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교회사 분류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를 향하여
컨텐츠 정보
- 10,536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6월호>
이제까지 27회에 걸쳐 B.C.4 년에서 A.D.1600년 사이의 교회사를 고찰해 보았고, 그 끝마무리 단계에 왔다. (특히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전반부를 마무리짖는 단계에 왔다.) 이제 신약교회의 전개과정에 있어 드디어 우리는 이땅의 신약 교회사상 가장 영광스럽고 화려했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1700-1900년 간의 이 시기야말로 구령과, 전도와, 성경의 강론과, 말씀의 교육에 있어 세계 역사상 최고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 어떤 시기(에베소, 스머나, 퍼가모, 두아티라, 사데)도 이 필라델피아 시대와 견줄 수 없다. 사실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는 종교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러나 복음전파의 문을 전 세계에 열어놓은 열쇠는 하나님께서 주시고, 높이시고, 보존하신 성경이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회복되었던 사실이다.
만약 교회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 주장이 편견이라고 생각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성경을 강론하고 가르치는 선교사들의 80%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주목하기 바란다. 나머지 약 20%는 세계의 다른 20여개국이 지원하고 있다.
이번호에서 우리는 미국의 등장을 고찰할 것이며, 이와 함께 1700년 까지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발자취를 정리할 것이다. <편집자 주>
미국이 한 국가로 등장하고(1700-1900) 대영제국이 부상하면서(1700-1900) 전세계에 킹 제임스 성경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 성경이 거두어들인 열매에 대해서는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고 다른 해석을 가하려고 시도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역사의 현실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킹 제임스 성경이 나온 이후 300여년간 위대한 구령자나 성경 교사들 중에서 이 킹 제임스 성경을 가르치거나 강론하지 않은 사람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도 없었다. 때로 그들 가운데 똑똑하다고들 하는 사람들(로버트슨, 스코필드, 벌링거, 토레이, 메이첸 등)이나 혹은 학자인 척하고 싶은 사람들(라이스, 릴리, 밥 존스 3세, 스펄젼, 테오도르 엡 등)이 이단 노선을 택하여 그런 사고 - 즉 나는 성경을 “고칠”만큼 “똑똑하다” - 를 지닌 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몇 단어를 고치거나 “더 나은 번역본”을 언급한 적이 없진 않았으나, 거의 대부분(99%)의 경우 열매를 거둔 사람들(노리스, 피니, 카트라이트, 휫필드, 웨슬리, 스펄젼, 무디, 선데이, 패이튼, 리빙스톤, 카레이, 고포스, 에드워즈, 테넨트 등)은 그들이 열매를 거두려면 그 책, 즉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끔 있었던 몇몇 경우(앞서 말한 성경을 고치거나 더 나은 번역을 언급하는 따위)는 그들의 육신적인 옛 성품 때문으로(롬 6,7장),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성향이며 가끔 훌륭한 “학자”로서 인정받고 싶을 때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위에 열거한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을 치켜들고 그것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최종적이요, 무오하며, 절대적인 권위로 취급했을 때에는 그들이 올바른 정신상태였으나 알렉산드리아로부터 물려받은 아담의 성품을 보이고자 애쓸 때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에서 잠시 이탈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신약성경의 지역교회는 새로운 땅에 발을 딛게 된다. 서구의 몰락(슈펭글러의 작품)과 더불어 성령님께서는 그가 예정해 놓으신 방향으로 옮겨 가셨으니(창4:16), 드디어 신약교회가 유럽으로부터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모든 시대가 배교로 끝나는 것이 역사의 사실인고로, 유럽에서의 기독교의 확장도 A.D.100-200년에 출발했던 바로 그 상태로, 즉 이교도(paganism)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 악순환을 따라 유럽에서는, 먼저 복음이 전파되었고, 대양이 바닷가에 이르듯이 자연스럽게 교육운동이 뒤따랐으며, 이 교육에 알렉산드리아 이단이 문화적 권위(과학, 철학, 전통 등)를 집어넣어 결국 성경의 권위를 뒤엎고 배교에 이르게 된다. 배교가 이교화를 이룩하든, 이교도들이 배교자를 심판하도록 부름을 받든 간에(렘 52장) (예를 들면 400-600년 사이의 야만족의 침입과 700-1000년 사이의 이슬람교 확장 등)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 상황은 이교적 미신과 이교적 관행 및 아프리카의 의식과 정글의 도덕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다윈과 헉슬리가 가르쳤던 적자생존(1840-1890년 사이)의 원리는 그들 스스로의 타락한 성품을 재료로 해서 스스로의 모습을 실험에 의해 만들어 놓은 꼴이니, 다름 아닌 이교도들을 위한 정글의 법칙인 것이다.
이번에 유럽에서 종교개혁 이후(1800-1900)에 들어선 배교자들은 교육받은 이교도들이다. 즉 그들은 분명히 “이교도”(heathen)였으니 그것은 “그 열매로 그들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법이요, 군사국가의 교육받은 자들이 내놓은 의견만을 그들의 유일한 ‘신’(god)으로 삼았다. 그들의 문화야말로 그들의 본모습을 위장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정신신체학(psychosomatics), 치료법, 절충본문, 범주적 절대명령, 존경받는 성경학자, 변증법, 반복설, 실존주의, 계통발생, 반응적 개정 등을 논하고, 바하, 챠이코프스키, 베토벤, 와그너, 라흐마니노프, 브람스 등을 감상하면 그가 문명화된 자라고 단정짓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리가 양의 탈을 쓴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종교개혁을 뒤이어 쏟아져나온 지성적 이리들이 18,19세기 기간 중에 유럽에 있던 성경적 기독교를 말살했으며, 교황들은 벌써 1200년 전에 스스로 성경적 기독교를 거부했으니, 어찌 이 이리들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이에 관해서는 앞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교회사 전반부를 마무리 지으면서 교회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를 요약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그 역사를 되풀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A.D.33-1611년 사이에 발생한 여러 사건들을 교회사적 입장에서 정리해 보면 다음 일곱 가지 사항이 뚜렷이 부각된다.
1. 신약성경에 나타난 성경적 기독교의 가장 커다란 적은 그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간에 로마이다(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4:5에서 하신 말씀을 보시오). 러시아가 죽인 구원받은 사람들은 로마가 A.D.1700년까지 죽인 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2. 서양문명에 있어 가장 뛰어난 모독자들과 미혹자들은 로마와 관련된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로 밝혀졌다. (주교들, 사제들, 수도원장들, 수사들, 국왕들, 수상들, 교황청 대사들, 대주교들, 군주들, 공작들, 대통령들 등)
3. 역사는 변함없이 동에서 서로 움직이며 신약성경적 증거들은 당시의 사람들에 의해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나 “절정”의 순간에 한번도 증거로서 그 효용성이 신뢰받지 못했다.
4.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붙들고서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회중들의 무리는 사도 요한으로부터 킹 제임스 시대의 청교도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이들은 물침례만 받고 거듭나지 않은 채 교회 구성원이 된 자들과 말씀을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들과의 그 어떠한 타협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혹은 개개인 성도들)은 박해받았고, 모욕당했고, 오해받았으며, 감옥에 갇혔고, 고문당했고,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 노선은 다음과 같다.
# 성경대로 믿은 순교자들 : A.D.70-313
# 몬타니스트 : A.D.250-600 (프리실리아니스트 등)
# 노바티언 : A.D.250-600 (왈렌시스와 프라트리셀리가 됨)
# 네스토리안 : A.D.490-1000
# 유카이트 및 메살린 : A.D.300-800 (불가리안, 마니키안)
# 도나티스트 : A.D.300-800 (신 마니키안, 보도이스, 왈덴시스)
# 폴리시안 : A.D.600-1200 (불가리안, 마니키안, 네스토리안, 리
용이스트, 베렌게리안)
# 보고마일즈 : A.D.800-1200 (왈덴시스, 알비겐스, 카타리, 피카
즈, 베가즈, 보도이스, 산달라티)
# 카타리 : A.D.1200-1500 (알비겐스, 왈덴시스, 신 마니키안, 헨리
시안, 페트로부르시안, 로야즈, 후스파 등)
# 왈덴시스 : A.D.1200-1994 (침례교, 재침례파, 카타리 등)
# 재침례파 : A.D.1400-1700 (침례교, 프로테스탄트, 극단주의자,
후스파, 형제회, 메노파 등)
# 프로테스탄트 : A.D.1520-1994 (루터교, 칼빈주의, 청교도, 복음주의)
# 침례교 : A.D.1500-1994 (분리주의자, 세대주의자, 근본주의자,
노리스파, 럭크만파)
#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 : A.D.33-1994
5. 근본주의자들은 기본교리 다섯 개를 믿는 사람에서 열 개를 믿는 사람까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성, 원본의 영감설, 육체적 부활, 피의 속죄, 전천년 재림, 교회와 국가의 분리, 지역교회의 자치, 구원의 영원한 안전 등). 그러나 근본주의 그 자체가 성경을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6. 어떤 기독교 그룹도 성경을 믿고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는 개선되거나 발전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상고하라”(요5:39)고 명령하신 것과 “진리의 말씀을 공부하라”(딤후 2:5)고 명령하신 것 이상으로 말씀에 대해 명령하신 것은 없다. 그 누구라도, 그 어떤 대학에서도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가르칠 수 없다. 즉 성경에 어긋나거나 성도가 실행하도록 명령받은 것에 상치되는 것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적어도 성경에 따르면, 교육이 될 수 없다. 성경적 교육의 단계에서 한 걸음이라도 더 나간다면 곧바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품안에 안기게 될 것이며[CULT(이단)는 “culture"(문화)에서 나왔음을기억할 것] 일단 한 걸음을 내딛는다면 곧장 미끄러져 버릴 것은 뻔한 일이다.
복음전파와 성경 지식은 기독교 교육의 한계로 이 두 가지만이 성경에서 지시하는 사항이다. 그 이외의 어떤 교육내용도 성경말씀에 일치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말씀을 대치해 버릴 것이다.
이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교훈이야말로 매 세기마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역사의 교훈인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언급된 유일한 “학교”는 이교도 철학자 투란노의 학교였다(행19: 8-9).
성경적 관점을 고수하는 것은 모든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에게는 (A.D.150-1994)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그들이 성경을 고치거나, 영적으로 해석하거나 풍유화해 버림으로써 (아퀴나스, 오리겐, 어거스틴, 로버트슨, 메이첸 등) 그들의 입에 풀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7.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그마한 도토리가 커다란 떡갈나무가 되었다는 사실, 즉(바울식 표현을 쓰자면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카톨릭” “유명론자” “영지주의” 디다체, 사도들의 헌법, 토비트, 마카비 등과 같은, 철학용어 몇 개를 은연 중에 집어넣어 사용했던 자그마한 부주의와 성경에서 “조금” 벗어난 “훌륭하고” “경건한” 사람들(유세비우스, 파피아스, 시프리안, 폴리캅 등)을 존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 실수가 후에는 어린 아이를 고문하고 여자들을 화형에 처하는 거대한 오류로 발전해 버린 것이다(1400-1700).
긍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일의 전모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지성과 동료들의 의견을 은근히 신뢰하는 그들의 태도는 (잠17:16) 실로 기가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확실한 예언의 말씀, The Sure Word of Prophecy 참조). 로빈슨의 <역사적관점, Historical Point of View>이라는 책은 이러한 종류에 속한 모든 역사가들의 입장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제임스 하베이 로빈슨은 말하기를 “역사를 공부해 보면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동정심과 공평함과 신중함을 계발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한 사실에 관한 두 개의 상충되는 견해는 대체로 보아 공평할 수 없고 각 견해를 상호 배척하게 되기 마련이므로, 어떤 견해가 옳고 어떤 견해가 그르다는 근거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시대의 정신”이 역사기록을 심히 변경시킬 수 있는 고로 그 누구든 모든 역사가들의 기록에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으며, 이때 성경으로 그 어떤 기록을 판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주장을 편 로빈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베드로전서 5장에서 베드로가 사역하던 바빌론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고 생각할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으니 그것은 베드로가 바빌론이 아닌 로마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로빈슨은 “가치판단”에 있어 너무도 동정심이 많고 너무도 공정한 태도를 취한고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린 채 로마 카톨릭적 입장을 취했으니 가히 “전형적”인 배교자라 할 수 있다.
드디어 진리의 행로는 대서양을 건너 미대륙에 성경적 진리를 수놓을 즈음에 이르렀다. 미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탄생 이래 서구 문명국가 중 유일하게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원칙에 기초하여 세워진 나라이다. 뉴 잉글랜드에 도착한 청교도들 (Pilgrim fathers), 그 밖의 정착민들은 “가난”과 인종적 불평등 때문에 그곳에 찾아온 자들이 아니었다. 반면 현대의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바로 그런 이유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있다. 그들은 주로 본국의 “사회복지부” 관리들이 채택한 지나친 세금과 종교적 제한 때문에 이민을 갔던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었던 이들은 대서양을 건너온 후 국가교회(성공회, 개혁교회, 카톨릭, 루터교, 그리스 정교회)의 간섭과 박해를 제거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비록 그들 중 일부(성공회와 청교도)가 얼마동안 미대륙에서도 소규모의 “교회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자 했으나 곧 그것이 그들의 국가에 치명적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즉시 교회국가를 포기하고 그 어떤 침례교도도 성공회나 개혁교회의 “성직자”들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 세금을 바칠 필요가 없는 그런 헌법을 제정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주교를 왕과 동등시하는 카톨릭적 관습이 채택되는 한 그 어떤 유럽국가도 평화와 안전을 이룩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웠던 것이다. 유럽은 1600- 1946년까지 계속되는 전쟁터로 남게 되었다.
초기의 정착자들이 그 어떤 동기를 가지고(자유, 토지, 먹을 것, 금, 모험, 변화 등) 미대륙에 왔든지 간에 독립선언문을 작성했던 그들은,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셔야만 하나 그 어떤 형태의 국가교회도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비록 이것이 미국 전국민에 대한 로마 카톨릭교회의 공식적 저주를 의미한다 할지라도(왜냐하면 모든 교황은 스스로 손해 보지 않고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숭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계속 그대로 전진해 갔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1900-1994) 로마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세금을 사용해서 “참람한 음녀들의 어미”를 미국정치의 인도하는 빛으로 재등장시키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이처럼 인간이 역사로부터 배우는 유일한 진실은 인간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뿐이다. BB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