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구절 해설 분류
여호와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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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11월호>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불렀더니,오늘까지도 말하여지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하더라.
창세기 22:14
창세기 22:14에 대해 톰슨 성경은 주석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번역들을 제시하고 있다.
< 관주 톰슨 성경 >
“이 말씀은 여러 가지로 번역되었다. 즉, ‘산에서 여호와가 나타나시리라’ 혹은 ‘산에서 여호와가 준비하시리라’ 또는 ‘여호와의 산에서 백성이 나타나리라’ 등이다. 그러나 중요한 의미는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린 산에서 여호와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나타나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 후에 솔로몬의 성전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나타나심으로 그의 언약이 성취되었다.”
<개역한글판성경>에도 본문을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라고 변개시켜 놓았다.
학자들이 본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변개시키는 이유는 간단한데, 그것은 그들이 본문을 이해하거나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칠십인역은 “주의 산에서 나타날 것이라,” 라틴 벌게이트는 “주의 산에서 볼 것이라,” 게센니우스, 로젠뮬러, 케일, 다테 등은 “주의 산에서 예비되리라.”로 성경을 변개시켰다. “보다”는 히브리어의 니팔 수동태로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같이 “보여지리라.”로 정확히 번역되어야 한다. 이 번역은 8절과 13절로 볼 때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14절의 “그것”(it)은 문맥에서 볼 때 숫양, 제단, 혹은 “그 장소”를 가리킨다. 모세가 창세기를 쓴 당시에는 숫양은 죽어 사라졌지만, 제단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14절의 “그것”(it)은 아브라함이 “여호와이레”라고 불렀던 장소일 수도 있다. 이것이 가장 논리적인 설명이 될 것이다. 이 해석은 <킹제임스성경>을 수정하지 않고서도 모든 학자들의 요구에 다 부응하기 때문이다.
“주의 산”은 보통 학자들에 의하면 시온 산의 성전 지역을 가리키며, 이 사실을 근거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보여지리라.”는 말을 경배자들이 시온 산으로 경배하러 올라가는 모습이 보여질 것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라프 벨 하우젠 이론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오늘까지도 말하여지기를”이라는 표현은 “주의 산에서 보여지리라.”는 속담을 들었던 기록자에 의해 창세기 22장이 쓰여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속담이 성전 경배의 모습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성전 경배는 솔로몬 시대에 가서야 확립되었다-왕상 4-7장), 창세기의 기록자는 B.C.1000년 이후에나 창세기를 기록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정통주의자이든 자유주의자이든 간에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라프 벨 하우젠의 억측을 수용하고 말았다. 이들에 의하면 모세오경은 요시아 시대에 쓰여졌다고 한다. 사실 주의 산은 시온 산 혹은 갈보리 산일 것이며,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본문의 “여호와이레”의 참된 의미는 8절에서 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 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는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 “이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두려워하다” 혹은 “경외” 혹은 “마련되다” 혹은 “보살핌을 받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그 말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주님은 우리의 삶에 있어 필요한 것을 마련하시고, 우리가 죽을 때도, 또 우리가 심판을 받을 때도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신다. 인간은 호흡하며 살아 있는 이 순간은 물론 최후의 심판 때도 초자연적인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롬 11:35,36, 단 5:23).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분이 자신을 친히 대속제물인 어린 양으로 마련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해해고 믿어야 한다.
8절은 성경에서 세 번째로 어린 양을 언급하는 곳이다. 처음으로 등장한 어린 양은 두 명의 벌거벗은 죄인들을 덮어주었다(창 3:21). 두 번째 우리가 볼 수 있는 어린 양은 죄를 위한 피의 속죄물로서 등장했다(창 4:4). 그리고 이곳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어린 양이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구절 역시 많은 학자들이 이해할 수 없고 믿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변개가 자행된 곳이다. <개역한글판성경>에서도 변개된 성경들을 따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라고 변개시킴으로 속죄양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놀라운 진리를 가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침례인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한 요한복음 1:29과 연관된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속죄 양이 되시리라는 명백한 구절을 “명료하게” 한다는 미명 하에 고쳤기 때문에 결국 “어린 양”은 하나님 자신이 될 수 없었고, 그 대신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로 번역되었던 것이다.
이 위대한 예언의 말씀은 지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되었다. “어린 양이 어디 있나이까?”라는 이 질문은 “유대인의 왕으로 난 자가 어디 있습니까?” 혹은 “구원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혹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습니까?” 혹은 “더러운 것에서 누가 깨끗한 것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혹은 “사람이 자기 혼을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혹은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께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식으로 달리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질문이야말로 “최고 선”, “최고의 실재”에 관해 가장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들이 던진 가장 위대한 질문들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어쨋든 “여호와이레”는 희생제사에 관해 다음과 같은 11가지 진리들을 가르쳐준다.
1. 하나님 자신이 제물이 되시기까지는 속죄는 불완전하다(히 10:4).
2. 하나님께서 자원하여 자신을 드리시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받으실 수 없다(히 10:5-7, 레 1:3).
3. 창세기 3장 ~ 마태복음 27장까지의 모든 희생제사는 속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임시적 제도였다(히 10:11).
4. 하나님께서는 희생제를 드리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 계급”으로 마련하셨다(대상 15:14-16, 출 28:40-43, 레 9장).
5. 그러나 민수기 1-13장 이전이나 사도행전 2장 이후에는 제사장 계급이란 없다(마 27:51, 히 8:1; 9:24, 벧전 2:9, 계 7:7을 볼 것).
6. 멜키세덱은 실제적인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그는 단지 “기념”의식을 거행하였던 것이다(창 14:18, 고전 10:16,17; 11:25).
7. 신약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 전부가 “제사장들”이며, 이들은 결코 실제적인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창 2:9 주석 및 벧전 2:5, 히 13:15,16, 고전 10:16,17).
8.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충성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롬 10:4).
9. 따라서 사도행전 2장 이후에는 충성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한 번 그리고 영원토록 갈보리에서 이루신 그 예비하심을 신뢰할 것이다.
10. 출애굽기 20장에서 마태복음 27장까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그것을 신뢰하는 자가 충성된 자들이다.
11. 충성되지 못한 사람들은 마태복음 27장 이후에도 스스로 제사장제도를 만들어 자신들을 위해 희생제를 드릴 것이며, 이로써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것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갈 5:4, 롬 10:1-3;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