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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살상과 하나님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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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10월호>
우리가 "대량 살상"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에 의해 실행된 대량 살상이 있는가 하면, 그것과 무관하게 자행된 사탄적인 살상도 있기 때문이다.이슬람 왕국인 셀주크 투르크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제1차 십자군 전쟁(1096 -1099)은 로마카톨릭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십자군은 그야말로 끔찍한 "대학살"을 자행했다. 즉 무장하지 않은 어린아이나 부녀자들까지도 살해했던 것이다. 그 전쟁에서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은 터키인들과 더불어 회당에서 불에 타 죽었고, 항복하면 자비를 베풀겠다는 거짓 약속을 믿고 투항했던 300명의 포로들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십자군은 이슬람 족속의 여인들과 아이들의 목을 잘랐고 내장을 끄집어내어 성읍 바깥으로 내던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라 카나안 정복 전쟁을 치렀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합법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심지어 십자군에 소속된 사람들 중에는 교황의 거짓말에 속아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기 위해 참전한 자들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 자체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자행된 대량 학살 역시 주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권력을 누가 거머쥐느냐를 놓고 두 "사탄적인 집단"(로마카톨릭과 이슬람 세력)이 벌인 지극히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전쟁이었다.
즉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는데, 그와 동일한 짓을 하는 집단이 바로 이슬람 국가들이다. 최근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에 몰아넣은 "극단적 테러분자들인 IS"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 1964년에 창설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역시나 유대인 대량 학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테러 집단이다. 모슬렘들의 유일한 목표는 대량 학살을 통해 이스라엘을 제거하는 것이다. 특히 이란 혁명의 최고 지도자 아야 톨라 호메이니는 "대량 학살이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이는 끔찍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류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며 도덕적 정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는데, 그는 사탄에게 사로잡힌 정신병자였다.
그와 똑같은 정신병자가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히틀러였는데, 그는 순수 독일 정통의 위대함을 보여 주자고 하면서 "선별적 종족 번식"을 내세웠고, 유대인들을 향한 극렬한 증오 속에서 "이 악독한 유대인들이 독일을 망치고 있다. 이 용서 못할 유대인들이 세상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고 비방하며 유대인들을 향한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당시에 어떤 수용소에서는 약 215만 명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약 163만 명이 죽었고, 아우슈비츠에서는 450만 여 명이 죽임을 당했다. 모든 수용소에 있었던 유대인들 중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은 1/10도 채 안 되었다. 트레블링카에는 13개의 가스실이 있었는데, 매 30분마다 2,600명의 유대인들을 죽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나치 인종 청소의 핵심 인물들은 히틀러를 비롯하여 하인리히 힘믈러, 헤르만 괴링, 요제프 괴벨스, 루돌프 회스,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등이었는데, 이 잔인한 미치광이들은 모두 카톨릭교도들이었다.
반면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에 의해 실행된 대량 살상은 앞서 언급한 내용들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인데, 사탄적인 집단에 의해 자행된 대량 살상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① 카나안 정복 전쟁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었고, ②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유업으로 주시는 것과 연관된 전쟁에서는 항상 잔인한 대학살이 따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재림 때 아마겟돈 전쟁에서는 UN의 2억 명의 군대가 단시간에 완전히 몰살되는 것이다. 그 잔인함이 얼마나 극심할 것인지, 그들의 피가 말고삐까지 닿는다고 했다(계 14:20).
이런 사실을 무시하는 자들은 "인간적인 관조" 속에서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으로 일어난 잔혹한 결과와 그것을 명령하신 하나님에 대해 혹평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칼날로 성읍에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였으니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라』(수 6:21 - 여리코 성 전투). 『이스라엘이 광야의 들에서 자기들을 쫓던 아이의 모든 거민을 죽이기를 마치고 또 그들이 칼날에 쓰러져 진멸되었을 때 모든 이스라엘은 아이로 돌아와서 그 성읍을 칼날로 치더라. 그 날에 쓰러진 남자와 여자가 모두 일만 이천 명이었으니 아이 사람 전부였더라』(수 8:24,25 - 제2차 아이 성 전투). 이것은 일종의 대량 살상이다. 사람들은 이런 끔찍한 살상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해 오해를 한다. 즉 "어떻게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은 "신약성경의 신은 사랑과 관용과 인내의 신이지만,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변덕스런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회유와 피의 희생을 요구하는 나쁜 신"이라고 비난한다. 또한 무신론자들은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전쟁광이고 여성들과 천진난만한 아이들까지도 죽이는 잔인한 살인자"라고 주장한다.
사실 하나님에 대해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창세기 15:16에서는 『그러나 사 대 만에 그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음이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아모리인은 카나안 땅 거민들을 대표하는 민족이다. 이 구절은 카나안 거민들의 "죄악"이 다 차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곳 카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로 하여금 죄악으로 충만했던 아모리인들과 함께 그 땅에서 살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다. 반드시 카나안 거민들의 죄에 대해 심판하시고 그들을 이 땅에서 진멸하시고 내쫓으신 후에, 이곳으로 입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카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당시 카나안 땅의 문화와 관습은 끔찍할 정도로 타락하고 부패했었다. 레위기 18:24,25에서는 『너희는 이런 것들 중 어떤 것으로도 자신들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이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민족들이 이런 모든 일들로 더럽혀졌으며 그 땅도 더럽혀졌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 위에 있는 죄악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느니라.』고 말씀한다. 최근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우가리트"(시리아 라타키아 북쪽에 있는 고대 도시) 유적지에서 발견된 문서들을 보면, 이 지역들이 우상 숭배, 남색, 수간, 마술,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으로 가득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성경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증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카나안인들을 끔찍하리만치 진멸시킨 근본적인 이유였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동시에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분이시다. 누군가가 "하나님은 대량 살상을 자행하시는 분이신가?"라고 물으면, 우리는 거리낌 없이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죽임을 당하는 사람의 수가 한 명이냐 아니면 대량 살상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하나님께서는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주받은 물건을 취했던 아칸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을 잔인하게 죽이시는 것뿐만 아니라, 여리코와 같은 저주받은 한 성읍, 심지어 노아의 홍수의 경우처럼 저주받은 전 지구를 쓸어버리실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죄로 물든 전 우주를 물이나 불로도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 더 끔찍한 대량 살상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여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을 영원한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받도록 하신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죄에 관한 한 자비 없는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시다. 그것에 대해 사람들이 하나님은 잔인한 분이시라고 비난한다고 해서, 과연 주님께서 그 비난을 듣기 싫어 인간과 타협하시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비난하는 자들의 진짜 의도는 적당히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적당히 죄를 지으려는 데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진노의 심판을 내리시기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참으시고 인내하시며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120년간의 유예 기간을 주셨다. 이들 아모리인들의 경우에는 약 400년간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 유예 기간이 끝나자 심판을 내리셨고 그들을 진멸하셨다. 진멸하시되 "완전히" 진멸하신 것이다. 믿음을 통한 은혜로 구원을 받는 이 교회 시대에는 2천여 년 정도의 유예 기간이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구원의 날』(고후 6:2)도 끝나 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