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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름을 가진 참된 신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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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8월호>
우리는 참된교회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하여 열 가지 사항을 지난호에서 살펴보았다(통권 28호 참조). 그것이 지난 17세기의 교회사 가운데서 두드러지는 차이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어떤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인지를 분별하는 데 있어 더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개인적 이유로(겔14장) 성경을 거부하는 사람들이거나 자의적 무지(벧후3:5)로 저주를 부르는 사람들일 것이다(살후2:9-11).또한 우리는 주의깊은 검토와 치밀한 조사를 통해서 성경적인 참된 교회는 교회 역사상 한번도 “하나의 이름”으로 알려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이는 참된 교회들은 “이단”이며, “사이비 종파” 혹은 “이교도파”에 불과하고, 거짓교회야말로 참된 역사적 입장들에 충실한 정통교회라는 거짓 인상을 심는데 거짓교회가 전력투구 했기 때문이다. 거짓교회는 그들이 정통이라는 근거를 “베드로”로부터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는 소위 교황들의 승계가 끊임없이 연속되어 왔다는 사실에 두고 있다. 따라서 이 “하나의 보편적 교회”는 전 역사를 통해 “카톨릭”이라는 단일 이름을 유지한 채 내려왔기 때문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신‧구약 그 어디에서도 그런 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런 교회는 우상을 섬기는 “아버지들”(재판관기 18장)이 긴 옷을 입고(눅20:46)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는(렘 44장) 집단임을 밝혀 놓고 있다. “카톨릭”이라는 용어는 성경적 어휘가 아니라 희랍 철학(골2:8)에서 빌어온 어휘이다. 신약 성경 그 어느 곳에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이나 그 이후에 한번도 “카톨릭”이란 용어가 나온 적이 없다.
A.D. 1600년이 된 시점에 닭들이 울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마13:32). 이들은 머리가 셋 달린 닭들로 내반족(內反足)과 두갈래의 혀를 지니고 있으며 그 누구의 “양우리”에도(요10:16) 소속되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의 모임은 신약 성경의 지역교회와는 전혀 닮은 데가 없었으니 외형이나, 구조나 실행 그 어떤 면에서도 닮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신약교회사를 자세히 검토하면 참된 교회들은 모두 몬타누스(A.D.200)와 노바티우스(A.D. 251)에게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가며, 이들이야말로 타락된 배교자들의 무리로부터 참된 “청교도” 지역모임으로 최초의 이탈자들을 인도해 낸 자들이었다. (청교도란 명칭은 “퀘이커”란 명칭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원수들에 의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붙여진 수많은 이름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참된 “계승”이 무엇이었는가를 입증하기 위해 그 어떤 시간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는 20세기의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진실은 너무도 뚜렷이 드러나 있어 그 누구도 진실을 놓칠 만큼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장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하나의, 참된, 카톨릭 어머니 교회”와 신약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 신약성경의 회중들은 믿지 않은 유대인에게 주는 표적으로서 고린도전서14:22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외국어(소위 방언)를 말한 적이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외국어를 말한 사람은 그에 대해 꾸지람을 들었다(고전14:19).
2. 신약 성경에 있는 그 어떤 지역교회도 거듭난 성도 이외에는 침례를 주지 않았으며, 마리아에게 기도하거나 그녀를 높이거나 기념하거나 그 누구에게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게다가 그 누구도 그녀의 아들의 생일을 기념한 적이 없다(소위 크리스마스).
3. 모든 지역교회들은 자치, 자급, 자족, 자가번식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그 어떤 교회도 “지역사회의 문제”에 개입하거나 “억압 받는 소수민족”을 돕거나 “시민의 권리”, “인권” 등에 관여한 적이 없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에만 전념하였다(행6:4).
4. 모든 교회는 선교에 열심이었고 신약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사도도 “더 나은 번역은 이렇고...”라든가, “이 어휘가 이렇게 번역된 것은 불행한 일”이라든가, “이렇게 하면 더 나은 번역이 될 것 같다”든가 따위를 말했던 적이 없다. 이런 스타일의 언행과 표현은 신약 성경에서 계시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5.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도 대주교, 사제, 수도사 혹은 교황에게 충고를 요청한 적이 없다. 그 누구도 예배 보조기구로 동상이나 그림을 사용한 적도 없고, 그 누구도 부활절(Easter)을 지킨 적도 없고, 강요된 공산주의를(행4:34) 믿었던 사람도 없었으며, 재산의 공동소유를 법으로 정하는 따위를 믿은 그리스도인은 없었다. “가난에 찌든 대중”들이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저지른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에 관해 단 5분이라도 시간을 낭비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계승 노선”을 따라 A.D. 1600년 경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한편으로 머리 셋 달린 병아리, 머리 둘 달린 코브라, 인간 늑대, 독수리, 불을 내뿜는 도마뱀, 뿔 넷 달린 수염소, 붉은 눈을 가진 곰, 그리고 병든 양들로 가득찬 동물원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동물원이 자기가 바로 A.D. 33년(혹은 70년)에 시작된 “주님의 양떼”라고 감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선한 목자” 의 인도아래 있으며 “하나의, 참되고 거룩하고, 사도적인 믿음”의 표식을 지녔다고 자랑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은 신약 성경이 말하는 양무리와는 전혀 닮은 데라고는 없는 동물들의 혼합된 집단이다. 그들이 살상한 양무리들은 여전히 로마서 8:36의 양무리 같았고, 이들 살해당한 양들은 “카톨릭”이라고 주장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했다.
또한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늘 누군가의 저주하에 놓여 있음을 보았다. 이런 고난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으로(창3:1-6) 이러한 저주가 근본주의자들에게서 나오든, 아니면 19세기의 교만한 보수주의자들(Schaff, Machen, Warfield)에게서 나오든, 혹은 죽은 정통주의 배교자(Hort, Robertson, Nestle, Aland, Metzger 등)로부터 나오든 간에 아직도 건재해 있으며, 때로는 직접적인 박해로 돌변하기까지 한다. 20세기에 있어 미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비난의 정도가 온건한 형태를 띄고 있는 셈인데 예를 들면 성경대로 믿는 자들은 “바보”이거나 “정신 이상”이거나 “잘못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비지성인”이거나 아니면 “럭크만 추종자”이거나 그 중 하나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중세 암흑 시대에는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그들은 위험한 이단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자로, 영적인 독약을 몰래 집어 넣는 사람들로 비난받았다. 그리고 이 사악하고, 위험한 카톨릭 불신자들(혹은 성경을 거부하는“크리스챤”들)에 의해 늘 이단 종파나, 사이비종파라는 딱지가 붙어다녔다(행24:5).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들을 보면, 카타피지안스, 후스파, 파테린, 보도이스, 노리스파, 페트로부르시안, 헨리시안, 왈덴시스, 불가리안, 위그노, 프라테셀리, 롤라드, 아놀디스트, 럭크만파, 다비파, 루터파, 불가리안스, 노바티안, 도나티스트, 폴리시안 등등이다. 사소한 점에 있어서는 이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나, 최종권위가 무엇이냐에 관해서는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성경만이 최종권위였으며 이 책이 입을 열면 모든 종교지도자들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소위 “사도적 계승”이라고 하는 것이 역사가들에게 둘러싸인 배교자들에게 조각조각 찢어졌을 때 그들은 믿음의 실행이라는 계승 외에는 그 어떤 “계승”도 입증하려고 하지 않았다.
붉은 눈을 가진 곰이 살고 있는 동물원 안에는 박쥐만큼이나 앞을 못보는 병든 양들이 있고, 두 세 사람의 병든 남녀가 잠들어 있다. 이 형편없는 모임이 앞서 이미 언급한대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마16:16-18) 신약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 할 말이 없다.) 그들은 앞에 열거한 “이단”들의 피로 무릎까지 깊게 물들어 서 있었으니, 이 피는 다름아닌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흘린 피로서 그들은 동물원에 거하기를 거부함에 따라 피를 흘렸던 것이다.
1600년경 참된 신약교회는 각종 구색을 갖춘 커다란 양우리의 모습을 갖고 있었으나 그들 중 어떤 양은 다리를 절고, 어떤 양은 앞을 못보고, 어떤 양은 건강했으며, 어떤 양은 튼튼했고, 어떤 양은 나약했으며, 어떤 양은 잠들었고, 어떤 양은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어떤 양은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어떤 것으로부터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비록 17세기 간의 교회 역사를 추적해 볼 때 우리 모두를 설득해 줄만한 “한 가지”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카톨릭교도들의 주장보다는 훨씬 더 신뢰할 만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17세기 초에 도달해 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표식”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근본주의자”니 “침례교도”니 “전천년주의자”니 그러한 이름을 찾으려 하지 않고, 다만 성경을 따라 살아가는 성경대로 믿는 자들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소위 “역사적 입장”을 주장하는 자들도 항상 성경을 따라간 것은 아니었다. 20세기를 볼 것 같으면 “역사적 근본주의 입장”을 추종하는 배교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역사적 입장”이라는 것도 때로는 죄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입장들이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무엇을 믿어야 될 것인가를 몇 명의 성직자들이 사적으로 모인 회합에서 결정한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은 구약 성경의 레위 지파에 의한 제사장직을 카톨릭으로(1400-400 B.C.) 대체함으로써 그들이 사용해 온 것이었다. 이들은 제사장 대신 학자 혹은 주교들을 제사장 직무를 대신하는 자들로 내세웠던 것이다(200-500 A.D.).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신약 성경에는 제사장 계급이 없다. 예를 들면 루터가 등장할 때까지의 모든 “근본주의자”들의 “역사적 입장”이란, 사람은 믿음과 행위에 의해서 구원 받는다는 것이었다. 루터로부터 1840년까지 예언에 관한 “근본주의” 입장은 무천년주의 혹은 후천년주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체계가 틀린 것임을 알고 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이 회합은 전체가 보수주의자와 근본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주제 세 가지가 논의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죄인을 구원하라는 복음 명령”, 그리고 “절대 권위에 대한 정의”였다. 따라서 니케아 공의회의 “역사적 입장”(325 A.D.)은 농담에 불과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의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이 “축자 영감설”(즉 성경의 이중 특성 : 인간성과 신성)에 관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대의 배교자들도 “성육신의 신비”(그리스도의 이중 특성 : 인간성, 신성)에 관해 논쟁을 벌이느라고 시간만 낭비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종권위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이 성경이 그들의 교육과 비평능력보다도 못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논쟁이 무슨 열매를 가져다 줄 수 있었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 “역사적 입장”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위를 쓰러뜨리려는 데 사용된 핑계에 불과한 셈이었다.
이미 살펴본 교회사에서 제임스왕과 올리버 크롬웰에 관련된 사항은 검토했으므로 이제는 루터 이후 유럽대륙의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이러한 사건들이 신약교회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과 더불어 성도들은 퀘이커교도, 프로테스탄트, 퓨리탄(청교도), 루터교도, 장로교인, 감리교인, 모라비안주의자, 스툰트파, 메노파, 암만파, 둔커파 등으로 불리웠는데, 이는 이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카톨릭에 의해 다른 여러 이름으로 불리운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들은 결코 “카톨릭”이라고 불리운 적이 없었다. 이는 거듭나지 않은 카톨릭 교도들은(무지해서 그랬건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이건) 사탄의 신부를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고의로건 모르고 했건 간에 성경적 기독교를 파괴하는 데 있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라고 하는 것은 로마 교회가 A.D.325년 이래 가르치고 실행해 온 무오한 계급인 대중들의 계급타파 운동을 사회적으로 적용시킨 것에 불과하다. 스탈린은 레닌과 마찬가지로 카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자였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왜 가장 위대한 공산주의 지도자가 교황이며 가장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카톨릭 교도들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카톨릭 교황은(1979) 그가 폴란드 국민의 인권과 교회를 위해 “대담한 십자군”이 되었노라는 언론의 찬사를 받아들이고 인정한 바 있는데 이야말로 폭소거리가 아닐 수 없다. (폴란드 교회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교회가 아니고 로마 카톨릭 교회를 뜻한다.) 얼마후 폴란드 노동 조합은 레닌과 마르크스의 정신을 본받아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1950년 이래 이미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자들이 되어버린지 오래여서 “기존 질서에 대한 봉기”는 더이상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자본주의 러시아(1980)에 대한 공산주의 봉기를 이끈 사람은 폴란드 출신의 교황이 되고 만 셈이다. 그는 얼마후 암살기도에 걸려들었다(1981년 5월). 모든 교황들은 항상 그들의 교회만이 자유를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 인권이란 그들의 교회에 복종할 때에만 허락되어 있었다. 교회사를 제대로 읽은 독자라면 “Our Sunday Visitor”에서 발견되는 선전문구에 쉽사리 현혹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카톨릭 출판물에는 “nihil obstat”(반대 불가)라는 표식이 주교들에 의해 주어지는데 그것은 카톨릭 교회만이 자유의 권리를 갖고 있으며, 모든 국가들은 세금으로 이 교회를 지원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교황이 “인권과 교회의 권리”를 위해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것은 히틀러가(그도 카톨릭 신자였다) 오스트리아(1938)에 살고 있는 “억압 받는 소수”를 “해방”시키기 위해 십자군 원정을 떠난 것과 너무도 유사하다. 히틀러는 모든 교황과 마찬가지로 카톨릭 교회 소속이었으며 그는 사실 젊었을때 카톨릭 사제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있었다. 루돌프 헤스(그는 아우슈비츠 가스실 총 사령관이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에 있었다.
우리는 17세기에도 있었던 그 악순환이 이때도 재현되는 것을 보게 된다(복음전파,교 육, 문화, 배교). 마틴 루터의 사역을 뒤이어 멜랑크톤과 더불어 문화가 침투하였으며, 낮에 뒤이어 밤이 찾아오듯이 배교가 그 뒤를 이었던 것이다. 칼빈을 뒤이은 “칼빈의 5대 강령 추종자”들이 나타났고 이어 기관차에 뒤이어 객실이 달려 있듯이 배교가 줄을 이었다. 이후 부흥의 물결은 대륙으로부터 영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으니 웨슬리와 휫필드가 그 주인공이었으며 뒤이어 복음의 물결은 에드워드와 테넌트 등을 통해 미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이 복음운동의 뒤를 이어 교수들이 나타났고(옥스포드, 캠브리지, 에딘버러, 다트마우스, 프린스톤, 콜롬비아, 예일 등에서) 뒤이어 눈보라 뒤에 진창길이 되듯이 문화와 배교가 다가왔다. 앞서 지적한 대로 유럽과 미국 등 각 나라의 모든 대학은 전부 이 네 단계 중 하나에 놓여있으며, 교회사 20세기 동안 단 하나의 예외도 없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네 단계 중 처음 두 단계는 안전한 것으로(사람과 운동, 혹은 복음전파와 가르침) 성경적인 것이다(마28장, 행13장).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성경 그 자체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버리면 그는 부실한 땅에 노출되거나, 서 있는 셈이다. 만약 당신이 성경보다 더 권위있고 교훈적인 무엇을 다른 출처에서 얻어냈다면 당신은 이미 위험선을 넘어버린 셈이다. 그 위험선 너머에는 곧바로 바닥없는 구렁으로 이끄는 낭떠러지가 있을 뿐이다.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해야 하며, 사람이 역사로부터 배우는 단 한 가지는 사람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앞으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가 교회사에 있어 가장 커다란 배교가 일어나는 시기가 될 것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이 배교는 “축자적으로 영감받은 원본”을 믿는다는 신학교 교수 요원들이 주도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창세기 3:1에서 모든 배교가 그렇게 일어 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교회사에서 우리는 복음전파와 부흥시대(필라델피아 시대)에 이어 라오디케아 배교시대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시대는 교회가 미적지근한 것으로 특징지워져 있다(계3:16). 믿거나 말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교회가(계3:8) 결국 자신의 재산, 수입규모를 자랑하는 교회로 “발전”하고 말았다. 그 교회가 이렇게 되고 있는 동안 자신의 그 “촛대”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계2:5, 시119:105).
이처럼 “발전”이란 단어는 혼동스런 속뜻을 갖고 있을 수 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