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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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까지 다녀오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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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9월호>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까지 다녀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은 죄인인 “당신”이요, “인자”(Son of man)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옥까지 보낸 당사자도 죄인인 “당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고난당할 때>를 쓴 “호레이셔스 보나르”가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내가 흘리게 했네. 내가 그분을 나무에 못 박았네. 내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분을 모욕하는 일에 나도 참여했다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롬 5:8).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셨으므로』(고전 5:7).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고후 5:2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제물과 희생으로 드린 것같이』(엡 5:2).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은』(살전 5:10). 『그[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딛 2:14).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벧전 2:21). 『그리스도께서 그때 우리를 위하여 육체로 고난을 받으셨으니』(벧전 4:1). 『그분[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음이라』(요일 3:16). 이상 “열 가지 구절”에서 각 구절마다 등장하는 표현 『우리를 위하여』의 “우리” 자리에 “당신의 이름”을 넣어 큰 소리로 읽어 보라!


초림 당시 이 땅에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딤전 3:16, “경건의 신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혼”과 “하나님의 몸” 그리고 “인간의 영”과 “인간의 혼”과 “인간의 몸,” 이상 “여섯 가지 요소”를 지니고 계신 매우 “신비로운” 분이시다. 우선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골 2:9) 거하시는데, 여기서 『신격[Godhead]』은 세 위격(位格), 곧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요일 5:7)이시고, 『또 땅에서 증거하는 것도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요, 이 셋은 하나 안에서』(요일 5:8) 일치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하나님의 혼)께서 육신으로 나타난 분이시고(딤전 3:16,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육신을 입고 온 “아들 하나님”(하나님의 몸)이시며(요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하나님께서... 한량없이』 주시는 『성령[하나님의 영]』(요 3:34)을 소유한 분이시다. 그와 동시에 목이 마르고 배고프며, 졸리고 피곤하며, 기운이 쇠잔할 수 있는(요 4:6; 19:28) “인간의 몸”과 신음할 수 있는(요 11:33) “인간의 영”과 슬퍼하고 괴로워할 수 있는(막 14:34) “인간의 혼”도 갖고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동시에 “인자”로 불리신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고자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인자”로서의 죽음이었다.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실 수도 없고, 또 실제로도 죽으시지 않았다. 다만 “인간”으로서 또는 “인자”로서 죽으셨을 뿐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인간으로 태어나셨을 때 “죽기 위해” 태어나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구상에서 “죽기 위해” 태어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실제로 “죽은 것”은 “하나님의 몸”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었다. 당시 “아리마대 요셉”과 “니코데모”는 숨을 거둔(요 19:30) 그 “몸”을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관례대로 향료를 넣어 세마포로』(요 19:40) 쌌고, 이후 그들은 그 “몸”을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있는 『동산에... 아무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요 19:41)에 안치했다. 『그리하여 그가 그 시체를 내려 세마포에 싸서 한 번도 시체를 누인 적이 없는,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안치하더라』(눅 23:53).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몸”이 썩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패”가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예비하신 몸”으로(히 10:5), 성령 하나님께서 “남자를 모르는”(눅 1:34) 처녀에게 직접 임하시어 그녀를 덮으심으로써(눅 1:35) 탄생된 몸이기 때문이다. 그 “몸” 안에는 “인간의 피”가 아닌 “하나님의 피”(행 20:28)가 흐르고 있었고, “인간 아버지의 씨”와는 전혀 무관한(마 1:25) 몸인지라, 흔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롬 5:12) 어떤 죄도 들어 있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이 잘못 주장하는 것처럼 “죄를 지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몸은 아니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어떤 조건하에서도 죄를 지으실 수 없는 몸을 입으셨다고 한다면, “다니엘보다 더 현명한 존재”(겔 28:3)인 사탄이 왜 예수님을 시험했겠는가? 간교한 그가 아무런 실익도 없는 그런 무모한 짓을 뭐 하러 했겠는가? 하지만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빌 2:8) 『동일한 것에 참여하신』(히 2: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다. 심지어 『정사들과 권세들을 벗겨 내어 그것들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골 2:15) 이기셨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대제사장은...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히 4:15)이라고 말씀한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인간의 영”은 아버지 하나님께로 갔다. 『그때 예수께서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시여,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나이다.”라고 하시고, 이 말씀을 마치신 후 숨을 거두시니라』(눅 23:46). 그 “영”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간 이유는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전 3:21)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전 12:7)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본래 인간의 “영”은 “호흡”이기 때문에(창 2:7), 인간이 숨을 거두면 그 호흡은 모두 하나님께로 모아진다. 『만약 그분이 그의 마음을 인간에게 두신다면, 만약 그분이 그의 영과 호흡을 자신에게로 모으신다면 모든 육체는 함께 멸망하고 인간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욥 34:14,15).

또한 그분의 “인간의 혼”은 곧바로 “땅의 심장,” 곧 지구의 중심에 위치한 “지옥”으로 내려갔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선지자 요나의 표적』(마 12:39)에 따른 것이었는데,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in the heart of the earth] 있을 것이라.』(마 12:40)라는 예언대로 된 것이다. 여기서 “땅의 심장”은 “무덤”이 아니다. 무덤의 위치는 “땅의 표면,” 곧 “지구(earth)의 표면”이지 “지구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중심,” 곧 “심장”은 “땅(earth)의 더 낮은 부분들”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그[예수 그리스도]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엡 4:9)라고 묻고 있다.

흔히들 오해하듯이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죽었었다. 만일 요나가 죽은 것이 아니라면 『내가 산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더니 땅이 그 빗장들로 영원토록 나를 막았나이다. 그러나 오 주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 생명을 부패함에서 건져내셨나이다.』(욘 2:6)라고 고백했던 “요나의 기도”는 그야말로 “난센스”가 된다. 분명 요나는 죽었던 것인데, 죽은 그의 “영”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갔고, 그의 “몸”은 『고래 뱃속』에 있었으며 『부패』도 진행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죽은 요나의 시신이 “썩어 가고” 있을 무렵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그를 살리신 것이다. 한편 그의 “혼”은 숨이 끊어진 그의 “몸”을 떠나 『산들의 밑바닥까지』, 곧 “지옥”으로 내려갔다. 『내가 나의 고통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를 들으셨나이다. 내가 지옥의 뱃속으로부터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그때 요나의 “혼”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실제로 타오르는 지옥 안에 있었는데, 지옥은 어떤 죄인도 빠져나올 수 없도록 “열쇠들”(계 1:18)로 굳게 잠긴 “문들”(마 16:18)과 “빗장들”(욘 2:6)로 그 입구가 가로막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옥의 뱃속』에서 『고통』 중에 부르짖은 요나의 기도를 들으셨고, 이에 그의 “혼”을 풀어 주셔서 『고래 뱃속』에 죽어 있던 그의 “몸”이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의 “표적”(sign)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계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인데, 말하자면 『땅의 심장』에 있는 “지옥”에 다녀오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다윗]가 선지자가 되어 육신을 따라 그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시어 그의 보좌에 앉게 하신다는 맹세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것을 알고 그가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한 것은,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육신도 썩어짐을 보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라.』(행 2:30,31)라고 설교했다. 분명 베드로는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지, “주의 혼이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주의 육신도 썩어짐을 보지』 않았는데, 이 점은 『부패』가 진행되던 요나의 “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외치시며 숨을 거두신 예수 그리스도의 “혼”은 그분의 “몸”을 떠난 이후 『사흘 낮과 사흘 밤』, 꼬박 72시간 동안 “지하 세계”에 다녀오셨는데, 친히 그분의 “몸”으로 담당하신 우리의 모든 죄들을(벧전 2:24, 히 9:28) 그곳 “지옥”에 내려놓으셨고, 그렇게 하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들을 말끔히 처리하셨다. 즉 우리의 모든 죄들을 지옥으로 옮기셨으며, 그 모든 죄들은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옥의 뱃속』에 그대로 갇혀 있는 것이다. 한편 그 죄들은 장차 “불못”으로 옮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백보좌 심판” 이후 『마귀와 그의 천사들』(마 25:41)과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계 20:15) 죄인들은 물론,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계 20:14) 던져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지고” 가셨으되, 「세상 죄를 지고 가는」이라고 “요한복음 1:29”을 변개시킨 “개역성경” 및 “개역개정판”처럼 지금도 계속해서 “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지옥으로 옮겨서 그곳에 다 쏟아 놓으시고 지옥의 문들을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계 1:18)로 걸어 잠그셨다. 마치 “청소차”가 온갖 쓰레기를 다 버리는 하치장에 가서 “가득 싣고 온 쓰레기들”을 모두 쏟아 놓듯이, 모든 죄들을 그곳에 쏟아 버리시고 빗장들을 지르신 후 다시 나오신 것이다.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행 2:31). 이것은 지옥에 가시긴 가셨으되 “그곳에 남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지옥에서 나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커다란 구렁』(눅 16:26) 너머에 있는 『아브라함의 품』(눅 16:22), 곧 “지하 낙원”으로 건너가셨는데, 주님께서 숨을 거두시기 “최소 세 시간” 전에(오전 9시에서 낮 12시 사이, 막 15:25,32,33, 눅 23:39-44) 기적적으로 “회개한 한 강도”에게 약속하셨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시니라』(눅 23:42,4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곳 “지하 낙원”에서 그곳에 머물러 있던 “구약 성도들”(“그리스도인들”이 아님)을 만나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죽은 구약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를 통한 영원한 구속”을 전해 주신 것이다. 『이런 연유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4:6). 이를테면 이런 식의 내용을 전파하신 것이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바로 그 ‘어린양’이며(사 53:7), 침례인 요한이 증거한 바로 그 ‘세상 죄를 제거하는 어린양’(요 1:29)이다. 나는 ‘첫 언약 때 범죄한 너희들을 구속하기 위해’(히 9:15) 십자가 제단 위에서 ‘희생제물’로 드려졌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으니, 나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자!” 이후 주님께서는 친히 부활하시면서 그곳 “지하 낙원”에 사로잡혀 있던 구약 성도들의 혼들을 사로잡아 그들을 데리고 셋째 하늘의 “낙원”으로 올라가셨는데,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그[예수 그리스도]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갔고』(엡 4:8)라고 말씀한다. 이로 인해 “지하 낙원”은 현재 텅 비어 있으며, 특히 그들 중 상당수는 “몸”을 입고 부활했다.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구약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더라』(마 27:51-53).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이 교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매 주일 예배 때마다 “주문”(呪文)처럼 헛되이 반복하는 “사도신경”에서조차 그런 내용을 삭제해 버렸다. 왜냐하면 그 “신조”에는 본래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다녀오신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성경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벧전 2:24) 담당하시고, 그 몸에 우리의 죄들을 지시어 스스로 『죄』(고후 5:21)와 『저주』(갈 3:13)가 되셨다고 말씀하는데,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그 죄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하셨는가? 여전히 그분의 “몸” 위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어딘가에 버려두고 오신 것인가?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옥”에까지 다녀오셨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더럽고 추악하며 가증한 죄인, 바로 “당신”을 위해서이다. 지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으라! 그러면 구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완고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다면 죽은 뒤에 당신이 가야 할 장소는 오직 한 곳뿐이다. 현재 당신의 죄들이 버려진 곳, 곧 “지옥”인 것이다. 과연 “요나”처럼 지옥의 “뜨거운 불길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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