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분류
“재창조의 진리”를 혐오하는 한글 성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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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2월호>
“피터 럭크만” 박사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소위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그들의 주석서에 범해 놓은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고, 또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했던 독보적인 학자였다. 한번은 그가 히브리어 “말레”(alem')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히브리어 ‘말레’의 뜻은 ‘채우다’이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성경>은 이 단어를 ‘창세기 1:28’과 ‘창세기 9:1’에서 ‘다시 채우다’(replenish)로 번역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의 이단 학자들은 이것을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그 단어는 ‘이미 채웠던 것을 비웠다가 다시 채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잘못된 번역’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NASV, ASV, RSV, NRSV, RV, NIV 등은 ‘채우라’(fill)로 번역했고 ‘히브리어 사전과 어휘집’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이런 경우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배교한 ‘근본주의자’라면, ‘축자적으로 영감을 받은 원본’만이 오류 없는 ‘최종권위’라고 주장하는 ‘파괴적 비평가들의 추측’을 근거로 ‘성경’을 고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참다운 성경 교사’라면 그 단어를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놔두고 가르칠 것이다. 지구는 ‘두 번’에 걸쳐 ‘다시 채워졌다’(창 1:28; 9:1). 따라서 ‘채우다’라는 단어로는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지키고, ‘변개된 성서들’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라!”앞에서 “성경 변개자들”이 “번역 오류”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창세기 두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replenish] 그것을 정복하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창 9:1). 그런데 “개역한글판성경,” “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 “쉬운성경” 등의 “한글 성서들”은 모두 “다시 채우라”는 단어를 “full”이나 “fill,” 곧 “충만하라, 충만하여라, 채워라”로 변개시켰다. 또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거짓으로 비방하고 “모조품 성경”인 “흠정역”을 만든 “정동수 목사”를 위시해서,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어휘의 의미를 왜곡하는 자들은 <킹제임스성경>의 “replenish”라는 번역은 옳지만, 그 “뜻”은 “다시 채우다”가 아니라, 단순히 “채우다”(fill) 또는 “충만하다”(full)의 의미라고 억지를 부린다. 말하자면 “replenish”가 “fill”과 “full”의 동의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우선 히브리어 “말레”에는 “fill”(채우다)이나 “full”(충만하다)의 용례뿐 아니라, “replenish”(다시 채우다)의 의미도 분명하게 들어 있다. 그래서 영어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250회 이상 나오는 히브리어 “말레”를 각 문맥과 용례에 맞게, “full”과 “fullness,” “fully,” “fill,” “fulfill,” “replenish”로 올바르게 구분해서 번역했다. 특히 “replenish”로 번역된 구절은 창세기 1:28; 9:1, 이사야 2:6; 23:2, 예레미야 31:25, 에스겔 26:2; 27:25, 이상 “일곱 개의 구절”이다. 한편 영어 단어 “replenish”는 “채우다” 또는 “충만하다”의 의미가 아니며, 1610년대부터 “다시 채우다, 이전의 양이나 상태로 복원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실제로
사실 “다시 채우라”는 단어의 “번역 문제”는 “재창조의 진리를 믿느냐, 안 믿느냐”의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베드로후서 3:3-6을 주목해 보자. 『[3절]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4절]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리니 [5절]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6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4절에서 『창조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창 1:1)하신 “태초”를 가리킨다. 6절에서는 태초에 창조된 “처음 세상”을 가리켜 『이전에 있던 세상』이라고 말씀하고, 5절에서는 『옛적부터』 있었던 “하늘들과 땅”이라고 말씀한다.
“최초의 창조 때”(창 1:1)는 “인간”이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은 “두 번째 창조”인 “재창조 때”(창 1:3-2:25), 곧 “창세기 1:3 이후”에 창조된다. 따라서 “최초의 창조 때”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아들들』(창 6:2,4, 욥 1:6; 2:1; 38:7)이라 불리는 “천사들,” 즉 “인간과 유사한 존재들”이 이 땅, 지구에 살면서 “그들의 문명”을 이룩하고 발전시켰다. 한때 이들은 “신들”로 불렸는데(요 10:34, 행 14:11), 이 “신들”이 재창조 이후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구”로 내려와, 『사람들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들로 삼...고... 사람의 딸들에게 들어와서』(창 6:2,4) “거인들”을 낳았고, 사람들의 범죄와 타락을 조장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전에 있던 세상』(벧후 3:6)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이 “처음 세상”(창 1:1)을 “하나님의 아들들”을 통해 “채우시려고”(fill)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물이 범람』하게 해서 『이전에 있던 세상』을 『멸망』시키셨는데(벧후 3:6), 말하자면 “땅”(지구)뿐 아니라 “하늘들”까지 잠기게 만드는 “전 우주적인 홍수”가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이에 관한 “역사적 진실”이 “창세기 1:1,2”에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지구]을 창조하셨느니라.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우주 전체, 곧 “옛적부터 있었던 하늘들과 땅”이 물속에 잠겨 버린 것이다. 이 구절에서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라는 말씀은 “땅”(지구)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범람하는 물”에 완전히 잠겨 그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변형된 모습, 즉 “물에 의한 우주적인 심판”으로 “지구가 황폐해진 상태”를 묘사해 주고 있다(cf. 렘 4:23-27). 다시 말해 태초에 창조된 “하늘들과 땅”이 모두 “물속”에 잠겼고, “베드로” 역시 이런 사실을 앞서 언급한 “베드로후서 3:5,6”에서 분명하게 적시해 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하늘들과 땅]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흔히들 오해하듯, 이 본문은 “노아의 대홍수”(창 7,8장)를 가리키는 말씀이 아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는 “물속”에 “땅”(지구)만 잠겼을 뿐 “하늘들”까지 잠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이 범람해서 멸망한 『이전에 있던 세상』(벧후 3:6)은 문맥상(5절) “땅”은 물론, “하늘들”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런 사실은 바로 이어지는 문맥(7절)에서 잘 적시하고 있다.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창세기 1:2의 “물에 의한 우주적인 심판” 이후 “재창조된 세상”]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벧후 3:7). 말하자면 “창세기 1:1”에서 태초에 창조된 “처음 세상,” 곧 “이전에 있던 세상”인 “하늘들과 땅”은 “창세기 1:2”에서 “물”로 멸망했고, 그 이후에 “재창조된 세상”인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장차 “백보좌 심판”이 일어나기 직전에 “불”로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계 20:11-15).
그렇다면 “창세기 1:2,” 즉 “베드로후서 3:6”에서 『이전에 있던 세상』이 “물로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에 교만해진 “루시퍼,” 곧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려 했던 “사탄”의 “반역”이 있었기 때문이다(사 14:12-15, 겔 28:12-19).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루시퍼”가 “왕”으로 다스리던 『이전에 있던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고, 앞서 언급한 “하나님의 아들들,” 곧 이 땅, 지구에 문명을 구축하며 그 땅을 “채우고”(fill) 있던 “천사들”을 그들의 문명과 더불어 완전히 쓸어 버리셨다(창 1:2). 이 일이 있은 후 “창세기 1:3-2:25”에서,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다시 창조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재창조”이다. 다시 창조하실 때 물속에 잠겨 있던 “하늘들”과 “땅”이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나온 것인데(벧후 3:5), 특히 이 일은 “재창조 주간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들 가운데 창공이 있으라. 창공으로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게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드시고 창공 위에 있는 물들에서 창공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창공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의 물들이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곳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마른 곳을 땅이라 부르시고 물들이 함께 모인 곳을 바다들이라 부르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셋째 날이더라』(창 1:6-10,13).
이제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재창조된” 땅(지구)을, 친히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들”로 “다시 채우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replenish) 그것을 정복하라.』(창 1:28)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노아의 대홍수”로 이전의 사람들과 문명이 사라지고 텅 빈 “지구”를 “노아의 후손들”로 “다시 채우기”를 바라셨던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창 9:1). “재창조”의 진리를 혐오하는 “한글 성서들”과 그 성서들을 쓰는 어리석은 군상들은 “성경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다. 깨닫지 못하니, 감히 제멋대로 성경을 왜곡하여 변개시키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다음의 질문”에 결코 답할 수 없다. “재창조”를 부인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상태”(창 1:2)에서 “창조하신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유”(有)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조물주”란 말인가? 이보다 더 큰 “신성 모독”이 어디 있겠는가! “루시퍼”인 “사탄”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천사들,” “그룹들,” “정사들,” “권세들” 등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땅... 어두움... 깊음... 물들』(창 1:2)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이쯤에서 “재창조의 진리”에 대한 혐오를 멈추기 바란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