 곳들을 하나님께서 왕의 손에 주셔서 왕으로 그들 모두를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셨나니, 왕은 곧 이 금 머리니이다』(단 2:37,38).
“느부캇넷살왕” 이전에는, “여호수아”의 카나안 정복 전쟁 시절,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차지한(판 1:8) 이래로 그 성읍이 짓밟힌 역사가 없었다. “앗시리아”의 “산헤립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왕국 유다”(히스키야왕)를 위협했을 때조차도 “예루살렘”은 “짓밟히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606년 “바빌론 제1차 침공”을 시작으로 “예루살렘이 짓밟히기” 시작하더니, 기원전 587년 마지막 제3차 침공 때는 급기야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면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고 말았다. 그 이후 “예루살렘이 유린당하는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그 “짓밟힘”은 “환란 시대”에 세상 전면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에 의해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남겨 두고 측량하지 말라. 이는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이 마흔두 달[42개월, 3년 6개월, 1,260일] 동안 그 거룩한 도성[예루살렘]을 발 아래 짓밟을 것이기 때문이라』(계 11:2). 그러나 “적그리스도”에 의해 절정에 달할 『이방인들의 때』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다. 『손으로 다듬지 아니한 돌』(단 2:34)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어 『모든 왕국들을 쳐부수고 멸하여』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한 왕국을』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단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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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방인들의 때』가 끝날 무렵, 곧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 『이방인들의 충만함』도 “차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악이 “충만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1장에서 “25절의 전후 맥락”을 주목해 보라. 『참올리브 나무』와 『돌올리브 나무』가 나오는데(24절), 전자는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후자는 “이방인”을 가리킨다. 우선 『참올리브 나무』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했을 때, 주님은 그 『가지들 가운데 얼마』(17절)를 “꺾어” 버리시고, 『돌올리브 나무』인 “이방인”을 그 자리에 접붙이셨다(17절). 그 결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마음이 높아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20절) 죄를 짓게 되면, 그들을 꺾어 버리시고, 『본래의 가지』(24절)인 “이스라엘”이 접붙여질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이스라엘]도 아끼지 아니하셨으니 너도 아끼지 아니하실까 주의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시니 만일 네가 그분의 선하심에 머물면 그 선하심이 너에게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아니하면 너도 꺾이리라. 또 그들도 믿지 않는 가운데 계속 머물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을 것이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수 있기 때문이라』(21-23절). 이처럼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면 그들이 꺾인 자리에 “이방인”이 접붙여지고, “이방인”이 죄를 범하면 그들이 꺾인 자리에 “이스라엘”이 다시 접붙여진다는 내용이 “로마서 11장의 요지”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방인들의 충만함』은 “이방인들의 ‘죄’의 충만함”을 의미하게 된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이나 민족 또는 국가가 행한 “죄악의 충만함”이 차면, 그러한 개인과 민족 및 국가에게 심판을 내리신다. 일례로, “카나안 땅”의 “아모리인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사 대 만에 그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음이라[for the iniquity of the Amorites is not yet full].” 하시니라』(창 15:16).
그러나 이러한 진리에 무지한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로마서 11:25을 다음과 같이 왜곡시켰다. 「형제들아...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개역한글판성경). 「형제들아...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개역개정판). 이렇게 “충만한 수”로 오역하면, 마치 “하나님께서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실 ‘이방인들의 수’를 처음부터 예정해 놓으신 것”처럼 되기에, “극단적 칼빈주의”의 이단 교리를 지지하는 뜻이 되어 버린다. 한편 “직역 성경”의 의미를 오해한 “흠정역”과 “표준역”은 둘 다 똑같이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들어올 때까지」라고 번역함으로써 “아예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게”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헬라어 “에이세르코마이”(εἰσέρχομαι)에 해당하는 “come in”의 기본적인 뜻, 곧 “들어오다”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의 결과이다. 이 표현은 단순히 “안으로 들어오다”는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in)가 되다(come, become),” “성숙하다”(mature), “축적되다”(accrue)의 뜻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밀물이 안으로 들어와 차오른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말 “차다”는 “어떤 높이나 한도에 이르는 상태가 되다,” “정한 수량, 나이, 기간 따위가 다 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런 용례를 반영하여 정확하게 번역한 성경이 바로 <한글킹제임스성경>이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안 주시면 결코 성경을 올바로 번역할 수 없는 것이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