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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배 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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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7월호>
인문주의와 거리설교자『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또한 그들이 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로 돌리리라』 (디모데후서 4:3-4)
거리 설교자들(street preachers)과 다윈, 막스, 그리고 프랑스 림즈의 예수회 회원들의 개인적인 반응들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는 심판날에 가서야 밝혀질 것이다. 거리 설교는 공산주의자, 진화론자, 카톨릭 교도들이 접해 본 것 중 가장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들 전체주의자들이 “대중”의 사고방식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거리 설교자들의 메시지는 사람들의 귓가에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와 TV 방송은 꺼 버리면 되고, 신문은 사보지 않을 수 있으며, 전도지는 접어서 버릴 수 있지만, 거리의 설교자는 거리에서 쫓아내거나 죽이기 전에는 통제할 수가 없다. 그가 입을 열기만 하면 누군가는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된 표현(혹은 언론)의 자유란 (미국에서는 더이상 누릴 수 없게 된) 그 누구도 어느 곳에서든지 일어나 입을 열어 자기가 말하기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음을 뜻한다.
오늘날 TV와 라디오를 통해서는 이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도색잡지, 여성 동성연애, 인종, 낙태, 성도착, 폭력등에 관해서는 자유롭게 토론이 되는지 모르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공산주의, 진화론, 카톨릭, 사회주의, 인종 혼혈, 학자들에 관해 비판하면서 성경을 인용하기 시작하면 당장 방송에서 축출당하고 만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평등은 없다. 오늘날 미국의 언론은 막스주의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친카톨릭, 친공산주의, 반성경적, 친사회주의, 반분리주의, 친통합주의, 반민족주의 등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반대되는 견해는 용납되지 않는다.
이로써 미국은 “암흑시대를 재현하기 위한 인간 중심 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인문주의와 더불어 진화론과 공산주의라고 하는 세 가지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오늘날 미국의 추세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전쟁, 노예화, 빈곤 및 갈등 이외에는 그 어떤 열매도 맺지 못했음을 역사는 보여 준다. 중세의 로마 카톨릭이 맺은 열매와 동일한 규모와 동일한 성질의 열매가 아닐 수 없다.
“인문주의 선언”(The New-Humanist의 1933년 5-6월호)은 엥겔스, 막스, 레닌의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이 선언에 따르면 우주는 스스로 존재하고 영원하며, 창조된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한다(그러나 이것은 열역학 제 1법칙이라는 과학의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인문주의의 기본 전제가 이처럼 비과학적일 뿐 아니라 터무니없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그 다음 사항들도 당연히 거짓말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기초가 썩었는데 그 위에 지은 집이야 뻔하지 않은가? 그 다음 사항들은(The New Humanist 선언, 1973년 9-10월호) 무디, 토레이, 집시 스미스, 빌리 선데이, 밥 존스 시니어, 샘 존스, 찰스 피니 등의 사역이 해로운 것이고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유포하기 위해 작성된 것들이다. 열역학 제 1법칙을 위반한 비과학적 환상을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교리로 채택한 이들은 모든 윤리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선언해 버렸다. 즉 확정된 도덕법은 없으며 지구상에 있어 최종권위는 인간의 지성이고,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 찬 완벽한 천년왕국은 기술,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신론을 신봉하는 자들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 어떤 언어로도 기록된 계시를 주신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경배와 기도는 “사회복지”를 위한 “단체적인 협력들”로 대치되고 말았다. 인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힘을 합쳐 노력해서 유토피아를 이룩하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이것은 토마스와 알더스 헉슬리 형제가 가르쳤던 무신론과 동일하다. 이와 같은 틀 안에서는 모든 공산당 비밀 경찰과 정보기관들은 성경, 경배, 기도 등을 “대체”시키기 위해 “사회복지”의 이름으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회복지”란 무신론적 “사회복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감옥, 살상, 그리고 강제수용소를 의미할 뿐이다. 진정한 인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반대자들을 고문하면서 그것은 “사회복지”를 위한 “행동 개조”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행동 개조(behavior modification)란 실상은 굶주림, 구타, 전기 충격 및 세뇌 교육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및 국제사회주의자 그리고 인문주의자들은 후천년적(진화론적) 사고를 갖고 있다. 앞서 인용한 “새로운 인문주의” 선언에 나오는 바로 그것이다.
반면 온 우주의 참된 최종권위인 성경은 전천년주의를 주장한다. 한 마디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멈추게 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퇴보한다는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에게는 인간이 자체가 목표와 목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시작”되었을 때는 아무런 목적 없이 우연히 생성된 것으로 인정한다. “인간”은 이제 “만물의 척도”인고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거스틴이 제시한 “진화론적 과정”으로 “재해석”되거나 “재평가”되어야만 한다. 후천년적 체계에 있어서의 “재림”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약속에 따라(요 14장, 행 1장, 살전 4장) 지상에 다시 돌아오심으로써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는 것이 아니고 “계급 평등화”를 필요로하는 억압받는 소수들의 “해방”과 사회 정의를 위해 종교적 정치인들이 경제 제도들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도록 이끄는 인문주의 정신,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공산주의, 인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는 무신론자들에 의해 고수되건 이신론자들에 의해 고수되건 간에 종교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계시록 20:1-10의 말씀에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고서는 “왕국 건설자”가 될 수 없다. 이는 성경이 왕국과 왕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를 볼 것). 권위에 관한 그 어떤 논쟁도 -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주창자들은 모두 성경의 권위에 도전한다 - 최종권위인 성경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1900년 전에 인간은 창조주의 개입 없이는(시 2편, 마 5장, 욜 2장, 사 66장) 완전한 사회를 가져올 수 없다고(딤후 3장, 렘 23장, 마 23장, 딤전 4장, 계 13장) 선언하고 있으며 만왕의 왕 되시는 분은(계 20장) 가장 반공산주의적이고, 반카톨릭적이며, 비인문주의적인 통치자시며 지상에서 통치했던 그 누구보다 “반사회적”인 독재자이심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믿든 안 믿든 간에 최종권위인 성경을 무너뜨림으로 인간의 권위를 내세우고 인간의 손으로 “지상 낙원”을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제거하기 위해 조직된 1881년의 “영국 개정 위원회”(English Revision Committee)의 성경 개정 시도에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하나님의 책을 제거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개정위원회를 조직했을 때, 그들은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들과, 합리주의자(이성론자)들이 되어 버린 배교한 독일의 루터교도들, 그리고 찰스 다윈과 칼 막스의 추종자들로 둘러싸인 그룹을 형성한 것이다. 아마 지구상 그 어디에서도 이와 같은 이질적인 혼성 집단이 성경을 왜곡시키기 위해 모인 경우는 없을 것이다. 독일의 배교자들은, 파랄, 세믈러, 스트라우스, 아스트룩, 바터, 훕펠트, 쿠에넨, 헤르데르, 로이스, 바트케, 에발트, 아이히혼 등이었다. 시즈, 케년, 라보이세이 및 몇몇은 다윈의 추종자들이었고 퓨지와 모리스는 막스의 국제사회주의에 심취한 자들로 모택동 정권에도 참여하려 할 자들이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다윈이 창세기 1-3장에 대해 취한 동일한 “입장”을 견지했고 홀트의 국제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편파적 성향은 너무도 분명했다. 그는 유니테리안이었던 J.F.D. 모리스(1805-1872)를 우상화했으며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정치학 논문을 영어로 기록된 최고의 작품이라고 칭찬했다. “정통 보수주의자들”(밥 존스 대학교의 교수진들이 사용하는 용어임) 역시 이미 다윈과 막스의 영향을 받았고 이에 종교개혁 원문인 프로테스탄트 성경 대신 로마 카톨릭 원문인 바티칸 성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이 위원회는 하나의 종교와 “성경” 뿐 아니라 교황을 위해서도 아프리카 이집트로 회귀하려는 숨어 있는 영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 하겠다.
이 아프리카 출신의 “교황”이 만약 다윈의 정글과 막스의 경제 제도를 한데 묶는다면 그야말로 “과학적 진화론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교황이라면 “계급없는 사회” 즉 정글 속에서 혼혈된 동물들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동물원은 인문주의적 무신론의 틀 속에 아프리카의 성서와 아프리카의 교황을 용납하게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 있어” 최종권위로서 성경만을 붙들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제거해 버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때야말로 “교황”이 최종권위로 나서서 그 외의 권위를 주장하는 자들을 “목베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경이 2000년 전에 예언한 그대로 적그리스도(계 13:1- 8)가 사탄의 능력으로(살후 2장) 통제하는 “유토피아”가 실현될 것이다.
이와 같은 계획의 초석은 1881년 개정위원회가 놓게 된다. 이 위원회는 철저히 친카톨릭적이다. 이 위원회는 비스마르크가 독일로부터 예수회를 축출했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독일의 부흥시기에 직면하여(1870-1880) 바티칸의 입장을 취했는데, 오스트리아가 예수회를 받아들임으로써(1860-1870) 영원히 패배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개정위원회는 옥스포드운동(1830-1850)과 존 카디날 뉴만이 로마 카톨릭 교회로 “개종”함으로써 얻어진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건으로 영국의 신학교들과 교회 기관들은 로마 카톨릭 지도층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모리스(1805-1872)와 퓨세이(1800-1882)는 성공회 안에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해 내었고 다윈과 막스는 일반 대학교들이 성경을 거부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일단 성경이 한 쪽으로 밀려나자 대체권위가 수용되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는 항상 대체권위를 자처하고 나선다.)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속임수는 기독교의 권위인 종교개혁성경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 성경은 그와 경쟁하는 다른 권위에 의해 대체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암흑시대에 로마 카톨릭 살인마들의 카톨릭 성서였던 것이다.
결국 전세계가 휴머니즘이라는 종교를 수용할 때면(1970-2000) 교황은 최종권위로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스파냐 1장, 계시록 13장,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언되어 있다. 라오디케아 교회시기 동안에는 인간이 신격화되기 때문이다(살후 2장, 단 7,8,9장). 성경의 예언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성경은 모든 시민과 인간의 권리들(소위 “인권”이라고 알려짐)이 전부 박탈당하고 이 세상이 이제껏 경험한 것 가운데 가장 무서운 타락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마 24장, 계 13장. 그것도 “평등, 평화, 단합 및 자유”의 이름으로 이런 무시무시한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교황, 막스, 다윈의 추종자들이 성경의 사실들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소용없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계획에 따라 스스로를 저주하게 될 것이다. 불신은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를 성경에 미리 다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 기록된 사실을 믿든 믿지 않든 간에 역사는 성경이 기록된 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
이제까지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시민권”을 내세우는 라오디케아 교회시대를 열기 위해 개정위원회를 만들었을 당시 그들이 만들어 낸 작품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세 가지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1. 미국의 내란(남북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되었던 그 시점에 존 브라운은 “억압받는 소수”를 위한 “시민권”을 주창했고 그의 노력은 독립주로 알려져 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사유재산을 연방 정부가 압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60만 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생존권을 박탈당했고 미연방에 속한 모든 주에서는 “시민권”이 종식되고 말았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개정위원회를 설립할 당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에 의한 정부와 링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아브라함 링컨이 미국의 헌법을 무력화시키고 나서 남부연합에 속해 있던 한 주를 공격하기 위해 위장한 군함을 체스피크만에 보냈을 때 그의 논리는 아돌프 히틀러나 피델 카스트로의 논리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유명한 “정직한 에이브”는(1866년 이래 그는 언론의 영웅이 되었다) 미국 헌법의 목적은 1차적으로 자유가 아닌 “완벽한 연합”이기 때문에 헌법보다는 “연합”이 더 중요하고 따라서 미국의 연합(Union)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은 무시되어도 좋다고 결론지었다. (스탈린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폴란드를 침공할 때 소연방의 연합을 우선시했고 이들 백성들의 자유는 전혀 고려치 않았다. 아돌프 히틀러 역시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시 동일한 논리를 전개했었다.)
외국 정부(남부의 주들은 미합중국에서 분리했었다.)에 대해 강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도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수행해야 할 임무였던 것이다. 모택동과 레닌도 이런 정부를 아브라함 링컨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 링컨이 군사력의 우위를 통해 굳건한 독재를 확립하게 되자 최종권위에 있어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었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암살음모의 대상이 되고만 것이다(1944년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던 스타우펜베르크 역시 로마 카톨릭이었다). 링컨의 암살범 부스와 그의 다리를 치료해 준 머드 박사 그리고 헛간에 그를 숨겨 준 가정(Lloyds) 모두가 다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다.
2.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자신들의 조국 영국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카톨릭 에큐메니칼 운동인 “한 우리”로 돌아가기 운동이 전개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국 카톨릭 신자들은 <킹제임스성경> 번역을 위한 의회 모임 참석자들을 폭파시키고(1605년 11월) 국왕을 살해하려고 했으며 스페인 군대를 동원하여(1588) 영국의 프로테스탄트들을 멸절시키려고 했었고 더러운 죄인을(이 죄인은 마리아는 죄없이 태어났고 베드로와 야고보, 바울, 요한보다 먼저 부활했다고 선포한 자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무오한 최종권위로 내세우기도 했었다.
이제 웨스트코트와 홀트 일행은 암흑시대를 지배했던 로마 카톨릭의 권위를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최종권위로 삼도록 하기 위해 예수회 신부 같은 열정을 가지고 계획에 착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200여 년 동안이나 밀, 펠, 왈톤, 그리스바흐 등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1611년 권위역본 본문이 위협당하고 있었던 바탕 위에서 그들의 최종 작품인 개역본(RV, 1881-1884)을 탄생시켰다.
3. 마지막으로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종교개혁본문을 파괴시키기 위해 사용한 필사본들은 두 개의 “70인역 필사본”으로(이 두 가지는 모두 헬라어 신·구약을 담고 있음), 신약성경이 완성된지 200년이 지나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추악하고 변개되고 부패한 필사본들에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교리들”(오늘날 테네시탬플, 하일스 앤더슨 및 밥 존스 대학교 같은 신학교들이 이런 상투적 표현을 사용한다)과 더불어 신·구약에 모두 외경들을 담고 있으며 이들 외경들은 신·구약 사이에 따로 모아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축자적으로 완전히 영감받은 원본”의 일부인 것처럼 정경의 일부로서 포함되어 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