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주석 분류
소선지서 주석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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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2월호>
▶ 서 문 ◀마지막 교회 시대인 라오디케아 교회시대에 “소선지서”는 성경에서 가장 무시당하는 책들이다. <킹제임스성경>에 근거해서 충실하게 이 소선지서를 비평하거나 해석한 주석서는 없다. <강단 주석, The Pulpit Commentary>은 소선지서에서 한 구절당 평균 두 군데씩 다른 단어로 대체시키고 있는데, 이는 배교한 RV(1881-1884) 위원회의 그릇된 노선을 따르기 때문이다. 벌링거(Bullinger)는 본문에서 약 200군데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유명한 주석가들(마티, 호튼, 노악, 호프만, 하퍼, 오렐리, 로쓰타인, 케인, 델리취 케일, 슐츠, 클라크 등)이 자신들의 신학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성경 본문의 단어들을 대체시켜 파괴적으로 비평한 책들이 14권 정도이다.
영적으로 해석한 주석들은(매튜 헨리, 그린, 파인버그, 아이언사이드 등) 어떤 면에서는 유익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이 제공한 “젖”으로 그런대로 목은 축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에게는 너무나도 미흡한 것이다.
소신지서 주석에서도 우리는 이제껏 지녀 왔던 기본적인 입장, 즉 학자들을 신뢰하지 않고 오직 성경으로만 해석하는 자세를 고수할 것이며, 성경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이나 많이 아는 체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하등의 점수도 주지 않을 것이다. 성경의 어느 구절에 대해서도 로버트슨이나 메이첸, 클라크, 워필드, 핫지와 같은 사람들의 학위나 그들의 노선을 따르는 자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중할 수 있고 모든 권위를 인정할 수 있지만(벧전 2:17, 롬 13:1),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해석하고 깨닫는 데만큼은 근본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그 어떤 사람의 박사 학위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 간의 교육을 통하여 얻어진 이 학위는 그들을 너무 교만하게 만들어, 스스로 성경 위에 군림하며 하나님과 대면하여 모든 것을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로버트슨은 고대 헬라어 문법에 있어서는 권위자라 할 수 있어도, 성경에 관해서만큼은 무시해도 좋다. 워필드와 메이첸은 그 당시의 자유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취한 입장에 대해서는 존경을 받을 수 있으나, 그들이 믿었던 “믿음의 근본 사항들”은 카톨릭 교도들도 믿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헬라어를 연구했던 점은 인정할 만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고칠 권한은 결코 없다.
소선지서를 공부하는 동안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절대 무오의 권위의 견지에서 말할 것이다. 보수주의나 근본주의 학자들이 무엇을 발견했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 무오한 권위에 상반된다면 고려해 볼 여지도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 한다. 이 <킹제임스성경>은 수많은 싸움터에서 수많은 방법으로 스스로를 입증해 왔다. 지금까지 나왔던 그 어떤 번역본도 <킹제임스성경>의 성경적 진리 위에서 이루어진 복음 전파 운동, 부흥 운동, 선교의 확산보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은 적은 없다. 우리는 보수주의 학자들이 성경을 고치려는 의도로 주석을 쓰는 것처럼 이 주석을 쓰지는 않을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성경 본문을 한 절 한 절, 기록된 그대로 해석해 나갈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선지서들”(“나흐빔”)은 전선지서와 후선지서로 나뉜다. 전선지서에는 여호수아, 재판관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있고, 후선지서에는 이사야부터 말라키까지의 책들이 있는데, 전선지서와 후선지서로 나누는 기준은 그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에 따른 것이다. 또 후선지서 중에서 특히 호세아부터 말라키까지를 “소선지서”라고 하는데, 이렇게 나누는 근거는 그 책들의 기록된 분량에 따른 것이다. “소선지서”라고 불리는 것은 단지 분량이 적기 때문이지 결코 다니엘이나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보다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그 선지서들의 순서는 구약성경의 배열된 순서일 뿐이지 그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 순서가 아니다. 그 예로 호세아와 아모스를 들 수 있는데, 배열상으로는 호세아가 앞서나 연대기적으로는 아모스가 앞선다.
“선지자”라는 말에 대해서는 창세기 20:7을 주석하면서 언급한 바 있지만, 성경은 아브라함이 선지자였다고 말한다. 이삭과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모세와 다윗은 “선지자이며 제사장이며 왕”이었던 인물들이며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사무엘은 “선지자이자 제사장”이었고, 사울은 모호하기는 하지만 “선지자이자 왕”이었다. 여호수아는 “선지자이자 왕”이었지만 제사장은 아니었다. 선지자는 한 민족이 영적으로 타락하고 배교하여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심판하려 하실 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편에 서게 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참된 의미에서의 선지자들이었던 것이다.
“선지자”(prophet)라는 말은 “예언하는 사람”이다. 많은 학자들이 “선지자”를 앞일을 예언하는, 즉 “미리 말하는 사람”(foreteller)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말해 내는 사람”(forth teller)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혀 옳지 않다.
성경에는 예언과 연관된 일곱 기간이 나온다.
1.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 (에녹도 선지자였다.)
2.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진영에서 사람들이 예언을 하기도 했다. 민 11:25-30)
3. 모세부터 호세아까지 (B.C. 1500 - B.C. 689)
4. 호세아부터 말라키까지 (B.C. 689 - B.C. 389)
5. 침례인 요한부터 사도행전 1장까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선지자였다.)
6. 사도행전 1장부터 휴거까지 (성령님께서는 “일어날 일들”을 보여 주신다. 요 16:13)
7. 대환란 때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할 144,000명의 증인들
천년왕국 기간에는 선지자도 없고(슼 13:2) 예언도 없다(히 8:11). 천년왕국 기간에 자신이 선지자라고 주장하면 처형당한다(슼 13:3).
소선지서의 선지자들 가운데 우리가 성경에서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선지자들은 호세아, 아모스, 미카, 스파냐, 학개, 스카랴이고, 요엘이나 오바댜, 요나, 나훔, 하박국, 말라키는 그 사역했던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호세아는 이사야와 미카와 동시대 사람이며, 스파냐와 하박국은 예레미야와 동시대 사람이고, 다니엘은 요엘과 오바댜의 시기에 걸쳐있다. 학개와 스카랴는 동시대에 있었고 말라키는 홀로 떨어져 있었다.
벌링거는 16권의 선지서들을 다음 네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 그룹은 「요나,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카, 나훔」 등 여섯 권이다. 두 번째 그룹은 「예레미야, 하박국, 스파냐, 다니엘, 요엘, 에스겔, 오바댜」 등 일곱 권이고, 세 번째 그룹은 「학개, 스카랴」 두 권이며, 나머지 한 권은 말라키이다. 이 네 그룹은 약 316년에 걸쳐 있다.
소선지서 12권이 한 권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도움이 된다. 가장 잘 나누는 방법은 3권, 6권, 3권 순서로 구분하는 것이다. 호세아, 요엘 아모스가 첫 번째 순서이고, 오바댜, 요나, 미카, 나훔, 하박국, 스파냐가 두 번째 순서이며, 세 번째 순서는 학개, 스카랴, 말라키이다.
소선지서의 선지자들은 진짜 선지자들이다. 그들은 얄팍한 말로 군중을 선동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으며, 사회 개혁가도 아니었다. 선지자들은 구약의 신정 정치에 있어 그린베레나 공수부대, 혹은 해병대 같은 사람들이었다. 즉 이들은 특별한 임무를 맡았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선지자들은 고통스러운 고난(약 5장)을 겪었고, 때로는 담(참호)을 파기도 했으며(겔 8:8; 12:5), 벌거벗고 다니기도 했고(사 20:2), 창녀와 결혼하기도 했으며(호 1,3장), 잿더미에 앉기도 했고(욥 2:8), 아내를 잃기도 했으며(겔 24:18), 따귀를 맞기도 했고(왕상 22:24),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렘 38:6),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도 쳤고(왕상 19장), 고래 뱃속에 들어가기도 했으며(욘 2:10), 돌로 맞기도 했고(마 23:37), 십자가에서 처형당했으며(마 27장, 막 15장, 눅 23장), 어린아이에게 조롱도 당했고(왕하 2:23), 목베임을 당하기도 했다(마 14:10-11).
대부분의 “정통주의 신학자”들은(트랜치, 알포드, 로버트슨, 바이스, 칼빈, 어거스틴, 제롬, 댑니, 스토롱, 핫지, 메이첸 등) 구약 선지자들의 사역을 자신들의 메시지와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의 “선지자”(prophet, “예언하는 사람”)란 단어는 “미리 말하는 사람”(foreteller)이라는 뜻이 아니고 단지 “말해 내는”(forth-tell)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선지자는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입으로 말해 내는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선지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내용이 미래의 사건이 아닌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내용의 90%는 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이었다. 미래를 예언하지 않은 선지자는 성경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아브라함과 모세의 생애는 그들의 입으로 발설한 것을 제외하면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고 있는(히 11장) 사람의 생애임이 분명하다. 학자들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서에서 “사회 개혁을 위한 메시지”라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예언”인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구약 선지자들의 발언 중 사회 개혁에 관련된 내용만을 뽑아낸다. 이들은 선지자들이 “사회의 죄들”을 지적한 것을 들어 아모스, 요엘, 오바댜, 호세아, 미카, 나훔 등을 “종교적 사회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이들 선지자들을 마르크스, 트로츠키, 레닌, 슈바이처, 버트란트 러셀 등과 같은 부류로 취급한다. 이들 “사회 복음주의자”들이 “선지자”라면 누구는 선지지가 아니겠는가?
사회주의 십자군들이 양 우리 안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아야 한다.
1. 선지자들은 죄를 세상의 모든 재앙의 원천으로 보았다.
2. 이들은 결코 “이상주의자”(다윈 같은)가 아니었다. 이들은 오직 남은 자들에게만 희망을 갖고 있었다.
3. 이들은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을 강조했다.
4. 이들의 메시지는 항상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했다.
5. 이들은 모세 오경의 예언들을 성취하실 메시야를 유일한 희망으로 제시했다.
6. 이들은 모든 종류의 통합과 인종 혼혈을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이 여섯 가지 사항을 당신의 목자는 갖추고 있는가?
그러나 새로운 도덕과, 교회 일치 운동, “하나됨”만을 주장하는 현대의 “선지자”들은 이렇게 설교한다.
1. 과학은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2. “평화”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이상이다.
3.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비정상적인 자들이다.
4. 성경을 비판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신앙”을 비판하는 것은 죄이다.
5. 사형제도는 옳지 않다.
6. 죄책감이 정신병을 만든다.
7. 자기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강조했다. 그렇지 않은 선지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은 주님의 재림과 함께 천년왕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사실은 예수님의 초림 때 당시의 위선자 집단인 종교 지도자들을 혼동시켰다. 그러한 인간의 무지함과 완고함과 무엇보다도 진리를 기뻐하지 않는 마음은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98%의 성경 주석가들이 그러한 위선자 집단에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선지서의 주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구약의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선지서 중에서도 소선지서의 주제는 더 더욱 그렇다. 이미 구약의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해하고 선지서를 읽은 사람에게는 선지서의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소선지서의 선지자들은 말 그대로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미래를 예언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에 관한, 당시에는 감춰졌던 계시들을 소선지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12권의 소선서들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호세아는 재림 때에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에 중점을 둔다.
2. 요엘은 재림 때의 아마겟돈 전쟁에 중점을 둔다.
3. 아모스는 재림의 경로를 계시해 주며, 예루살렘 근방 민족들의 심판을 말한다.
4. 오바댜는 천년왕국 기간에 불못의 위치가 에돔인 것을 말해 준다.
5. 요나는 대환란 동안 이방인들을 위한 증인으로 부름 받는 유대인들의 중요한 예표가 된다(계시록 7장 및 주석을 볼 것).
6. 미카는 초림과 재림을 비교한다.
7. 나훔은 니느웨가 바빌론의 유형이라는 사실을 다루었고, 재림 때에 승리하는 상황들을 보여 준다.
8. 하박국은 재림의 경로에 중점을 둔다.
9. 스파냐는 재림의 부정적인 성격에 중점을 둔다.
10. 학개는 성전 건축이 향후 20년 이내에 이루어질 것을 보여 준다.
11. 스카랴는 초림과 재림을 비교하고 아마겟돈 전쟁 후의 사건들을 자세히 말한다.
12. 말라키는 다가오는 재림의 마지막 경고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