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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을 시험하신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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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4월호>
질문『하나님께서는 왜 아담 앞에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를 두셔서 그를 시험하시고, 그 열매를 먹을 경우 그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또한 아담이 그 열매를 먹음으로써 시험에 실패할 것을 미리 알고 계시지 않았는가?』
답변
첫째, "권위"의 문제이다. 위 질문과 관련된 성경 구절은 창세기 2:16,17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흔히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시험하셨다고 해석되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기본 개념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자. 성경은 분명히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제의 본질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가 아닌, "명령"하신 분의 "권위"에 있음을 보여 준다. 아담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분의 권위 아래 있기에 그분의 명령에 온전히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영적 원칙이기 때문이다(골 3:18, 딤전 2:12, 딛 2:15, 벧전 3:1; 5:5).
하나님의 피조물인 루시퍼의 반역 역시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의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야기되었다(사 14:12-15, 겔 28:12-19). 하나님의 보좌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의 자리였다. 따라서 루시퍼의 반역으로 이전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재창조하신 세상에 아담을 지으셨을 때, 주님께서는 그분의 권위를 피조물인 아담이 넘보지 못하도록 아담 앞에 경계선을 그어 두신 것이다.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아담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에서 나온 명령을 어긴 죄를 짓고 말았다. 『왕의 말이 있는 곳에는 권위가 있나니, 누가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나이까?"라고 할 수 있느냐?』(전 8:4) 하나님의 권위의 문제로 볼 때, 아무도 아담에게 하신 명령에 관해 그분께 따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기에 아담은 그 권위의 명령을 지켜야 했다.
둘째, "자유의지"의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계시며, 동일한 자유의지를 지닌 독립된 피조물을 창조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눅 3:38)이라고 불린 아담이었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지은 책임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아담 자신에게 있었다.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는 아담이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그가 자유의지를 사용해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환경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시험하신 것인데, 이는 주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속을 시험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시 7:9; 17:3). 사도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살전 2:4).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을 다루시는 방법은 그의 의지를 강제로 이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분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그가 자유의지를 사용해 실행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계신다. 카인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살인자에게조차도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인간에게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에 주신 명령이다. 복종할 수 없는데 복종을 명하셨다면, 주님께서는 가장 모순된 하나님이 되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경고를 하시지만, 그가 경고를 무시한다고 해서 강제로 막는 분은 아니시다. 그에 관한 대표적인 예가 솔로몬이다. 솔로몬의 마음이 주께로부터 돌이켜진 까닭에 그에게 진노하셨고, 또한 그 전에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시어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셨지만, 솔로몬은 그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왕상 11:9,10). 이스라엘이 죄 가운데 있었을 때 주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그들에게 경고하셨지만, 이스라엘 역시 작심하고 죄를 지었음을 구약성경에서 보게 된다. 『주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경청하려 하지 아니하였더라』(대하 33:10). 인간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작심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 아담 역시 솔로몬처럼 죄에 대한 경고를 받았지만(창 2:16,17) 결국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 죄를 짓고 만 것이다(창 3:6). 뱀에게 속은 것은 여자였다. 아담은 아내인 이브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복종임을 알면서도 그 열매를 받아먹었던 것이다(딤전 2:14).
자유의지에는 두 자유의지가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 때 이 원칙을 갖고 계셨으며, 그의 자유의지를 강제로 조종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분의 뜻을 분명한 말씀으로 계시하시어 인간 스스로 그것을 따르기를 바라셨다. 이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 인류의 눈앞에 한 권의 책, 곧 "성경"이 놓여 있으며, 주께서는 온 인류가 그 책에 기록된 말씀에 순종하여 영원히 살기를 바라고 계신다.
셋째, "미리 아심"의 문제이다. "미리 아심"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그분의 핵심적 속성 가운데 하나이다(사 41:21-23). 죄인들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의 속성을 근거로 창세기 3장에서의 인간의 타락 원인을 그분께 돌리며 성경을 공격한다. 그러나 성경은 미리 아심조차도 자유의지의 작용에 따라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크일라로 피신했을 때 그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물었다. 『크일라 사람들이 나와 나의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겠나이까?』 그때 주님의 "미리 아심"에 따른 답변은 『그들이 너를 넘겨주리라.』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자유의지"를 사용했고, 『그러자 다윗과 그의 사람 약 육백 명이 일어나 크일라를 떠나서 그들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더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삼상 23:12,13). 주님께서는 크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을 미리 아셨지만, 다윗은 자유의지로 피신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일어나지 않을 일을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넘겨줄 것을 아셨지만, 다윗이 피신함으로써 넘겨지지 않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는 미리 아심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다윗이 자유의지로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될 수도 있었고 또 저렇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크일라를 벗어나 살 수도 있었고 벗어나지 않아 죽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아담 역시 금지된 열매를 먹지 않고 살 수도 있었고 먹고서 죽을 수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의 자유의지에 따른 바른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신 것이며, 그분께서 그에게 지우신 것은 오직 "옳은 것"뿐이었다(욥 34:23). 그러나 아담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창세기 2:16,17 말씀에 따라 저주하셔야 했다. 이로써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라 정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여명이 밝아 와야만 했던 것이다.
디도서 1:1-3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결정된 일이었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니, 이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에 따른 진리의 지식에 따라 영생의 소망 안에서 주어진 것으로, 이 영생의 소망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약속하셨다가 때가 되어 그의 말씀을 복음 전파를 통해 나타내셨는데...』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를 결정하셨다면,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을 것과 그런 인간에게 그분의 구속 사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미리 아셨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아담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아담이 죄를 짓지 않을 경우, 그분이 이루시기로 미리 정해 놓으신 구속 사역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것임을 뜻한다. 마치 다윗이 크일라를 벗어나 살게 된 것처럼, 아담 역시 금지된 열매를 먹지 않고서 살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자유의지가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튈 것인지까지도 미리 아셨기에 하나님의 어린양의 구속 사역을 미리 정해 놓으셨던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미리 아심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영역을 초월한다. 자유의지에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가변성(可變性)이 있다면, 미리 아심에는 그 가변성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여 그분께서 의도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능력이 있다. 그것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어 미리 기록해 놓으신 것이 바로 "성경"이다. 미리 아심과 자유의지는 상호 종속되지 않지만, 미리 아심은 자유의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상위의 법칙"에 속한다. 자유의지로 말미암는 모든 가변적 상황까지도 "미리 아심"으로 통제하실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며, 우리가 믿고 섬기는 그분이 얼마나 위대하신 하나님이신가를 깨닫게 한다.
단 1초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 자신의 "이성(理性)"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깨달음을 위해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뿐이다(히 11:3).
자유의지는 그 행위의 결과에 "책임"이 따르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타락에 대한 책임을 대신 지시는 사랑을 보여 주셨다(요일 4:19, 롬 5:8). 그것이 갈보리 십자가이다. 아담이 죄를 지을 것을 미리 아시면서도 그를 시험했다고 비난한다면, 여전히 갈보리 십자가를 가리키실 것이다. 즉 인간의 타락에 대한 책임을 주님께서 친히 지셨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창세기 3장의 에덴 동산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모든 비난까지도 종결시켜 준다. 아담을 부당하게 시험하셨다며 의심과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심을 믿지 않고 인본주의적 사고와 논리로 그분을 궁지(?)에 몰아넣고 싶어 하는 사악하고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성경을 믿지 못하게 만들려는 마귀의 계략인 것이다. 이제 타락한 인류에게 남겨진 것은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뿐이다(행 16:31).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