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해설 분류
선택(Selection ) / 예정(Predestination ) / 부르심(C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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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7월호>
선택과 예정, 그리고 부르심은 모두 성경에서 발견되는 성경적 용어이다. 그러나 이 용어들만큼 심하게 왜곡되이 사용되는 용어들도 드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용어들을 칼빈주의식 용어로 알고 있다. 물론 이 일에 대한 큰 책임은 칼빈주의자들에게 있다. 칼빈주의자들은 이 용어들을 자신들의 교리를 설명하는 전유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이 용어들이 얼마나 왜곡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본 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선택, 예정, 부르심의 왜곡된 사용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칼빈주의 신학자 쿠스탕스의 말은 설득력 있게 들릴 것이다. “오늘날 선택이나 예정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 특히 신학적 배경하에서 사람들이 마음 속에 칼빈을 연상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사람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을 “예정”이라고 부른다. 이 예정은 더 깊이 두 부분, 즉 “선택”과 “버림받음”으로 나뉜다. 즉,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무조건 구원에 이르고, 나머지 사람들은 버림받아 모두 멸망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의 불변하는 영원한 판결에 의해, 또 그분의 주권적인 판결에 의해 구원으로 선택하셨다.”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선택”이란 용어는 전체 인류 중 어떤 사람들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떤 사람들만을 택하셨기 때문에 나머지는 자연히 구원받지 못하도록 예정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부르심”이란 용어도 동일한 맥락에서 왜곡되었다. 즉 택함받은 자를 구원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또한 이 부르심은 어떤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부르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주의 체계 안에서 이 세가지 용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사람의 구원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시고자 “예정”하셨으며, 그 사람을 구원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선택”은 개인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이와 같이 예정과 선택은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구원과 연관된 하나님의 택하심의 의미로 종종 동일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사실 성경에서 선택과 예정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용어들이다. 사실 성경 어디에서도 선택을 영원한 결정으로 언급한 곳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1 이전에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으셨는데, 이 사실들은 성경에서 선택이 나오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사 42:1; 45:4,6,9,22, 마 24:22,24,31, 롬 8:33, 골 3:12, 딤전 5:21, 딤후 2:10, 딛 1:1, 벧전 1:2).
“선택”이란 용어는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와 천사들에게도 적용되었다. 또 우리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선택받았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구성원들이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코라와 코라의 자손들은 지옥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켰다. 하나님을 반역하여 우상을 숭배했던 유다의 악한 왕들을 기억해보라. 분명히 이스라엘의 선택은 구원으로의 선택이 아니며, 개별적인 선택도 아닌 민족의 전체적인 택하심이다. 어떤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하늘나라나 지옥으로 선택되고 예정되었다는 생각은 성경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으며, 오직 <기독교 강요>나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에서나 나오는 생각일 뿐이다. 물론 “택하다”(elect)란 단어가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기도 했지만(롬 8:33, 골 3:12, 딛 1:1, 벧전 1:3, 요이 1,3), 이 구절들에서 그 단어는 단순히 신약 성도의 가치나 평가를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선택이 신약 성도들에게 사용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와 천사에게 선택이 적용될 때와 유사한 의미가 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도 “선택된 종”이라 언급한 바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구원으로 선택받을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부르심”이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르심”과 관련해서 알아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부르심은 칼빈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두 가지, 즉 유효적 부르심과 일반적인 부르심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1:9에서의 부르심은 구원 이후에 나오며, 베드로후서 2:10에서는 선택 이전에 부르심이 나오고, 유다서 1에서는 거룩하게 된 이후의 부르심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부르심”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칼빈주의 체계가 완전히 엉터리임을 입증해 준다.
둘째, 성경에서 “부르심”은 대부분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구원으로의 부르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고전 1:9, 갈 1:6, 살후 2:14), 모든 부르심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삼상 3:4, 잠 1:24, 마 10:1, 살전 4:7, 롬 1:1, 고전 7:15, 갈 5:13). 또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들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유다는 예수님께서 친히 부르시고(마 10:1), 택하시고(눅 6:13), 예정하셨으나(막 3:14), 그의 정체는 “마귀”로 판명이 났다(요 6:70)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칼빈주의의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이 부르심과 구원을 혼동하게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예정”의 교리
칼빈은 예정에 대해 “모든 것이 동일한 상태에서 창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의 영원하고 바뀔 수 없는 계획에 따라 어떤 자들은 영생으로 예정되고 다른 자들은 영원한 저주로 예정되었다...고백하건대 실로 이 판결은 무시무시하다.”라고까지 말했다. 예정은 성경적인 교리이지만, 결코 개개인의 구원과 멸망에 대한 예정이 아니다. 개인의 구원에 대한 예정론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적 축복을 받고, 택함 받고, 예정되고, 구속받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쳐진 것이다.
예정에 대한 성경적 진리는 하나님께서 누가 영접하고 거절할 지를 아신다는 것이며(롬 8:29, 벧전 1:2), 영접한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롬 8:29), “자신의 자녀로 입양”(엡 1:5)하시려고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즉, 성경의 예정은 누가 구원받을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정하신 것이다.
에베소서 1:5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예정하신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을 예정하신 것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케 하려 하심”(엡 1:6)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예정하셔서 그들로 “그의 영광의 찬양”(엡 1:12)이 되게 하시려고 유업을 이어받게 하시는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을 간직해 두셨으니(벧전 1:4)라고 약속하셨다.
성경에서 예정은 네 번 언급되며(엡 1:5,11, 롬 8:29,30),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 본다면 “예정”이란 말이 다음의 것들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우리의 그리스도의 영접 여부에 따라 자녀로 입양될 것이다(엡 1:4-9).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아들을 영접할지 그렇지 않을지를 그들이 구원받기 전에 미리 알고 계셨다.
2. 미래에 그리스도와 같아질 것이다(롬 8:29). 즉, 이 미리 아심의 근거 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다.
다시 말하지만 “예정”은 아담 안에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에 따라 영원히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아담 안에 있는 한 영원한 멸망과 저주와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입을 것이며(고전 15:52, 빌 3:21, 요일 3:2), 영원한 새 예루살렘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벧전 1:4). 개인의 운명이 예정되었다는 것은 이교도들이 생각하는 “알라의 뜻대로”나 “팔자 소관”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어찌보면 그보다 더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이론이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도 지옥으로 가기를 원치 않으신다(딤전 2:4, 벧후 3:9). 그곳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이지,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을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마 25:41).