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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성경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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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3월호>
헤겔의 등장 이후 전 세계는 절대진리 대신 상대주의를 선택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이후에는 절대진리가 없다는 것이 “절대진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풍조는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엡2:1-3) 세상 사람에게는 물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까지 파고들어가 오늘날의 배교를 낳고 말았다. 웨스트코트와 홀트 같은 자유주의자들처럼 성경을 일반 고대문서의 하나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은 역사와 과학적 사실에 있어서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종교적으로는 매우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칼 바르트 같은 신정통주의자들에게는 단어 하나하나가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하고 올바른 성경이 필요 없을 것이다.그러나 성경을 유일하고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이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른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바른 성경이 없이는 올바른 신앙도, 올바른 사역도, 올바른 교회도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본 글에서 한국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른 성경의 당위성을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제시하여 이번 기회에 반드시, 그리고 절대적으로 바른 성경을 택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자 한다.
1. 올바른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의 최대 관심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성장해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고 그 뜻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은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마4:4, 눅4:4) 살 것이라 하신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갓 태어난 아이는 순수한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게 되며(벧전2:2) 헌신을 통해 세상과 일치하지 않고 생각의 변화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롬12:1-2).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제공하시는 영적 양식은 순수하며(잠30:5), 처음부터 참되고(시119:160), 그리스도인들을 온전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양식이다(딤후 3:16). 갓난 아이가 태어나서 매일 먹는 엄마의 젖에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모든 필수 영양소가 다 들어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도 탄수화물(빵, 눅4:4), 포도당(꿀, 시119:103), 칼슘과 비타민A(사과, 잠25:11), 단백질(고기, 고전3:2), 비타민C(사과, 잠25:11)가 골고루 다 들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구속과 구원에만 맞추어 해석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구원은 영적 생활의 시작일 뿐임을 보여준다.
성경을 주신 목적이 우리의 구원뿐이라면 1500여 페이지에 가까운 66권이나 되는 책을 주실 필요가 없다. 갓 태어난 아기를 기다리는 온갖 시련과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말씀이며,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 22장까지의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양식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양식을 골고루 섭취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성장할 수 있다. 육체적 건강에 적절한 음식이 필수적이듯이 건강한 영적 생활에는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다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불순물이 첨가되고 영양분이 부족한 음식이 아이의 성장에 해가 되듯이 불순물이 들어가고(첨가), 꼭 필요한 영양소가 제거된(삭제) 그러한 성경은 올바른 신앙성장을 가져오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성경을 영적 양식으로 삼는 사람을 영적 기형아로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순한 말씀이다(잠30:5). 이 안에는 그 어떤 불순물이 첨가되어서도 안되고 그 어떤 부분이 빠져서도 안된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그대로의 성경이 필요하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에 더하거나 삭제하는 자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고 계시며(신4:2, 잠30:6, 계22:18-19), 동시에 이 말씀을 영원토록 보존하겠다고 하신다(시12:6-7). 심지어는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마13:31).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있는 <개역 한글판 성경>은 바른 성경과 대조해보면 첨가, 삭제 및 오류가 약 30,000 군데에 이른다. 이런 “성경”으로는 결코 올바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2. 올바른 교리를 배우기 위해
우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성경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가장 커다란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모데후서 3:16에 따르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은 첫째가 “교리”요, 그 다음이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훈육하는 것이다. 즉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가를 판별해 주는 것이 성경의 첫번째 기능이요, 그 다음은 우리 개개인의 행동지침을 제시해 주는 것이 성경의 부차적 기능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우리 나라의 교계 풍토가 진리 그 자체를 성경으로부터 배우고자 하기보다는(요16:13은 진리의 영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성경을 우리의 영적, 도덕적 삶에 적용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는 데 있다. 참 진리를 알기 위해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서 공부하기보다는(딤후2:15) 아침 Q.T.를 통해 개인적으로, 영적으로 적용하기에 바쁜 것이다. 성경의 이런 적용은 말씀의 생활화라는 측면에서는 필요하다. 그러나 올바른 교리에 입각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을지라도 성령님께서 그것마저도 바로 잡아주신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설교 역시 정확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영적 생활이나 경건생활에 촛점을 맞추고 있음은 방송설교만 들어 보아도 알 수 있다. 동시에 성경적 교리를 알고자 애쓰는 그리스도인들을 교리논쟁자로 몰아부치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게의 현실이다. 진리를 밝히자는데 진리보다는 사랑이 중요하니 싸우지 말고 덮어두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태를 반영해 주는 극명한 증거는 우리 나라 기독교 출판물의 현황일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거의 “간증집”이나 “경건서적” 종류일 뿐 건전한 교리서는 전무하다. 몇몇 안되는 건전한 교리를 다루는 책들은 아예 팔리지도 않는다. 최근 간증집과 기독교 소설 등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위치에 선 김성일 씨의 <성경과의 만남>, <성경대로 살기> 및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가 급부상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 물론 김성일 씨의 시도는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이기까지하다.
그러나 문제는 김씨 자신은 <개역 한글판 성경>이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그가 자주 인용하는 <킹 제임스 성경>이 최종권위인지, 때로 인용하는 소위 70인역(LXX)이 최종권위인지 밝혀 놓지 않고 있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면 아무 “성서”라도 가져다가 인용해 버린다는 것이다. 많은 예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므로 가장 분명한 것 하나를 예를 들어 보겠다.
김성일 씨는 성경을 해석하는 몇 가지 원칙 중 하나로 “장자권”을 든다. 그는 오역된 <개역 한글판 성경>을 근거로 해서 셈을 장자로 믿고 있고(창10:21, “셈은 에벨의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 개역 한글판 성경), 셈의 “장자권” 행사로 성경 전체를 해석해 간다. 그러나 분명 영어 <킹 제임스 성경>에는 (김씨는 그의 책에서 이 성경을 권위있는 성경으로 인정하고 자주 인용하고 있다.) 노아의 장자는 야펫이고 셈은 야펫의 동생이라고 나와 있다(창 10:21, “셈은 모든 에벨 자손의 조상이요 형 야펫의 동생이라” - 한글 킹 제임스 성경). 따라서 <개역 한글판 성경>의 잘못된 사실에 입각하여 그가 전개시킨 논리는 다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거짓에 입각하여 영적인 적용만 시킨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에서 벗어난 것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철학적으로 포장한다 할지라도 헛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교리의 오류로 인해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을 오도한,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카톨릭 교회를 태동시킨 교부들의 대부분은 때로는 순교할 정도로(져스틴 마터, 이래내우스, 이그나티우스) 주님을 사랑했지만, 후일 유아세례를 통해 중생한다는 구원론과 같은 엄청난 교리적 오류를 가져왔다(이에 관해서는 본 학회지에 연재되고 있는 교회사를 참조할 것.)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국의 워치만 니 역시 그의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700여 개의 교회를 세웠고, 7만여 명을 주님께 인도했으며,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좌행참> 등 훌륭한 경건 서적들을 집필하였음) 교리적으로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그가 미국표준역본(American Standard Version)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참고로 했던 헬라어 사본 역시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이었다.
워치만 니에 따르면 교회는 환란을 통과하는데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 4장의 시점이 휴거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그는 계시록 5:6의 헬라어 원문을 제시한다. 즉 <킹 제임스 성경>에는 “the lamb as it had been slain”(도살당하였던 것같은 한 어린 양)으로 되어 있는 것을 워치만 니는 헬라어 원문에서 “the lamb as it recently has been slain”(최근에 죽임당한 것 같은 어린 양)으로 해석했고 최근에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이란 말로 미루어 계시록 4장의 시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사건 직후라는 “거짓” 결론을 내린 것이다.
계시록 4장이 승천시점이라면 6장의 흰말 탄 자는 자연히 복음을 전파하시는 그리스도가 되고(실상은 킹 제임스 성경의 시제대로 어린 양이 죽임당한 사건은 약 2000년 전의 대과거이고 계시록 4장은 교회의 휴거시점이며 따라서 6장은 대환란의 시작으로 흰말을 탄 자는 19장의 흰말 탄 분이신 그리스도를 흉내내는 적그리스도이다.)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게 되는 역사적 전천년 체계가 성립된다.
우리 나라에도 상당수 그리스도인들이 변개된 구절을 근거로 확립된 이 거짓 교리를 성경적 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단 한 구절의 변개로 인해 종말론에 관한 진리가 전부 잘못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바른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3. 교회사의 실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오순절로부터 존재해 온 이래 사탄은 이 교회를 없애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였다. 『사람의 피부를 사람의 피부로 바꾼다』(욥2:4)는 생각으로 사탄은 온갖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들을 하수인으로 한 10차례의 대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점점 성장해갔고 이에 사탄은 전략을 바꾸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에서 인정받게 해주고(눅16:15) 적당히 타협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교회는 부패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을 최종권위로 믿고 그대로 실행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 성별(Biblical separation)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과 그 분의 은혜의 말씀에 의탁하여(행20:32) 순례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A.D. 325년을 기점으로 기독교계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 사탄은 이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하수인인 황제와 종교 지도자들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큰 권위를 두고 있음을 간파하고 두 가지 전략을 세우게 된다. 첫째는 이들이 갖고 있는 성경을 빼앗는 것이요, 둘째는 자기들의 권위를 지켜줄 성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4세기경의 도나티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이 숨겨놓은 성경을 내놓지 않는다고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했다(신약교회사는 실로 이러한 “이단”들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본 학회지에 연재되고 있는 교회사를 참조할 것).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수많은 바른 성경들이 불타 없어졌다.
15세기 말에는 스페인의 또르께마다 주교에 의해 히브리어 마소라 원문을 담고있던 6000여 개의 필사본이 한꺼번에 불타 없어지기도 했다. 희랍 철학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변개한 사탄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성경 비슷한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인 양 위장했고 로마 카톨릭이라고 하는 음녀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위장시켰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듯이 큰 나무로 변질된(마13:32) 이 음녀는 거짓 성경으로 1000년 간의 암흑시대를 몰고 왔다. 참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을 비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암흑시대를 주도했던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로 대변되는 카톨릭 성서 대신 종교개혁 원문인 <표준원문>을 준비하셨고, 이에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무엇보다도 바른 성경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성경의 자국어 번역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독일의 <루터 성경>, 불어의 <올리베탄 성경>, 이탈리아어의 <디오다티 성경>, 스페인어의 <레이나 발레라 성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의 <킹 제임스 성경>으로 온전한 말씀을 되찾은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필라델피아 교회시대를 가져왔고 그 열매는 12억여 명의 영혼의 구원과 유럽과 미국의 도덕혁명 및 산업혁명으로 인한 물질적 풍요였다. 계시록에서도 이 교회는 유일하게 아무런 책망도 받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을 받았다(계2:8).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의 위력 앞에 당황한 사탄은 어떻게든 그리스도인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손을 통해 되찾은 바른 성경을 없애고 중세 암흑시대 성서를 “성경”으로 내세우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이 출간되어 나오자 중세 1000년을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던 철학계가 웅성대더니 온갖 철학이 난무하여(골2:8) 올바른 성경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대륙의 관념론, 무신론, 계몽주의, 영국의 이신론, 진화론 등을 비롯한 온갖 인간의 견해들이 성경을 공격했고 신학계에서도 원문비평학이란 학문을 도구로 성경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881년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신약성경이 출간되었고, 이후 RV, ASV, NASV, NIV 등 온갖 “성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380여년 간에 걸친 집요한 공격의 결과 기독교계는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 에큐메니칼운동, 뉴 에이지 운동, 오순절 운동 등으로 뒤범벅이 되어 배교의 늪에 빠졌고, 어느 것이 참 성경인지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고 섭리로 보존하신 그 성경을 고수하는 소수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2000년 교회사를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감이 없지 않으나, 문제의 핵심은 모든 배교가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성경 대신 변개된 성경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되었고 바른 성경이 없이는 바른 신앙과 바른 교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경주자로서 지켜야 할 유일한 규칙(딤후2:5)은 오직 성경이요, 이 성경을 존중하지 않거나 자의적으로 고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받을 상급과 유업은 없고 오직 부끄러운 구원만이 있을 뿐이다(고전 3장).
4. 우리의 상황
몇 년 전부터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성경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일고 있다. 대한성서공회가 지난 130여년간 요지부동의 철옹성같이 군림하던 <개역 한글판 성경>을 대체하기로 하고 <표준새번역>을 펴낸 데서 문제의 발단은 비롯되었다. 지난 1967년 카톨릭과 개신교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환으로 출간된 <공동번역 성서>가 있긴 하였지만 개신교도들의 한결같은 반대에 밀려 카톨릭용으로 제한되었던 적이 있었으며, 반면 93년에 등장한 <표준새번역>은 개신교용 성서인 셈이다.
이 성서가 등장하자 번역을 주도한 자유주의 계열의 교단들은 이를 적극 환영하고 나섰으며 “감사예배”를 드리는 등 기선을 제압하는 듯했으나 보수교단들의 반대와 이어 계속되는 많은 논쟁 끝에 이 성서의 사용은 유보되고 말았다. 이 와중에서 한 가지 확실히 확인된 것은 <개역 한글판 성경>은 계속 사용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결국 대한성서공회는 <표준
새번역>을 개정하기로 했고, 이에 병행하여 기존 <개역 한글판 성경>의 교정본을 금년 6월에 신약부터 출간하기로 확정했다. 대한성서공회 측에 반발하는 일부 교단들은 성경공회를 만들었으나 다시 양분되어 두 개의 성경공회가 만들어졌고 그중 장로교 개혁교단이 주도하는 성경공회측은 금년 3월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이란 또 하나의 성서를 출간하겠다고 한다.
이외에도 차마 성경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현대인의 성경>, <현대어성경> 등이 출간되어 성도들을 혼란시키고 있다. 인간들에 의한 바벨탑 혼란과는 달리 하남님께서는 한글로 된 온전한 성경을 우리 손에 주셨다. 1988년 보존된 원문에서 사복음서가 나온 것을 필두로 하여 드디어 1994년 4월 12일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바야흐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어떤 성경을 택해야 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그리스도인(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대체로 두가지 태도를 취하게 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의 최종권위로 믿는 사람들은 어떤 성경이 과연 정확한 성경인가를 확인하고 찾아나서는 반면, 구원이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성경을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성경 논쟁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성경이 참 성경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서로 싸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최초의 원본이 없는데 번역본끼리 조금씩 다르면 어떠냐는 것이다. 성경은 역사와 과학적 사실에 있어서는 어차피 오류가 있는 것이므로 기본적인 메시지만 같다면 신앙생활을 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현행 <개역 한글판 성경>을 수정하여 6월에 신약을 내놓을 대한성서공회는 바로 이와 같은 성경관을 갖고 있는 장신대의 나채운 교수(목회와 신학, ‘94년 9월호, p.105)에게 수정임무를 맡겼다고 하니 그 성경이 어떤 성경이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의 최종권위이다. 이들에게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신앙에 있어서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역사적 사실, 과학적 사실, 지명, 인명, 족보, 인종, 건축물의 칫수 등등)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진리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성경에 대해 이와 같은 태도를 갖고 있다면 바른 성경의 필요성은 두말한 필요없이 자명한 셈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성경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맺는 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바른 성장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순수한 말씀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올바른 교리를 모른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뿌리 없는 신앙이 되어 버린다. 즉 옳고 그름의 판단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의적 성경해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올바른 교리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바른 성경이 필요하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올바른 성경을 갖고 있었을 때 올바르게 주님을 섬겼다. 궁극적으로 바른 성경은 좋은 열매를, 거짓 성경은 나쁜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하나님께서 바른 성경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예비하신 섭리적 상황이다. 이 혼란스럽게만 보이는 상황이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는 진통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라면(요14:23,24) 그 성경을 택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