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율법과 은혜 분류

대환란에 적용되는 히브리서 구절들 (히브리서 3,4,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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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0월호>

(히브리서 3,4,6장)
한국 교계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구약의 율법을 지키거나 계명들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유지하려고 애쓰거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로 적용함으로써 이단 교리들을 확산시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율법과 은혜에 관한 진리의 지식이 없다.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은 단지 은혜의 복음을 아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은혜를 성경적으로 분별하는 진리의 지식에 이름으로써 가능하다. 이제 율법과 은혜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단 교리들을 바로잡고 건전한 교리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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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란 때의 환란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행위에 따른 구원과 보장에 관한 히브리서의 특정 말씀들을 교회 시대의 교리로 적용하면 이단 교리가 된다.

1. 히브리서의 특징

1) 기록 대상 :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로, 바울 서신들과 같이 대상이 교회가 아니다.
히브리서는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인데, “히브리인들”이란 “믿지 않는 유대인”과 “믿는 유대인”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야고보서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약 1:1)에게 기록된 것이라는 사실에서 보듯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당연히 히브리인들을 말한다. 당시에 믿지 않는 유대인이든지 믿는 유대인이든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히브리인들인 것이다. 바울 서신들과 같이 대상이 교회가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2) 환란 시대의 교리 :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의 교리도 제시되지만 동시에 환란 시대의 교리가 특히 강조되는 책이기 때문에 히브리서의 여러 구절들은 교회의 교리로 결코 적용될 수 없다(히 3:6,12-14; 4:1-11; 6:4-6). 히브리서의 이 구절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고, 잃어버리면 다시 얻을 수 없다는 교리를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히브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며(히 5:12-14; 6:1-3), “성령의 동참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히 6:4). 그러나 이들은 교리적으로 여전히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아직 불완전하여, 언제든지 믿음에서 떨어지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 시대의 성도들처럼 구원의 완전한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를 통해 이들에게 과거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떨어져 나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성령의 동참자가 된 사람들조차도 떨어져 나가면 회개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히 6:4-6). 그래서 교회의 교리가 아니라 환란 시대의 교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2. 히브리서 3:6,14, 끝까지 굳게 붙들면,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면...

1) 여기서 말씀하는 “끝”은 어느 일정 기간의 끝으로, 교회 시대를 사는 개인의 삶의 끝이 아니라 마태복음 24:13과 같이 대환란의 끝이다. 대환란 때 “끝까지 견디는 것”은 구원을 받는 조건이 된다(히 3:6).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재림 직전의” 대환란 기간은 히브리서에 기록된 “마지막 날들”(last days, 히 1:2)의 기간과 일치된다. 이 마지막 날들은 “왕국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이다. 따라서 이 기간은 현재의 교회 시대가 아니다. 교회 시대는 왕국복음이 아니라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반면 왕국복음이 전파되는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당시 사도행전 7장에서 스테판이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에게 설교한 때까지의 기간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인 대환란 기간이다. 이 대환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끝날 것이다.

2) 교리적으로 히브리서 3장에서 말씀하는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끝까지” 견디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다. 여기서 “끝”(the end)은 마태복음 24:13,14에서 제시된 “끝”이며, 끝까지 견디지 못해 거부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히브리서 3:6은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의 집이라.』고 말씀하는데,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집이 되기 위해 끝까지 견뎌야 하는 조건을 지킬 필요가 없다.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분의 몸이요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구절이 아니다. 히브리서 3:14도 마찬가지다.
이 구절들에서 “끝까지”라는 말이 중요한데, 바로 이 “끝까지 견디는 것”은 구원을 받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히 3:6). 이 기간, 즉 대환란 기간에는 성령의 동참자가 되었을지라도(히 6:4)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들이 있고(히 4:1) 뒤로 물러나 멸망하게 될 자들이 있다(히 10:39). 다시 말해서 구원을 받았으나 다시 잃어버릴 자들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교회 시대에 교리로 적용할 수 없다. 환란 성도들은 교회 시대의 거듭난 그리스도인처럼 믿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3) 히브리서 3:12-13,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오늘이라고 부르는 동안... 죄의 속임수에 빠져 완악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 “오늘”이라고 부르는 때는 대환란 기간이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시험에 들지 않으며, 악에서, 즉 적그리스도에게서 구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때가 바로 대환란 때이다(마 6:11,13). 그 때는 구체적인 악의 실체인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있고, 그의 표를 받지 않으면 사거나 팔 수 없으며, 그에게 속아 그 표를 받거나 경배하면 구원에서 떨어져 나가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필요한 시기이다. 대환란 때 그들은 그들의 삶을 성결케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기도로써 끊임없이 주님께 의지하며 주님의 왕국이 이 땅 위에 하루 빨리 임하도록 기다리며 기도해야 한다. 따라서 이 말씀들 역시 교회 시대의 교리로 적용될 수 없다.

4) 히브리서 3:14에서는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partakers of Christ)가 된다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대환란의 “끝까지 견딘 자에게 약속된” 구원의 보장에 관한 말씀이다(히 3:6,12-14). 그러나 히브리서 6:4-6에서는 “성령의 동참자”(partakers of the Holy Ghost)가 된 사람들 중에 떨어져 나가는 자들이 있게 된다고 말씀한다. 이것 또한 교회 시대와는 다른 환란 시대의 교리를 분명히 제시해 준다. 현재 교회 시대에는 성령의 동참자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동참자이다. 이 시대에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그는 그 즉시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어 그리스도의 동참자가 된다. 그리고 그에게는 성령께서 영원히 내주하시기에 성령의 동참자가 된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환란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사건은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일어난다. 먼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는 히브리서 6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성령의 동참자”가 된다. 그는 하늘의 선물을 맛본 사람이며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떨어져 나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고 지옥에 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인내하며 그의 행위로 끝까지 견디게 되면 그는 “그리스도의 동참자”가 되어 구원받게 된다(히 3:14). 그러므로 이런 환란 시대의 교리를 교회 시대에 적용하면 이단 교리가 되는 것이다.

3. 히브리서 4:1-11,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두려워해야 하리라... 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하리니

1) 대환란 때에는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 일해야 한다. 안식을 위해 오직 “믿음”이 아니라 “행위”가 요구된다.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안식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안식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 “안식”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였던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카나안 땅에 들어간 안식으로(팔레스타인의 안식, 히 3:11), 천년왕국의 예표이다. 한편 교리적으로 히브리서 4:1,8-11의 안식은 천년왕국의 안식이다. 이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 일해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히 4:11) 교회 시대의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다. 교회 시대의 성도들은 천년왕국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2) 현 교회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휴거를 거쳐 이 땅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것이다. 그러나 대환란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천년왕국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힘써 해야 할까? 휴거되지 못하고 대환란 때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믿음과 더불어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행위”가 있어야 이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마 24:13; 25:14-30, 계 12:17; 14:12). 히브리서 저자는 바로 이 안식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안식(히 4:4, 창 2:2,3)도 이야기하고 팔레스타인의 안식도 여러 가지 대조를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분명히 여호수아의 인도로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 안식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으로 인해 그 안식은 참다운 안식이 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셔서 “오늘”이라고 하셨고(히 4:7), 그 날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삼아 들어가는 참된 안식의 날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했던 것과 대환란 때 유대인들이 겪는 과정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이 광야로 들어갔듯이 대환란 기간에 이스라엘은 광야로 들어갈 것이다(계 12:6). 출애굽 때 그들이 만나로 부양받았듯이 대환란 때 그들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부양을 받는다(계 12:6). 뿐만 아니라 출애굽 때 이스라엘이 걸어온 여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행로가 될 것이다.

4. 히브리서 6:4-6, 떨어져 나간다면

1) 현재 교회 시대에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그는 그 즉시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 몸의 지체가 되며 그리스도의 동참자가 된다. 그리고 그에게는 성령께서 영원히 내주하시기에 성령의 동참자가 된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며, 또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도 없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대상은 히브리인들이다. 그들은 구원받은 히브리인들이지만,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비록 “성령의 동참자”가 되었을지라도 끝까지 견딤으로써만 “그리스도의 동참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이것은 마치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애굽한 많은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한 것과, 또 카나안 땅에 들어간 많은 백성들이 배교해 나간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대환란 때 지상에 남게 될 사람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고, 잃어버리게 되면 그것을 되찾을 수 없다.
환란 시대에는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없다. 그 시대는 교회 시대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교회 시대에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 그 안에 들어가셔서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지만 환란 시대에는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떠나실 수 있다. 교회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이 땅에 있지만 환란 시대에는 교회가 휴거되고 없다. 그러므로 교회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역사의 중심이지만 환란 시대에는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 역사의 중심이 된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다루시는 경륜 속에서는 반드시 표적과 이적이 수반되는데, 이 표적과 이적은 왕국복음과 직결된다. 따라서 대환란 때는 교회 시대에 전파되는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왕국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다.

2) 대환란 때에 인내하며 행위로 끝까지 견디면 “그리스도의 동참자”가 되어 구원받게 된다(히 3:14). 대환란 때는 교회 시대와 같은 거듭남의 역사가 없으며, 그리스도의 동참자가 되는 것이 믿는 즉시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간격을 두고 “행위로 믿음이 입증된 후에” 이루어진다.
교회 시대를 향한 영적 적용이 아무리 많이 제시될지라도 본문은 교리적으로는 교회 시대를 뛰어넘은, 다음 시대인 대환란에 적용된다. 이러한 분명한 성경적 진리가 히브리서 3,4,6,10장, 마태복음 24,25장, 요한계시록 2,3,12,13,14,22장, 야고보서 5장, 유다서와 데살로니가후서 2장 등에서 명확히 제시된다. 성경을 성경대로 읽고 믿는다면 이 진리를 명확히 나타내 주는 본문들에서 결코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본문들은 교회 시대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러한 본문들은 교회 시대 이후에 오는 환란 시대에 적용되는 말씀들이다. 따라서 이런 말씀들을 교회에 교리로 적용하면 이 시대의 이단 교리가 되는 것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