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난해구절 해설 분류

한 번 받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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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4월호>

히브리서 6:4-6



성경을 읽다보면 더러 깨닫기 어렵거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교리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구절들이 소위 “난해구절”들로 알려진 것은 대부분의 경우 성경에 대한 무지 및 성경과 관계없이 형성된 편견 혹은 선입견 때문이다. 물론 매우 어려운 구절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 기록하신 말씀을 한갓 피조물인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영을 보내시어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요16:13), 그 분의 자녀된 자들은 이 약속을 근거로 해서 진리의 지식(딤전2:4)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여러 가지 칼럼과 주석을 통해 오도된 교리를 성경으로 바로잡으려고 애써온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은 37호부터 난해구절 해설 코너를 마련하게 되었다. 성도들이 성경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등장한 온갖 주석 성경들이 오히려 성도들을 잘못된 교리로 오도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심정에서이다. 가장 난해한 구절로 알려진 것들을 정선해서 현재 나와 있는 주석성경들의 잘못된 해석을 성경으로 바로잡아 가고자 한다.
본 코너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하는 바이다.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릴 것은 본 코너는 모든 층의 성도들을 위한 것으로 가능한 한 신학적인 용어를 피하고 쉽고 용이한 해설을 제공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후에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히6:4-6).

죄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구원이다. 죄로 인해 심판받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는 심판과 형벌에서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구원에 관련된 교리논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왜곡시켰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고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구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원받는지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어 실제로는 구원받지 못했고 따라서 지옥으로 갈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아직도 구원에 대해 확실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본 학회지에 연재되었던 「사망에서 생명으로」와 현재 실리고 있는 「복음」란을 참고하기 바란다).

본 구절은 소위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논쟁과 연관된 구절로 그 해석이 제각각이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유명한” 구절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에 의해, 일단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후에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그들의 마지막은 불사름(지옥)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6:8). 이들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라는 교리와 모순되기 때문에 칼빈주의자들은 이 사람들은 구원을 “맛만 보았을 뿐” 실제로는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4절과 5절을 읽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성령의 동참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과연 있는가? 칼빈주의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을 들어보자.

“여기 타락은 일시적 범죄 정도가 아니라 배교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강력한 성령의 외적 역사를 체험하고도 겉으로만 신앙고백을 하다가 끝내 내적으로 중생하지 않고 아예 고의로 진리를 거슬러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 <톰슨Ⅱ주석성경>
“타락한 자들은 4,5절과 같은 은혜를 맛보고도 그리스도의 신적 사역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 것이다.” <오픈성경>
“4,5절로 보아 이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도 맛보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서겠다고 고백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공연하게 그리스도를 최종적으로 거부할 위험이 있었고, 만약 그럴 경우 그것은 그들이 거듭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알미니안주의자들(교황, 감리교, 하나님의 성회, 오순절, 성공회, 그리스도의 교회, 몰몬교, 안식교)은 이 사람들은 분명히 구원받은 사람들이며(4,5절에 따르면 분명히 그렇다.) 따라서 이들은 자유의지에 따라 다시 타락하였기 때문에(6절) 그 마지막은 불사름(지옥)이 된다고 가르친다. 즉 구원받은 사람은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마24:13, 히3:14).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떨어져나가면 “구원받았던” 사람도 지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에 근거한 것이므로 우리의 행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따라서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는 것을 믿는다. 또한 히브리서 6:4,5에 묘사된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임을 믿는다. 그렇다면 6절과 8절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구원받은 사람은 지옥에 다시 갈 수 없는데 지옥에 다시 갈 수 있다고 8절에 명백하게 나와있지 않은가? 이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제 3의 제안이 제시되었다.

“히브리서 6:4,5은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는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예를 들면 롯). 승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7년 대환란의 후 3년 반을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통치하기 직전에 휴거될 것이나 패배하는 사람들은 3년 반의 환란을 통해 정금같이 성화되어 나올 것이다. 다시 회개시킬 수 없다는 말은 그들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므로 회개하고 믿은 이상 다시 회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구원받은 사람 중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구절이며, 8절의 불사름은 지옥 불에서 형벌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한 것이 불타버린다(고전3:12-15)는 뜻이다.” <윗트니리스리의 회복역성경>

그렇다면 그럴싸해 보이는 이 해석이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들은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내세운다. 이들은 계시록 4장을 휴거로 보지 않고 승천으로 보며 6장의 흰 말 탄 자를 적그리스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본다. 따라서 주님의 몸된 교회가 6장부터 시작되는 대환란을 통과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렇지만 계시록 4-19장은 야곱의 환란, 다니엘의 70째 주, 7년 대환란으로 알려진 기간으로 교회는 이미 휴거되고 없다(4-19장에 교회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같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을 억지로 풀면 거짓 교리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결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고 그 전에 휴거된다. 이는 대환란은 유대인의 환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말하고 있는 불사름에 대한 해석은 널리 유포되어 있으나 히브리서 6:8의 문맥은 말라키 4:1과 일치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왕도 유대인들에게 쓴 다윗의 시에서(삼하23:6-7) 벨리알의 아들들이 완전히 불태워질 것을 말하고 있음을 볼 때 불사름이 사람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일들을 태우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이다.

네번째 해석은 올리버 그린이라는 신학자의 것으로, 그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는 침례교인과 장로교인들을 “실족”시키지 않으려고 이 구절 전체를 실제가 아닌 “가정”으로 해석했다.

그렇다면 이 구절에 대한 정확한 성경적 해석은 무엇인가? (1) 이 문제에 답변하려면 히브리서는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누구에게 쓰여졌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이 문제가 분명해지지 않으면 그 어떤 성경 구절도 바르게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에게 표적으로 주어진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지키고 있는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또 어떤가? 성경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세 부류, 즉 유대인, 이방인, 하나님의 교회(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로 나누고 있다(고전10:32). 따라서 성경의 모든 구절은 그 내용이 적용되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 어떤 구절은 유대인에게, 어떤 구절은 교회에게, 어떤 구절은 이방인에게, 또 어떤 구절은 모두에게 적용되기도 한다.
(2) 두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하나님의 경륜이다.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방법이 여러 가지임을 보여 준다. 아담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것 하나만 지키면 되었다. 노아는 방주를 짓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었고,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진 이후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오순절 이후부터 휴거 때까지는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근거로 해서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휴거부터 재림까지의 7년 대환란 기간에는 믿고 끝까지 견디는 자들이 구원받고, 1000년 왕국에서는 산상수훈을 그대로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하나님의 경륜에 관해서는 「열린 성경 닫힌 마음」에 자세히 나와 있음 - 1995, 말씀보존학회 간).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어떤 상황에 놓인 누구를 대상으로 기록되었는가? 히브리서는 대환란을 맞이한 히브리인, 즉 유대인에게 쓰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사실을 무시한 채 히브리서 6:4-6을 해석하려다 보면 앞서와 같은 “사적인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대환란을 당한 유대인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고 나서 그들의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끝까지 구원을 지켜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는 말은 이 환란 기간의 끝, 즉 재림 때까지 짐승과 그의 형상에 경배하지 말아야 하고 그 표를 이마나 손에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알미니안주의자들은 “끝까지”를 “죽을 때까지”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만약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나간 사람들은(히6:6) 다시는 회개할 기회가 없이 지옥불의 형벌(히6:8)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가지고 교회시대(은혜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딤후2:15). 이 구절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르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벧후3:16).
성경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다시 지옥에 갈 위험이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지적하는 구절이 200여 구절이나 된다. 이들 구절에 접하게 될 때 히브리서 6:4-6을 해석한 것처럼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인가를 잘 분별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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