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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표적들 (2) -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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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2월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1466-1536)는 로텔담 출신의 이며, 종교개혁에 있어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의 하나이다. 카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양쪽이 그의 지지가 필요할 때면 손을 내밀다가도 때가 되면 그의 지나친 용기를 증오하기도 하고(카톨릭 측), 그의 중립적 입장을 저주하기도 한다(개신교측). 에라스무스는 진정한 인문주의자요, 진정한 학자로 [그는 아블라드(Abelard), 안셀름(Anselm), 아퀴나스(Aguinas), 스코투스(Scotus) 등과 같은 사이비 학자와는 다르다.] 교회의 분열을 미워할 만큼 충분히 카톨릭적이였던 반면 제롬의 알렉산드리아 신약 성경이 [미국표준역본(ASV), 새미국표준역본(NASV), 새국제역본(NIV), 개역 표준역본(RSV), 새개역표준역본(NRSV), 개역 한글판, 표준 새번역 등이 근거한 변개된 성경이] 보헤미아 형제단과 공동생활 형제단들이 사용하던 구라틴어 성경과 차이를 보이는 곳에서는 전혀 무가치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프로테스탄트적이었다. 그가 화란에서 자랄때 이들 형제단들은 그곳에 함께 있었다.에라스무스는 단연코 당대 최대, 최고의 학자였음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한 때는 그를 교황으로 만들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는 교황 슐리우스 2세, 레오 10세, 아드리안 6세, 클레멘트 7세 및 바울 3세 등에 의해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바울 3세는 그에게 추기경을 제안했으나 그는 사보나롤라처럼 그 제안을 거부하였다. 에라스무스는 고전 지식과 학문을 두루 갖춘 헬라어 학자였다. 그는 교회를 중세적 형식주의 및 전통으로 부터 해방시키고자 하였으나 교회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비록 후에 루터와 신학 논쟁을 벌이긴 했어도 일반적으로 보아 “에라스무스가 품은 알을 루터가 부화하였다”는 말은 정당한 평가라 할 수 있다.
밥죤스 대학교, 침례성서대학, 리버티침례대학교(1960-80) 교수들이 방송을 통해 선전했던 로마 카톨릭적 주장과는 반대로 에라스무스는 그의 적들이 우리로 짐작케 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자료를 가지고 그의 헬라어 성경을 편수하였다. ASV, NASV, NIV, RSV, 개역 한글판 표준 새번역 등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시내 사본과 바틴칸 사본에서 발견되는 거의 모든 변개된 구절들을 이미 전부 알고 있었던 킹 제임스 성경(KJV)의 번억자들 역시 에라스무스와 마찬가지로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었다. 위에 열거한 현대 역본들에 쓰인 “절충(eclectic)” 원문은 사실 네슬(Nestle), 알란드(Aland), 메츠거(Metzger), 바이스(Weiss), 티쉔돌프(Tischenderf), 홀트(Hort), 그리고 헬라어 사본들(이 사본들은 프로테스탄들의 종교개혁 텍스트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다.)을 숭배한 “신사양반”들이 이렇게 저렇게 골라서 뽑아 엮은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이들 사본들로 하나님께서 높이신 성경을 5,800군데 이상이나 변개시켜 버렸다. 시내 사본(Aleph)과 바티칸 사본(B)에서 발견되는 변개된 구절의 80%가 NIV와 NASV에서 발견되며, 림즈(Rheims) 에서 출판된 1582년 판 예수회 성경에서도 발견될 것이다.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번역작업을 할 당시 이 변개된 성경도 그들의 탁자 위에 놓여 있었음은 물론이다.) 나머지 20%는 1881년 영어 개역본(RV) 위원회가 라틴어, 시리아어, 헬라어 성경에 입각해 잘못 추정한 것 때문에 생긴 것이다.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은 이러한 성경들 역시 참조하였다.)
에라스무스는 바티칸 도서관을 포함해 유럽 어느 도서관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고 따라서 그는 1884년 개역본(RV) 위원회의 지도급 학자들보다도 훨씬 더 광범위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 퓨지 주의자들은 모든 자료들이 하나 혹은 두 개의 필사본으로 판단되어져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개정에 임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킹 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참조한 자료보다 겨우 10분의 1도 채 안되는 자료만 갖고 있으면 더 정확한 것이지 그가 그 갖고 있는 자료 중 얼마만큼을 마음속으로 지워 버리고 있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을 만큼 어리석은 자들이다. 사과와 오렌지를 사기위해 장에 가는 주부는 감자값이나, 썩은 고기의 무게나, 시장의 조명상태나, 땅콩버터 용기의 크기나 시금치의 신선도 등에 관해서는 아무런 권위를 갖을 수 없는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1505년 옥스포드에서 자신이 직접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는데 이는 그가 1515년 바젤에서 5개의 희랍어 신약사본을 가지고 그의 성경편수작업을 시작하기 훨씬 전이었다. 그는 이들 라틴어 사본들을 존 콜렛(John colet)으로부터 얻었는데, 콜렛이 그에게 넘겨준 라틴어 웜문의 특징에 관해서는 아무런 의심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모든 에라스무스의 작품들(헬라어 신약성경 5개의 판본들)이 알비겐스와 왈덴시안들의 성경이 갖고 있는 반카톨릭 원문이기 때문이다. 제롬의 라틴어 성경이 미국에서 나온 NIV, NASV 등과, 한국의 개역 한글판, 표준 새번역 등이 바티칸 사본의 본문과 일치하는 반면,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본문은 1611년 킹 제임스 성경과 한글 새성경의 본문에서 발견되는 것과 일치하며, 성 패트릭과 콜롬바 등이 사용하던 구라틴 성경과도 일치하고 있다. 즉 에라스무스는 그의 신약성경(헬라어)을 편수하기 이전에도 벌써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어느 때는 옳고 (행8:37, 행9:5-6, 행20:28) 또 어느 때는 잘못이되었는가(계22:19)를 이미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1978년 NIV 개정위원들이 (1969년 NASV번역자들, 1901년의 ASV 번역자들, 개역한글판, 표준 새번역의 번역자들 역시) 채택한 모든 변개된 주요 귀절들은 이미 450년전에 다 알려져 있던 것들이었다.“새로운” 자동차, 비누, 성경, 도덕 등등을 외쳐대며 뭔가 새로운 것을 부추킨 자들은 실상 장사꾼들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여 RV, ASV, NASV, NIV, 또 표준 새번역 등이 뭔가 “새로운” 것을 갖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이미 450여년 전에 에라스무스는 1960년에 나온 NASV와 개역 한글판과 표준 새번역에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마가복음 2:14을 보라). 그는 ASV(1901)와 개역 한글판에 대해 350-400여년 전에 이미 반대 입장을 취했고(디모데전서 3:16을 볼 것), NIV(1978)와 표준 새번역에 대해서도 이미 450-460여년 전에 반대 입장을 취했다(마태복음 6:13을 볼 것). 에라스무스는 이 모든 현대 번역본들에 대해 이미 강평을 마친 셈인데, 이는 그가 이미 1515년에 현대의 배교자들이 “새로운 빛을 더 오래된 사본들에서”라고 외치는 구호가 거짓된 것임을 이미 입증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는 이 모든 현대어 번역본들을 거부하였다. 그것은 “원본(originals)” 타령만 일삼는 모든 현대의 예수회 사람들보다 성경 변개의 역사에 관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랍어 필사본들이 대부분 발견되었을 때, 이들중 무려 1800여개의 사본들이 에라스무스가 사용한 “다섯 개의 후대사본들”을 지지하였지 ASV, NASV, NIV, 개역 한글판, 표준 새번역 및 기타 변개된 가짜 성경들의 지지자들이 추천하는 “하나” 혹은 “두 개”의 필사본 - 바티칸 사본과 시내사본 - 을 지지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우연으로 돌릴지 모르지만 에라스무스는 오리겐이 파놓은 ‘문화’라는 함정으로부터 출토된 “더 오래되고 나은 사본들”보다 훨씬 더 성경적인 그 무엇을 갖추고 성경 편수 작업을 했다. 즉 그는 성경보존에 관해 올바른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에드워드 힐즈 박사는 에라스무스 시대에는 신약 성경의 보존에 관해 세 가지 견해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인문주의적 견해(the humanistic view)와 학자적인 견해,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취한 공통견해(the common view)이다. 이 마지막 견해는 믿음의 견해(view of faith)로 인문주의와 학자적 견해의 중간적 입장을 취한다. 이 견해는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기에 로마 교회보다는 희랍 정교회를 통해 더 잘 보존되었을 것이라는 상식에 입각한 것으로 매우 합당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제롬에게 성경번역을 위임했던 교황마저도 희랍어 “70인역” 대신에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더 선호했었으며, 루터의 철천지 원수였던 레오 10세(1513-1521)마저도 라틴어 성경보다는 “헬라어” 신약성경을 선호하였다. 1546년 트렌트 공의회는 오리겐에게서 유래된 제롬의 알렉산드리아 계열 라틴어 성경을 카톨릭 공식 성경으로 선호하였으니 차라리 레오 10세가 더 분별력이 나았던 셈이다. 에라스무스 판에 뒤이어 스테판누스의 4개 판본(1546, 1549, 1550, 1551)이 나왔고 뒤이어 베자의 10개 판본이 나왔으며(1560-1598), 마지막으로 엘지버판이 나왔다(1624,1633). 이 판본들은 모두 표준원문(Textus Receptus)로 시리아의 안디옥과 소아시아에서 나온 것들로 이 두 지역에서 가장 많은 “원본”들이 쓰여졌던 것이다. 이 헬라어 성경들과 더불어 천여 개의 언어로 번역본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중 대부분은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나 영어의 킹 제임스성경에서 번역된 것들이다. 이들 두 성경은 그 어떤 판과 마찬가지로 배교한 현대 근본주의자들의 용어를 빌리면 “절충원문(eclectic texts)”에서 나온 것이다. 열매를 보면 뿌리를 알수 있듯이 트렌트공의회(1546) 이래 그 어떤 로마 카톨릭 주의자도 이 두 성경이나 여기서 번역된 성경들을 추천한 적이 없다. 반면에 ASV, NASV, NIV, 개역 한글판, 표준 새번역 등 이 사용한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원문과 네슬판과 연합성서공회 원문은 카톨릭에 의해 격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것인가? 교회사와 반교회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사실은 무엇을 뜻 하는 것인가? 그것은 교회사에 등장하는 여러 사실들을 공부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ASV(1901), NASV (1960), NIV(1978), 개역 한글판, 표준 새번역 등을 추천하는 범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 행위야 말로 신약교회사에 있어서 사탄과 잔인한 음녀(계시록 17장)와의 음모일 뿐이다. - BB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